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나이 육십이 넘은 제 인생의 2막은 ‘후배 양성’에 올인하고 싶어요. 저의 ‘사부’에게 요리 기술을 전수받았듯이 저의 ‘제자’에게 요리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알려주려고 합니다. 사부는 아버지이고 제자는 자식이니 모든 걸 내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왕육성 셰프가 수제자들에게 전수하는 사부의 요리는 멘보샤다. 식빵을 태우지 않게 튀기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차례 훈련이 필요하다.
이연복 셰프가 ‘이달의 셰프’로 당신을 추천했다. 두 사람은 어떤 인연인가?
우리는 40년 지기 ‘동지’다. 1979년 사보이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중식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같이 요리 대회에도 나가고 메뉴에 대해 의견도 나누며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개인적인 성향도 잘 맞는다. 결혼 전부터 같이 해외여행도 가고 밤낚시도 다니는 절친한 ‘형-아우’ 사이다.
조리 경력 40년이 넘는 중식의 대가인 당신에게 2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2013년 12월 31일에 단지 쉬고 싶다는 이유로 요리를 그만뒀다. 1976년 요리계에 입문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준비했던 시간이다. 일반 회사원들도 정년이 만 60세 아닌가. 그때 내 나이가 딱 정년퇴임을 할 시기였다. (하하) 2년 정도 해외여행이나 다니려고 했는데 가족 중에 사업하는 분을 돕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게 참 행복하더라.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 나 자신이 더 큰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의 2막은 ‘후배 양성’에 올인할 예정이다. 지금껏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따라준 제자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투자도 하면서 도움을 주려고 한다.
틀에 박힌 정형화된 레서피로는 중화요리를 할 수 없다는 왕육성 셰프. 요리하는 상황에 따라, 느낌에 따라 자신만의 간이 연출된다.
올해 초 오픈한 중식당 ‘진진’도 후배 양성 프로젝트인가? 다섯 명의 제자가 있다.
현재 계획은 제자들에게 요리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충분히 전수하고 가게를 하나씩 차려줄 생각이다. 사부인 내가 전액 투자를 하고 가게 수익에서 제자들이 수익을 더 많이 가져가는 식으로 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서교동 중식당 ‘진진’이다. 코리아나 ‘대상해’부터 10여 년간 내 밑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제자 황진선 셰프가 점장으로 있다. 호텔식으로 조리되는 본토식 요리를 저렴한 가격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진진 수익금의 일부를 후배들에게 가게를 갖게 해주는 데 투자하려고 한다. 조만간 이 근처에 2호점도 오픈할 계획이다.
왕육성 셰프의 인생 2막은 제자들에게 투자하는 일로 바쁘게 지낼 예정이다.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야 자신이 더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내린 결정이다.
제자에게 전수하는 ‘왕육성식’ 대표 요리 기술은?
사실 중화요리는 정형화된 레서피로 맛을 낼 수 없다. 주방의 상황과 요리 재료에 따라 물의 양과 기름의 온도, 나트륨의 함량 등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게 ‘그 순간의 느낌(Feel)’에 좌우된다. 그래서 주방에서 ‘사부’의 역할은 경험에서 쌓은 ‘순간의 느낌’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그걸 얻으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사부는 제자를 ‘자식처럼’ 품고 모든 것을 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제자는 사부를 ‘부모처럼’ 모셔 모든 것을 수용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게 중화요리를 배우는 정석이다. 중식에서 ‘사부’라는 것은 ‘부자(父子) 관계’보다 더 진하다. 비즈니스를 넘어서 인간적인 애정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수제자들에게 꼭 전수하는 요리 기술 중 하나는 ‘멘보샤 만들기’이다. 얇은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살을 넣어 튀긴 중화요리로 바로 만들어 즐겨야 하고 그 나름의 내공이 필요한 음식이기에 웬만한 중식당에서는 기피하는 메뉴다. 새우와 식빵이 분리되지 않고 식빵을 태우지 않고 튀기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몇 개월간 제자들 옆에 붙어 보여주고 터득하게 한다.
올해 초 서교동에 오픈한 중식당 진진은 왕육성 셰프와 10여 년간 호흡을 맞춘 제자 황진선 셰프가 이끌고 있다. 황진선 셰프는 ‘왕사부’의 요리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전수받은 첫 번째 애제자다.
당신의 사부는 누구였나?
네 명의 사부님이 계셨다. 내가 1975년 처음 요리계에 입문하면서 왕춘량 사부를 만났다. 사실 그는 나의 동창 친구다. 왕춘량 사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중화요리를 시작하면서 22세의 나이에 ‘알아주는’ 요리사가 되었다. 동창 모임에서 그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술김에 전했다가 그길로 바로 ‘홍보석’이라는 중식당에 입사했다.
그 뒤로 1년 정도 요리를 배우다가 1976년 당시 국내 요리 업계에서 최고 연봉을 받았던 중식 셰프 고(故) 등대심 사부를 찾아갔다. 요리의 정석부터 화려한 기술까지 어깨너머로 틈틈이 익혔다. 그러다 1979년, 세 번째 사부인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의 장홍기 셰프를 만났다. 호화대반점은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호텔에 들어선 중식당으로 장안의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만큼 그곳에서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았다.
1982년, 마지막 사부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잡아준 곽보광 셰프를 만났다. 이분은 국내에서 최초로 KBS 방송에 출연해 요리를 가르친 분이다. 나는 곽 사부에게 ‘요리의 용기’를 배웠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림 없이 나만의 요리를 만드는 것, 곧은 의지가 용기라고 느꼈다. ‘요리가 짜니까 싱겁게 해 달라’ ‘소금을 더 넣어달라’는 손님들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집대로 맛을 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이후 나만의 ‘간’을 연구했다.
Mission!
사부가 사부로부터, 사부가 수제자에게!
‘사부가 사부에게 배운 요리, 사부가 수제자에게 가르친 요리’라는 이연복 셰프의 미션에 왕육성 셰프는 바로 답을 찾았다. 1982년 그의 네 번째 사부였던 곽보광 셰프에게 전수받은 ‘확실한 간’이 있는 쇠고기양상추쌈과 오랜 연구 끝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시절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왕육성식 멘보샤를 선보였다.
수제자에게 알려주는 요리
새우샌드위치토스트 '멘보샤'
재료 식빵 3장, 새우 150g, 식용유 3큰술, 새우양념(달걀흰자 3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 생강·후춧가루 1작은술씩, 설탕 1/2작은술)
만들기
1. 새우는 물기를 제거한 뒤 칼등으로 굵게 다지고 분량의 새우양념을 넣어 고루 섞는다.
2. 식빵은 가장자리 부분을 잘라내고 4등분한다.
3. 식빵 한쪽에 ①을 얹고 다시 식빵으로 덮은 뒤 기름에 천천히 튀겨 낸다.
- 셰프의 TIP
중국어로 ‘멘보’가 ‘빵’, ‘샤’가 ‘새우’로 ‘멘보샤’는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를 넣어 튀긴 일명 ‘새우샌드위치토스트’다. 튀길 때 새우와 식빵이 분리되지 않게 하고 식빵을 태우지 않고 튀기려면 천천히 기름의 온도를 올려야 한다.
사부에게 배운 요리
강하고 부드러운 맛의 조화 '쇠고기양상추쌈'
재료 양상추 100g, 쇠고기(안심)·면 50g씩, 표고버섯(동고)·죽순·셀러리·청피망·홍피망 20g씩, 고추기름·두반장 2큰술씩, 다진 마늘·대파·청주·간장·육수·녹말물 1큰술씩,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식용유 적당량
만들기
1. 쇠고기, 표고버섯, 죽순, 셀러리, 청·홍피망, 대파는 3×3×3mm 크기의 정육면체 모양으로 썰고 쇠고기는 간장과 청주로 밑간한다.
2. 양상추는 반으로 자른 뒤 씻어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3. 170℃의 식용유에 면을 넣어 10초 정도 튀겨 작게 부수거나, 라면을 잘게 부숴 기름 없이 팬에 볶은 뒤 식힌다.
4.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밑간한 쇠고기, 두반장, 다진 마늘, 대파, 청주, 고추기름을 넣고 볶다가 ①의 채소들을 한데 섞어 볶는다.
5. ④에 육수와 후춧가루를 넣고 볶다가 녹말물로 농도를 조절한 뒤 참기름을 넣어 한 번 더 살짝 볶는다.
6. 접시에 ⑤를 소복하게 담고 그 주위로 ③을 뿌린 뒤 ②의 양상추와 함께 낸다.
- 8월의 셰프
왕육성 셰프가 추천한 ‘릴레이 쿠킹톡, 셰프의 식탁’ 탄의 주인공은 정호영 셰프 입니다. 이자카야 카덴과 로바다야 카덴을 이끄는 오너 셰프로 감성적인 일본 요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정호영 셰프의 식탁은 <우먼센스>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