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앙드레김 의상실이 위치한 신사동의 ‘앙드레김 빌딩’이 최근 매각됐다. 앙드레김 빌딩은 신사동 도산대로 알짜배기 땅에 위치한 건물로, 대지면적 541.50㎡(약 164평), 연면적 1820.76㎡(약 552평)에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다. 1990년 지어져 건물이 노후한 탓에 건물 가격은 인정되지 않고, 순수 땅값만 산정해 180억에 거래됐다.
이곳 인근의 현재 시세는 평당 1억 1천만원 내외다. 앙드레김은 생전에 이곳을 월세로 임대해 의상실로 사용하다 브랜드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지난 2001년 매입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궈낸 자산이었다. 그 후 앙드레김 건물은 신사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그러다 지난 2010년 8월 12일, 일흔넷의 나이로 앙드레김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이 건물은 외아들인 김중도씨와 앙드레김의 평생 비즈니스 파트너인 임모 실장에게 절반씩 상속됐다. 김씨는 고인이 40대 중반에 공개 입양한 양아들이고, 임 실장은 고인을 30년 가까이 곁에서 보필한 최측근이다.
앙드레김이 작고하기 바로 전달인 7월에는 앙드레김 의상실이 ‘앙드레김 디자인 아뜰리에’라는 주식회사로 전환됐다. 1962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시작된 ‘살롱 앙드레’가 48년 만에 기업형 패션 주식회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당시 회사의 대표이사는 양아들 김씨가 맡았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임 실장이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앙드레김의 유산과 브랜드를 두고 세력 다툼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물론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갈등 없이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 앙드레김의 발인식 당일 김중도 대표와 임모 실장의 모습.
물론 세간에선 앙드레김이 작고한 후 ‘앙드레김’이라는 브랜드가 예전처럼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파티복과 연미복 위주의 맞춤복 사업에선 대표 디자이너의 존재가 그 어떤 사업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아들 중도씨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사무실에 나가 조금씩 일을 배우고 있었고 겨우 서른의 나이였다.
이후 앙드레김 디자인 아뜰리에는 골프웨어, 란제리, 벽지, 안경, 도자기 등에 ‘앙드레김’이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하는 라이선스 사업의 비중을 확대해나갔다. 이것이 앙드레김이 없는 회사를 지켜나가는 그들만의 방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판매 실적이 부진한 협력업체들이 떨이 판매를 하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크나큰 타격을 불러왔다. 김 대표는 올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어느 한 계층과 연령대에 국한하지 않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브랜드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러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브랜드로 남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국 진출은 물론 지금까지 관심을 보이는 아랍권,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 진출도 시도할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부친 이름으로 재단과 교육 아카데미도 생각하고 있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앙드레김을 한국을 대표하는 토털 패션 브랜드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난은 점점 심각해졌고, 결국 신사동 건물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신사동의 앙드레김 건물은 ‘내츄럴엔도텍’이라는 코스닥 상장사의 소유가 됐다. 현재 앙드레김 디자인 아뜰리에는 해당 건물의 3개층을 사용하고 있는데, 건물을 매각한 후에도 월세 형태로 이곳을 사용할 예정이다.
앙드레김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은?
앙드레김이 작고 당시 남긴 또 다른 유산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있는 디자인 작업실과 고인이 살았던 압구정 현대아파트 한 채다. 기흥에 있는 디자인 작업실은 대지 2,402㎡(약 728평)에 지은 2층짜리 건물로 고인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 토지의 매매가는 평당 2백80만원 선이고, 해당 건물은 60억원 정도다.
앙드레김이 1984년 토지를 매입해, 작고하기 1년 전인 2009년이 되어서야 건물을 완공했다. 고인이 25년에 걸쳐 완성한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작업실 오픈 당시 대대적인 파티를 열었을 정도로 고인에게 이곳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특히 손주들을 무척 사랑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곳 정원에 손주들을 위한 장난감 기찻길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김 대표와 임 실장에게 똑같이 반씩 나눠준 신사동 건물과 달리, 이곳은 임 실장에게 전체 지분의 5분의 4를, 김 대표에게 나머지 5분의 1을 물려줬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앙드레김 디자인 아뜰리에. 고인이 작고하기 1년 전까지 공들여 지은 건물이다.
반면 고인이 살았던 198.41㎡(약 60평)의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아들인 김 대표에게만 상속됐다. 고인은 생전에 이 아파트 11동에 살고 있었는데, 바로 옆 단지인 31동에 아들 내외의 집을 마련해주었다. 사랑하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늘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것이 고인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20억원을 호가한다.
한편 앙드레김의 유산을 상속받은 김 대표와 임 실장은 앞으로도 계속 앙드레김 디자인 아뜰리에를 함께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고인이 평생토록 일군 자산을 경영난 때문에 처분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패션의 역사를 쓴 그의 유산이 우리 가슴속에는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