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보합니다. 얘, 스폰서 있어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 만나고 다녀요. 대학원 가서 학벌 세탁하고 용돈 받아서 해외여행 다녀요. 그러면서 원래 부자인 척하더라고요.”
요즘 핫한 ‘강남패치’에 올라온 유명인에 대한 제보 내용이다. 강남패치가 뭐냐고? 인터넷 연예 매체 ‘디스패치’의 ‘패치’와 ‘강남’의 합성어로, 유흥업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이 계정을 누가 운영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폭로성 사진과 글이 올라오면 신고한 이들에 의해 계정이 폭파되고, 또다시 새로운 계정이 만들어지기를 거듭하더니 이젠 아예 사이트까지 생겼다.
그렇다면 강남패치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올라올까? 한마디로 인스타그램 속 셀러브리티들의 사생활 폭로다. 고급 아파트 실내에 즐비한 명품,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찍은 셀카, 해외의 아름다운 해변 사진 등을 올리며 네티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아름다운 그녀가 알고 보니 유흥업소 종사자였다는 식이다.
심지어 과거에 유흥업에 종사하다가 쇼호스트나 승무원 등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명단까지 폭로하는데, 그중에는 과거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거나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인도 있다.
셀러브리티가 학창 시절 ‘일진’이었다거나, 과하게 성형수술을 했다거나(졸업 사진 제보), 개명했다거나 하는 내용도 주를 이룬다. 강남패치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유명인의 아내, 재벌가 며느리 등의 사진도 게재되는데 알고 보니 이들도 소위 ‘호스트 바’의 단골 고객이라나. 그 외에 ‘유흥업소를 즐겨 찾는 단골’이라며 거론된 남자 연예인과 운동선수도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게시물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남패치에는 익명으로 제보하는 내용이 거의 여과 없이 게재된다. 이는 명백한 범법 행위다. 인터넷에 ‘강남패치’를 검색하면 인물의 이름이 쭉 뜬다.
모든 게시물의 내용은 ‘~카더라’ 종류의 글이다. 게시물에 거론된 인스타그래머는 대부분 자신들의 계정을 닫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강남패치에 이름이 올라간 것만으로도 심적 고통이 클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운영자의 태도다. 일반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인데도 당당하다. “정의 구현에는 관심 없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할 뿐”이라고 선언하며 “훼손될 명예가 있다면 날 고소하라”라고 말한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그저 사람들에게 얘기할 공간을 만들어준 것뿐이다.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계정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돼 강남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감옥에 가도 그만”이라는 이 운영자의 태도에 “화끈하다”며 반색하는 네티즌도 있다. 대중은 왜 이토록 강남패치에 열광하는 걸까?
멋있게 사는 누군가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샘내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하루 사는 것이 버거운 나와는 달리 부잣집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사는 아름다운 여자가 알고 보니 유흥업소에서 일해 번 돈으로 사치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처음엔 놀라겠지만 그다음에는 고소해할지도 모른다. ‘결국 너도 나와 다르지 않았어’ 혹은 ‘알고 보니 너도 별것 아니구나’라는 자기 위안을 할지도 모르는 일.
한편 강남패치는 또 다른 ‘패치’들을 낳았다. ‘한남패치’ ‘창놈패치’ ‘오메가패치’ ‘일베충패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패치들은 공격성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가령 ‘한남패치’는 호스트 바 등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운영자 측이 게시물에 올린 글은 이렇다.
“여자 등쳐 먹는 놈들, 여자 돈 먹고 도망간 것들, 성적으로 문란한 놈들 제보 환영, 쓰레기 짓 하는 한국 남자 제보 받는다.”
‘성병패치’는 더 잔인하다. 각종 성병에 걸린 남성을 제보 받아 폭로하는데, 사진과 이름, 나이, 병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운영진은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병원에서 성병 검사를 받은 뒤 진단서를 제출해달라”라고 공지했다. 계정은 현재 폐쇄됐지만, 이미 남성 40명의 신상 정보가 공개됐다. 모두 일반인이다.
‘오메가패치’는 지하철, 버스의 임산부 좌석에 앉은 남자들을 몰래 촬영해 공개하는 계정이다. ‘오메가’는 성별에 상관없이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가상 용어로, 인터넷상에서는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임산부 배려 좌석에 남자가 앉는 것이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범법 행위는 아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오메가패치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신고 4~5건을 접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이 있는 법.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도 대중의 관심이 식지 않는 한, 또 다른 ‘~패치’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러다 운 나쁘게 수많은 ‘~패치’ 중 하나의 타깃이 되는 건 아닐지 슬쩍 걱정되는 건 기자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