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100% 사전 제작 드라마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시도다.
맞다. 사전 제작을 해보니 장단점이 있더라. 장점은 대본이 16회가 다 나와 있어 배우들이 캐릭터를 정확하게 숙지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를 영상으로 보면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더 빨리 와 닿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촬영한 가편집본만으로는 텍스트로 감정을 짚어내기 쉽지 않았다. 드라마가 성공할지 결과 예측도 잘 안 되고, 불안했다.
Q. 완성된 드라마를 보니 어떤가?
작가 입장에서는 내가 만든 이 장면이 설정대로 인물들 간의 설렘을 잘 표현했는지,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파악할 수 없어 불안했다. 나만 불안했던 건 아닐 거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완성도 측면에서 만족스럽다.
Q. ‘김은숙의 드라마는 비슷하다’는 비판도 있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이야기다. (웃음) 그 틀에서 벗어나려고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왜 자꾸 나보고 다른 거 하래? 이게 내가 잘하는 건데. 그냥 잘하는 거 열심히 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도 했다.
Q. 그렇다면 <태양의 후예>는 틀에서 벗어났나?
이제까지의 내 작품을 일컬어 ‘판타지 로맨스’라고들 하더라. 그런데 <태양의 후예>야말로 최고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건,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진 인물들이 멋진 선택을 하고, 그 상황에서 로맨스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전쟁이나 재난이라는 소재에 나만의 색깔을 담아보았더니 결과물이 생각보다 근사하게 나왔다. 기쁘게 생각한다.
작가에게 궁금한 5가지
1.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차승원·김선아 주연의 <시티홀>. 김은숙 작가는 “<시티홀>은 시청률이 가장 낮아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픈 손가락인 동시에 제일 예뻐해줘야 하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꿈의 시청률 25%는 넘지 못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그 어느 드라마보다 좋았고,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 애착이 간다고.
2. 명대사의 비결은?
김은숙 작가는 전략적으로 유행시키기 위한 대사를 쓰지는 않는다. 그녀가 밝힌 비결은 ‘은, 는, 이, 가, 을, 를’ 같은 조사는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조사가 있으면 속도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3. 김은숙 작가는
2003년 <태양의 남쪽>을 집필하며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연인> <온에어> <시티홀>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4. 작가 인생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김은숙 작가는 첫 작품인 <태양의 남쪽>의 기획안이 오전에 방송국에 들어가서 오후에 편성 확정 전화를 받았을 때를 본인 인생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꼽는다. 김은숙 작가와 강은정 작가가 둘이서 일주일 동안 끙끙거리며 무려 A4용지 80페이지 분량의 기획안을 써 냈다고.
5. 아내 김은숙, 엄마 김은숙
김은숙 작가와 남편 최상현씨의 러브 스토리는 유명하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끝낸 뒤 휴식차 홀로 떠난 필리핀에서 김은숙 작가는 바를 운영하던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그녀는 적극적으로 대시했고, 둘은 1년여의 만남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시크릿 가든> 최종회를 앞두고 “해피엔딩 아니면 이혼할 줄 알아”라고 부인에게 협박 문자를 보냈을 정도로 열혈 시청자라고. 김은숙 작가는 “나의 가장 큰 적은 라이벌 드라마가 아니라 딸 민지”라고 밝힌 바 있다. 엄마와 떨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을 글썽이는 딸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라고. ‘엄마 김은숙’의 고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태후> 이모저모
01. <태양의 후예>는 원래 2월 3일부터 방송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판권 문제로 첫 방송이 3주 연기됐다. 중국과 동시에 방영하기 위해서는 전편에 대해 사전심의를 받아야 해서 100% 사전 제작한 것이다.
02. <태양의 후예>는 2014년 SBS에서 기획한 드라마다.
그러나 SBS가 <태양의 후예> 대신 <육룡이 나르샤>를 선택하며 편성이 무산됐고, 결국 KBS로 넘어가게 된 것.
03. 드라마의 배경 ‘우르크’는 가상 국가다.
실제 촬영지는 그리스다.
04. 4화에서 송중기와 격투 신을 찍은 미국 군인은 <프로듀스 101>의 참가자 전소미의 아버지인 ‘매튜 도우마’다.
본업은 사진작가이지만 가끔 단역 배우로도 활동한다고.
05. 우르크의 훈남 의사 ‘다니엘 스펜서’를 맡은 배우 조태관의 얼굴이 왠지 낯익지 않은가?
조태관은 <슈퍼스타K6> 참가자 출신으로 최수종의 외조카다.
06. 김은숙 작가와 공동 작업한 김원석 작가는 <여왕의 교실>의 극본을 맡기도 했다.
김원석 작가가 재난 현장에서 활약하는 의사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계획했는데, 김은숙 작가가 원안에 멜로를 강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공동 작업으로 진행하게 됐다.
07. 해외에서 드라마의 가치를 먼저 알아봤다.
방영 개시 전 중국에서 회당 2억 2천만원에 구입했다. 현재 일본에도 회당 약 10만 달러에 판매됐다고 하니, <태양의 후예>가 아시아를 흔들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