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귀국해 곧장 고향인 부산으로 향한 ‘추 패밀리’는 이틀 후인 17일, 부산의 한 스튜디오에서 가족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추신수가 귀국 후 처음 하는 ‘이벤트’였다. 2년여 만에 다시 <우먼센스>와 만난 추신수의 아이들은 그새 부쩍 성장했고, 큰아들 무빈이는 거뭇거뭇한 콧수염이 자랄 정도로 성숙해졌다. 특급 ‘내조의 여왕’으로 불리는 아내 하원미씨는 세 아이의 엄마가 아닌, 아름다운 여자 하원미로 변신했다. 야구 유니폼보다 슈트가 더 잘 어울리는 남자, 추신수와 그의 가족이 함께하는 특별한 파티 속으로 들어가본다.
화보 촬영을 마친 뒤 아내 하원미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동안 남편 뒤에서 묵묵히 내조에 전념해온 그녀는 <우먼센스>를 통해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의 생활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드러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교육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구선수인 남편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도록 그녀는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하원미씨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아이들이 댈러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세 아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나? 지난해까지 세 아이 모두 한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무빈이가 5학년이 되면서 무빈이만 공립학교로 전학시켰다. 텍사스에서는 1~4학년까지를 초등학교로 구분하고, 5·6학년은 인터미디어로, 7·8학년은 중학교, 9·10학년은 주니어 고등학교, 11·12학년은 시니어 고등학교로 분류한다. 무빈이는 원래 학급 정원이 5명밖에 안 되는 몬테소리학교에 다녔는데 성장하면서 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해 학생 수가 많은 공립학교로 옮긴 것이다. 전학 이후 걱정이 정말 많았다. 무빈이가 변화된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대만족이다. 무엇보다 무빈이에게 친구가 많아졌다.(웃음) 숙제가 많아 새벽 1시까지 무빈이와 함께 씨름하는 것 외엔 모든 부분에 만족한다.
모든 과목의 숙제를 함께 해주는 건가? 영어와 과학은 내 영역 밖이다.(웃음) 한국에서도 아이들의 숙제는 엄마의 ‘짐’이다. 때론 어려운 내용으로 인해 엄마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정말 그렇다. 아이들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긴 싫어 내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엄마는 다 알지만 너희들을 테스트해봐야 하기 때문에 공부한 뒤 엄마에게 설명해보라”고. 그게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가르치기’ 위해, 엄마한테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고, 엄마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 정리가 되는 모양이다. 엄마가 학생이고 아이가 선생님이 돼 엄마를 가르치는 ‘놀이’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다. 꽤 좋은 방법이다.(웃음) 세 아이의 특징이 궁금하다. 먼저 둘째 아들 건우부터 시작하자.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인 건우는 정말 공짜로 키우는 기분이다.
무빈이는 큰 아들이라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건우는 소희가 태어나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 약간 소외된 부분이 있었다. 그런 상황을 힘들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공부도 자기가 알아서 해나가는 편이다. 학교 선생님과 상담할 때마다 건우에 대한 칭찬을 엄청나게 듣는다. 어휘력이 뛰어나고, 공부 욕심도 많고, 야구선수로도 흠잡을 데가 없다. 집에 타격 훈련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놨는데 건우는 밤늦도록 타격 연습과 캐치볼을 하며 야구에 빠져 산다.
반면에 무빈이는 굉장히 낙천적인 스타일이다. 야구 게임에서 져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무빈이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태어나 엄마 아빠와 같이 고생하며 자랐다. 그렇다 보니 야구 때문에 집을 비우는 아빠를 대신해 자신을 ‘가장’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는 아이가 무빈이다.(웃음) 동생들도 정말 잘 챙긴다. 세 아이 방이 각자 있는데도 잠잘 때는 셋이 한 침대에 모여 잔다. 막내딸 소희는 ‘여우’다. 호기심이 많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나중에 선생님이 되는 걸 꿈꾸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선생님놀이 하는 걸 좋아한다. 날 앉혀놓고 이런저런 설명을 한 뒤 “질문 없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웃음)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남매간의 우애가 무척 깊은 편이다.
아이들이 아주 잘 자란 것 같다.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래도 걱정이 많다. 우리가 일반 가정과는 다르지 않나. 야구하는 아빠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게끔 노력하는데, 그래도 종종 아빠의 공백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 아이들에게 균형감을 잃지 않고 다가가려고 애쓴다. 댈러스에서 우린 유명인 가족이다. 사람들과 허물없이 교류하며 지낼 수 없다 보니 세 아이끼리 노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원미씨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자주 들려준다. 그 덕분인지 무빈이는 랩과 댄스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여는 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보며 춤을 배웠고, 혼자 연습해 출전했는데 하원미씨는 그 모습이 대견했다고 말한다.
댈러스 생활에 만족하나?
충분히 만족한다. 만약 우리가 뉴욕이나 LA에서 살다 댈러스로 이사 왔다면 조금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린 그동안 클리블랜드, 애리조나, 신시내티 등 한인이 많지 않은 소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인이 많은 이곳이 ‘천국’ 같다. 찜질방, 한국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많아 여가생활을 즐기기에도 좋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우스레이크는 굉장히 조용한 동네다. 코리아타운과의 거리가 20분 정도 되고, 공항과는 굉장히 가깝다.
올 시즌 추신수 선수의 성적이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남편이 힘들어할 때는 어떤가?
지켜보는 사람보다 야구를 하는 본인이 훨씬 힘들다는 걸 새삼 느꼈다. 사실 시즌 동안에는 인터넷을 보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가 어떤 내용인지, 그에 대한 댓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주위에서 이런저런 기사에 링크를 걸어 문자로 보내줬고, 가끔 그 기사를 볼 때면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에게 “걱정하지 마. 당신은 분명 일어설 거야. 시즌을 마칠 때쯤이면 자기가 원하는 성적을 기록할 테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말해준다.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남편이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남편과 결혼해 생활한 지 12년이 됐다. 그동안 나도 어느 정도는 남편의 야구를, 야구 성적을, 흐름을 보는 눈이 생겼다. 부상이 없는 한 남편은 반드시 이전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걸 남편은 성적으로 보여줬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확정했을 때 추신수 선수가 아내를 향해 고마움을 나타낸 바 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파티를 하던 중 한국 취재진에게 “늘 나무처럼 내 옆에서 지켜봐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그에게 “파티 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멋진 말이 떠올랐느냐”라고 묻자, 그는 “나도 모르겠다.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를 떠올렸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 기사를 보고 어찌나 부끄럽고 민망하던지…. 미국 언론에서도 남편의 발언이 화제가 됐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 아내의 조언을 듣고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다니엘스 단장이 내게 선수들 앞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어느 아내나 남편이 힘들어할 때는 좋은 얘기를 해준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너무나 평범한 말을 대단하게 생각해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러나 부끄러웠던 건 사실이다.
추신수 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하며 1억 3천만 달러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하원미씨의 생활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얼마나 여유 있게 살까?’ ‘얼마나 잘 입고 다닐까?’ 등등이다.
나도 그런 부분이 은근히 신경 쓰이더라. 가방을 들어도 ‘혹시 명품 백이라고 욕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덤덤해졌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내가 신경을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지 않나. 올 시즌에도 남편과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마음 아파하지 말자고. 남들의 시선에 대해 신경 쓰고 산다면 우린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남편이 야구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집안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혼자 감당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러는가?
지금은 좀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혼자 다 감당하자는 주의였다. 아이가 아파도 남편에게 얘기하지 않고 혼자 데리고 다녔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남편 앞에서는 무조건 웃었다. 행여 집안일로 야구하는 데 영향을 받을까 봐 혼자 껴안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감정이 쌓이다 보니 한계치에 다다르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걸 느낀 이후 남편과 모든 문제를 상의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건 아내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남편도 같이 거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남편은 당연히 잘 받아줬다. 홈에서 경기가 벌어질 때는 퇴근한 남편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그날 아이들에게 있었던 얘기를 하며 마음을 푼다. 남편도 아이들에 대한 이해심이 커지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아이들이 내 말은 잘 듣지 않아도 아빠가 하는 말은 무조건 따른다. 아빠의 카리스마가 어마 무시하다는 걸 알고 있다.(웃음)
2008년인가? 그때 한쪽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남편이 그때 팔꿈치 수술을 하고 재활하는 상황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게 지내다 보니 재활하는 남편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 보였다. 그때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남편 앞에선 절대 안 된다고, 지금까지 참고 노력해 여기까지 왔는데,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나도 우리의 미래에 대해 불안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불면증을 호소할 만큼 잠을 자지 못했다.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운전을 못할 정도였으니까. 하루는 남편이 시간을 내 함께 병원을 찾았는데 검사 도중에 의사가 노안이나 녹내장이 올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 진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울면서 기다렸다. 당시 남편이 “야구 그만두고 내 눈을 너에게 이식시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웃음) 그런데 검사 결과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해 나타난 일시적인 증상이었다. 수면제 처방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시력이 점차 좋아졌다. 그때 남편이 정말 마음 아파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자기 때문에 고생만 한다면서. 그래도 자신의 눈을 이식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었을 거다.(웃음)
올 시즌 남편이 아닌 야구선수 추신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나?
영화 같은 한 시즌을 보낸 선수의 이미지였다. 어느 해보다 정말 드라마틱한 한 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남편이 힘들어할 때마다 우리 부부가 똘똘 뭉쳤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더 깊어졌다. 남편의 부활을 지켜보며 ‘아, 내가 정말 대단한 남자를 만났구나’ 싶더라. 타율이 1할도 안 됐던 선수가 시즌 종료 후 2할7푼대의 성적을 올렸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야구선수로서 추신수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추신수 선수와 결혼 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시즌이 늦게 끝나면 끝날수록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나 그 순간은 우리의 오프 시즌을 양보해서라도 가장 오랫동안 포스트 시즌을 즐기고 싶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4월까지만 해도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시즌이 빨리 끝나기만바랐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경기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오히려 시즌이 끝나는 게 싫었다. 남편이 가급적이면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서길 바랐으니까.
추신수 선수의 올 시즌 야구는 올스타 휴식기 전과 후로 나뉜다. 휴식기 동안 가족 여행을 간 것으로 아는데, 그때 무슨 얘기를 주고받은 건가? 추신수 선수는 인터뷰 때마다 아내와 여행지에서 나눈 대화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별한 얘기가 아니었다. 평소 집에서도 나눴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아이들과 바다낚시를 하며 모처럼 달콤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남편은 그때 마음속으로 이번 휴식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래서 올스타 휴식기 이후 야구장으로 첫 출근할 때 오랜만에 설레는 표정을 하고 숙소를 나갔다. (당시 추신수 가족은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댈러스에서 차로 5시간 떨어진 텍사스의 한 바닷가를 찾았다. 거기서 3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 그들은 후반기 첫 경기가 휴스턴 원정 경기였던 터라 여행지에서 모두 휴스턴으로 이동했다. 휴스턴과의 경기에 가족들도 야구장을 찾아 응원을 펼치기로 했고 추신수는 호텔에 가족을 두고 먼저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후반기 첫 원정 경기에서 추신수는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오후쯤 남편이 전화해선 “오늘 야구장에 올 필요 없다. 나 오늘 못 뛴다”라고 얘기했다. 여행지에서 심기일전해 돌아온 남편인데 첫 경기에서부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그 실망감이 얼마나 컸겠나. 나도 너무 속상해 미칠 지경인데, 남편은 오죽할까 싶었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의 제프 배니스터 감독과 추신수의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남편은 이유도 모르고 전반기부터 계속 출전 기회가 들쭉날쭉했다. 엄청난 몸값을 받고 FA가 돼 텍사스와 인연을 맺은 선수인데 왜 출전 기회를 주지 않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은 배니스터 감독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었다.
감독에게 정말 편지를 썼나?
생각으로만 그쳤다. 그 당시엔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다. 자존심 센 남편이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데 대해 얼마나 힘들까 싶더라. 그래서 감독에게 우리 남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바꾸길 바라는지 묻고 싶었다. 남편은 나의 또 다른 나이다. 나도 남편의 또 다른 남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비슷하다. 내가 힘들었다면 남편은 더 많이 힘들어했을 것이다. 결국 성적이 남편을 살렸다. 출전할 때마다 성적으로 보여주니까 감독도 더 이상 남편을 라인업에서 제외시키지 못했다.
야구선수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하원미의 인생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대학 재학 중에 남편을 만나 곧장 미국으로 향하는 바람에 대학 졸업도 못 했고, 사회생활 경험도 전무하다. 가끔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한 여성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행복에 만족한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고 남편도 야구선수로서 성공했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인생 아닌가? 나중에 남편이 은퇴하면 그때 우리 부부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게끔 재단을 세우기로 했다. 나도 또 남편도 앞으론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돌보는 데 대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게 공인인 남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남편만 옆에 있다면 언제 어느 순간을 다시 맞이한다고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남편이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한 순간에도 우린 행복했다. 어쩌면 그때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남편을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