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마이큐
마이큐는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다. 가방 브랜드 ‘디어 레인보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하다. 키가 크고 얼굴도 귀엽고 옷도 잘 입는다.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사실은 치열한 현실주의자라는 걸 알았다.
왜 ‘마이큐’예요?
영어 이름 마이크에 한국 성씨 ‘유’를 결합한 거예요. ‘마이크 유’라 부르다가 마이큐가 되었죠.
‘엄친아’예요. 음악도 잘하고 옷도 잘 입고 가방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하고 있어요. 공부도 잘했을거 같아요.
전혀 아니에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 반대가 너무 심했어요. 대학 법학과에 들어가 졸업장을 딴 뒤 자유를 얻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국 공부하지 않고 음악만 해서 퇴학당했어요. 좀 많이 깨죠?
홍콩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음악을 했죠?
네. 홍콩에서는 펑크록 밴드를 했어요. 우연히 한국을 여행하다 홍대 거리에 가게 됐는데 같이 공연했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어 한국행을 결정했죠.
부모님한테 허락 안 받고 온 거죠?
처음에는 인연을 끊고 왔어요.(웃음) 그 후로 오랫동안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제 모습을 보고 인정해주셨죠. 이제는 화해했어요.
직접 만든 노래를 부모님께 들려준 적 있나요?
어머님은 좋다고 하시는데 그냥 제가 음악 하는 자체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아버님은 단 한 번도 칭찬해주신 적이 없어요. “수고했다”가 최고의 찬사인 것 같은데요?
무작정 한국에 왔을 때 고생깨나 했겠어요.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얹혀살아야 했죠. 배신도 많이 당했어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는데, 술집에서 그릇을 닦는 게 가장 힘들었죠. 그때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감성팔이 하긴 싫어요.
귀공자 같은 이미지인데 의외예요.
음악을 하면서도 저의 현실을 책임지는 방법을 찾으려고 무진 애썼어요. 가방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죠.
창조하는 일을 하기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생명 대 생명으로 주고받는 영감이 가장 큰 공감의 원천이에요.
요즘 가장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는 누구예요?
스탠리 큐브릭. 최근 그의 전시를 보고 왔는데 그에 대해 가볍게만 알고 있었다 싶었죠.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 집요함, 집중력, 노력 등을 본받고 싶었어요.
마이큐도 많은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잖아요.
그런 이미지 때문에 오히려 가볍고 얕게 보일까 봐 늘 조심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한 가지 일을 할 때 다른 것을 끌고 들어오진 않아요.
빨간 바지가 정말 잘 어울려요.
패션 브랜드에는 관심 없어요. 옷은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친구들이 술 마실 때 나는 옷을 샀지요.
슬럼프가 찾아올 때는 어떻게 해요?
그 시간을 무조건 견뎌요. 버틴 자만이 그 이상을 볼 수 있어요. 매일 슬럼프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고 갈등해요. 적지 않은 나이,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고민할 수 있는 뇌와 두려워하는 감정이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하려 애써요.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뭐예요?
음악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오랫동안 열심히 했는데 피드백이 일정 정도를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여기까진가 싶어 내려놓고 싶었는데 지금의 소속사 분들이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지금은 행복해요?
지난주에 공연을 했는데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처음이었어요. 늘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했거든요. 공연이 끝나고 팬분들이 돌아가시지 않아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사인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다시 생각해도 행복한 시간이었어요.(웃음)
뮤지션 천단비
천단비는 ‘코러스 여신’이었다. 국내에서 그녀와 작업하지 않은 뮤지션이 없을 정도로. 늘 ‘내 노래’를 하고 싶었던 그녀는 <슈퍼스타K>에 나갔고 준우승을 했다. 아마 앞으로는 코러스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좋지만 걱정도 된다고 그녀가 말했다.
요즘 뭐 해요?
양재역에서 기타 배워요. 옛날부터 진짜 배우고 싶었는데 늘 바빴거든요. 이렇게 쉬는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얼마 전에는 부모님과 잠깐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 나왔어요. 근데 마냥 좋지는 않아요. 불안하기도 하고.
왜 불안해요?
이제 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원래 하던 코러스 일도 그만둔 상황이고, 저의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아요. 앞으로 어떻게 음악 활동을 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이 바닥에 오래 있었으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하시는데, 사실 이 바닥 잘 몰라요.(웃음) 저 되게 걱정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슈퍼스타K>에 나갈 생각을 했어요?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나가보고 싶은 무대잖아요. 오히려 음악 쪽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더 용기가 안 났죠. 작년에 제가 서른 살이었는데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창피한 게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눈 딱 감고 나갔죠.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냈네요.
박명수씨가 그랬잖아요. ‘한 번 사는 인생 막 살아야 한다’고. 후회 없이 살다 죽는 게 꿈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죽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자다가 갑자기 깨어서 죽는 게 무서워 운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고요.
무대에 주인공으로 서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심사위원들 앞에 섰을 때는 엄청 떨렸는데, 관객과 함께하는 생방송에서는 오히려 편했어요. 물론 심사위원들을 보지 않기 위해 몸을 약간 비스듬히 하고 노래를 불렀지만요.(웃음)
언제부터 노래하고 싶었나요?
어렸을 때 한동네 사는 친구한테 무시당했어요. 하얗고 예쁜 친구였거든요.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녀서 가창 시험을 함께 봤는데 선생님이 걔한테는 음치라고 했고 나한테는 칭찬을 하는 거예요.(웃음) 그때 ‘아, 나는 노래를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노래를 전공으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친한 친구들과 같이 공연을 다니다 보니 노래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반대는 안 했어요?
처음엔 반대하셨는데 나중에는 도와주셨어요. 우리 부모님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좋은 분들이에요. 코러스 일을 할 때도 먼 곳으로 가게 되면 아빠가 차로 직접 데려다주셨어요.
데뷔가 늦었는데 슬럼프는 없었나요?
슬럼프까지는 아닌데 생각을 바꾼 계기는 있었어요. 18살 때 음악을 처음 시작하면서 ‘23살 정도면 음반을 낸 프로 가수로 데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코러스를 시작했을 때도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임했고요. 그런데 25살쯤 되니까 ‘이게 내 직업이 되겠구나’ 하는 감이 오는 거예요. 마냥 서글프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코러스로서는 인정받아서 일이 잘 풀렸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니까요. 그러다 30살에 갑자기 뒤집어버린 거죠.(웃음)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행복한 뮤지션요. 제가 특출난 실력이 아니란 거 잘 알아요. 운이 좋았어요. 시청자분들이 제 인생을 봐주셨던 거예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해나갈 거예요. 그래서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지금, 어두운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이사도 하고, 집도 꾸미고, 물건도 샀어요. 방향제도 만들고요. <응답하라 1988>도 보고요.(웃음)
시인 하상욱
SNS를 통해 재치 넘치는 짧은 시들을 발표하며 유명세를 치른 시인 하상욱. ‘말장난’이라 치부하기엔 그의 글엔 뭔가 있다. 마치 하이쿠(일본의 짧은 시 형식)를 읽는 듯 상쾌하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말도 시처럼 통통 튀었다.
상욱씨가 한 말을 인터넷에서 봤어요.“남들이 내 시집을 비판해도 그 수익으로 엄마가 식당일 그만두시게 했으니 만족한다”고 했죠.
TV 프로그램 녹화할 때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민망했어요. 방송에서는 편집됐는데 인터넷 뉴스에는 그 이야기가 나왔더라고요.
요즘 뭐 하고 살아요?
게임하며 놀아요. 1월엔 일이 없어서 뭐 할지 궁리하는 시기죠. ‘가사나 한번 써볼까? 누구한테 좀 줘볼까?’ 이렇게요. 시도 쓰고.
언제부터 시를 썼어요?
2013년 7월 18일. SNS에 올리니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냥 썼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소위 대박이 났어요.
대박 날 줄 몰랐어요. 노리고 글 썼으면 대박 안 났겠죠.
아류작도 많이 나왔어요.
남의 글은 거의 안 봐요. 인터넷 하다가 가끔 보면서 느끼는 건 ‘쓰고 싶어서 쓰는 글’과 ‘뜨고 싶어서 쓰는 글’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후자가 많아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돈 얼마나 많이 벌었어요?
많이 번 건 제 기준에서죠. 세상의 기준으로 많이 번 건 아니에요. 직장생활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많이, 몇 배나 번 건 사실이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첫 성공을 거둔 거네요?
아니요. 눈치 엄청 봤어요. 글 쓸 때 항상 눈치 봐요. 어디까지 솔직해야 되는지 얼마만큼만 솔직해야 되는지 고민해요. 무작정 솔직한 게 멋있는 건 아니잖아요.
글 쓸 때는 어떻게 작업하나요?
그때그때 다르죠. 예전에는 다 쓴 다음 다듬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엑기스만 써요.
시가 워낙 간결해서 쉽게 쓴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금방 쓴다고 쉽게 쓴 것일까요? 제가 몇십 년간 겪고 생각한 게 글로 나온 건데요? 무려 30년이 걸린 시라고요.(웃음) 글에 대해서만큼은 끈기 있게 노력해왔어요.
상욱씨의 글을 따라 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두 번은 따라 할 수 있어요. 계속 그러기는 어려울 거예요.
따라 하는 사람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별로예요. 개인적으로는 결과를 노리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싫어요.
평소에 책은 많이 읽나요?
문학 작품 많이 안 읽어요. 존경하는 작가도 ‘하상욱’이에요.(웃음)
제일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는 누구예요?
웹툰 작가 이말년요. 21세기 최고의 크리에이터라고 봐요.
창작 활동을 하다 보면 슬럼프도 오지요?
슬럼프야 잦죠. 근데 큰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아요. 심심풀이로 하던 게임이 점수가 잘 안 나와도 슬럼프가 올 수 있어요. 그리고 내 기분은 슬럼프에 빠져 있지만 반대로 일이 잘 풀릴 수 있는 거고요. 슬럼프의 유형이 다르니 극복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죠.
2015년 본인이 한 선택 중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요?
강아지 키운 거요. 단언컨대 정말 합리적인 일입니다. 조금 귀찮고 짜증날 때도 있긴 하지만 그에 비해 너무 큰 행복을 얻게 되거든요. 이름은 ‘숏다리’예요. 일부러 다리 짧은 강아지를 키우려고 닥스훈트종을 얻어왔는데, 다리가 점점 길어지더라고요. 혼혈이었어요.(웃음)
앞으로는 뭐 할 거예요?
이젠 슬슬 사랑 이야기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계나 사랑에 대해 고민 많이 해왔으니까요. 하상욱이 쓰는 사랑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하지 않아요?
뮤지컬 배우 배다해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서 아름다운 목소리와 빼어난 가창력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배다해. 얼마 전에는 <복면가왕>에 출연해 변함없는 가창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해 궁금했던 그녀가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로 돌아왔다.
벌써 몇 차례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섰어요.
뮤지컬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웃음) 가장 좋은 건 무대 위에서 다른 배우들과 교감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그렇게 주고받은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정말 짜릿한 일이에요.
오래전부터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에 출연하는 소감이 어때요?
2013년 <벽을 뚫는 남자>를 상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이미 캐스팅이 끝났더라고요.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 봐’라고 생각했는데 운명처럼 배역을 맡게 됐어요. 처음엔 너무나 기뻤지만 그것도 잠시, ‘무조건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죠. 인정받고 싶었어요. 이전 뮤지컬 작품에서는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욕심이 생겨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평생 갇혀 사는 정적이고 가련한 캐릭터를 맡았어요.
제 실제 성격과 반대되는 캐릭터라 더 하고 싶었어요. 이 역할을 맡아 연기하면서 내 안에 있었지만 스스로 잘 몰랐던 성향을 꺼내보는 재미가 있어요.
민낯으로 무대에 선다면서요?
캐릭터에 더 잘 맞는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에요. 무대조명 아래 민낯은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욕심을 버렸어요. 덕분에 오히려 힘을 빼고 편안하게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연기가 늘었다는 평가가 많던데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요. 연륜이라는 게 조금은 생긴 걸까요?(웃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몸 상태가 나빠지거나 스케줄 때문에 피로해지면 무대 위에서 바로 티가 나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매일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쉬는 날에도 공연할 때랑 똑같이 노래 연습을 하고 몸을 움직여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화를 다스리려고 노력하죠.(웃음) 조금만 신경이 예민해지면 바로 몸에 반응이 오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술도 잘 못 마시고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창구가 많지 않으니 컨트롤이라도 잘하려고 하죠.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고 들었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누구나 그런 시기는 겪잖아요. 잘 버티고 이겨내야만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믿어요.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무슨 일을 하겠니’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버텼어요. 일이란 게 있다가도 없고, 관심받을 때가 있으면 잊히는 때도 있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요.
연기는 계속할 건가요?
네. 노래도 연기도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일맥상통하잖아요. 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뮤지컬은 당연히 계속 할 거예요.
2016년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나요?
대중과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너무 오랜 시간 그러지 못했어요. 겸허한 마음으로 주어진 기회를 모두 잡을래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