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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의 주원

나른한 오후 1시, 삼청동 카페에서 주원을 만났다. 인터뷰는 그렇게 잔잔히 진행됐다. 주원에게 빠져든다.

On December 15, 2015

주원은 살갑게 기자를 맞았다. 차 한 잔을 권했고, 시시콜콜한 근황 이야기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몇 걸음에도 기자를 앞에 두는 배려를 보였다. 그리고 그 흔한 조명 하나 없이 카메라 앞에서 완벽한 피사체가 되어주었다.

주원은 드라마 <용팔이> 종영 직후부터 영화 <그놈이다> 홍보에 돌입했다.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천재 의사 김태현 역으로 시청자와 만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동생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우로 변신했다. 그는 <용팔이>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고, <그놈이다>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베테랑 선배 배우 유해진과의 연기 대결에서도 뒤지지 않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해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이 있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치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님 말씀은, 반듯하고 착실한 이미지의 제가 연기하면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질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실제로 촬영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해소감이 들었어요. 저를 가두던 무언가를 뚫고 나온 느낌이랄까요. 지금까지 해온 연기 중 가장 재미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관객들은 익숙지 않은 제 모습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아요.”

뮤지컬 업계에서는 이미 촉망받는 실력자였고, 데뷔 이후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배우 외에 다른 직업은 꿈도 꾸지 않았고, 연기가 아닌 다른 것에 한눈을 판 적도 없다. 그가 <그놈이다>에서 보여준 노골적인 연기 역시 주원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했다.

“‘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저도 보지 못했던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는 더 드러내놓고 연기해도 되겠다 싶어요.”

2010년 <제빵왕 김탁구>를 시작으로 <오작교 형제들> <각시탈> <굿 닥터> <내일도 칸타빌레> <용팔이>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작품 사이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영화도 여섯 편이나 찍었다. 안방극장과 스크린 사이에서 널을 뛰며 인생 최고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주원. 세상의 시선이 버거워질 나이 스물아홉을 거쳐가고 있지만 자신이 가야할 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총명한 배우였다.

“20대요? 바빴죠. ‘노느니 일하지’라는 마인드가 강했기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김)태희 누나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휴식’의 필요성도 절실하게 느꼈죠. 예전에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요즘에는 머리만 닿으면 1초 만에 잠들어요.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쉬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기도 해요.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생각하려고요.”

주원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전략가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철두철미한 흐름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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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나 관객 수는 분명히 중요해요.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죠. 아직 어리니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제가 흥행에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 연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감독이 찾지 않는 배우는 되기 싫거든요

안방극장을 분노케 한 악역도 했고, 시청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훈남을 연기하기도 했다. 자폐 의사라는 파격 캐릭터도 완벽하게 소화해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이끌어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로 자신의 가치를 올렸다. 지속적으로 변화해왔지만 그만의 묵직한 색깔은 변함없었다. 누군가는 그의 안정적 행보를 지지할 테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기대할 게다. 주원 역시 그 색깔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변화에 따르는 부작용을 두려워하는 여느 20대 배우와는 다른 행보다.

“제가 지닌 색깔이 분명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이제는 색깔의 변화를 줄 시점이죠. 어릴 때부터 서른이 되면 저에게 다른 색깔을 입히자고 생각했고, 실행 중이에요. 배우라면 다양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송강호 선배가 작품에서 목소리부터 눈빛까지 완벽히 다른 연기를 하잖아요. 그건 그분의 색깔이 휘황찬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배트맨이 사이코가 되고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처럼 색깔이 다양한 배우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연기까지 하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변신하는 게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계적 변신은 어느 정도 계획적인 거라고 말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따지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고도 했다. 20대를 가열하게 보내고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때 완벽하게 변신해보자고 했던 그의 계획은 성공적이다.

“전략가적인 모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전략은 아니었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고 오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계획한 거였죠. 스물아홉 살 때 대중이 생각하는 나의 색깔과 이미지를 깨보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어떤 작품보다 중요했어요.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해요.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떨리네요.”

시청률 제조기라는 별명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가 출연하면 시청률은 보장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일도 칸타빌레>가 다소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주원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이견이 없었다.

“시청률이나 관객 수는 분명히 중요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죠. 저는 최선을 다해 연기할 뿐이에요. 연기 외적인 부분은 제 영역이 아니라 신경 쓰지 않으려 하지만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죠. 수치가 곧 저에 대한 평가거든요. 아직 어리니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제가 흥행에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 연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감독이 찾지 않는 배우는 되기 싫거든요. ”

주원은 높은 시청률이나 관객 수보다 ‘재미있는 대본’이 자신을 춤추게 한다고 했다. 흥행 여부가 부담이라면 이라면 대본은 에너제틱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대본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대본을 보는 자신의 모습을 재연하는 모습이 마치 새로운 장난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년처럼 귀엽다. 그러면서 “인기가 주는 무게가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하려 한다”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인기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대가가 있어요. 연예인이라서 응당 치러야 하는 것들이죠. 예를 들면 사생활 노출 같은 거요. 앞으로는 더 심해지겠죠? 그런데 저는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견딜 것 같아요. 한 감독님께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아도 캐스팅을 해주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제가 촬영장에 오면 분위기가 좋아진대요. 작품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에 힘이 나더라고요. 배우라서, 연예인이라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더 커지더라도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저 계속 배우 할래요.”
연기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주원. 사생활 노출이 싫어 꽁꽁 숨어버린 ‘신비주의 톱스타’가 늘고 있는 지금 ‘평생 연기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겠다는 주원의 모습이 소신있어 보인다. ‘고민’을 물었더니 가볍지 않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종종 제 미래를 상상하곤 해요. 야망이라면 야망인데,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예쁘게 사는 것이 최종 목표죠. 일 년에 한 작품 정도 하면서 더 신중히 연기할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 지금 달리는 중이에요. 남자의 20대와 30대가 가장 바쁘고 열정적인 이유가 안정적인 40대를 맞이하기 위함일 테니까요.”

행사한 인생의 멘토다. 부모님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연기도 하지 마라”라고 조언했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반듯한 청년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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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나 관객 수는 분명히 중요해요.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죠. 아직 어리니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제가 흥행에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 연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감독이 찾지 않는 배우는 되기 싫거든요

시청률이나 관객 수는 분명히 중요해요.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죠. 아직 어리니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제가 흥행에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 연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감독이 찾지 않는 배우는 되기 싫거든요

“평범한 회사원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당연히 제 어린 시절은 평범했죠. 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침 7시에 저희를 깨워 운동장을 뛰게 했고, 덕분에 저는 알람 없이도 7시면 일어나는 사람이 됐어요. 티격태격하며 싸우기도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형과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태어나서 가장 삐뚤어진 적은 언제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부모님과의 사소한 말다툼 정도가 제가 했던 유일한 일탈이에요. 그런 제가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엄청 당황스러워하시더라고요.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배우의 삶을 걱정하셨죠.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아닌데 배우를 하겠다고 하니까 반대 아닌 반대를 하셨고요. 처음에는 평범하게 살라고 설득하셨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세요.”

집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며 밝게 웃는 그에게서 화목한 가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저의 가장 큰 단점은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밖에서 일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침에 형이랑 싸우고 나온 날은 연기에 집중할 수가 없죠. 집에서 나올 때의 컨디션이 저의 하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누구보다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군대에 다녀오고 여차여차하면 결혼을 하게 될 텐데 저도 제가 꾸릴 미래의 가정이 너무 궁금하네요.” 스물아홉의 청년 주원은 상상 중이고 고민 중이고 성장 중이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이진하
2015년 12월호
2015년 12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