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활동을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온 그룹 ‘빅뱅’ 멤버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과 뜨거운 열정이 오롯이 담긴 앨범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미안함, 지난 10년간 변함없는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 대중의 평가에 대한 걱정까지. 9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멤버들은 수많은 감정과 마주했다.
다섯 멤버가 한자리에 모이니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일명 ‘파인애플 머리’로 시선을 사로잡은 탑부터 눈을 전부 가린 채 ‘꽃미남’으로 변신한 대성까지. 눈빛과 목소리, 손짓 모두 그들의 개성을 드러냈다. 분위기 메이커는 막내 승리였다. 유행하는 청재킷에 선글라스로 포인트를 준 승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지드래곤이 음악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면 재미있는 표정과 말투로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탑이 묵직한 중저음 목소리로 시선을 모을 때면 귀여운 제스처로 웃음을 유도했다. 태양은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흥분하는 태양 때문에 곧 터질 듯한 웃음을 참느라 곤혹스러워하는 멤버들의 표정이 장난꾸러기 같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분위기를 이어가는 ‘빅뱅’. 9년 차 아이돌의 팀워크가 빛난다.
오랜만의 완전체 컴백이에요.
태양 3년 만이에요. 오래 고민하고 연구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 다행이에요.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대성 저는 3년 동안 활동이 없었어요. “이제 앨범 작업 할 거야”라는 말만 듣고도 긴장되고 떨리더라고요.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작업하는 시간이 행복해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아직까지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예요.
지드래곤 내가 만든 곡이 세상에 나온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에요. 이번 앨범은 매달 1일에 신곡을 공개할 거예요. 그때마다 저희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저도 기대돼요. 많은 분이 응원해주셔서 자신감도 붙었어요.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방식이 새로워요.
태양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전곡을 뮤직비디오로 찍어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매달 한 곡씩 발매하자는 양현석 사장님의 아이디어를 따랐어요. 신인 때도 이런 방식으로 활동해봤는데 그때는 저희만의 색깔이 없어서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보여드릴 수 있는 게 많아서 행복해요.
지드래곤 데뷔 초와 활동 방식이 비슷해요. 그때는 우리를 알리는 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 시키는 것을 해야 했어요. 저희가 쓴 곡이 아닌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 작업했죠. 음악적 색깔이나 방향성이 확실하지 않아 힘들었다면 지금은 구체적인 콘셉트가 잡힌 상황이라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즐기고 있어요.
타이틀곡 ‘루저’의 가사가 상당히 자전적이에요.
태양 연예인도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저희도 악성 댓글을 보면 상처 받아요. 햇수가 쌓일수록 부담감도 늘어요. 활동하면서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외로움도 있고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사로 썼어요. 같은 고민을 하는 제 또래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탑 최근 사회 분위기가 우울하잖아요. 저희도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마치 지옥에 온 것처럼 우울해질 때가 있어요. 그런 감정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지드래곤 사실 ‘루저’나 ‘위너’ 양갈래로 나누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은 연예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다만 특별한 직업을 가진 것뿐이죠. 저희도 우스운 걸 보면 웃고 슬픈 걸 보면 우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루저’의 후렴을 승리씨가 불렀어요.
승리 지용이 형이 저를 좋아하거든요. 하하. 사실은 여성 보컬이 가이드 녹음을 해주셨는데 제 목소리가 멤버들의 목소리에 비해 여성스러웠나봐요. 잘 어울린다고 해서 후렴 파트를 맡게 된 거예요.
승리씨는 빅뱅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지드래곤 승리가 예전에는 저희한테 많이 혼났어요. 승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모두 집에서 막내로 자랐고 승리만 장남이에요. 그래서 사고방식이나 성향이 저희랑 달랐어요. 막내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하지 못해 많이 혼냈었는데 지금은 혼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완벽한 동생이에요.
탑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바로 승리예요. 장남한테만 있는 책임감 같은 게 있어서 오히려 형 같을 때가 많아요. 요즘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승리를 찾게 되요.
‘베베’는 성적 은유가 많더라고요.
지드래곤 엽기적이면서 나쁘지 않고, 재미있으면서 어딘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19금 노래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들으면서 상상력이 자극돼 듣는 맛, 보는 맛이 더해진 거죠.
가사 중 25세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지드래곤씨와 열애설이 난 미즈하라 키코도 25세예요.
지드래곤 키코가 스물다섯 살인가요? 하하. ‘여자들이 아름다운 나이가 몇 살일까’를 주제로 논의했는데, 25세로 할까 26세로 할까 고민하다가 25세가 가장 예쁜 나이라는 생각에 선택했을 뿐이에요. 노래를 표현하는 방법 중 재미있는 요소 정도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지금까지의 노래들보다 대중적이라는 평가가 있어요.
지드래곤 대중 가수니까 대중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솔로 활동을 할 때는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곡도 부를 수 있는 거죠. ‘빅뱅’으로 활동할 때는 우리한테 좋은 곡이 대중에게도 좋은 곡일 때가 많더라고요. 이번에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으로 꾸미려고 했어요.
탑씨와 대성씨는 헤어스타일에 많이 신경 쓴 것 같아요.
탑 파인애플 머리요? 하하. 학창 시절 방학 때 많이 했던 스타일이에요. 이번에 톡톡 튀는 느낌으로 변신하고 싶었어요. 고민하다가 어릴 적 제 모습이 딱 떠올랐죠.
대성 제가 앞머리로 눈을 다 가리면서 인물이 훤해졌다는 얘기를 들어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어요. 하하. 머리로 눈을 가려서 무대 위에서는 멤버들의 도움이 필요하더라고요.
탑씨는 요즘 인스타그램 활동도 활발하던데요.(웃음)
탑 지난 2년 동안 팬들과 소통이 없었어요.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는 이정도로 사진을 많이 올리게 될 줄 몰랐어요. 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폭풍 업데이트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이 시간에 무얼 하는지, 공유할 수 있을 때까지 하려고요. 귀찮아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볼래요.
사랑과 연애를 왕성하게 할 나이지만 아이돌이라 부담스러운 면이 있을 것 같아요.
태양 저희도 또래 친구들과 비슷해요. 연애가 나쁜 건 아니잖아요.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는 가수이니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애도 경험의 일종이죠. 하지만 아시아, 특히 한국에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요.
탑 여자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직업인 건 맞아요. 많은 걸 공개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많더라고요.
최근 양현석 사장의 ‘20년 계약’ 발언이 화제였어요.
탑 우리가 20년 동안 함께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박수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저희 중 한 사람이라도 초라해 보이거나 자신감이 떨어지면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할 것 같아요. 여든 살에도 멋있을 수 있다면 그때도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은 바람이에요.
‘한 사람만 유독 멋있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반복되면 ‘빅뱅’을 영영 못 볼 수도 있다는 건가요?
대성 나머지 멤버가 어떻게 해서라도 멋있게 만들어줄 거예요. 저희가 서로 다툼은 없지만 승부욕은 있거든요. 자신이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더 노력하죠.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 ‘누군가 멋이 없어졌구나’라고 생각해주세요. 하하.
지드래곤 서로의 개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빅뱅이에요. 그룹 전체가 더 멋있어야 해요. 낙오자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대성씨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고 들었어요.
대성 저 스스로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저 멤버들과 팬 사이를 연결해주는 허리로서의 역할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솔로 활동을 하고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튼튼한 허리죠. 전에는 제가 실수를 하면 ‘빅뱅’과 YG에 민폐가 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바뀌었어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지드래곤 역시 남자는 허리가 중요해요. 하하.
지드래곤씨는 최근에 슬럼프를 겪었다고요?
지드래곤 고민하고 고뇌하는 슬럼프는 아니었어요. 곡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작곡이 귀찮기도 했어요. 난 달라진 게 없는데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했죠. 지난 1년은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해였어요. 저만의 뮤즈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빅뱅’이 저의 뮤즈였죠. 이번 앨범을 위해 멤버들이 모이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났어요. 제가 ‘빅뱅’이고, ‘빅뱅’이 곧 저였던 거예요.
‘빅뱅’이 10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요?
탑 저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거죠. 이제는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문제가 될 정도예요. 하하.
대성 개인적으로 저는 큰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멤버들이에요. 2011년에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을 때도 저 혼자라면 돌파하기 어려웠을 텐데 멤버들이 큰 힘이 돼주었죠.
태양 저희가 연습생일 때만 해도 회사가 많이 힘들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형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까 자연스럽게 끈끈한 우정이 생긴 것 같아요. 헝그리 정신도 생기고요.
지드래곤 태양의 말처럼 모두 힘들어봐서 그런 것 같아요. 배고픈 시절도 있었고, 개개인의 아픔도 있었고요.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현재에 만족하는 걸 배운 거죠. 롱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풍족했다면 지금의 열정을 갖지 못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