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베이글녀’라 불리던 에이미. 미국 네바다 주립 대학교에서 호텔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올리브채널 <악녀일기>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새 삶을 살던 그녀다. 대중에게는 상위 1%의 ‘엄친딸’로 더 친숙하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남심을 사로잡았던 그녀가 한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 최근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지던 에이미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자를 만났다. 그녀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진심이 전해질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작년 9월에 수면 유도제 졸피뎀 투약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어요. 이미 프로포폴 투약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형벌이 무거울까봐 걱정했는데 벌금형을 받았죠. 잘 해결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서울출입국관리소의 규정은 다르더라고요. 제가 우리나라 사회 질서와 풍속을 헤칠 염려가 있대요.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 한국에서 나가라고 출국 명령을 내렸어요. 출국명령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졌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21일, 서울출입국사무소가 에이미에게 출국명령을 내린 것.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자숙 중이던 그녀가 또 한 번 졸피뎀에 손을 대면서 일어난 결과다. 법원은 “나는 유승준과 다르다”고 외치는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에이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미국 시민권이 있을 뿐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싶은데 프로포폴을 투약한 과거가 있으니까 한국에서도 받아주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저는 국적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미국에 연고가 있는 유승준씨와는 달라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요. 사람들은 저보고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 저 혼자 미국에서 뭘 하며 살 수 있겠어요.”
에이미는 프로포폴 투약 혐의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일 때 자신을 찾아온 미국 대사관 직원에게도 말했다. “법대로 벌을 받겠다.”
“사람들은 저보고 미국인으로서 특혜는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이런다고 말해요. 그런데 제가 미국인으로서 무슨 특혜를 받았겠어요. 남자라면 군 면제 특혜라도 받았겠지만….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기 싫었다면 프로포폴 혐의로 수감되었을 당시에 형을 피하려고 했을 거예요. 미국으로 가면 되니까요. 그런데도 한국에서 죗값을 치르고자 한 이유는 제가 살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에요.”
6개월간 머물렀던 구치소에서 청소와 설거지, 각종 잔심부름을 도맡아했고, 그녀는 모범수로 퇴소했다. “구치소 생활은 힘들었어요. 벌이라면 받을 만큼 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아무도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요. 이대로 밀어내면 저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제가 그냥 싫은가 봐요. 제 가치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너무 힘들어요. 긴 터널 끝 한 줄기 빛을 보고 견뎠는데 또 하나의 장벽이 인생을 가로막고 있네요.”
2012년 프로포폴 사건, 2013년 검사 스캔들, 2014년 졸피뎀 투약 논란, 2015년 법원의 출국 명령까지. 한 사건이 마무리되면 더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사건과 논란의 연속에 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다.
“탈출구가 없는 것 같아 답답해요. 사는 게 힘들어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에 수면제와 감기약, 소화제 같은 약을 한꺼번에 먹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더라고요. 지옥 같은 제 인생은 쉽게 끝나지가 않네요.”
에이미는 2008년, 우연히 알게된 PD의 권유로 <악녀일기>에 출연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녀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악녀일기>를 통해 많이 성장했어요. 저를 캐스팅한 PD님 덕분에 세상을 알게 됐고요. 철없던 에이미를 성숙하게 해준, 제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감사한 분이죠. 그때 방송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어떤 팬분의 메시지 때문이었어요. ‘에이미가 웃으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는 메신저 쪽지를 받았는데 ‘아,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행복했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단 한 명이라도 제가 필요하면 발 벗고 도왔죠. 그게 제가 행복을 찾는 길이기도 했고요.”
그땐 <악녀일기> 출연이 발목을 잡을 줄 몰랐었다. 협찬을 맡았던 성형외과에서 몇 번 시술을 받은 게 화근이었다. 보톡스와 필러 등 예뻐지기 위한 시술을 받았는데, 맞을 때의 고통을 참지 못해 수면 마취제의 일종인 프로포폴을 맞았고, 중독으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프로포폴이 향정신성 의약품이 아니었어요. 의존성이 높아지면 중독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비타민 주사처럼 맞았어요. 중독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 프로포폴을 맞은 것, 그리고 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러워요.”
프로포폴에 의지했던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고, PD를 카메라맨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지했던 터라 방송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바쁜 스케줄 탓에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도 하나둘씩 멀어져갔다. 외로운 나날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에이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 스스로 힘든 걸 내색하고 싶지 않았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 이미지는 해피바이러스인데…. 외롭고 힘들고 아픈 걸 보여주면 저를 싫어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혼자 우는 시간이 늘어갔고, 그러다가 프로포폴을 알게 됐는데 저도 모르게 의존하게 된 것 같아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악녀일기> 출연 당시로 돌아가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이겨내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그녀는 인터뷰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밀려드는 후회와 끊임없는 반성, 괴로움이 반복되면서 없었던 병도 생겼다고 했다. 최근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불면증과 폐쇄공포증, 대인기피증, 공황장애까지 다양한 진단을 내렸다. 법원의 추방 명령에 우울증은 더욱 깊어갔다.
“프로포폴 사건 이후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은 그저 ‘약쟁이’였어요. ‘노력하면 그런 시선도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저만의 생각이더라고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에요. 갑자기 무호흡 증세가 와서 쓰러진 적도 몇 번 있고요. 저는 이렇게 힘든데…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죠?”
참던 눈물이 터진 건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에이미의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질타 받는 엄마를 보았을 때 가슴이 미어졌다.
“저 때문에 엄마가 많은 걸 잃었어요. 외국인 유치원에서 근무했는데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진 거예요. 교육자의 딸이 에이미라는 사실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았죠. 최근에는 건강도 안 좋아져 속상해요. 그래서 엄마 곁에는 더욱 제가 있어야 하는데… 엄마에게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요?”
사이가 안 좋았던 아빠와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늘 차갑기만 하던 아빠가 등을 토닥여주었을 때 닫혀 있던 그녀의 마음이 열렸다고 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저는 대학생 때까지 아빠와 함께 살았어요. 무서운 줄만 알았던 아빠가 구치소에 면회를 왔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빠를 안아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효도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늘 저 때문에 속상해했고, 아빠와는 거리가 멀었죠.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봤다면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에요. 저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모든 걸 잃어가는 게 가장 힘들고 괴로워요.”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에이미는 항간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제가 연예인들에게 마약을 전달하는 운반책이래요. 그런 소문 때문에 검찰의 표적이 된 거였고요. 저를 의심하는 검찰의 강압수사가 이어졌어요. 탈탈 털었는데 나오는 게 없으니까 결국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네일숍에서 프로포폴을 맞다가 119에 실려 갔다는 풍문에도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여성 질환 때문에 산부인과 수술을 받고 마취가 다 깨지 않은 상태에서 네일숍을 찾았다가 쓰러졌다는 것.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 대원이 피를 흘리고 쓰러진 자신을 보고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단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의 협박도 수차례 받았다. 이유는 모두 “에이미라서”였다. 자동차 접촉 사고 피해자인데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새벽 4시에 집으로 들이닥치는 경찰의 과잉 수사에도 손 놓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포폴 전과자 에이미니까.
“한번은 운전 중에 누가 뒤에서 제 차를 박았어요. 차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가해자는 일을 크게 키우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교통사고에 연루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용하는 사람이었는데, 결국 제가 돈을 주고 마무리했죠. 새벽 4시에 경찰이 들이닥쳐 소변 검사를 한 적도 있어요. 누군가가 마약범으로 신고를 했대요. 제가 에이미니까 그냥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거예요. 여자 경찰도, 영장도 없이 들이닥치는 경찰 앞에서도 속수무책이었어요.”
에이미의 가슴에 진짜 비수를 꽂은 건 ‘친구’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이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에 상처받았다고 했다.“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저를 걱정해주는 줄 알았는데 혹시라도 자기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전전긍긍하더라고요. 정말 실망했어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삶을 살았구나 싶었죠.”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끊긴 인연도 있지만 얻은 인연도 있었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몇몇 지인들의 응원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고. “구치소에 있을 때 탄원서가 들어왔어요. 저를 체포했던 형사님이에요. 조사 중에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그때 교대로 근무하던 형사님들이 저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신 거예요. 3주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니까 오해한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힘내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주셨죠. 그분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어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프로포폴과 졸피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죗값을 여기에서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발요….” 그녀는 두 번째 출국명령취소 소송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