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1 몇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일명 ‘파워 인스타그래머’. 아이가 있는 주부지만 말도 안 되는 외모와 더 말도 안 되는 몸매로 인기가 많다. 신상 명품 백을 메고 다니며, 핫한 스폿은 죄다 훑으면서 고급진 ‘먹방스타그램’을 보여준다. 그때마다 슬금슬금 보이는 명품 풀착장과 상반된 민낯은 왠지 시크 그 자체다. 슬쩍슬쩍 친정아버지와 남편의 직업을 언급한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올린 사진 속 남편의 하얀 가운이 특별해 보인다.
여자 2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하면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여자다. 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깔끔한, 마치 호텔 같은 인테리어는 주부들의 로망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완벽한 플레이팅을 선보이는 그녀. 노릇한 크루아상과 스콘, SSG표 아보카도를 보고 있노라면, 나와는 별개의 세상에 산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른바 ‘깔’별로 있는 H사의 고급진 백은 그녀의 SNS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여자 3 당최 전직을 알 수 없고, 남편의 정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남편의 뒤태는 이진욱만큼이나 내 스타일이다. 간혹 만나는 연예인 언니들과의 브런치도 그녀의 전직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아, 게다가 오늘 오전에 업데이트한 B사 승용차…. 일주일 전엔 분명 덩치 큰 L사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더니…. 습관처럼 그녀의 SNS를 엿본다
SNS가 발달할수록 얼굴을 마주보며 하는 대화보다는 문자 대화가 더 편할 때가 있다. 언제부턴지 전화기를 붙든 채 밥을 먹는다. 일명 ‘파워 인스타그래머’라 불리는 여자 사람들의 SNS를 훔쳐보고, 슬쩍 ‘좋아요’를 누른다. 아이가 있지만 빛나는 비주얼을 가졌고,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고급진 라이프를 즐긴다. 아, 주말이면 어김없이 여행을 떠난다(여행 룩은 또 말해 무엇하랴, 패션쇼를 하러 간 건지 여행을 간 건지). 우리가 꿈꾸는 삶을 사는 그녀들은 어느새 여자들의 ‘워너비’가 돼 있고 어지간한 스타들보다 관심도가 높다. 적당히 자신의 사생활을 공유하고, 사진 아래 덧붙는 멘트조차 매력적이며, 댓글로 소통이 가능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팔로우’ 버튼 하나로 우리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연스레 그녀가 입은 옷, 가방, 신발 등을 검색한다. ‘왜 저렇게 예쁘지?’ ‘어디서 산 걸까?’ 숨어 있던 물욕이 꿈틀거린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생겨난 신조어가 바로 ‘마켓녀’다. 본인이 먹고 쓰고 입는 아이템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판매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본인이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함으로써 퀄리티는 높이고 가격은 내린다. 그녀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댓글로 제품을 문의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고, 답글이 달리기만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또 그녀가 파는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그녀와 동일시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켓녀’ 역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고, 자신의 일상을 더 럭셔리하게 만들어주는 판매 활동을 즐긴다. ‘마켓녀’가 파는 제품은 현금 구매만 가능하다. 가격이 많이 다운됐다지만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는 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환불이 불가능하다. ‘마켓녀’들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기 때문에 환불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사이즈 1회 교환 가능’을 큰 인심 쓰듯 공표하는 마켓녀도 있다. 팔 때는 친절하던 여자들이 환불을 요구하면 안면 몰수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동경의 삶을 살았던 그녀가 하루 만에 적이 됐다.
불만을 품기 시작한 사람들은 ‘마켓녀’의 신상을 털기 시작한다. 이름부터 나이, 사는 곳, 출신 학교까지 낱낱이 공개된다. 사생활이 폭로되고, 서로의 제품을 홍보해주며 가깝게 지내던 핫한 무리도 이제는 적이 돼 서로의 과거를 알고 있다며 칼을 겨눈다. 부러움과 동경이 질투와 비난으로 변질한 셈이다. 흥미로운 건 ‘마켓녀’ ‘파워 블로거’ ‘파워 인스타그래머’로 통하던 그녀들의 벗겨진 민낯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육아에 힘들어하고, 능력 있는 남편 때문에 외로워한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보여주기식 일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금수저인 줄 알았던 그녀도 평범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좌절한다. 그럼에도 ‘마켓녀’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녀들은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리며 일상을 공유하고, 물건을 판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녀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물욕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