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줄도 몰랐는데 지난해 1월 예쁜 딸을 출산했죠? 배가 불러온 뒤에는 공식 활동을 자제해서 그럴 거예요. 임신한 모습을 굳이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대중에게는 그저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엄마가 되는 모든 과정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딸아이는 지금 생후 11개월 가까이 되는데 또래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요. 활동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과격한 태교를 했나요?(웃음) 임신 5개월 때 단막극을 했어요.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여서 당시 크게 와 닿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작품 같아 행복하게 했죠. 그 후로는 특별한 태교보다 편안하게 깔깔거리면서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봤더니 웃음이 많은 아이가 태어났나 봐요. 조리원에서도 신생아가 이렇게 웃는 걸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어요. 긍정적인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돼보니 어때요? 여유가 생겨요. 예전 같았으면 화를 낼 만한 일도 그냥 넘어가게 되고, 조바심도 없어져요.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편안해진 것이겠죠. 사실 저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엄마가 된 이후 모든 아이들이 다 예뻐 보여요. 웃는 모습만 봐도 행복해요.
배우 이미지가 강해서 주부의 모습은 상상이 안 돼요. 살림도 곧잘 한답니다. 지금은 육아 때문에 정신이 없어 살림 솜씨를 100% 발휘하진 못하지만 제가 소매를 걷어붙이면, 끝납니다.(웃음) 요즘은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10년 열애 후 결혼에 골인한 원동력이 다정함인가요? 처음에는 ‘상남자’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정다감한 스타일로 바뀌었어요. 저한테 맞춰서 변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나랑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은 가끔 해요. 특히 딸에게 더없이 좋은 아빠예요.
배우 활동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나요? 제가 배우의 꿈을 실현하고 하나하나 이뤄가는 과정을 함께해온 사람이에요. 제가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기에 누구보다 내 일을 존중해주고 이해해줘요. 슬럼프에 빠지면 버팀목이 돼서 다독여주기도 하고요. 인생의 매니저랍니다.
‘인생의 매니저’라, 멋진데요? 유선씨는 어떤 아내예요? 저요? 애교 덩어리 아내. 상상이 안 가죠?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답니다.(웃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요? 밖에서는 이렇게 털털하지만 남편 앞에서는 애교가 많은 편이에요. 남편도 ‘천생 여자’라고 하고요. 저를 연약하고 유약한 존재로 생각해요. 사실 제가 씩씩해 보여도 속으로는 걱정도 많고 소심한 성격이에요. 혈액형이 O형인데 친한 친구들은 “A형 같다. 피검사 다시 해봐라”라고 할 정도로요.
만나기 전까진 지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는데, 성격 정말 유쾌하시네요.(웃음) 보시다시피 털털한 편이에요. 평소에 외출할 때도 사람들을 의식하는 편이 아니어서 편하게 입고 다니죠. 그리고 항상 유쾌하게 일 하려고 노력하고요. 웃으며 일하는 게 좋잖아요. 전 아직도 누가 절 알아보시고 인사를 건네면 쑥스러워요. 어떤 배우들은 모르는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도 한다는데 저는 “유선씨 맞죠?” 하면 창피해서 “네”라고만 하고 자리를 피해요. 데뷔한 지 15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배우 이미지가 강해서일까요?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싶은 바람은 없나요? 시청률 48%를 기록한 <솔약국집 아들들>을 하면서 엄청난 사랑과 희열을 맛봤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게 제 솔직한 바람이에요. 저를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대표작도 만들고 싶고요. 저는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운때가 맞으면 흥행도 되는 거고 아니어도 좋은 작품이라면 후회하지 않아요. 대작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대작이라고 다 5백만, 1천만 영화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언젠간 그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요.
출산 후 첫 영화로 <히말라야>를 택했어요. 촬영도 시작했죠? 엄홍길 대장의 아내 역할인데 분량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극 중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의 촬영이 많아 주인공인 (황)정민 오빠가 저를 추천했다고 해요. 저 역시 흔쾌히 수락했고요. 평소 작품을 선택할 때도 분량보다는 캐릭터를 먼저 보는 편이에요. 그리고 작품의 내용과 메시지를 보죠.
특별히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우리나라 영화가 대부분 남자 투톱 영화이잖아요. 왜 꼭 남자 둘이 붙어야 피 튀기는 긴장감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서 전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강인한 형사나 검사 역할 같은 거요. 예전에 영화 <검은집>에서 살인마 역할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제대로 된 악역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황)정민 오빠를 극단 시절부터 지켜봐왔는데 참 한결같아요. 대단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소위 말하는 톱클래스 배우인데도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여전히 현장에서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소품도 직접 다 챙기고요. 그런 걸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스타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되라는 말, 맞습니다. 저도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유선은 기자에게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물었다. 편한 곳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것. 보통의 연예인들은 기자의 행선지에 관심이 없다. 대충 인사를 건네고 자동차에 쏙 올라타는 게 대부분이다. 인간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던 유선, 그녀의 목표는 이미 완성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