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은을 만난 건 매서운 겨울바람에 어깨가 잔뜩 웅크려지는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핏이 예쁜 코트로 추위를 막았고 독특한 디자인의 모자로 개성을 드러냈다. 특유의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기는 강주은에게서 화면에서 봤던 ‘센 언니’포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녀처럼 배시시 웃었고, 소년처럼 짓궂게 즐겼으며, 천생 여자처럼 조곤조곤 말했다. 시시콜콜한 농담에도 박장대소하는 강주은에게서 묘하게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녀는 요즘 TV조선 <엄마가 뭐길래>에 출연 중이다. 가족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인데 조혜련 가족, 황신혜 가족과 함께 출연한다. 방송에서 강주은의 모습은 놀랍다. 천하의 최민수에게 “꺼져” “웃기고 있네” 등 날카로운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야리야리한 그녀 앞에서 쩔쩔매는 최민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
오랜만의 화보 촬영 나들이는 어땠나요?
재료(모델)가 부실한데 예쁜 화보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평소에는 해볼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재미있었어요.
<엄마가 뭐길래>에서 보이는 가정의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오래전부터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었어요. 저희 가족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모든 걸 내려놓은 저와 남편을 보면 편견이 깨질 거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너무 내려놓으면 실망하실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저희 가족의 모습이에요.
아들 최유진군의 순수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해요. 엄마 아빠의 특별한 교육법이 있을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요.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가르치죠. 워낙 자유로운 성격의 아빠를 닮아 아들도 자유로운 영혼이랍니다.
엄마의 왕성한 활동에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저는 그냥 엄마예요. ‘엄마는 엄마다’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유진이는 보수적인 면도 있어 제 화려한 모습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아빠를 닮아 엄마를 잘 챙겨줘요. 듬직해요.
남편의 반응도 궁금해요. 남편은 제가 최대한 멋있게 보이는 걸 원해요.
꾸민 멋이 아니라 제 있는 모습 그대로가 보여지는 걸 좋아하죠. 그걸 ‘멋있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단적인 예로 남편은 제 맨 얼굴을 가장 좋아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남들이 보기엔 제 남편에게 흠이 있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그의 아내로 사는 게 참 힘들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게 최민수씨는 ‘처음’ 같은 존재예요. 이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고, 만난 지 3시간 만에 결혼을 결심할 만큼 본능적으로 끌린 것도 처음이었죠. 저는 첫 느낌을 믿어요.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어떻던가요?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최민수씨는 진실을 찾는 남자예요.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사람을 그리워하죠. 처음에는 그런 남편이 버겁고 힘들었어요. 살면서 깨달은 건 흔들리지 않고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순수한 마음으로 저를 사랑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남자죠.
최민수씨가 강주은씨에게 많이 의지하나 봐요.
서로 의지한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죠. 민수씨는 제가 살아온 인생과 방법에 대해 알고 싶어 해요. 제 삶의 방식을 자기 걸로 만들고 싶어 하죠. 어쩔 때 보면 귀여워요. 물론 결혼은 희생의 연속이에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던 두 사람이 손잡고 한길을 걸어야 하는데 의견 충돌은 기본이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죠. 상대방이 다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계산하고 따지게 되면 실망이 크더라고요.
최민수씨가 강주은씨를 위해 노래를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남편이 만들어준 노래에서 사랑을 느끼지 않아요.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죠. 일례로 12년 전 제 첫 직장 첫 월급을 남편에게 주었는데 그 돈으로 술을 마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너무 서운했는데 2년쯤 지났을까요?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하는 저에게 그 돈 봉투를 건네더라고요. 캐나다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고 오는 게 어떻겠느냐면서요. 작은 거지만 감동받았어요. ‘아, 내가 남편을 너무 얄팍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고요.
역시 로맨틱 가이네요.
외국에서는 아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은 전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 문화는 그렇지 않잖아요. 남편도 제가 뭔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굉장히 걱정을 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한국에서는 그게 아껴주는 거더라고요.
남편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긴 계기가 있나요?
7년 전에 ‘노인 폭행’ 사건이 터졌었죠. 남편도 저도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남편이 고민하지 않고 기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잘못에 고개 숙이고, 대중에게 용서를 구하는 남자다운 모습을 보고 ‘이 남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정을 지켜줄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죠. 많이 긴장되고 떨렸을 텐데 용기 있게 나서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고 혼자 대견해했어요.
“나는 행운아다” 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러키걸’이에요. 최민수라는 남자를 만나고 지금의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게 모두 행운이 따르지 않았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일들이죠. 앞으로도 지혜롭게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그와 결혼하겠어요?
결혼을 ‘꼭’ 해야 한다면 남편과 할게요.(웃음) 지난 21년 동안 우리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해서 일군 가정이에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죠. “다시 결혼하면 남편과 할게요”라는 가벼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얄팍하게 사랑한다는 말로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최민수의 아내, 유진의 엄마가 아닌 ‘강주은’이라는 이름을 찾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7년 전쯤일 거예요. 여자로서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죠. 남편에게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고생 많았다”고요. “최민수의 아내라는 타이틀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느냐”고 하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마운 감정이 밀려왔어요. 이후 2년 동안 방황하는 저를 묵묵히 기다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최민수 아내’라는 이름이 좋아요. 단순히 ‘최민수 아내’면 어때요? 이렇게 멋진 남자의 아내인데요. 단언컨데, 그녀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