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이제 촌스럽지, 좀 더 모양 나는 거 없어?
남편 출근하고 애들 학교 보낸 후,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백화점 문화센터나 골프장으로 향하는 미시족들. TV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우리가 상상하는 강남맘의 전형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가사도우미를 두고 있는 집이 많다 보니 짬나는 시간에 자신만의 ‘여가’를 즐기려는 엄마들의 욕구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강남맘들의 대표적인 시간 때우기는 물론 ‘브런치 수다’다. 애들 학교 교문 앞에서 만난 엄마들끼리 또는 같은 영어 유치원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인근 베이커리 카페나 프렌치 레스토랑에 모여 늦은 ‘아점’을 즐긴다. 외관상으론 같이 밥을 먹는 거지만 대화는 단순하지 않다.
좋은 학원 정보부터 괜찮은 매물, 뷰티 팁까지, 각자의 깨알 경험을 주거니받거니 하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거기에 이른바 남 ‘뒷담화’까지 살짝 더해지면서 자연스레 ‘입을 풀고’ 나면 그동안 쌓인 육아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게 전반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브런치도 하루 이틀이지, 어느 시기가 지나면 이 또한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라고 판단하는 엄마들이 있게 마련이다.
잠원동에 사는 A씨는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매번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만나 영양가 없는, 영혼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게 신물이 났다. 자기 속내는 다 드러내지도 않고 ‘간’만 보는 엄마들 틈에서 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말라비틀어진 케사디아를 먹는 순간, 두 번 다시는 브런치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 않아졌다”고 고백한다.
A씨처럼 수동적인 시간 때우기에 회의를 느낀 요즘 강남맘들 중에는 좀 더 생산적으로, 주체적으로 여가 시간을 채워가려는 ‘계획파’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학구파’ 엄마들이 많아졌다는 것. 이제껏 문외한이었던 분야에 새롭게 도전해 뭐라도 배우고자 하는 엄마들을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수상하지만 끌리는 그것, 나도 배워볼까?
최근 가장 핫한 강남맘들의 취미는 ‘앙금 플라워 떡케이크 만들기’다. 몇 해 전만 해도 생소했던 앙금 플라워는 일종의 떡케이크로 쌀가루를 베이스로 해 강낭콩, 백년초, 팥 등의 앙금으로 꽃 모양을 만들어 장식한다. 흔히 보던 생크림 케이크가 아닌, 첨가물 없는 천연 재료로 만든 유기농 케이크라고 입소문이 나고, 또 모양도 그럴싸해 엄마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아이 백일 기념, 시부모님 생신 선물로 앙금 케이크를 만들었다며 인터넷 카페에 몇몇 엄마들이 사진을 올리자 가격과 만드는 법을 문의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하나 만드는 데 10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들어감에도 여기저기 쿠킹 클래스가 꾸려져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수상한 법. 앙금 케이크 전문 업체들이 주부를 가장해 글을 올리거나 검증되지 않은 클래스로 인한 피해 사례가 생겨나면서 앙금 케이크와 관련된 언급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순수한 의도로 사람들을 모아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부족한 점은 서로 보완하는 훈훈한 클래스도 분명 있다.
비슷한 사례로 케이크뿐만 아니라 빵과 쿠키, 파이 등을 만드는 법을 배워 집에서 아이들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는 ‘베이커리파’ 엄마들은 꾸준히,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부터는 만들기 까다롭지만 맛있고 사 먹는 것보다 저렴할 수 있는 ‘마카롱 만들기’가 유행을 타면서 마카롱만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가 각광을 받았다. 선생님 선물용, 지인 답례품으로 큰 부담 없이 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삼성동에 사는 B씨는 “이번 겨울엔 우리 집에서 오븐이 가장 바빴다. 여름에는 더워서 힘들지만 겨울은 베이킹하기에 너무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이 빵 냄새에 환호하고 밥 대신 마들렌과 마카롱을 주면 더 좋아하기도 한다”며 “단순히 취미로 시작했는데 할수록 빠져들어 전문 파티시에 자격증에도 도전해보려 한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커피 바리스타 과정, 와인 소믈리에, 한식 조리사 등 먹거리에 대한 강남맘들의 취미는 다양하고 꾸준하다.
강남에 예쁜 아줌마가 가장 많은 이유는?
강남맘들은 먹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냐고? 모르는 소리다. 처녀인 듯도 하고 아줌마인 듯도 한 미시족이 대다수인 강남맘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관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의 피부 관리실, 헤어숍에는 죄다 아줌마 천지다. 네일 아트는 물론이고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엄마들은 일부러 배우러 다니기도 하며 유명 마사지숍은 강남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디 그뿐이랴. 다이어트 피트니스 센터, 지방흡입을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 등도 주 고객층이 강남맘들이고 주민센터 강좌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도 ‘줌바댄스’ ‘에어로빅’ 등 체형을 관리해주는 강좌다.
요즘 핫한 운동은 필라테스를 접목한 ‘봉댄스’와 ‘벨리댄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늘어진 뱃살과 피부 탄력을 되찾아준다고 소문이 나면서 헬스장 ‘봉’에 매달려 열심히 뱃살을 흔드는 엄마들이 늘어난 것. 이왕이면 예쁘게 입고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유명 피트니스복과 요가복을 파는 온라인 숍은 주 고객이 강남 아줌마들이고 슈즈, 암 밴드 하나도 신경 써 골라 프로 선수처럼 입고 운동한다. 얼핏 보면 전문 트레이너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와 운동신경을 자랑하는 엄마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서초동에 사는 C씨는 “여러 가지 취미를 다 즐겨봤지만 그래도 가장 뿌듯하고 남는 게 있는 게 운동이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재미를 느껴 꾸준히만 한다면 건강은 물론 자신 있는 외모도 만들어준다. 얼마 전까진 수영과 아쿠아로빅에 빠졌었는데 요즘은 전문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아가며 운동을한다”고 말했다.
골프, 승마, 스피닝, 헬스는 물론 발레, 한국무용, 레이싱까지, 강남맘들의 운동에 대한 욕구는 장르를 넘나든다. 강남은 위치상 유명 연예인들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마주칠 일이 잦으니 자연스럽게 동기부여와 자극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대표 미시족 셀럽인 배우 김희애, 한채영, 이승연도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헬스장에서 보내고 있으니 외모를 가꾸고자 하는 열망은 연예인이건 일반인이건 다르지 않다.
물론 강남맘이라고 모두 회원제 호텔 피트니스나 명품 뷰티숍을 이용하는 건 아니다. 동네 목욕탕 사우나와 단골 찜질방에서 온몸을 따뜻하게 지지고 시원한 식혜 한 잔 마시고 나오는 걸 최고의 취미로, 행복으로 삼는 아줌마들도 태반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 ‘골든타임’에 집중하는 강남맘들
한편, 도곡동에 사는 D씨는 요즘 플로리스트 과정에 푹 빠졌다. 주 1회 4개월 과정에 1백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 들어가지만 예쁘게 만든 화분을 보면 도저히 손을 뗄 수 없다고 한다. 이른 아침 고속터미널 상가의 꽃시장에 가보면 꽃을 쇼핑하는 강남맘이 얼마나 많은지, 꽃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아이 교육에 대한 관심 못지않아 보인다. 여차하면 플라워숍을 조만간 차릴 기세다.
청담동에 사는 E씨는 유화 그리기에 매료됐다. 그림과는 전혀 무관한 그녀였지만 우연히 발을 디딘 화방에서 명작을 따라 그리고 화법을 배우는 데 큰 희열을 느꼈다.
어디 그뿐인가. 뜨개질, 퀼트, 가죽, 향초, 액세서리, 리본, 접시 수집, 중국 전통 공예품, 바이올린, 우크렐레, 첼로 등등 강남맘들의 취미는 장르도 다양하고 들어가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다들 본인들이 좋아서, 원해서, 때론 우아하게, 때론 고상하게, 때론 실속 있게 즐기는 취미이지만 생각지 못한 잡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얼마 전엔 몇몇 주부가 직접 만든 잼과 쿠키 등을 온라인을 이용해 파는 과정에서 논쟁이 일며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돈을 받고 식품을 판매하려면 사업자와 통신판매업 등록을 먼저 해야 하고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 실제로 불법인 줄 모르고 수제쿠키를 SNS로 팔려다가 벌금 50만원을 낸 주부의 사례도 있다. 취미로 시작한 일 때문에 큰 봉변을 당할 뻔한 거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요즘 필자의 취미는 ‘미국 드라마’ 몰아보기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오롯이 혼자 맥주 한잔하며 미드를 보고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어진다. 자막 없이 보니 영어 공부는 덤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사진 올리기가 취미인 아줌마들도 꽤 있을 테고, 해외 직구와 소셜커머스 쇼핑에 빠진 주부도 많을 거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라틴어나 아랍어 등 제2외국어를 배우느라 열공 중인 엄마들도 있고, 종이접기에 재미가 들어 아이와 함께 강좌를 듣는 맘들도 있다.
이처럼 강남맘들은 모두 스타일은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또한 그녀들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에 최대한 집중한다는 것. 신데렐라에게 주어진 ‘자정 12시’처럼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혹은 주말로 여가 시간이 국한되어 있지만 그 시간을 위해 앞서 계획하고 원 없이 즐긴다.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강남맘들의 각양각색, 팔색조 취미 생활을 들여다보면 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녀들의 여가 생활은 쉼 없이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