글 쓰는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제가 ‘수지’로 흐른 적이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남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외쳤다. “너무 예뻐!”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녀의 미모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나 보다. 수지의 미모가 절정에 다다랐던 5가지 순간을 꼽아봤다.
#건축학개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의 연기가 어땠는지는 사실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첫사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그녀의 모습만 생생하다. 영화 초반, 수지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민낯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초췌한 기색 하나 없이 청초하기만 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짙어지는 화장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차마 영화 속에서 수지의 연기가 능숙했다고 말은 못 하겠다. 러닝타임 내내 그녀의 연기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기복이 심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제법 자연스럽게 잘하다가도 또 어떤 장면에서는 어색했다. 하지만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 남몰래 좋아했던 남학생에게 매몰찬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가운데 애써 의연한 척하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그 장면에서 수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지의 전설이 시작됐다.
#Hush
수지는 ‘미쓰에이’라는 걸그룹으로 먼저 데뷔했다. 비주얼만 보고 ‘얼굴마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JYP의 캐스팅 직원이 “춤, 노래, 외모를 모두 갖춘 유일한 케이스였다”고 말할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
배우로서는 청순한 이미지만을 보여왔지만, 가수 수지는 좀 더 도발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데뷔곡 ‘Bad Girl ,Good Girl’에서 수지는 바닥에 누워 다리를 흔드는 파격적인 안무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한다.
바닥에 엎드려 교태 섞인 눈빛을 보내는 와중에도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이는 수지라니, 이 얼마나 ‘사기 캐릭터’인가! 데뷔곡에서 ‘수지가 섹시할 수도 있구나’라는 가능성을 보았다면, 2집 ‘Hush’에서는 그 완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크롭트 톱에 가죽 바지를 입고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수지의 사진을 보며, 배우 수지의 농익은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다.
#런닝맨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수지는 예능에서도 크게 활약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댄스 동호회 활동을 해왔을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얌전 빼는 법이 없다. 만보기를 차고 막춤을 추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예쁜데 털털하기까지 한 수지에게 남성 패널들은 한 번 더 반하고, 언니 패널들도 경계하다가 결국 수지의 매력에 빠져버리는 설정은 이제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기자는 수지가 출연한 최고의 예능으로 단연코 <런닝맨>을 꼽겠다.
특히 송지효와 ‘자매 귀신’으로 등장했던 에피소드는 단연 최고다. 옛날식 교복을 입고 흰 양말을 신은 수지가 숨을 쉬고, 말을 하고, 걷고, 뛰고, 웃다가 결국엔 모두를 완벽하게 속이는 에피소드다. 이 방송에서 나온 각종 캡처는 지금도 ‘수지 레전드 짤’이라는 이름의 게시물로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한복 입은 수지
수지가 첫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도리화가>. 흥행이나 비평 양측 모두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아쉽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수지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존재 자체만으로 기쁠 것이다. 왜냐하면 한복 입은 수지의 모습을 원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상황에서 소리에 대한 열정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설정에 맞게 거친 재질의 누추한 한복을 입고 얼굴에는 검댕을 묻힌 모습조차 귀엽기만 하다. 심지어 갓을 쓰고 도포를 갖춰 입은 남장한 모습도 아름답다. 수지가 영화 속 배역의 콘셉트에 맞춰 한복을 입고 찍은 화보는 공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해 결혼하는 신부들의 주문이 열이면 열, “수지가 화보에서 입은 한복 같은 느낌으로 디자인해주세요”였다던데 믿거나 말거나.
#함부로 애틋하게
<함부로 애틋하게>를 봤다. 이경희 작가 특유의 탄탄한 각본, 수지와 김우빈이라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수지는 가난한 여주인공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PD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설정에 걸맞게 수지는 시종일관 우중충한 옷만 입고 머리도 그냥 질끈 묶어도 미모가 안 가려진다. 수지 팬이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기도 많이 늘었다. 눈물 연기만큼은 제법 자연스럽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다른 드라마의 여주인공들도 내로라하는 미녀 배우인데, 어째 수지 앞에서는 빛을 잃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비단 기자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