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장. 인터넷 동호회 아이디(ID)를 예명으로 사용하는 이 남자는 음악을 한다. 최근에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이는 중이다.
대중에게야 ‘조금 특이한 집에서 사는 뮤지션’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음악 하는 이들 사이에서 김반장은 대체 불가한 존재다. 조용하고도 꾸준히 숙성시킨 그의 음악은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맛이 있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드러머로 데뷔한 그는 소울·펑크 밴드 ‘아소토 유니온’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흔치 않은 캐릭터와 탄탄한 음악성, 그리고 타이틀곡의 예상치 못한 히트가 맞물리며 ‘아소토 유니온’의 1집 음반은 인디밴드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김반장은 레게 밴드 ‘윈디시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 ‘김반장’은 신뢰를 주는 뮤지션이다. 그 신뢰란 어떤 결과물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음악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밖에 ‘플러스알파’가 있다. 음악에 담긴 메시지와 실제 삶이 일치하며 내는 강력한 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더욱 김반장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김반장의 집은 북한산 기슭에 있다. 버스 종점에 내려 걷다 보면 골목에 위치한 가파른 계단을 발견할 수 있다. 빨강·노랑·초록색의 패턴으로 칠한 76개의 계단을 오르면 ‘사랑과 존중, 골목에서는 조용히’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는 파란 대문이 나온다.
조심스럽게 들어서자마자 감탄이 절로 난다. 오래됐지만 아늑한 집, 집을 감싸듯 자라난 울창한 나무들.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다. 집 한편에 쌓인 연탄 더미, 마당 한가운데 설치한 흔들그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음악감상실까지, 눈이 닿는 곳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타닷’ 소리가 나 돌아보니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와 황색 얼룩무늬 고양이가 기자를 저만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아침 일찍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고양이들 참 귀엽지요? 검은 아이는 최근 서열 싸움에서 이겼는지 밥을 주면 가장 먼저 먹더라고요. 몇 마리 더 있는데 볕이 좋아서 어디 어슬렁거리고 있나 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의 시간을 마친 김반장이 기자를 맞았다. 흰 티셔츠와 친구가 외국에서 사다 주었다는 독특한 디자인의 녹색 바지를 입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음악 들으면서 이야기해요”라며 김반장은 LP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정원에 레게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배고프니 이거 같이 먹을까요?”라며 그가 김밥 한 줄을 내밀었다. 그렇게 소풍 같던 시간이 시작됐다.
“원래 이 집은 보육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래요. 친구가 ‘네가 보면 정말 좋아할 공간이 있다’고 해서 보러 온 첫 순간 ‘이 곳이다’ 싶었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마당이에요. 나무가 이토록 울창하고 흔들그네도 있잖아요! 집은 부엌, 침실, 음악 작업실, 창고, 명상을 하는 다락방으로 나누어 꾸몄어요. 집 앞 작은 창고는 음악 감상을 위한 서재로 만들었지요. 이따가 다 보여드릴게요. 지붕 위에도 같이 올라가 보자고요.”
작열하는 햇빛을 맞으며, 쉴 새 없이 발목으로 기어오르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튕겨내며 김반장은 말을 이었다.
“친구들과 스태프들과 함께 계단에 페인트칠을 했어요. 고양이를 많이 키워서 그런지 쥐는 없어요. 도시가스는 안 쓰지만 제습기는 구입했죠. 음악 작업도 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곰팡이가 생기면 안 되거든요. 집의 모든 것이 맘에 들어 바꾸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은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특히 장마가 끝나면 물이 고인 웅덩이에 모기들이 생기기 때문에 관리를 잘해야 해요.”
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겨울에도 찬물을 써야 하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연탄을 사용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조차 낭만이고 행복이다.
“겨울에 엄청 추워요. 그런데 동시에 포근한 맛이 있어요. 이 집과 마당이 나를 안아주고 있는 느낌이 나거든요. 이젠 전문가가 다 되었죠. 겨울에 찬물로 씻어도 아직까지는 개운해요. 물론 여자친구가 오면 제가 직접 물을 따뜻하게 데워주지요.(웃음)”
5년을 만났다는 그의 여자친구는 요리 블로거이자 화가다. 수더분하게 인터뷰하던 김반장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수줍어했다. “센스 있고 강단 있으며 당찬 여성”이라는 게 김반장의 소개다. 집 안 곳곳에는 여자친구의 그림과 아이디어 소품이 빼곡했다.
“왜 결혼은 안 하냐고 물어보시는데, 여자친구도 저도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어느 정도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도 들고요. 얼마 전에는 같이 여행도 다녀왔지요. 여자친구 아버님이랑도 엄청 잘 지내요.(웃음) 오래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이에요. ‘더 나이들면 동네에서 좋은 삼촌이랑 숙모가 되자’고 합의도 했답니다.”
형식상의 관계보다 서로의 존재에 집중하는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게 김반장은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명상과 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 10시쯤 찾아오는 밴드 멤버들과 연습을 한 다음에는 집 이곳저곳을 손본다. 남는 시간에는 산을 오른다.
“밤에도 종종 산에 있는 절에 다녀오는데 얼마 전에는 입구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멧돼지를 발견했어요. 그럴 때는 절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면 안 돼요. 더 자극하는 결과를 낳거든요. 가만히 멈춰 서서 휴대폰 불빛을 이리저리 움직였죠. 멧돼지는 불빛을 무서워하거든요.
그렇게 두 마리를 보내고 나서 다시 길을 가려는데 뒤에서 또 한 마리가 휙 지나가지 뭐예요. 위험하지만 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온갖 자연의 소리 때문에 산행을 끊기란 쉽지 않네요.”
웅크리고 앉았던 꿩이 푸드덕 날개를 펴며 날아가는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 언뜻 들으면 사람이 말하는 것만 같은 산비둘기의 울음소리까지, 김반장이 사는 곳은 자연이 만드는 음악으로 가득하다. 기약 없이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시간이 세상과 다르게 흐르는 곳”이라는 그의 설명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볕 좋은 날에는 밴드 멤버들과 마당에서 합주도 해요. 그 동영상을 보고 <나 혼자 산다> 제작팀에서 섭외가 왔어요. 출연해야 할지 고민 많이 했어요. 그 프로그램은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주로 다루고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나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니 알아보는 분들도 많으세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건 우리가 공연할 때 자녀들을 데리고 오시는 가족 관객이 늘었다는 거예요. 아이들부터 부모 세대까지 들을 수 있는 공연을 한다는 건 뿌듯한 일이죠.”
음악이 좋아 달려온 시간들, 15년 동안 지하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한 김반장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제 라이프스타일이 어쩌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풍족함’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이렇게도 행복하게 살면서 충분히 예술할 수 있다는 걸 젊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텔레비전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예요.
똑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현실을 직시하고 움직이면 길이 열린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거든요.”
돌아보면 김반장이 유년 시절 들었던 김현식의 음악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김현식, 유재하의 음악을 들으며 ‘집중할 수 있는 걸 찾았다’고 생각했던 소년은 옆자리 짝꿍이 건네준 이어폰을 통해 록의 세계에 입문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과 어울리며 김반장은 드럼을 시작했고, 스티비 원더와 마빈 게이의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맛있는 음악이 있다니’라고 감탄하며 록에서 흑인음악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아소토 유니온’을 결성했다. 지금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회자되는, 단 한 장의 음반만 남기고 해체된 소울·펑크 밴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생각 없이 음악을 만들어요. ‘이렇게 하면 뜰까?’ 혹은 ‘저렇게 하면 멋지게 들릴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요. 그래서 타이틀곡 ‘Think about’ chu’도 그렇게 히트칠 줄 몰랐어요. 우리 음악을 제작해준 분들은 ‘많이 팔려봤자 1천 장’ 일 거라고 했어요.
게다가 러닝타임이 5분이나 되니까 라디오에서 틀기도 애매하잖아요. 당시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음악의 러닝타임은 4분 10초대로 제한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우리 노래를 많이 틀어주시더라고요. 어안이 벙벙했죠.”
‘Think about’ chu’ 열풍은 기자에게도 생생하다.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네티즌들이 메신저를 통해 스스로 디제이가 되어 라디오를 진행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아소토 유니온의 음악은 모든 디제이들의 필수 리스트였던 것이다.
“아쉽게 해체했지만 돌아보면 좋은 추억만 남아 있어요. 그때 경험한 모든 것이 제 이후의 음악을 위한 토양이 되었고요. 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Think about’ chu’는 사실 제 이야기예요. 지금도 가끔 들으면 그 곡의 주인공인 옛 여인들이 떠오릅니다. 두세 명의 이야기를 섞었거든요. 지금 다들 가정을 이루고 잘 사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웃음)”
해가 중천에 올랐다. 뙤약볕을 피해 김반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드럼이 설치된 작업실에서 그에게 한 곡 연주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반장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요즘에는 홍제동 쪽에서 판소리도 배우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민속음악, 특히 그중에서도 ‘만신’이라고 불리는 큰무당들의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분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월드 뮤직의 종착점은 결국 이런 형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닌 게 아니라 집 안 곳곳에 국악기와 각 나라의 민속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매년 해외 페스티벌에 참여해 공연하는데 반응이 좋아요. 네바다 주에서는 공연이 끝나고 세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어요. 다른 나라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데 알면 알수록 우리 음악이 지닌 요소가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다만 보편적인 그릇에다 고유성을 담아야 해요. 제 경우에 그 그릇이란 ‘레게’죠.”
김반장은 자메이카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음악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상시 농사를 짓다가도 무대에 오를 일이 생기면 뮤지션으로 변신하는 자메이카의 친구들에게서 ‘음악과 생활이 밀착된 삶’의 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면 말도 잘 통하고 재미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음악이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메이카에서는 음악이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러다 얼마 전에 동네 잔치에서 사회를 보면서 제가 음악으로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8월에는 바자회에서 사회도 보고 연주도 할 거예요.”
김반장은 ‘환상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큰 미신은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냐”고. 소위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생각이란다.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살아가는 데 물론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물질만능주의는 삶에 대한 실제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지요.”
깨달음을 실제로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반장 역시 지금의 삶을 누리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재작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어요. 여자친구랑도 대판 싸웠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지요.(웃음) 그런데 문득 깨달음이 왔어요. ‘아, 그냥 나는 나구나. 잘생긴 것도 못생긴 것도 아닌, 김반장의 얼굴을 한 나구나. 그걸 깨달으니까 희열이 오더라고요. 원래 스스로를 들들 볶고 남에게도 같은 기준을 강요하는 피곤한 스타일이었는데, 이젠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졌어요.”
그 이후 김반장의 목표도 바뀌었다. ‘매일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 그리고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전에는 외국의 뛰어난 밴드를 하나 점찍은 다음에 ‘내가 저 밴드는 뛰어넘어야지’라고 이를 갈며 연습했다면(웃음) 이제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해주는’ 음악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김반장은 ‘윈디시티’의 새로운 음반을 내는 데 조급해하지 않는다.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궁합을 맞춰가는 시간을 통해 빚어질 고유한 결과물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목표가 하나 더 있어요! 아이들이 행복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어쩌면 새로 나올 음반에서 제가 산비둘기 소리를 낼지도 몰라요.(웃음) ‘쿠쿠쿠쿠쿠’ 이렇게요.”
김반장이 산비둘기의 몸동작을 흉내 내며 웃었다. 유일무이한 뮤지션, 마을 잔치의 재기발랄한 사회자, 살림꾼 청년, 마을 아이들의 삼촌, 이 모든 역할을 그는 이렇게나 즐기면서 해내고 있다. 소년 같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