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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인들 네번째

관능의 아이콘 궁중 시녀

On July 17, 2014

푹신한 쿠션에 몸을 기댄 채 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전라의 여인. 비너스, 모나리자와 더불어 현대미술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되는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 속 주인공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화 작품 제목이 모델의 이름인 것에 반해 이 여인은 이름도, 정확한 정체도 알 수 없다. ‘오달리스크’가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궁중 시녀 ‘오달릭(Odalik)’을 프랑스어 식으로 읽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후궁을 시중하던 이 오달릭이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상상을 펼쳤던 19세기 유럽인들에게 판타지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철저한 기독교 전통에 따라 금욕이 절대적 가치였던 당시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수많은 후궁을 두는 것이 합당한 권한이었던 이슬람 왕들의 은밀한 사생활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오직 왕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금단의 구역에서 왕의 쾌락을 위해 모든 희생과 봉사를 다 바치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득한 장면은 말 그대로 환상 그 자체. 결국 법칙이 중요했던 유럽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슬람의 전통이 어찌 보면 그들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 것인지도 모른다. 궁중 시녀를 관능의 여인으로 탈바꿈시켰으니 말이다.

따라서 오달리스크 신분으로 보이는 그림 속 여인은 실제 이슬람 여인이라기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는 파리의 사교계 여인일 것으로 해석된다. 여성을 표현한 미술 기법이 당시 유럽 미인을 그린 전통적인 화풍이기 때문. 또 다른 심증은 그녀가 지나치게 ‘터키시’하다는 것이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침구와 터키블루 색상의 커튼, 머리에 두른 터번과 오리엔탈적인 액세서리는 터키풍으로 치장하길 좋아하던 당시 사교계 여인의 상징이다.

실제로 18세기 중반 이후 유럽은 동방 원정과 무역을 하는 동안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면서 이슬람 문화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특히 미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사교계 여인들에게 터키풍 액세서리는 지금으로 치면 ‘잇(It)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림 속의 여인이 실제 오달리스크가 아니라 사교계 여인이라 추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증거는 바로 그녀의 하얗고 보드라운 발뒤꿈치. 땅을 한 번도 밟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고 매끄럽게 그려진 발은 이 여성이 오로지 침대에만 기거한다는 묘한 상상을 자극한다.

또 오른손에 든 깃털 부채가 당시 성적 이미지를 지닌 물건이라는 사실은 이 그림을 더욱 에로틱하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카롤린의 의뢰로 그려진 이 누드화 속 여인은 결국 최신상 터키시 아이템으로 치장한 ‘정부’의 이미지를 완벽히 재현하면서 가장 유명한 누드화 중 하나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앵그르의 대표작 ‘그랑드 오달리스크’와 ‘터키탕’

  • 명화 TIP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그린 앵그르는 스승인 다비드의 뒤를 이어 고전주의라는 화풍을 수호한 정밀 묘사의 대가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보이는 여인의 비정상적으로 긴 등허리와 정체불명의 모델은 당대 아카데미에서 심한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작업에 평생을 바친 앵그르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화가로서 르누아르, 드가, 마티스, 피카소 등과 함께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여인의 비정상적으로 긴 등허리는 화면 구성의 묘미를 위해 자의적으로 늘린 것인데, 구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당시 서양 문화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을 도입하면서까지 그렸다는 점이 황금 비율의 대명사인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과 미묘한 대조를 이룬다.

글쓴이 이수민씨는…
현재 상명대 외래교수이며 동강국제사진제, 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 서울사진축제 등 많은 전시와 페스티벌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예술이 우리 일상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고 믿으며, 현대 예술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예술평론가다.

CREDIT INFO
기획
이현경
글, 사진
이수민
2014년 07월호
2014년 07월호
기획
이현경
글, 사진
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