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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집 화보

73년 동안의 김혜자

진한 화장을 한 김혜자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김중만의 카메라다. 스튜디오엔 향냄새가 짙게 배어 있고 작가의 취향이 묻어나는 음악이 가득 메우고 있다. 피사체는 집중한다. 파르르 떠는 순간, 작가의 카메라가 움직인다.

On December 03, 2014

투피스 이광희부티크, 꽃 코르사주·별 모양 브로치·화려한 원석 브로치·새가 달린 목걸이 모두 몬드. 춤추는 댄서 브로치 제이미앤벨.


진한 화장을 한 모습이 낯설지 않으세요? 난 무드 있는 메이크업보다 맑고 영민한 메이크업을 좋아해요. 보통 때 같으면 “이렇게 무섭게 화장하고 찍어야 돼?”라고 했겠지만 정샘물 원장이 이른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화장해주었고 또 김중만 작가가 촬영하니까 믿고 하는 거예요.

스튜디오 분위기가 독특해요. 새가 날아다니고 향냄새가 아주 짙고…. 괜찮으세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해요. 뭐랄까, 외국 시장에 온 느낌. 크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흥을 돋아줘요. 음악 선정에 공을 들이는 김중만 작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저것 보세요, 헤어스타일과 문신. 그는 여전히 맑은 영혼을 가졌어요.

의상 역시 모두 오랜 지인인 이광희씨가 디자인했습니다. 나이 들면서 가치관이 같은 친구가 옆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7년 정도 알고 지냈는데 70년 같은 7년이죠. 저것이 아름다운데 왜 아름다운지, 너무 초라해서 아름다울 수도 있잖아요. 그 시선이 저와 같은 사람이에요.

레오퍼드 코트와 같은 소재 머플러 모두 이광희부티크. 이어링 몬드, 펠트 소재 앤티크 모자 제이미앤벨.


하루 종일 촬영하는 동안 겨우 김밥으로 식사를 대신 하시던데요? 배가 부르면 머리가 희미해지고 일하기 싫어져요. 오래된 습관입니다.

최근에 촬영을 마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어떤 작품인가요?
가장의 실직 문제, 버려진 가정의 붕괴, 남겨진 아이의 슬픔이 그려지지만 아이의 시선에서 울지 않고 아름답게 흘러가는 영화예요. 그저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로 인해 더 재밌어지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희망’이에요. 부정적인 이야기라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어야 해요. 그러잖아도 우린 전부 힘드니까.

<마더> 이후 5년 만에 출연한 영화예요. 그만큼 <마더>가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봉준호 감독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워줬어요. 사전 미팅 때 “선생님만 믿습니다. 선생님은 진짜 엄마이니까요” 그랬죠. 영화를 하는 내내 “마더에게 아들은 내 배 속에서 나온 이성”이라고 말했어요. 세상에,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남다른 시선이 좋았어요. 영화를 하는 동안 자식을 위해 살인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고, ‘엄마’의 본질이 넓어졌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엄마만이 엄마가 아니에요. 살인을 하는 무서운 엄마도 엄마인 거예요. 그게 ‘마더’였어요.

실제로 어떤 엄마인가요? 전형적인 엄마이기도 하고 <마더>의 엄마이기도 하죠. 단, <마더>의 엄마와 같은 상황에 처해지지 않았을 뿐이죠.

검은색 원피스 이광희부티크, 이어링 몬드.


평생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부담스럽진 않나요? 물론 연기적으로 말하면 엄마 역할,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우리 가족한테는 ‘국민 엄마’ 같은 엄마가 아니었어요. 소홀했죠. 바쁘다는 이유로 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겠어요. 제가 요즘도 “미안해”라고 말하면 “자책하지 마세요, 다른 엄마가 주지 못한 것을 얼마나 많이 줬는데요” 하고 오히려 딸이 절 위로해요.

선생님은 참 행복한 배우죠?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래서 전 하나님 마음에 들고 싶어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내 입의 말과 내 혀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길 원한다’는 말. 저는 이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요. 지금 내 행동이 마음에 드시려나? 불쑥불쑥 실수를 하지만 항상 의식하는 존재가 있으니 실수를 조금 덜하지 않을까요.

블랙 블라우스 이광희부티크, 머리 망사 장식·이어링 모두 제이미앤벨.


포털 사이트에 선생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도시락 메뉴가 나옵니다.(웃음) 실제로 판매율이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얼마나 무안한 줄 알아요?(웃음) 배우 같지 않잖아요.

인터뷰 오기 전에 동료 기자가 제게 “나 ‘김혜자 김치’ 주문했어”라고 하더라고요. 김치 사업은 우리 아들이 하고 있어요. 돈 받고 판매하는 거라 제가 무안하죠. 아들에게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라고 신신당부했어요. 아들을 위해서 홈쇼핑에도 자주 나가줘야 하는데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어 피하게 돼요. 때로는 반성도 해요. 자식을 위해서 죽기까지 한다는데 고작 배우의 자존심 때문에 아들을 힘들게 하는구나, 하고요.

빠지지 않는 연관 검색어가 ‘봉사’였어요. 제가 하는 일은 봉사가 아니에요. 그 아이들을 직접 보면 사람이라면 다 하게 되는 일이에요. 전쟁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의 아이들이 사흘에 한 끼만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녀오면 아이들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사망자 통계가 그저 숫자가 아니라 내가 눈을 마주쳤던 아이가 죽었을 수도 있는 거예요.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아세요?

가끔 포털 사이트에 선생님과 관련된 뉴스를 검색해보기도 하세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정도죠. 물론 그러다가 간혹 제 이름을 눌러보기도 해요. 그랬더니 글쎄, 연관 검색어로 도시락 메뉴가 수두룩하게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나, 배우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웃음)

투피스 정장 이광희부티크. 펠트 소재 모자·빈티지 선글라스·망사 장갑 모두 제이미앤벨.


칠순이 넘은 여배우의 요즘 이슈는 무엇인가요? 늙어서 아름답기는 참 힘들어요. 늙어서 아름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 뿐이에요. 내가 출연한 연극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어요. “젊을 땐 바보 멍청이라도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 몸이 힘들어지면 머리를 써야 해요.” 진하게 공감했어요. 나이 들어 머리 쓰지 않으면 웃긴 사람이 된다는 거죠.

드라마 촬영이 없는 날 선생님의 하루 일과도 궁금합니다. 멍청히 있어요.(웃음) 그러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마당에 나가 꽃도 보고 하늘도 보죠. 요새는 마당에 떨어져 있는 감나무 잎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어느덧 2014년도 지나가네요.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올해는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었죠. 반대로 말하면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의미예요. 경험은 나이테 쌓이듯 쌓여 내공이 됩니다. 전 제가 닥친 시련 앞에서도 이게 끝은 아니야,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부디, 다시 일어납시다.

언젠가 집 마당에서 부러질 것 같은 꽃을 발견했다. 조심스레 물이 고인 곳에 놓아줬더니 꽃이 풍성하게 자랐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기적은요, 내 마음이 바뀌는 거예요.” 김혜자는 오늘도 기도한다. 감사합니다.

  •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선생에 대해서
    이광희 선생님은 30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그 분야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장인이다. 우린 30년간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내가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나보다 연상이지만 전혀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껏 많은 셀러브리티와 대한민국의 상류층 사람들과 일하며 많은 작품을 만들어 왔다. 또한 소셜테이너로서 아프리카를 오가며 봉사활동에도 열정적이다. 몇 해 전부터 아프리카 남부 수단에 망고나무를 심고 있다.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망고나무를 심음으로써 그들에게 희망과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나와 김혜자 누나, 이광희 누나는 가난과 기아에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자는 공통의 관심사로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기로 했으며 오늘도 그 겸허한 봉사의 한 길로 다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from 김중만

 

김혜자, 이광희, 김중만은 대한민국 톱 아티스트이자 한국 예술계를 움직이는 거장들이다. 세 사람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이기도 하다. 화보 촬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전 미팅을 가졌고, 촬영 이후에도 만남이 이어졌다. 김중만 작가는 두 친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캘리그래피로 직접 작업해주기도 했다.


젊은 그대, 디자이너 이광희

“자신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만들지 말고 도전하세요. 짙은 화장을 한 배우 김혜자가 카메라 앞에서 용기를 냈듯이 주부들도 때로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어요!” _이광희


오트쿠튀르를 입은 김혜자는 우아해 보였고, 여성미가 물씬 풍겼다. 그의 의상을 만들어준 사람은 디자이너 이광희. 두 사람은 오랜 친구이자 서로의 멘토이기도 하다.

오늘 김혜자라는 배우의 모습, 어떠세요? 소박한 이미지를 벗어나 조금은 섹시한 모습이 매우 만족스러워요. 짙은 화장도 줄곧 소화하는 것을 보면 배우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듯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에요. 항상 결과물로 쌓이죠.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저렇게 아름다우시잖아요. 하지만 그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에요. 아름다움은 어렵기도 하고 평등하기도 해서 살아온 길을 그대로 반영하니까요.

어떻게 인연이 시작됐나요? 선생님은 매사에 조심스러운 분이세요. 교양 프로그램의 출연을 앞두고 제 의상을 맞추고 싶다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제 의상을 많이 입으셨죠. 첫인상요? 낯을 많이 가리셨고요, 하지만 겸손하고 배려심이 많은 모습이었어요. 그 이후에 함께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갔는데 열흘 동안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답니다.


김중만 작가와도 아주 오래된 사이죠? 그가 파리에서 막 들어왔을 때, 그러니까 스무 살 때 처음 만났으니까요. 패션쇼, 화보 등 함께 작업을 많이 했지요. 프레시했죠. 이렇게 예쁜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지적이면서 비누 냄새 나는 미소년의 이미지. 그 인상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어요. 최근에 봉사활동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어요. 한데 이렇게 화보 작업을 함께한 것은 오랜만이에요. 친구들과 함께 만든 프로젝트라 특별합니다.

수년 전부터 ‘희망의 망고나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죠? 김혜자 선생님과 아프리카의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 가게 됐어요. 그것을 계기로 ‘희망의 망고나무’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길게는 1백 년까지 열매를 맺는다는 망고나무는 톤즈의 주민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에요. 저는 그들에게 일회성 도움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자립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성인들에게 직업 교육을 시키고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유치원과 학교를 짓고 있죠. 내년에는 톤즈 내에 있는 나환자촌에 갈 예정입니다. 그 누구도 돌볼 사람 없고 손길이 안 닿는 곳이에요. 그 결정을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생각에 미묘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죠.

퍼스트레이디 룩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요. 제 옷을 입는 분들은 화려함을 좇는 사람도 아니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어요. 그 옷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죠. 저는 유명한 분들이 제 옷을 입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저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외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35년이 됐습니다. 원 없이 했어요. 정작 저는 엄청난 아날로그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지요. 호암아트홀, 예술의전당 등 패션과 거리가 먼 전시장은 물론 국회의사당에서 펼쳐진 파격적인 패션쇼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화가 김점선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미술, 음악, 조각을 비롯한 순수예술과의 접목 등 색다른 행보도 했지요. 행사를 진행할 때면 꽃꽂이, 테이블 세팅을 비롯해 전반적인 것을 다 직접 했어요. 결국 패션이라는 게 주변 생활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생활 문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늘 청춘 같았던 선생님도 환갑을 관통했습니다.(웃음) 나이가 들면 지금 내 모습에 대해 감사하게 되죠. 이대로 가는 게 맞는지, 더 나은 방향은 뭐가 있는지 하고요. 그렇게 심사숙고하게 돼요. 그래서 오히려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이 자유로워요.

남산자락의 터줏대감입니다(그녀의 부티크는 남산자락에 35년째 자리를 잡고 있다.) 산이 좋고,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아요. 아마 그때 강남에 땅을 샀으면 부자가 됐겠죠. 물론 그 사이에도 강남으로 이전하라는 유혹이 많았지만 전 천성적으로 번잡한 것을 싫어해요. 무엇보다 당시 그 누구도 없는 이곳이 참 좋았어요.

타협보다는 고집스러웠다. 그 성향은 작업에서도 고스런히 드러난다. 국내에 몇 남지 않은 오트쿠튀르 브랜드의 수장이며 더욱 완벽하고 싶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책임감이다. 그녀는 여전히 잔 다르크처럼 거침이 없고, 뜨겁다.

  • 여배우 김혜자 선생에 대해서
    김혜자, 그녀는 73세의 대한민국 톱 여배우다. 지금까지 4편의 영화와 28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톱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소셜테이너로서 봉사활동에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도 아프리카에 가고자 하지 않을 때, 김혜자 선생은 주저 없이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기아와 굶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콩고, 중앙아프리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매년 이렇게 그녀는 우리를 휴머니즘으로 이끌며, 우리의 차가운 마음에 따뜻한 온정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따라 따뜻한 봉사를 펼치고 있다. 그녀와 함께 작업하는 동안, 난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 이 모습에 나이를 믿을 수 없었다. 이처럼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대이다.

 

정샘물 원장과는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났어요. 지금껏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메이크업을 직접 하거나 맨 얼굴로 연기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전문가의 힘이 필요했어요. 우아한 역할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정 원장이 떠올랐어요. 언젠가 기독교 방송을 보는데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소개된 그녀가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며 꼿꼿하게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대견해서 눈여겨보았죠. 오늘 촬영에도 한걸음에 달려와준 그녀가 감사할 뿐입니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자와 카메라 앞의 피사체는 신경전 중이다. 두 거장의 만남에 스튜디오는 초긴장. 음악이 크게 흘렀다. 새도 날아다닌다. 발 딛을 틈도 없다. 전 세계를 돌며 사진을 찍는 김중만은 그의 취향을 고스란히 스튜디오에 옮겨놨다. 짙은 향냄새와 수백 개의 돌, 나무,액자, 책, 조명, 화분….

“선생님이랑 나랑 기 싸움하고 있지? 그치? 선생님이 배우 생활 50년째니까, 35년은 내가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스태프들이 책임져요.(웃음)”(김중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예술가와 카메라 앞의 리드미컬한 피사체. 그들은 좋은 친구이고 시대를 풍미한 톱 아티스트이며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는 중견이다. 숙명 같은 만남에 김중만은 땀을 흘렸고 김혜자는 파르르 떤다.

“전 기도해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김중만 작가를 보며 집중하죠. 마음 속으론 주기도문을 외우죠. 스태프가 많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어요.”(김혜자)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김중만의 슛 소리에 30여명의 스태프가 일제히 집중한다.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배우 김혜자.

“김중만 작가가 프로라고 느낀 게, 촬영 초반에 제게 조용히 다가와서 어느 쪽 얼굴 각도가 좋으냐고 눈으로 말했어요. 크게 묻거나 아예 묻지 않는 작가들도 있거든요. 그 미묘한 차이가 고수를 만드는 것이죠. 결국 그가 카메라인 셈이잖아요. 내내 소통했어요. 뭐랄까, 나 잘하고 있구나 혹은 이 사람도 지금 힘들구나라는 소통이 자연스러웠어요.”(김혜자)

두 사람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한 사람, 디자이너 이광희다. 김혜자는 그녀의 오랜 멘토이며, 김중만과는 40년 친구다.

“언젠가 이광희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머니께서 늘 ‘오늘도 참아봤니?’라고 물으신대요. 그 말이 잊히지 않았어요. 인생을 살면서 참는 게 참 중요하잖아요. 불공평해도 참아보고 억울해도 참아보는 게 인생이죠.”(김혜자)

세 사람은 비슷한 행보를 걷는다. 나눔의 삶이고 감사하는 삶이다.
“기도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감사합니다’예요. 몇 년 전부터 사소한 일상의 감사함을 일기처럼 쓰기 시작했고, 천 개를 쓰는데 1년 반이 걸렸어요. 쓰고 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아니까요. 실제로 그랬어요. 지금 이 순간, 얼마나 감사한 줄 몰라요. 친구들과 작업할 수 있고, <우먼센스>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기적입니다.”(김혜자)

아침부터 시작한 촬영은 어두워져서야 끝났다. 모두 박수를 친다. 찬란한 오늘이다.

 

사진_ 박원민

CREDIT INFO
취재
하은정
기자 사진·캘리그래피
김중만(벨벳언더그라운드 스튜디오)
메이크업
정샘물
헤어
김수찬
의상 디자인
이광희
스타일 디렉터
제이미킴
2014년 12월호
2014년 12월호
취재
하은정
기자 사진·캘리그래피
김중만(벨벳언더그라운드 스튜디오)
메이크업
정샘물
헤어
김수찬
의상 디자인
이광희
스타일 디렉터
제이미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