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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BAND

무대 위에서 묵묵히 연주하는 두 남자 사이로 반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하던 빨간 머리 여자를 기억한다. 90년대 파격의 아이콘 삐삐밴드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다시 돌아왔다.

On July 09, 2015


무더운 날씨가 완연한 오후, 약수동 한 스튜디오에서 90년대 중반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3인조 록 밴드 삐삐밴드를 만났다. 1995년 당시 국내 대중가요의 방향성을 뒤흔드는 혁명 같은 존재였던 그들은 지금까지도 ‘파격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 그대로의 모습일 뿐, 결코 꾸며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집을 마지막으로 돌연 해체를 선언하고, 긴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았던 세 사람. 말괄량이 삐삐처럼 무대 위를 누비던 보컬 이윤정은 아내이자 엄마의 삶을 살고 있고, 베이시스트 달파란은 영화음악 감독이 됐다. 또 기타리스트 박현준은 인디밴드 활동과 사업을 병행 중이다. 지난 20년 동안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이 다시 뭉쳤다.

20주년 축하드려요. 다시 뭉친 소감이 어때요?
윤정 친정에 온 기분이죠. 20년 만에 보는 건데도 예전처럼 막힘없이 모든 일이 진행됐어요.
현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요.
파란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하네요.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말이죠.

삐삐밴드로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파란 전 소속사에서 함께 했던 매니저 김진석 이사가 저희 세 사람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줬어요. “앨범을 내자”고 이야기를 꺼내는데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현준 상수동에 제가 운영하는 ‘라바’라는 술집이 있어요. 김 이사가 찾아와서 “마무리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을 했어요. 그러곤 술을 진탕 마셨죠.
윤정 반가운 제의였는데, 두 오빠의 의견이 궁금했죠. 알고 봤더니 셋 다 나머지 두 사람이 한다고 하면 하겠다고 말했대요. 오빠들과 어떤 제약도 없이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그때를 그리워하던 터라 반가운 제안이었어요.

밴드 해체 이후 어떻게 지냈어요?
파란 일렉트로닉 DJ 일도 하고 영화음악 감독으로 활동했어요. 최근 작품으로는 영화 <암살>이 있어요.
윤정 설치미술가인 남편이랑 ‘아트 퍼포먼스 EE’라는 팀으로 미술 형태의 퍼포먼스 공연을 하고, 생업으로는 스타일리스트 일을 해왔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대부분 시간을 육아에 쏟았지만요.
현준 밴드 활동을 해왔어요. 원더버드와 3호선 버터플라이처럼 짧게 프로젝트 식으로 공연하는 밴드를 해왔고, 현재까지 모노톤즈라는 록 밴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영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파란 장선우 감독님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삐삐밴드 2집 수록곡 중에 ‘나쁜 영화’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그 노래가 마음에 든다며 찾아오셔서 같은 제목의 영화를 하고 싶은데 영화음악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죠.

‘아트 퍼포먼스 EE’에 대해 말해주세요
윤정 평소에 행위 예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선뜻 재밌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아트 퍼포먼스 EE’의 작업은 처음에 한 단어로 시작해서 글이 나오고 그 글이 가사가 되고, 그 내용을 담은 사운드가 나오면 분위기에 맞는 옷을 제작하고 안무와 함께 퍼포먼스를 하면서 비디오를 촬영해요. 작업 특성상 무대보다는 전시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죠.

남편은 어떻게 만났나요?
윤정 남성 듀오 하우스룰즈 공연에서 만났어요. 뒷풀이 자리에 처음 보는 머리 긴 남자애가 있더라고요. 영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예술가였죠. 당시 저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도 적극적인 거예요.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남자친구가 골키퍼 역할을 못할 것 같았대요.(웃음) 예술하는 친구라 그런지 대화가 너무 잘 통했어요.

윤정씨의 육아는 뭔가 남다를 것 같아요.
윤정 어떤 섭입견도 없이 자유롭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미 그렇기도 하고요. “엄마 난 왜 머리가 길어?” “엄마는 왜 여기 대머리야?” 이런 걸 물어요. 우리 둘이 주는 영향은 사회에서 주는 것과 좀 다를 수 있지만 마음을 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아이는 제게 분신과 같은 존재니까요.

삐삐밴드는 어떤 존재인가요?
윤정 오빠들은 음악을 하다가 저를 만났지만 전 오빠들을 만나면서 음악을 시작했잖아요. 마치 주민등록증이 처음 나왔을 때와 같은 기분이죠. 삐삐밴드를 만난 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에요.

음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윤정 솔로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회사랑 계약한 적이 있어요. 계약금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방송이 잡혔다는 거예요. 한국에 들어와서 15일 만에 10곡 넘게 녹음했어요. 그때 몸무게가 37kg까지 빠졌어요. 당시엔 회사와의 약속,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혹독하게 느껴졌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윤정 원래 발레를 전공했어요. 고3 때 무용을 하다 다쳐 더는 못하게 됐죠. 이후 중앙대 연기영화과에 진학한다는 사실에 화난 아빠에게 강제 삭발을 당했는데 인상이 강렬해졌나봐요. 그 덕에 멤버 오빠들에게 캐스팅된 거 아닐까요?(웃음)
파란 음악을 시작한 계기요? 마냥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해비메탈, 록, 프로그래시브 록, 뉴에이지 ,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겼죠. 음악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놀았죠.

세 사람의 첫 만남은 언제였죠?
파란 현준이랑 저는 그룹 H2O 멤버로 만났어요. H2O가 해체되고 외국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여자 보컬이 있는 밴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죠.
현준 친한 스타일리스트가 압구정 모 바에 가면 삭발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어요.
윤정 사실 그곳은 음악에 죽고 사는 아티스트들의 아지트였어요. 오빠들은 저에게 “넌 뭐 하는 애냐?”고 물었죠.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길래 불렀더니 “같이 음악하자”라는 거예요. 덜컥 알겠다고 했어요.
파란 일반적인 여성스러운 보컬의 느낌은 아니었죠. 저희가 원하는 아우라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억지로 바이브레이션을 하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툭툭 뱉듯 부르는 보이스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윤정 당시에 힙합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곧바로 수락한 이유는 오빠들이 정말 멋있었기 때문이에요. 뭔가 저와 같은 종족 같았죠. 이 사람들이랑 함께하면 내가 힘든 것보다 배울 게 더 많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삐삐밴드의 목표는?
윤정 저희 세 사람이 모인 주된 목적은 앨범이 아니라 공연이에요. 무대가 그리웠어요.
파란 음악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다 보니, 옛날 노래만으로 공연을 채우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앨범을 만들게 됐고요.

이번 20주년 앨범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파란 사람 사는 이야기. 나이가 들어서인지 살면서 느낀 걸 쓰게 되더라고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취향을 바꿀 필요는 없어요. 자기 취향대로 음악을 즐겼으면 해요. 외국에서는 록 페스티벌에 백발 노인이 있다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은 젊은이와 노인이 세대 차를 단숨에 극복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해요. 그러니 참지 말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마음껏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데뷔 20주년을 자축하기 위한 소박한 기획에서 출발한 EP 앨범 는 삐삐밴드의 기념비다. 20년 만에 만난 지기들과 대중문화의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고 현재 음악계의 풍토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아티스트들. 대체 불가한 존재다. 앞으로 다양한 음악, 공연,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라니 벌써부터 그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손혜지 객원기자
사진
이재희
스타일리스트
김지연
헤어&메이크업
주성하·수안(살롱드 뮤사이)
2015년 07월호
2015년 07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손혜지 객원기자
사진
이재희
스타일리스트
김지연
헤어&메이크업
주성하·수안(살롱드 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