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작품의 의상은 모조리 손대본 뮤지컬 의상 디자이너 한정임. 그녀를 소개한다. 동네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일본 패션 잡지 속 키치한 문화에 ‘컬처 쇼크’를 느낀 그녀는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지 야마모토, 다카다 겐조, 고시노 준코를 배출한 일본 최고의 패션 학교인 ‘문화패션대학(Bunka Fashion College)’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일본 패션 기업 ‘아이아(AiiA Corporation)’에 입사해 2년 반 만에 ‘피에스 몽테(Piece Montee)’의 수석 디자이너(2002)를 맡았다.
매일 똑같은 업무에 지쳐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다 무대의상과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삼총사> <살인마 잭>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태양왕> <레베카> 등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엘리자벳>으로 ‘제6회 더 뮤지컬 어워즈’(2012)에서 의상상을 거머쥐었고, 지난 6월에 열린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는 <프랑켄슈타인>으로 또 한 번 의상상을 수상하며 명실 공히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지컬 의상 디자이너가 됐다.
성수동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평범하죠? 괜찮으시다면 제가 자주 작업하는 가죽공장으로 가실래요?” 마네킹이 입고 있는 화려한 뮤지컬 의상이 눈에 들어온다. 새삼 아름답다.
“<레베카>의 의상이에요. 작년 초연 때도 디자이너로서 참여했죠. <레베카>의 시대적 배경은 1920년대 유럽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아르데코(Artdeco) 양식을 즐겨 입었어요. 전체적으로 굴곡이 가미되지 않은 일자 라인에다 허리 라인도 낮았죠. 상대적으로 다리가 길지 않은 우리 배우들에게 좋은 의상은 아니었어요.
‘한국 배우의 체형에 맞는 의상은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다 허리 라인이 위로 올라오면서 전체적으로 여성의 굴곡진 체형을 강조할 수 있는 1930년대 양식을 선택하기로 했죠. ‘원작대로 했어야 했을까?’란 우려도 있었지만 초연 이후 오스트리아 오리지널 팀에서 “새로운 시도였고 너무 멋지다”라며 극찬했다고 합니다. 혹시 내 의상 때문에 작품을 망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죠.”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심취했나요? 디자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 같아요.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에 대해 관심이 많았죠. 처음에는 무용을 배웠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배운 지 얼마 안 돼 대회에 나가 대상을 탔어요. 중학교 때부터 제대로 된 무대의상을 갖춰 입고 나가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제 관심은 이미 무용에서 의상으로 옮겨간 상태였던 거죠. 옷이나 각종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고 싶어 재봉틀을 사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흔쾌히 사주셨어요. 당신도 명동 양장점에서 맞춤옷만 입을 정도로 멋쟁이셨거든요.
일본 유학 생활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우리 때만 해도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카와쿠보 레이, 다카다 겐조는 신 같은 존재였어요. 그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 일본 초일류 패션 학교인 문화패션대학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했죠. 외국 유학생이라 취업의 문이 더 좁게 느껴져 불안해하던 시기였어요.
어느 날 학교 동문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씨가 강의하러 학교에 온 적이 있어요. 다들 입이 얼어붙어 말도 못 하는데 저는 그분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까지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본 기억이 나네요. 그만큼 절실했나 봐요. 그날 요지 야마모토씨에게 조언을 얻은 덕분에 일본 패션 기업 ‘아이아’에 입사할 수 있었어요.
뮤지컬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회사에 들어간 지 2년 반 만에 수석 디자이너가 됐고 5년을 더 일했지만 일을 할수록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찍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건 내가 원하는 꿈이 아니야’란 생각이 들어 회사를 그만뒀어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평소 가보고 싶었던 런던 여행을 떠났는데 제 운명과도 같은 작품 <오페라의 유령>을 만난 거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천장 끝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 등 모든 것이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주인공 팬텀의 의상이었습니다. 팬텀의 의상은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었어요. 그의 감정이 미묘하게 달라질 때 의상도 감정과 궤를 같이해 그대로 표현된다는 것, 의상이 스토리텔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최근에 사랑받은 뮤지컬 중에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 없다. 대각선 좌측부터 우측 하단까지 6작품 모두 올해 개막에서 인기리에 종영됐던 뮤지컬 <모차르트>의 의상들.
하던 일과 달라 시행착오도 많았겠어요. 많았죠. 연출가를 비롯해 모든 스태프가 모이는 첫 미팅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당 배역들의 의상을 모두 만들어 갔다가 회의도 안 했는데 콘셉트를 잡아 왔다며 근본 없는 애로 취급을 받은 적도 있고.
제가 먼저 작품들을 의상 제작소에 맡겼는데 유명한 디자이너, 대선배의 작품이 들어오면 어느새 제 작품의 작업 순서가 저 뒤로 밀려나 있었죠. 서운하냐고요? 전혀요. 안 그래도 늦은 나이에 진로를 바꿨는데 마냥 좌절하고 상처 받고 있을 순 없지요. 오히려 도와주려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한 작품을 담당하면 보통 어느 정도 작업 기간을 예상하는지? 대극장 규모라면 1년 정도 프로세스를 잡아요. 의상을 제작하기 전에 뮤지컬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하고, 시대적 배경을 조사합니다. 사전 지식을 많이 쌓을수록 디자인 및 제작 기간이 짧아집니다. 연구와 조사에 필요한 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 정도 잡고 디자인하는 기간은 보통 한두 달 정도 잡죠.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지시서를 만들고 그에 따른 원단을 정해 의상 제작소에 보내면 제단이 되어 작업실로 돌아오는데 이 과정이 두 달 정도 걸리죠. 그다음부터는 작업실에서 팀원들과 직접 수작업을 하며 디테일에 신경 쓰는데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음에 들 때까지 해야 하니까요.(웃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요? 모든 의상이 다 제 ‘아가’라서 하나를 고르기는 힘들고…. <모차르트>의 경우 시대적 배경이 로코코 시대였어요. ‘루이 15세 스타일’이라고도 불리던 당시 의상의 특징은 가슴의 커다란 리본과 보석, 휘황찬란한 레이스, 풍성한 A라인의 스커트와 하이힐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러웠죠. 그런데 이런 자료들을 열람하고 고증할 만한 곳이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직접 도쿄의 의상박물관이나 고베의 로코코 전시회를 보러 다니며 스케치를 시작했죠.
<몬테크리스토>에서는 프랑스 귀족으로 사교계에 속한 인물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당시 유럽인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입었던 옷이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얻은 금사가 들어간 옷이었어요. 좋은 원단을 찾기 위해서는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가는 편인데, 제 동생이 인도까지 가서 직접 공수한 원단으로 제작을 마칠 수 있었죠.
무대 의상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포인트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기능성을 가장 많이 고려해요. 디자이너의 욕심으로 미적 감각에만 집중하면 실용성이 떨어지죠. 배우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데 계속해서 의상이 신경 쓰이면 안 되잖아요. 배우들이 옷을 입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의상은 배우에게 ‘내 몸’처럼 느껴져야 해요.
또 하나 간편성도 좋아야 합니다. 극이 워낙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 한 번에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마술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해요. 그러면서도 관객들이 볼 때 예쁘게 볼 수 있게끔 디자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겠죠?(웃음)
배우들과 의상 때문에 의견 조율을 하다 보면 재밌는 일도 많겠습니다. 저는 안재욱씨와 작업할 때마다 깜짝 놀라요. 안재욱씨는 오늘과 어제, 심지어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신체 사이즈가 변함이 없으세요. 하다못해 전날 회식을 하고 와도 허리 치수 하나 변함이 없어요. 프로의식이 정말 강하신 거죠.
관객들에게 조금 더 멋있게 보이도록 해드리려고 신발에 깔창을 넣자고 했다가 한 번 혼난 적은 있네요.(웃음) 불편하면 아무래도 연기가 잘 안 된다고 하셔서요. 워낙 매너가 좋으니 함께 작업할 때 편한 배우입니다.
여배우들은 더 돋보이기 위해 의상을 꼼꼼히 체크할 것 같은데요? 더블 캐스팅이나 트리플 캐스팅일 때 신경이 많이 쓰이죠. 똑같은 배역이라도 각자 개성이 드러나야 하잖아요. 옥주현씨는 정말 완벽주의자예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표현하죠. 그래서 더 좋아요. 고칠 게 명확하니까.
<레베카>에서 옥주현의 ‘덴버스 부인’은 서스펜스 분위기가 있어야 해요. 뭔가 무대에 쓱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런 느낌. 그래서 드레스 색상을 좀 더 톤다운시키고 의상의 길이를 약간 끌릴 정도로 길게 만들었죠.
신영숙의 ‘덴버스 부인’은 신영숙씨가 관능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살려 끈적이는 느낌을 추가했죠. 드레스가 상대적으로 좀 더 짧고 네크라인도 브이넥 형태로 약간 파인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도 무대에 올라가면 별의별 일이 다 있잖아요. <모차르트> 공연 때였어요. ‘슈카네더’를 연기하던 배우가 춤을 추며 다리를 찢다가 그만 바지가 완전히 터져버린 거죠. 가리고 할 수준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다 터졌어요. 제가 다 낯이 뜨거웠는데 배우 분이 수습하지 않은 채 끝까지 노래를 마쳐 큰 박수를 받았죠.
뭐 여배우들은 드레스 뒤쪽 지퍼나 바지 지퍼를 안 올리고 나가는 것은 다반사고, 한 남자 배우는 바지가 조금 찢어져 무대 뒤에서 얼른 수선해 입혔는데 그 부위가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계속 찢어진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제작팀과 크루팀 간의 컬래버레이션이 잘돼야 해요.
제작팀과 크루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우리나라 사정에 맞춰 말씀드리면 의상팀을 크게 디자이너 수장인 제작팀과 현장 진행을 담당하는 크루팀으로 나눠요. 제작팀이야 의상을 제작하는 일이니 잘 아실 테고, 크루팀은 현장에서 배우들의 의상에 관련된 사항을 모두 총괄하죠.
무대 뒤에서 배우들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퀵체인지’부터 배우들 땀을 닦아주고 물도 먹여주고 의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옷 수선도 담당합니다. 본 공연을 올리기 전 연습시간과 테크 리허설을 통해 서로간의 의견이 충분히 교환되어야 해요.
예를 들면 크루팀 팀장이 “여배우의 드레스를 지퍼로 올리기보다 스냅단추로 하는 것이 시간이 단축된다”고 말해주면 저는 다시 작업실에 돌아가 지퍼를 잘라내고 스냅단추로 바꿔 다는 식이죠.
두 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워낙 잘됐던 작품인 <엘리자벳>의 경우 배우당 총 15벌의 옷을 입고 평균 12초 안에 의상을 갈아입히는 대작업이었으나 큰 사고 없이 막을 내릴 수 있었답니다.
그녀는 완벽주의자다. 한 가지 원단을 고르기 위해 많게는 50~60장의 원단을 고르는 여자. 그래도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지 못해서 직접 만들겠다고 재봉틀 앞에 앉는 디자이너 한정임.
“조그만 비즈 하나 달고 소매 끝을 1cm 짧게 줄인다고 멀리 떨어진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는 없겠죠. 그런 디테일 한 가지도 놓치지 않고 백 가지를 찾아 의상에 반영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바로 눈에 띌 겁니다. 현실과 타협하면 의상은 작품이 아니라 걸레가 됩니다.”
주연에 포커스를 맞추는 장면에서도 앙상블을 하는 배우의 의상까지 다 체크하고 싶다는 한정임. 뮤지컬 기획자에게는 4백 벌의 의상을 주문받지만 모자, 구두, 여배우들의 실루엣을 고려한 속옷까지 만들다 보면 어느새 1천 벌이 훌쩍 넘는다.
한정임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뮤지컬의 사전 연구 단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품을 함께 하자고 제안이 들어오는 순간, 작품 이름 하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지 않는다.
“눈으로 먼저 보면 선입견이 생겨요. 머릿속에 작품에 대한 데이터가 생기면 그 이상을 생각하기 힘들거든요. <엘리자벳>을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집에 와서 작품 O.S.T부터 들었어요. 음악을 통해 ‘지금 이 대목에서 주인공이 분노하는구나, 기뻐하는구나’를 느끼는 거죠. 마지막 공연이 끝나는 순간 머릿속에 저장된 내용은 모두 잊어버려요.”
한정임은 국내에선 전무후무했던 ‘뮤지컬 의상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관객들과 소통의 시간을 늘리고 강단에도 서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이 좀 더 쉽게 생각해서 뮤지컬 의상 분야의 문을 두드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리는 ‘배웠다’는 사실에 큰 강박이 있습니다. 지금 제 팀에 있는 후배 중에 무대의상을 전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그 친구들이 뮤지컬을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죠. 시행착오 없이 빠른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해요. 과정을 겪어야 결과도 생기는 법이라는 사실, 꼭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문화 카테고리와 비교해도 아직 열악한 수준인 뮤지컬. 그중에서도 의상 디자인 쪽은 조금 더 열악하다.
“제가 뮤지컬 의상 디자인에 처음 도전했던 시절만 해도 더 대접을 못 받았어요. 그때는 오히려 돌이라도 던져 파장을 일으켜보자는 심정으로 달려들었죠. 요새는 재능 있는 친구들이 참 많은데 도전조차 시도하지 않아서 문제죠. 저는 30대 중반에 이곳에 왔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뮤지컬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세요. 젊고 능력 있는 친구들이 많이 필요한 곳임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