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tvN의 무대에선 잘 짜인 연극이 꾸려진다. [snl 코리아] 이야기다. 어쩌다 이런 사람들이 모였을까 싶은 ‘SNL 크루’에는 신동엽을 주축으로 유세윤, 박재범, 안영미 등 다양한 분야의 괴짜들이 함께한다. 매주 찾아오는 새로운 호스트들과 합을 맞추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터. 그럼에도 벌써 5년 차이다. 얼마 전 종료한 시즌 5까지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여기까지 잘 왔다.’ 오랜만에 불 꺼진 회의실과 겨울 한기를 되찾은 무대를 배경으로 겨자색 따뜻한 톤의 니트를 입은 한 남자가 저 멀리서 걸어온다. [snl 코리아]를 진두지휘하는 수장, 안상휘 CP이다. 오랜만의 휴가가 아니냐고 묻자 이런 날은 실로 귀하단다. 같은 처지로 방송하는 친구들을 모아 무작정 떠났다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충청도는 때마침 폭설로 뒤덮였다. 이렇게 한날한시에 휴가를 맞추기가 어려운데 기회를 날릴 수 없다는 다수의 의견으로 그들은 곧장 동해로 직행했다. 그 꿀 같은 휴가는 2주를 넘지 못했다. 다음 시즌을 위한 기획회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
“요즘은 온라인 시대이고 유튜브 채널이라든지 웹툰과 같은 매체를 레퍼런스의 도구로 많이 삼죠. 근데 전 올드 미디어를 좋아해요. 일주일에 두 번은 반드시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어요. 앞서 말한 뉴미디어는 의무적으로 보는 거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건 책이에요.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어요.”
깨어 있는 동안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면 아내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한다.
“혼자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요. 도서관에 가서 단 한두 시간이라도 혼자 앉아 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기분이 들어요. 매주 토요일 방송이 끝나면 저희 팀은 회식을 합니다. 끝나고 집에 가면 새벽 혹은 그다음 날 아침이에요. 그때 잠을 덜 자고 멀리 드라이브를 가요. 여행처럼요. 그게 재충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SNL 코리아]가 처음 방영될 때 대중이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촌철살인의 정치 풍자와 공중파에서는 보기 힘든 19금 개그였다. 다들 ‘이건 뭔가?’ 싶었다. 시즌 1 때는 ‘라이브 콩트’라는 콘셉트를 도입했다. 시즌 2와 3에서는 풍자와 19금 코드를 화두로 들고 나섰다. 그러나 시즌을 거듭하며 주축이었던 두 가지 코드의 부피를 줄여나갔다.
“제 입장에서 창과 방패로 생각했던 두 축이 지금 점검해보면 많이 무너졌죠. 거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그렇다고 잃기만 한 건 아니에요. 대신 이번 시즌은 가족이 함께 보기에 더 편안해졌죠. 좀 더 폭 넓게 대중화가 이루어진 부분은 얻은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 프로그램의 핵심 DNA인 풍자와 19금 코드를 버릴 생각은 없어요. 다만 그 몸집을 불렸다 뺐다 할 뿐이지. 끝까지 가지고 갈 겁니다.”
원조 [SNL]과 명맥을 같이하지만 ‘코리아’판은 같으면서 다른 부분이 많다. 코미디는 대중의 정서를 많이 타는 장르. 그렇기 때문에 차별성을 두는 것도 있을 테고 동시에 한계점도 많이 느낀다.
“미국의 틀은 가져왔지만 내용적으로 미국의 것을 많이 가져다 쓰지는 못했어요. 저희 자체적으로 개발한 아이템이 훨씬 많죠. 시즌 1·2 때는 현지 것을 써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큰 재미는 못 봤어요.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굉장해요. 종교, 어린이 그리고 장애인까지 웃음 코드로 사용할 수 있는 나라니까요. 앞서 말한 것들을 우리가 건드린다면 바로 뭇매를 맞아요. 미국은 ‘그래, 코미디니까’라고 인정해주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달라요. 코미디를 보면서도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니까요. 이런 정서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좀 더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장단점이 있어요.”
[SNL 코리아]는 장기화되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것을 유지하자니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변화를 주자니 모험인 것 같다. 이런 크고 작은 고민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이들의 숙제일 것이다.
한 시즌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에 들어가기 직전, 그 출발선 앞에 서 있는 그는 어떤 다짐을 하고 있을까?
“이때가 가장 고민이 많아요. 출항을 하면 이미 출발했으니 오히려 마음은 편해요.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길게 끌고 가는 프로그램 타이틀이 몇 없어요.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싫증을 빨리 느끼기 때문인 것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세운 목표는 전략적인 ‘시즌제’였어요. 꾸준히 오래가야죠. 오랜 시간 살아남는 데에는 공력이 필요해요. 그만큼의 팀워크도요. 이런 부분들이 충족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오랫동안 해야 시청자들을 한 번이라도 더 웃길 수 있고, 울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전달하려는 메시지에도 좀 더 힘이 실릴 거고요. 계속 해나가다 보면 우리나라 방송 판에 ‘풍자’라는 틀이 제대로 박히고, 19금 코드 또한 좀 더 포용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는 거죠.”
예능의 경우, 특히 [SNL 코리아]와 같이 크루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은 그 구성원들의 힘이 크다. 시즌을 거쳐오며 [SNL 코리아]가 배출한 스타 아이콘들의 활약이 상당하다. 김슬기, 김민교 그리고 지난 시즌의 히어로 유병재가 있다. 그의 이름이 나오자 아끼는 후배에 대한 애정이 여과 없이 묻어난다.
“다른 프로에 있었는데 이쪽으로 오고 싶다고 해서 인터뷰를 했죠. 그게 첫 만남이었는데 굉장히 놀라웠어요. 들고 온 대본도 훌륭했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해 연기를 하는데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그때 ‘이 친구는 꼭 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다 알죠.”
재미있는 친구라고 했다. ‘찌질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소심한 복수도 하고 싶은 요즘 우리네 20대를 대변하기에 제격인 캐릭터.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포기하고 또 도전하는 그의 실제 성격 또한 그렇단다. ‘작가’로서의 유병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안상휘 CP의 눈은 더욱 빛난다.
“저는 유병재 작가 글을 정말 좋아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보통 작가들에게서 보기 힘든 감정을 담아내거든요. 이걸 두고 ‘오픈 콩트’라고 하는데 웃기면서도 마무리는 진한 페이소스(연민의 감정)를 줘요. 호스트로 오는 많은 연기자들이 유병재 작가의 콩트는 소화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연극적인 연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보통의 연기자가 라이브로 구현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보통 ‘모 아니면 도’예요. 잘하면 대박이 나고 아니면 방송으로 아예 못 나가는 거죠. 사실 이런 이유로 비방된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시청자가 봤을 때 ‘이게 뭐지?’ 하는 것도 왕왕 있고요. 하이 코미디와 대중의 교감 문제인데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라 생각해요.”
이미 프로그램을 거쳐 간 호스트의 수도 상당하다. 섭외하고 싶은 호스트를 물어봤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많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톱클래스들을 모시고 싶죠.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본인이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가령 짤방이 돈다거나, 계약된 CF가 떨어질 수 있다든가 하는 걱정부터 앞서죠. 또 한 가지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해요. 이효리씨 같은 경우는 출연하기로 다 맞추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만 남았는데 마지막에 심경을 바꾸시더라고요. 시청자들의 기대가 높을 텐데 과연 자신이 그만큼을 채울 수 있을지를 걱정한 거죠. 제가 굉장히 많은 콜을 날린 대상 중 한 분일 겁니다. 이렇게 저는 늘 설득하는 역할이에요.(웃음)”
최근 예능 프로그램 PD들은 카메라 앵글 안으로 너스레 떨며 들어왔다 나갔다 뻔뻔하게 굴지만 그는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을 지킨다.
“그걸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동료인 나영석 PD 같은 경우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나 PD는 버라이어티 예능의 전문가잖아요. 아무래도 그 장르는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포맷이니까 PD의 개입이 시청자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생각은 안 해요. 오히려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 되는 것 같아 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하는 프로는 극에 가까운 코미디 프로니까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연기자들의 몫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집중이 되니까요. 제가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 판단력이 흐려질 것 같아요. 그보다 제가 그런 걸 어색해하니까요.”
이쯤 되자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궁금해졌다. 그는 부드러우면서 곧은 어투로 남들이 안 하던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면 드라마, 토크쇼면 토크쇼. 이미 나온 남성들의, 여성들의, 외국인들의 토크쇼가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개척해보고 싶은 거죠. 드라마 같기도 하고 예능 같기도 한, 예능형 드라마라면 예시가 될까요? 하지만 당장의 목표는 곧 시작될
이미 시즌 6을 앞두고 있는 5년 차 프로그램. 가령 다음 주에 시즌이 새로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이미지랄까, 기대하는 부분은 분명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SNL 코리아]는 늘 변화하려고 노력한다는 점과 시청자의 허를 찌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대신 그 저변에는 ‘쟤들은 항상 까고, 풍자해도 기본 정서는 따뜻한 집단이구나’ 하는 것도요. 무엇보다 지금의 20대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작가 공모전을 냈는데 그 짧은 기간에 5백40여 명이 지원했어요. 전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함께 일하고 싶은 집단이 되는 것. 이건 많은 것을 설명해줘요.”
원래 술을 잘 못 하는데 술자리에 많이 다니고 있단다. 항상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피로하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아끼는 동료, 후배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하러 나선다. 곧 출항할 그의 배엔 어떤 좋은 사람들이 타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