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많은 개인사로 화제를 모았던 방송인 김구라. 아무리 쿨한 성격의 연예인이라도 부부 관계, 채무 관계를 비롯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대중 앞에 대놓고 오픈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김구라의 선택은 다르다. 정면 돌파로 승부수를 띄운 것. 그는 최근 ‘J-Talk 콘서트’(JTN미디어)의 연사로 강단 위에 섰다. 오랜만에 직접 1천여 명의 관객을 마주하고는 “슬픈 개인사가 오픈되기 전에 계약된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나왔다”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고보면 공황장애는 있어도 대인기피증은 없네요.(웃음) 최근 들어 개인사가 공개되면서 ‘제2의 차승원’이라고들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니고요, 다 저를 위해 그런 거예요. 제가 우여곡절이 많은 캐릭터잖아요?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솔직함’ 때문인 것 같아요. 잘못한 건 미안하다고 하고 바로잡고, 어려운 점은 내놓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오. 그러면 못해도 본전은 한다는 걸 사회생활 하면서 많이 느꼈거든요.” 그의 사연이 공개되자 데뷔 이후 줄곧 따라다녔던 악성 댓글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인터넷 ‘욕’ 방송으로 화제를 모으다가 제도권에 진입한 건 2004년부터였어요.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2001~02년도 무렵에 제가 했던 행동이 참 부끄러워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요.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말요.(웃음) 그 후로 10년 이상 마음 편하게 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KBS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맡게 됐는데, 제가 예전에 했던 행동 때문에 게스트 섭외가 안 돼 난항을 겪은 적도 있죠.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이 네티즌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맞은 건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렇다고 방송에서 한 번 잡힌 캐릭터를 뒤집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 계속 불안감, 부작용만 쌓여갔죠.”
17억의 빚, 눈앞이 캄캄했다
김구라가 일반인들과 비슷했다면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방송 활동을 유지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태껏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잖아?’ 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과거의 꼬리표는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 2012년에는 과거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군 위안부’에 대해 경솔하게 말했던 것이 다시 화제가 되면서 그는 프로그램 하차의 쓴맛을 봐야 했다. 다행히 김구라의 시원시원한 진행을 그리워하는 팬들 덕에 그는 이듬해 방송에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내의 빚보증’이라는 어마어마한 산이 이제 막 재기하려는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무려 17억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평소 가족애가 강했던 아내는 처형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자신의 이름으로 돈을 빌렸다고 했다. 김구라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일이 터지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한 것이다. “아내가 돈을 빌린 사람들 중에는 방송계 인사도 계셨어요. 저는 아내가 돈을 빌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요. 그러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아내가 말을 하는데 정말 당황스러웠죠. 돈을 빌려주신 분들이 ‘김구라 얼굴 보고 빌려줬다’라고 해서 서운한 마음도 많았어요. 아내가 처음에는 빌린 돈이 9억이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9억 5천, 10억, 11억 이렇게 늘어났고 급기야는 17억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더 화가 났어요. ‘왜 나한테까지 솔직하지 못해!’ 하고 소리쳤죠. 아내는 계속 미안하다고만 해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눈치 빠르고 영민한 신동엽씨 말이 막상 그 상황이 돼보면 안대요. 적게 부르면 덜 미안할 것 같아 본인도 와이프에게 그렇게 말했다더라고요. 동엽씨도 부채가 많아요.(웃음)” 이따금 아내와 함께 밖에서 데이트도 즐겼던 그는 이후 가족 외출을 삼갔다.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않다 보니 마음에도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아내와 함께 정신과 상담까지 받으러 다녔다고 했다.
“틈만 나면 골프를 치고 술을 마셨어요. 그게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작년 4월쯤 골프 치러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우울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엔 기압차 때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커피를 집으러 손을 옮기는 것조차도 버거웠을 정도였으니까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그에게 ‘공황장애’라는 마음의 병이 찾아온 것이다. 다니던 병원에선 그에게 우선 술과 커피부터 끊으라고 했다. 그는 병을 진단받은 작년 5월 20일 이후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스 카페라테’도 ‘아이스 초코’로 바꿨단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의사 선생님이 저더러 ‘VIP 진료 시간으로 따로 잡아드릴까요?’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연예인이 정신과에 드나든다는 소문이 날까 봐 걱정해주신 거죠. 그런데 전 오히려 담담했어요. 그래서 그냥 일반인들이랑 똑같이 창구 앞에 앉아 진료 시간 기다리다 이름 부르면 들어갔어요. 어디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겠어요? 어차피 아내가 빚보증을 잘못 선 거 방송가에서도 알 사람은 다 알겠다, 공황장애도 그냥 솔직하게 오픈한 거죠.”
강단 위 김구라는 솔직했다. 평범했다. 방송에서 보던 그는 누군가를 향해 독설을 퍼붓던 모습이 아니었던가? “빚을 갚으려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다작하는 방송인으로는 신동엽, 전현무보다 제가 먼저였던 셈이죠. 처음엔 저도 아내에게 무척 화를 냈어요. 아시다시피 저 원래 욕 잘하잖아요. 하려면 남들보다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반복해서 화를 내다 보니, 나중에는 제가 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힘들더라고요.
아내도 처음에는 무조건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밖에서 노름을 했어? 명품을 샀어?’ 하고 따져요. 그러면 제가 ‘차라리 명품을 사지 그랬어. 그러면 백이라도 남잖아!’ 하고 악다구니를 쳐요. 현실은 그대로인데 서로 얼굴만 붉히는 거예요.”
배우자의 빚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을 하는 부부도 있다. 하지만 김구라는 모든 것을 끌어안았다. “월급쟁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죠. 월급 받아서 17억을 어떻게 갚아요. 집사람이 아무리 미워도 제가 좀 더 노력하면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인데, 그냥 외면할 순 없잖아요. 그러면 아내가 구속되 게 둡니까?(웃음)” 빚보증 소식에 시댁 식구들 역시 깜짝 놀랐다. 김구라의 어머니는 용돈을 보내드려도 “그냥 너희 쓰라”며 극구 사양했던 분이셨다.
“어머니께도 말씀드렸어요. 집사람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요. ‘엄마, 집사람은 우리 집 창업 공신이에요. 물론 잘못은 했습니다만, 제가 남편이니 당연히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하잖아요.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해 잘할 테니 지켜봐주세요’라면서….”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새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제가 가정에서 받았던 위안이 굉장히 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다고 저와 제 집사람이 신혼부부처럼 알콩달콩하고 늘 화목한 건 아니에요.
술 마시고 들어오면 잔소리하고, 운전하다가 범칙금 딱지 끊기면 잔소리하는 보통의 가정이죠. 그런데요, 막상 어려움에 처하니 그 모든 것이 다 소소한 행복이더라고요. 부부 생활 잘하려면요, 부부 간에 비밀이 없어야 해요. 예전엔 저도 다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 ‘무슨 개소리야?’ 하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 아내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왜 그동안 바보처럼 당신에게 모두 털어놓지 않았을까?’ 하고요. 부부 간에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으면 뭔가 방법이 나와요. 위로가 되는 거고요.”
부부 사이엔 아들 동현군이 있다. 아빠와 함께 출연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으로 얼굴이 잘 알려진 동현군은 이제 힙합 뮤지션 ‘MC그리’로 새롭게 도약한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니 김구라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아빠 덕에 가수 한다’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동현이는 원래부터 혼자서 잘하는 아이예요. 오히려 제가 어렵던 시절에 동현이를 방송에 많이 이용해 먹었던 거죠.(웃음) 상처받을까 봐 댓글은 보지 말라고 해요. 연예인이 되면 그런 건 스스로 감내해야 하고, 나중에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했어요. 다행히 성격이 엄마를 닮아 엄청 쿨해요. 공부는 안 해도 스스로 진로를 찾았으니 부모로선 굉장히 고맙죠.”
연예계 최고의 승부사
“예전에 탁재훈씨가 ‘구라야, 너처럼 재주도 없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애가 어떻게 그렇게 방송을 많이 하니?’ 하고 물어봤어요. 그 말이 딱 맞아요. 저는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하고, 연예인으로서 끼도 없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투수에게 필요한 자질은 물론 제구력도 있습니다만, 스피드도 중요해요. 방송인 김구라의 장점은 ‘눈치 빠르게 캐치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김구라는 어디에 데려다 놔도 프로그램을 훌륭하게 이끌어간다. <라디오스타>의 김국진과 윤종신, 규현과도 잘 어울리지만 <썰전>의 강용석, 이철희 소장과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그의 대표 프로그램 <썰전>을 볼 때면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한다. 예능만 잘하는 줄 알았던 김구라가 시사적인 현안에 대해서도 해박하기 때문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루 동안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시간이 평균 2시간 20분이라고 해요. 저는 스마트폰은 쓰지만 SNS는 안 해요. 주로 검색용으로만 사용하는데, 신문 기사를 볼 때도 헤드라인 위주로 봐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안인 경우에는 그 기사에 나오는 수치를 일부러 외워요. 제 직업이 ‘털어야’ 사는 직업이잖아요.”
프로그램이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다 강용석과 이철희 소장의 정치색이 극과 극을 달리다 보니, 김구라의 포지션이 상당히 중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방송 초기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김구라는 왜 방송 내내 이철희 소장만 쳐다보냐” “왜 강용석이랑만 낄낄대냐”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아옹다옹하던 강용석과 이철희 소장은 이제는 제법 잘 어울린다.
“강용석씨가 출연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이철희 소장이 안 한다고 했어요.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이랑 방송을 하냐’는 거였죠. 설득 끝에 시작한 게 벌써 100회가 훌쩍 넘었어요. 둘 다 이제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 거죠. 이철희 소장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이에요. 강용석은 오지랖이 넓고 주접스럽죠.(웃음) 그래도 은근히 잘 어울려요.”
최근에 김구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나 더 했다. 봉만대 감독과 함께 찍은 웹 시리즈 에로 코미디물 <떡국열차>가 그것이다. “원래 도전적인 성격이에요. 인터넷이 보급된 초기 시절에 이미 인터넷 방송을 했고, 종합 편성 채널 개국 때도 남들은 긴가민가하며 망설일 때 저는 바로 출연했죠. 요즘은 TV보다는 모바일 웹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평소 친분이 있던 봉 감독이 재밌는 걸 만든다기에 ‘공짜로 출연할게’ 하고 시작했어요.
‘나이 들어 노출하네 어쩌네’ 하면서 10명 중 3명이 욕한다고 해도 나머지 7명은 즐거워하는 거니까 저로서는 얻어가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그를 향한 러브콜이 끊일 줄 모른다. 그러고보면 그는 연예계 최고의 승부사다. ‘영원한 독설가’ 김구라는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