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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가 웃었다

숨죽였던 그녀가 기지개를 켰다. 이제부턴 그녀 세상이다.

On May 10, 2016

망토 비틀비틀, 팔찌 베리송크, 단추 모리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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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이행 문제를 두고 전 소속사와 빚은 갈등 때문에 논란이 불거진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루머 속에서 홀로 싸워온 클라라가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기지개를 켰다. 1년 6개월 만에 만난 클라라는 흘러나오는 노래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존재의 이유를 확인한다는 클라라는 밝고 건강함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환하게 웃었다.

“화보 촬영은 오랜만이에요. 더구나 웃는 얼굴을 보이는 밝은 콘셉트는 처음이라서 신나요. ‘나 아직 죽지 않았어!’ 하는 심정으로 임했어요. 여전히 밝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클라라는 이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레깅스를 입고 왔다.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곁에는 그녀와 꼭 닮은 외모의 어머니가 있었다. 촬영이 다 끝난 뒤에도 스튜디오를 떠나지 않던 클라라. 모든 스태프가 철수했는데도 혼자 남아 촬영한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보았고 수백 장을 다 확인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제 첫 공식 활동이에요. 그동안 중국과 홍콩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활동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화보와 인터뷰를 통해 제 진심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환한 표정 속에 덤덤한 심경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 덤덤함이 기자에게는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며칠 후 클라라를 다시 만났다. 기자가 만난 그녀는 자기 말을 꾸밀 줄 몰랐고 특정 단어에 힘을 주는 법도 몰랐다. 하지만 매사에 솔직하고 당당했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그녀의 성격이 간혹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게 하기도 한다. 아마도 논란은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처음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저는 홍콩에서 촬영 중이었어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정확한 사태 파악이 불가능했죠.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대처했어야 하는데 당시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저도, 저를 믿어주는 분들도 모두 상처를 입었죠.”

지난 1년 6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생각보다 바빴어요. 소송이 진행 중이었고 재판의 모든 과정을 직접 준비해야했죠.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했어요.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심정이었다고 할까요? 정면 돌파를 해야 하는지, 조용히 신중하게 해야 하는지 몰라 고민스러운 시간이었죠. 물론 지금은 완전히, 깨끗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었어요.”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클라라와 전 소속사 회장이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고 서로 헐뜯던 양측의 싸움은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대중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클라라의 말투나 행동을 꼬집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인생을 배운 것 같아요. ‘이렇게도 흘러갈 수 있구나’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었죠.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걸 후회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연예인이라서 힘들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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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제이가든, 재킷·청바지 모두 
에스카다, 반지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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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는 무거운 공기를 환기하려는 듯 크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본 사람들이 여자로서 수치심이 들지는 않았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저는 당당했어요. 소속사 회장님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 사람들은 저를 마치 이상한 여자 취급했죠. 점점 일이 커지는데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사건 후 그녀는 국내의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SNS도 끊었다. 부모님이 사는 집 근처로 이사해 은둔하듯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중국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가 찾아왔다. 논란으로 뜨거운 한국을 뒤로하고 해외 활동에 주력하는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도피’라고 말했다.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터닝 포인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마침 중국에서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왔죠. 도피나 회피보다는 도전이었어요.”

클라라는 중국 드라마 <행복협심교극력(행복이 담긴 쵸콜릿)>에서 여주인공을 맡았고, 곧 개봉할 홍콩 영화 <사도행자>에서도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 인물을 연기했다. 곧 개봉할 미국 영화에도 출연했다.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아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몸도 마음도 성장했죠. 지난 1년 6개월은 힘들었지만 소중한 시간이에요. 이제는 다 괜찮아졌으니 한국에서도 열심히 활동할 거예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끝까지 믿어주는 부모님과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클라라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엄마가 정말 밝고 긍정적인 분이세요. 사랑 표현도 많이 해주시고요. 덕분에 저도 긍정적인 성격을 지닐 수 있게 됐고 그러다 보니 밝은 길, 좋은 길이 열리는 것 같아요. 논란 이후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부모님 집 근처로 이사했어요. 그동안 바쁜 스케줄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번에 엄마와 여행을 다니고 아빠와 대화도 많이 했죠. 아빠는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그녀는 “약이 된 시간들”이라고 말했다. 여유가 없어 돌아보지 못하던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었고 덕분에 ‘진짜 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고 단언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그래서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은 그리 힘든 시간도,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단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논란 후 저를 멀리하는 걸 보고 소중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부정적인 생각하기보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고요. 그래서 가장 소중한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힘든 순간을 극복했어요.”

스스로 극복했다고 하지만 논란의 파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녀 이름 뒤에 붙은 꼬리표는 아마도 오랜 시간 따라다닐 것이다. 여배우에게는 치명적이다. “저를 둘러싼 루머나 논란이 많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거짓말쟁이라는 말도 있고 허언증이라는 소문도 있죠.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로 저를 따라다니겠죠. 하지만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명 시절이 길었기 때문인지 그런 논란과 루머들도 감사해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지 않는다”고 했지만 치킨과 맥주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담긴 과거 영상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직접 선보인 특별 레서피가 사실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요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라라’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물론 제가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억울한 부분이 있어요. 집중적으로 운동할 때는 치킨과 맥주를 안 먹죠. 근데 또 먹을 때는 먹잖아요. 누구나 그런 것 아닌가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한 말이 100% 방송되지도 않고요. 제작진의 필요에 따라 편집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이제는 그때그때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꼼꼼하게 설명하려고 해요.”

몇몇 사람들은 ‘클라라는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이런 소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어느 순간 예민해지기도 하죠. 다만 ‘내가 언제 그랬지?’ 라고 생각해보고 남 탓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말이 들린다는 건 제가 뭔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니까요.”
 

그린 플라워 셔츠 폴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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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태슬 톱 다홍, 청바지 에스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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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과 루머는 드러나는 삶을 사는 여배우에게 큰 상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던지는 가시 돋친 말들이 바위보다 무거운 돌이 되어 그녀 가슴에 박혔을 게다. 그런데 클라라는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채찍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아요. 저도 배우나 공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여자거든요. 다만 상처를 오래 품지 않으려고 해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대중의 시선도 따뜻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클라라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운동하는 여자’ 혹은 ‘화려한 여배우’ 같은 인식 말이다. 그녀는 “사실은 화려하지 않다”고 말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말줄임표가 꽤나 길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항상 ‘무슨 운동을 해?’ ‘음식은 뭘 챙겨 먹어?’ 라고 물어요. 몸매를 잘 관리하는 여자 연예인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힌 것 같아요. 화려하다고 보시는 것 같고요. 그런데 결코 화려하지 않아요. 저는 물 위에서는 고고하고 도도한 자태를 뽐내지만 물속에서는 몇백 번, 몇천 번 발을 젓는 백조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클라라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개인 스케줄까지 조정해가며 화보 촬영부터 인터뷰 자리까지 동행해준 오랜 친구가 그것을 방증했다.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계속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저더러 ‘형제 같다’고 말해요. 되게 여성스러운 성격인데 털털한 부분도 많아요. 저는 제 성격이 좋아요.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라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밝아지는 것 같아요.” 클라라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익숙하다. 오랜 무명의 시간을 꿋꿋하게 버텨왔고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못했을 때도 이를 악물었다. 인기를 얻고 나서는 끊임없는 논란 속에서 살았다. 데뷔 후 지금까지 여러 번 위기를 거치며 단단해진 게 분명했다.

“‘멘탈 갑’이라는 별명…(웃음) 싫지 않아요. 실제로도 멘탈은 강한 것 같고요. 그 바탕에는 무명의 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데뷔 후 약 7년간 무명이었어요. 이성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죠. 무명의 설움을 알기 때문에 클라라라는 이름으로 쉬지 않고 활동했어요. 때로는 그게 독이 될 때도 있었지만요.” 많은 일을 겪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의 머리속에 안좋은 기억만 있을게 분명했다. 그런데 실제의 클라라는 그렇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 슬픈 기억들은 자고 일어나면 모두 삭제됐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혼자’에 익숙한 그녀가 스스로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부모님과 늘 떨어져 지냈어요. 해외를 무대로 활동한 부모님 때문에 세계 곳곳에 있는 친척집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친구가 없고 부모님과의 추억도 없죠. 친척들이 하나같이 말해요. 외삼촌도, 친고모도 모두 ‘넌 내가 키웠어’라고요. 하지만 기억이 별로 없어요. 외롭고 서글펐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나 봐요. 그래서 지금도 혼자 있는 걸 못 견뎌요.”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 일희일비하지 않고자 하는 의지,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에너제틱한 성격까지. 클라라를 만드는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나는 왜 힘든 상황에서도 힘들지 않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가정환경과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자는 것, 모두 제 몫이죠. 누가 도와준다거나 하는 건 없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몸과 마음에 밴 것 같아요.”

‘파이팅’을 외치며 활기한 국내 복귀를 다짐하는 클라라. 최근에는 다른 취미도 생겼다. 지인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디제잉. 짬짬이 공부하며 실력을 키운 덕에 한 파티의 디제잉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생애 첫 무대였는데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언제나 무언가를 계획하는 습관이 있죠. 올해에는 이걸 해야지, 내년에는 이것에 도전해봐야지, 하는 것들이죠. 올해 서른 살이 됐는데, 나이 먹을수록 못 하는 게 많아질 테니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디제잉이에요.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싶어 좋았어요. 다양한 걸 경험해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알아가는 것도 배우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또 언제 가수 캐릭터를 맡게 될지 모르잖아요.”

음악 소리에 몸을 흔들던 예쁜 소녀, 단순히 옷이 좋아 직접 옷을 만들어 입던 개성 넘치는 소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던 이 소녀는 커서 클라라가 됐다. 남자친구랑 손잡고 길을 걷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는 클라라의 활기찬 날갯짓을 응원한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인터뷰
이예지 기자
사진
김태오
스타일리스트
신우식
헤어&메이크업
선연
2016년 05월호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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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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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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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