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국과 도원경
종로3가역과 낙원상가를 걷다 보면 1980년대 어디쯤에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한남동이나 청담동처럼 화려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길을 걸을 때마다 곳곳에서 세월의 기품이 묻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 이곳, 익선동으로 배우 최성국과 가수 도원경을 초대했다. 잘 세팅된 스튜디오가 아닌 익선동을 만남의 장소로 정한 이유는 하나다. 오래된 거리에서, 오래도록 그리웠던 얼굴을 추억하기 위해. 우리에게 두터운 시간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두 사람을 의미 있는 공간에서 만나고 싶었다.
한동안 방송 활동이 뜸했던 두 사람을 다시 보게 된 건 SBS <불타는 청춘>을 통해서다. 중견 스타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알아가며 친구가 된다는 콘셉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중년판 ‘1박 2일’ 정도로 설명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건 그때 그 시절, 복고 스타들이 총출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책받침 스타 김완선과 강수지를 필두로 김국진, 김도균 등이 원년 멤버로 참여한 <불타는 청춘> 팀은 원조 테리우스 이덕진, 하이틴 스타 김승진, 1990년대 디바 정수라 등이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대박가족> 같은 시트콤이 인기를 끌던 시절, 남다른 코믹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배우 최성국과 ‘성냥갑 속 내 젊음아’와 ‘다시 사랑한다면’ ‘이 비가 그치면’ 등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여성 로커 도원경까지 합세하며 반가움을 더했다. 이날은 <불타는 청춘> 출연진 중 각각 남녀 막내였던 두 사람을 만나 그동안의 근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불타는 청춘>의 막내 라인을 모시고 인터뷰 시작합니다.
최성국(이하 ‘최’)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막내 역할을 해봐요. 집에서도 장남이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늘 나이가 제일 많았거든요. 근데 이제 와서 막내라니.(웃음) 현장에서 형, 누나들 잘 보필하고 있습니다.
도원경(이하 ‘도’) 저는 김완선씨, 강수지씨와 같은 시대에 활동해 원래부터 언니, 언니 하면서 잘 따랐어요. 남자 막내랑 다르게 여자 막내는 다들 잘 챙겨주셔서 기분 좋은 자리예요.(웃음)
두 분 섭외하느라 제작진이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하던데, 오랜만에 예능 나들이에 나선 소감은 어때요?
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중에 섭외 전화를 받았어요. 몇 번을 고사하다가 미팅 자리에 나갔는데 PD님이 “별거 아니에요. 그냥 1박 2일 동안 좋은 사람들과 멋진 곳에서 맛있는 음식 먹고, 대화하고 오면 돼요”라고 딱 한마디하시더라고요. 저도 이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럼 가보죠, 뭐.”
도 저는 작년 초에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섭외 전화를 받았어요. 신인 때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나 <연예가중계>에 나간 이후로 단 한 번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없어요. 20년 만의 예능 나들이라 처음엔 꽤 긴장되더라고요.
예전 예능과 요즘 예능은 완전히 다르죠?
최 예전에는 드라마 형식이 접목된 예능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인생극장>에서 이휘재씨가 “그래, 결심했어!” 하고 외치던 장면 기억나시죠? <반전 드라마> 같은 것도 재미있었고요. 근데 지금은 대부분 <무한도전> 같은 리얼리티 쇼 위주예요. 설정을 짜고 합을 맞춰 연기하듯 예능을 하다가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보여드려야 하니까 그게 좀 어려워요. 카메라가 도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또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도 맞아요. 100% 리얼로 다 찍더라고요. 촬영할 때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제작진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답니다.(웃음) 그래도 다른 예능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방송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대본이나 상황 설정 같은 게 있는데, <불타는 청춘>은 아무것도 없어요. 1박 2일 촬영하는 동안에는 매니저와 코디도 접근 금지예요.
<불타는 청춘>의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아마도 러브 라인이 아닐까요?
최 많은 분이 <불타는 청춘>을 <짝>이나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로맨틱한 방송으로 잘못 알고 계세요. 그냥 왁자지껄 엠티(MT) 갔다 오는 분위기예요. 언론에서 너무 러브 라인만 강조하니까 좀 부담스러울 정도예요.
그래도 김국진·강수지씨, 일명 ‘치와와 커플’의 실제가 궁금하기는 해요.
도 글쎄요? 국진 오빠가 선배니까 수지 언니가 잘 챙겨드리는 것 같아요. 근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저는 여기서 노코멘트할게요.(웃음)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께 근황 좀 전해주세요.
최 저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어요. 한국에서도 꾸준히 영화를 찍어왔고요. 근데 <불타는 청춘>에 나간 뒤로 전에 없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역시 예능의 힘이 큰가 봐요.(웃음)
도 저는 방송보다는 콘서트 위주로 활동했어요. 10년 넘게 전국 팔도를 다니면서 노래했죠. 요즘은 뮤지컬도 하고, 개인적으로 공연 관련 사업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최성국씨의 중국 활동 에피소드가 재미있더라고요. 그곳에서 최고의 스타로 등극하셨다던데요?
최 근데 거짓말이 아니고 인기가 정말 많긴 많아요.
도 인정! 오빠 한류 스타잖아요.
최 예전에 찍은 드라마에서 지은 웃긴 표정이 이슈가 되면서 ‘표정 대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어요. 그 사진을 편집한 ‘짤’이 중국 SNS에서 인기를 끌게 됐죠. 제 표정으로 만든 이모티콘이 있는데, 그걸 1억 명이 다운로드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13억 인구 중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 그 절반인 7억 명이라고 하니, 중국 사람 7명 중 한 사람은 제 얼굴을 아는 거예요. 신기하죠?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거더라고요. 중국에서 이렇게 활동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냥 주어진 기회에 묵묵히 열심히 했더니 길이 열리는 것 같아요.
도원경씨는 기존의 로커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55사이즈 옷도 헐렁한 날씬한 몸매와 여성스러운 말투에 감탄했답니다.
도 제가 활동하던 시절엔 로커는 차갑고 강한 이미지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인터뷰할 때도 신비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말도 많이 못 하게 할 정도였다니까요.(웃음) 그래서 제 실제 모습과 다른 이미지로 부각된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불타는 청춘>에서보여지는 것처럼 원래 밝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에요.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최 서울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동네가 있는 줄 몰랐어요. 이런 복고 느낌 아주 좋아요!
도 (웃음)맞아요. 저도 복고 좋아해요. 생각해보면 옛날이 참 좋았어요. 텔레비전 없이 라디오 들으면서 설레고, 레코드판 사려고 추운 겨울에 몇 시간씩 서 있고.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운 추억이잖아요.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당분간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최 저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중국에서 지내고 있어요. 행사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바쁘게 살고 있죠, 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드라마든 영화든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 계획이에요.
도 저도 앞으로는 방송 활동에 박차를 가해보려고요. 늘 공연만 하느라 방송에는 신경 못 썼는데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연기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