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희는 <애인있어요>를 통해 ‘국민 불륜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지며 대한민국 여성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다가 본처를 찾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또 어떤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시청자를 흥분케 했다. 물론 드라마 속 캐릭터 ‘최진언’은 지진희 본연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몰입이 가능했던 건 찰나의 순간에도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가 연기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지진희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남자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향기로운 체취가 풍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람을 압도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SBS 드라마 <애인있어요>가 중반을 향해 달려 갈 때쯤 지진희를 만났다. 지진희는 담백했다. 연기에 대한 질문에는 날카롭게 말했고 사랑이나 가정, 인생에 대해 말할 때는 평소 생각하던 바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시청자의 반응이 뜨거워요. 마니아를 양산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오랜만의 드라마 출연인데 반가워해주시니 고맙죠. 드라마가 갈 길이 아직 멀어서 연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반응은 뜨겁지만 상대적으로 시청률은 낮은 편이에요. 주연 배우로서 아쉬운 마음은 없나요?
시청률이라는 수치를 떠나서 관심과 사랑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시청률이 낮은 이유나 원인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인데, 케이블 방송 시청률이나 재방송 시청률은 반영되지 않는 기존의 시청률 조사 방식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시청률 조사 방식은 시청자의 관심도가 반영되지 않거든요. 내년부터 시청률 집계 방법이 좀 더 포괄적으로 바뀐다고 하던데 그때는 한번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네요?(웃음)
요즘 사람들이 워낙 바쁘다 보니 집에서 TV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죠. 배우들끼리 “시청률에 연연하지 말자”고 이야기했어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으샤으샤’하고 있어요.
방송 초반에 ‘국민 불륜남’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분명하게 말하지만 ‘최진언’은 불륜남이 아니에요. 시놉시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오로지 아내만을 사랑하는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죠.
캐릭터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요?
이제는 ‘국민 순정남’으로 불려요. 초반에는 불륜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고, 오로지 연기에 집중했어요. 다행히 마음이 통한 것 같아서 좋아요.
‘국민 불륜남’ 시절, 아주머니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들었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욕을 먹어본 건 처음이에요. 그동안 맡았던 역할이 젠틀하고 신사적인 이미지였기 때문에 낯선 경험이었죠.(웃음) 어제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저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더라고요. 시청자들이 이 정도로 격하게 공감할 줄은 몰랐어요. ‘아, 많은 분이 재미있게 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답니다.
그동안 선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대표주자였죠. 시청자의 따가운 반응이 힘들지는 않나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죠.(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 이미지가 선하고 반듯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끝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거친 남자 이미지였다면 ‘그러고도 남을 놈’으로 각인됐겠죠. 애초에 작가님과 감독님도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작가와 감독의 판단을 믿었다는 말이군요?
저에게 상당히 적극적이셨어요. 누가 봐도 뻔한 스토리의 작품은 하고 싶지 않아서 작품이 들어와도 고사했는데 감독님과 작가님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풀어가는 분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죠. 극 중 한 번은 반전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전적으로 제작진만 믿고 가기엔 주연배우라는 부담이 있었을 텐데요?
(김)현주씨가 있잖아요! 1인 4역인데 거부감 없이 오버하지 않고 연기할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손가락 안에 꼽을걸요? 저는 이번 작품의 캐스팅이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현주씨의 장점은 상대 배우까지도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똑똑하고 현명한 배우를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감독님이 현주씨를 끌어안고 사세요. 너무 예쁘다고요. 제가 감독이라도 그럴 것 같아요.(웃음) 우리 드라마의 복덩이죠, 복덩이.
감정 기복이 많은 캐릭터였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그래서 상대 배우가 중요했었죠. 일반 사람들이 모두 겪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 여배우의 리액션이 상당히 중요했어요. 현주씨에게 감사해요.
김현주라는 여배우에 대한 칭찬 일색이네요.
재미있는 건 촬영 현장이 아닌 일상에서도 현주씨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져요. 제가 제 머리를 때리며 ‘뭐하는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을 만큼 빠져 있었죠. 그렇게 모질게 하고 아프게 했는데도 사랑해주는 여자라서 그런 감정이 생긴 것 같아요.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 현주씨에게 감사해요.
김현주씨를 향한 절절한 눈빛 때문에 나중에는 ‘심장 폭행남’ ‘눈빛 임신’ 등의 별명도 생겼어요. 마음에 드나요?
별명이 과격하네요.(웃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운전 조심하세요”가 아니라. “졸음 운전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란 식의 과격한 문구를 볼 수 있죠. 처음엔 ‘뭐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것 또한 시청자분들의 사랑의 표현이고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이런 별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기도 하고요. 근데, 예쁜 별명으로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웃음)
그만큼 눈빛이 강렬하다는 뜻일 거예요. 멜로 연기에 특화된 눈빛이랄까요?
저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예요. 연기 전공자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죠. 다만 예전보다 나아졌을 뿐이고 앞으로도 천천히 나아질 거예요. 이번 작품에서 눈빛 연기에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데 제 또래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남자의 심경을 확실히 이해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런 눈빛이 나온거죠. 만약 다른 장르에서 이렇게 연기했다면… 후…. (웃음)
실제 지진희라는 남자에게도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요?(웃음)
남자들은최진언 같은 남자를 싫어해요.(웃음) 저는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최진언’은 엄청난 피해를 주죠. 저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면 연기도 힘들었을 텐데요?
연기적인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게 각인됐기 때문이었어요. 현실에서는 우유부단한 남자를 싫어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마음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죠.
‘30대 지진희’의 대표작이 <대장금>이라면 ‘40대 지진희’의 대표작은 <애인있어요>인 것 같아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40대가 조금 더 남았기 때문에 몇 년 후에 생각해보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애인있어요>가 대표작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했던 다른 작품이 대표작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고요.(웃음)
감히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대장금>은 제 드라마가 아니라 이병훈 감독님의 작품이었어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죠. 그런데 이번 작품은 조금 달라요. 감독님, 작가님,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대장금>이 지진희를 알린 작품이라면 <애인있어요>는 스스로 힘을 내서 연기한 작품이죠.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30~40대 이후에도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멋짐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죠. 그 과정에서 <애인있어요>를 만났고요. 조금이나마 ‘멋짐’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아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배우라…. 다른 배우들이 폭풍 칭찬을 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이미숙 선배와 김희애 선배를 보면서 ‘얼마나 관리하고 준비했기에 그 오랜 기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신뢰를 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결론은 끊임없는 노력이었죠. 폭풍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도 마다하지 않는 선배들을 보면서 쉽지 않지만 저 또한 그렇게 하려고 해요. 오늘 아침에도 운동하고 왔어요.(웃음)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비결이 있었군요?
몸 관리를 잘하는 게 배우로서 신뢰를 주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나이가 스물여덟 살에 멈췄다고 생각하면서 운동하죠. 스물여덟 살은 조금 심했나요?(웃음)
배우로서 앞으로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장르가 있나요?
멜로는 끊임없이 하고 싶어요. 더 늙기 전에 액션도 해보고 싶죠. 로맨틱 코미디도 욕심이 나고요. 가슴 절절한 로맨스가 있는 작품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전에는 사실 그런 작품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최근에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었지요.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이 녹아 있는 드라마에서 연기할 수 있어 좋아요. 나이를 먹더라도 로맨스 연기는 꾸준히 하고 싶어요. 중년 이후의 사랑 이야기도 언젠가는 꼭 해볼 거예요.
그래서 묻는 질문이에요. 지진희에게 ‘사랑’은 뭘까요?
음… 저에게 사랑은 ‘변함없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름다운 게 사랑이죠. 젊은 친구들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어요. 연애 초반에 모든 걸 다 알아버리면 안 된다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게 더 재미있답니다.(웃음)
2016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시청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거예요. 배역이 갖고 있는 모든 섬세한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배우가 될 수 있도록 할게요. 운동이나 독서도 열심히 해서 내실도 다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