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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쌍천만 사나이

인터뷰 3일 전 그의 영화 <국제시장>은 천만 관객을 달성했고, 이로써 윤제균 감독은 연달아 두 작품에서 천만을 넘긴 감독이 됐다. 오는 2월 5일에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독일로 떠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감독으로서는 인생 최고의 시기다.

On February 09, 2015


영화 <국제시장>이 국내 개봉 영화 중 14번째로 누적 관객 수 1천만을 넘겼다. 작년 연말 개봉하고 정확히 28일 만이다. 이로써 윤제균 감독은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 이어 두 번째 연속 천만 관객 달성의 쾌거를 거뒀다. 영화감독 한 명이 연달아 개봉한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건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제시장>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아 오는 2월 5일 열릴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해운대>가 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는 무척이나 들떴어요. ‘제발 천만이 넘어갔으면 좋겠다, 좋겠다’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번 영화는 비교적 덤덤했어요. 그냥 하고 싶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스코어에 연연하기보다 ‘손익분기점만 넘겼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컸거든요. <해운대> 때가 행복한 기분이었다면 이번에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부산의 명소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가 연타석 홈런을 날린 것도 신기한 일이다. 이번 영화의 배경이 된 ‘국제시장’은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향수가 배어 있는 공간이다. 영화가 흥행하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자리는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윤 감독은 “대형 쇼핑센터로 소외됐던 저의 고향과도 같은 공간이 주목받게 돼 기쁘다. 혹시 (기자님이) 가게 되면 사진만 찍지 마시고 물건도 좀 사달라”며 껄껄 웃었다. 영화는 감독의 성격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웃기고 또 울린 <국제시장>처럼 윤제균 감독과의 인터뷰는 유쾌했고, 솔직했다.

윤제균 감독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잘 짚어내는 연출로 유명하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해운대> 등 그가 연출한 영화는 하나같이 관객을 잘 웃기고, 또 울린다.

“제가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에요. 한번은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들끼리 극장에 갔는데, <7일간의 사랑>이라는 영화가 걸려 있더군요. 제목만 봤을 땐 되게 야한 것 같지 않아요? 남녀가 7일 동안 나누는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며 영화를 봤는데 웬걸, 부자지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완전 슬픈 영화인 거예요. 상영 내내 펑펑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서 나온 적이 있어요.”

이번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흥남 철수 작전’ ‘파독 광부’ ‘베트남 참전’ ‘이산가족 찾기’ 등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주요 사건을 함께 다룬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절을 지낸 세대는 물론이고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던 10대 관객들까지 열광했다. 무엇보다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이산가족 찾기’ 장면은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았던 세대들의 눈시울마저 자극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특히 한국 관객들과 공감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본 해외 관객들은 이 내용이 사실인지 픽션인지도 잘 몰라요. 그냥 ‘잘 만든 휴먼 드라마’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죠. 우리말에 ‘고생’이라는 단어를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영어로 직역하면 ‘hard work’인데, 우리가 볼 땐 단순한 ‘hard work’가 아니잖아요. 또 모티브 자체가 가장이 가족을 책임지는 내용이고요. 외국인들은 ‘장남이 대체 왜 그래야 해?’ 하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하지만 한국 관객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단어에 대한 느낌을 잘 알잖아요. 일종의 ‘한’ 같은 개념인 거죠.”

배우 황정민, 김윤진 등 평균 나이 40대인 배우들이 20대 젊은 시절 연기부터 70대 노인 연기까지 인물의 일대기를 망라한 점도 흥행에 톡톡히 한몫했다. 윤 감독은 배우들의 외형을 각 연령대로 보이게끔 특수 분장은 물론이고 기존 한국 영화에는 사용한 적 없었던 컴퓨터그래픽 작업도 불사 했다.

 


“20대의 사랑 연기와 70대의 노인 연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는 황정민씨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민씨와 촬영하는 동안에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감독이 100을 기대하면 110을 보여주는 배우는 많죠. 하지만 200을 보여주는 배우는 드물죠. 그런데 정민씨가 그런 배우예요. 솔직히 노인 연기를 보고 무척 놀랐어요. 감정 신은 물론이고 코미디 신까지, 한 배우가 이걸 다 소화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윤 감독에게는 배우를 캐스팅할 때 철칙이 있다. 첫째는 실력이고, 둘째는 인간성이다. 워낙 성격이 무뚝뚝해 함께 일하는 배우, 스태프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편은 못 되지만, 그래도 한 번 느낌이 온 사람과는 ‘쭉’ 간다는 것이 윤 감독의 생각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정치색 논란도 흥행 요인중 하나였다. 인물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을 ‘가족’에게로 돌리며 슬픈 시대적 배경을 미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좌파 평론가로 알려진 허지웅과 진중권의 부정적인 영화 평이 화제가 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윤 감독은 “애초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출발한 영화가 아니지만, 감상은 관객의 몫”이라고 입장을 밝혀왔다.

사실 윤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파독 광부로, 베트남 기술자로 떠나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주인공 ‘덕수’의 이야기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비록 감독 자신은 영화 속 ‘덕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인생의 굴곡만은 덕수와 비슷했다고 말한다. 윤 감독은 줄곧 이 영화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했다.

“제 20대 때를 돌이켜보면, 고생을 많이 했지요.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살던 아버지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제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미안하다’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평생 일군 자산을 주식으로 몽땅 날리셨더라고요. 생활비며 학비, 결혼 자금 등 한창 돈이 필요할 나이에 저는 아무것도 없이 맨손이었어요. 당시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어 고시원도 전전해봤고, 친구 집에 얹혀서 3년을 살았죠. 제가 그 시절 건진 거라곤 지금의 와이프 딱 하나예요.”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캠퍼스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졸업 후 그는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입사했고, 7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하게 됐다. 가진 것이라곤 마이너스 1천5백만원의 통장 잔고뿐이었던 그는 열 평 남짓의 마포구 아현동 반지하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저는 지금도 와이프에게 굉장히 잘해요. 제가 잘나갈 때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 아니고,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만나서 나를 선택해준 사람이죠. 한번은 와이프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날 뭘 보고 결혼했어?’ 하고요. 그랬더니 아내 말이 그땐 저를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뿐이었대요. ‘정말?’ 하니까 ‘사실은 보통1종 운전면허 가지고 있기에 뭐 하다가 잘못되면 택시 운전이라도 하겠지’ 싶어 덜컥 결혼했다고 말하며 웃더라고요.(웃음)”

하지만 결혼 후 윤 감독은 현실의 어려움을 더 뼈저리게 실감했다. 첫아이를 낳고도 유모차 한 대 살 돈이 없던 일은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하는 걸 보니 그 고단함을 대충 짐작할 만하다.

“신혼 초였을 거예요. 사랑으로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돈이 없으니 그게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때 아내와 이혼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었어요. ‘착하고 성실한 건 맞는데, 가장으로서 능력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돈만 많이 준다고 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파독 광부며 베트남 기술자며 못 갈 건 또 뭔가요? 당시 한 달 월급이 1백만원이었는데 거기서 한 달 일하면 1천만원을 준다고? 저라도 당연히 갔을 거예요. 1년만 가면 전셋값이 나오잖아요.”

금실 좋은 부부인 것 같다고 했더니 “가장 위대한 커플이 되고 싶은 평범한 커플”이란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인지를 물었더니 그 역시 “가장 위대한 아빠가 되고 싶은 평범한 아빠”라고 했다. 윤 감독은 자신이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장 마지막 장면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넣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바로 ‘덕수’가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혼자 독백하는 장면이다.

“‘내가 약속 잘 지켰죠? 이만하면 잘 살았죠? 진짜 힘들었거든요’ 하는 대사는 제가 아버지께 드리고 싶었던 말이에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제게 한 살 어린 여동생을 잘 건사하라고, 어머니도 잘 보살펴드리라고 당부하셨어요. 지금 동생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어머니도 잘 모시고 있으니, 이만하면 아버지와의 약속을 잘 지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1~2년 후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10년 후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인생이 원래 그렇다. 윤 감독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와 닿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셋방살이를 하던 그가 ‛쌍천만의 사나이’가 될 줄 그 시절에 누가 예측이라도 했을까?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어요. 그리고 곧 IMF가 터졌죠. 모두가 살기 팍팍해지니 회사에서 한 달간 무급휴가를 줬어요. 아현동 반지하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글 쓰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때 쓴 시나리오가 공모전에 당선돼 영화판에 들어서게 된 거였고요.”

그의 시나리오 작가 데뷔작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두사부일체>다. 흥행이 대박나자 주변에선 “꼬장꼬장했던 윤제균 인생, 이제 편 것 아니냐?”고들 했다.

“영화가 대박이니 저 역시 대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전체 수입은 50억이 넘었는데 저는 당시 연출료로 2천만원을 받았을 뿐 어떤 보너스도 없었죠. 그래서 물어봤더니 ‘원래 그런 것’이라고만 하더라고요. 그 정도 벌었으면 몇 백만원이라도 수고한 사람들에게 응당 보상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이었던 거예요.”
이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영화 <국제시장>은 막내 스태프까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첫 번째 영화가 됐다. 하루 12시간 촬영 제한, 그 이상 촬영을 하면 추가수당 지급, 일주일에 1회 휴식일 보장, 4대 보험 등이 그 골자다. 그간의 관행과 영화 제작의 특성상 야근과 초과 근무가 비일비재한 상황을 고려하면 제작자나 투자사 입장에서는 큰 결정인 셈이다.

“저는 이 표준근로계약서 문장 하나하나의 맨 앞에는 ‘인간적으로’라는 말이 붙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적으로’ 12시간 이상은 촬영하지 말자, ‘인간적으로’ 12시간 넘으면 추가수당 주자, ‘인간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쉬자, 이런 거죠. 바꿔 말하면, 그 전에는 영화판이 그리 인간적인 환경이 아니었던 거예요.”

윤 감독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내가 이렇게 보란 듯이 성공했듯, 지금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의 10년 뒤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집이 없어 그가 6개월간 지냈다는 고시원 동기는 영화 <변호인>으로 재작년 천만 감독에 이름을 올린 양우석 감독이다.

“제 몸 하나 누일 공간이 없던 시절에 중학교 동창이었던 영민(현 JK필름 대표)이는 무려 3년씩이나 자기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줬어요. 가진 건 몸 하나밖에 없었던 저를 사랑으로 감싸준 사람이 지금의 아내고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맑은 사람과 탁한 사람이죠. 맑은 사람의 특징은 일관성이 있다는 거예요. 현재 모습이 못났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지금 성공했다고 해서 돌변해 아첨하지 않아요. 늘 한결같죠. 저는 그 맑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고, 저 역시 맑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윤 감독은 사람의 10년 뒤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와의 인터뷰를 마친 기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어려운 시절 품었던 생각을 성공한 후에 펼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윤제균의 10년 뒤는 여전히 맑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맑은 사람과 탁한 사람이죠. 맑은 사람의 특징은 일관성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맑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고,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2015년 02월호
2015년 02월호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