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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1 중독 대한민국

2014년 대한민국은 중독에 빠졌다. 섹시·막장·연상연하 그리고 ‘인간중독’까지. 지금 대한민국이 중독된 것들.

On July 04, 2014

그 달콤함에 대하여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붉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전례를 찾기 힘든 광경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어떤 대상이나 이슈에 빠르게 반응하고 집단적으로 열광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라고. 말하자면 2002 한일 월드컵은 특정 이슈에 열정적으로 중독되곤 하는 한국인의 특징을 증명한 결정적 사건이었던 것. 흥미롭게도 그해에는 이병헌과 이미연 주연의 영화 <중독>이 개봉되었고, 아이돌 그룹 신화가 ‘중독’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중독의 해’였다.

그로부터 12년 뒤, 대한민국은 다시 중독에 빠져들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굳이 한국 국가대표 경기가 아니어도 축제에 중독된 이들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극장에는 송승헌 주연의 <인간중독>이라는 영화가 개봉돼 관객을 끌어들였고, 대세 아이돌 그룹 EXO(이하 엑소)가 ‘중독’이라는 곡으로 소녀 팬을 사로잡았다.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탄가스 중독’이나 ‘수은 중독’처럼 ‘독으로 지칭되는 유해물질에 의한 신체 증상’을 일컫는 말이고, 또 하나는 ‘어떤 대상이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정신적인 의존증’을 뜻하는 말이다. 두 번째의 증상이 심해질 경우 신체의 병적인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을 안 보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던 <인간중독> 송승헌의 대사처럼.

중독의 근본적 원인이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적절한 문화적 해소는 악성 중독 상태로 빠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즉 문화적 중독은 극심한 병적 중독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대안적 기능을 지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응원단의 대표적인 슬로건이 ‘꿈은 이루어진다’였던 것처럼 건강한 열정의 중독은 결국 긍정적인 메시지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을 단순히 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다각도로 살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중독 국가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다.


봉 감독의 짜릿한 중독

봉만대 감독의 중독에 대한 고찰 그리고 그의 삶으로 이어지는 통쾌한 이야기.

가요계는 걸그룹의 노출 경쟁에 중독돼 있다. 굳이 중독이라고까지 표현할 만큼인지는 모르겠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유행이 바뀌는 것뿐이다. 다만 지금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솔직히 아이돌 가수들이 무대에서 춤 출 때 선정적으로 느껴지나?

야하게 느껴지지 않나? 전혀. 그동안 너무 엄격한 잣대로 가요계를 통제했다. 노출을 허용한다고 해서 걸그룹들이 과연 어디까지 벗을 수 있을까? 그것도 누구나 다 보는 TV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각 그룹은 노래 콘셉트에 맞게 노출을 하는 거지 막 벗어젖히는 것이 아니다.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어떤 뜻인지? 걸그룹들이 원해서 섹시 댄스를 추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미디어가 사기업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가 걸그룹 댄스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사실 1990년대 들어서 케이블 방송국과 인터넷, 그리고 오늘날 IPTV까지 생기면서 미디어는 다양해졌고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미디어들은 가장 돈이 될 만한 콘텐츠에 집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몰두한다. 한동안 걸그룹을 포함한 아이돌 열풍이 불었지만 지금은 ‘어게인 7090’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미디어가 왜 ‘7090’세대로 방향을 선회하는 걸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40~50대는 1980년대 교복 자율화 때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로 문화를 즐길 줄 안다. 20~30대 때 열심히 돈을 모아서 가족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소비한다는 뜻이지. 미디어가 이런 흐름을 간파하고서 ‘7090’세대가 좋아할 만한 왕년의 인기 가수들을 재등장시키고 리메이크 앨범도 내는 것이다.

방송사마다 ‘가족 예능’이 중독인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7090세대 중에서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경제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는 이들이 즐길 만한 가족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리고 출연하는 남성들은 권위적이기보다 가정적이고 육아에도 적극적이다. 어느 방송국을 가도 작가는 대부분 여성인 점도 무시할 수 없고.

미디어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유행의 흐름이 ‘LTE급’으로 빨라질 것이기 때문에 비슷한 프로그램이 중복 제작되는 것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다만 미디어가 어떤 방향을 제시할 때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고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발휘해야 한다. 기울어지지 않은 중립의 시각에서 이를테면, 남자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통해 대중이 남녀평등을 인식한다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남녀는 동등하다”고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고 본다.

대중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미디어와 양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미디어에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중은 그대로 받으려고만 하지 사색에 잠기고 길게 글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강력한 스마트폰 중독에 걸려 있다.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검색만 하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스마트폰 때문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은 너도 나도 클릭하고 확인한다.

해결책이 있을까? ‘1천만 관객’ 영화를 보러 가지 말자.(웃음) 우선 남들과 똑같아지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24시간 내내 켜져 있는 스마트폰을 끄는 것이 첫 번째다.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고 다양한 논지의 신문과 잡지를 읽으며 혼자 ‘정보 농사’를 짓는 것이 두 번째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통해 주체성을 키워야만 한다.

혹시 본인은 어떤 중독? 아무리 야한 장면에도 어떤 감흥이 없다 보니 작품을 만들 때 ‘뭔가 더 획기적인 장면이 없을까?’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몸으로 하는 언어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그 정도 중독과 강박이 없다면 새로운 장면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B급 감독이란 평가에 대해선? 좋다. B급 영화는 일반적인 대중이 갖는 정서를 통해 만든 영화니 내가 가장 대중적인 감독이란 뜻 아닐까? 주변에서는 “이제 유명해졌으니 A급 영화도 찍어보라”고 하는데 B는 B로서 존재할 때 가치 있는 것이지 B가 A로 가기 위한 발판은 아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내가 AV(Adult Video) 감독인 줄 아는데 AV를 해석하면 성인영화지만 일본에서는 세미 포르노로 불리는 장르로 포르노그래피의 바로 전 단계다. 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성인영화 감독이니 엄연히 다르다.

요새 TV에 자주 출연하던데 혹시 예능 중독 아닌가? 나는 집중해야 할 것과 아닌 것을 확실히 구분한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그저 ‘옆 동네에서 잠시 놀고 있는 셈이다. 난 원래 촬영장에서도 재밌는 사람이었는데 브라운관에 옮겨놓고 보니 “에로 (전문) 감독이라 해서 왠지 비대하고 늙수그레한 영감탱인 줄 알았는데 밝고 재밌네?”라며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 같다. 특히 외모가 감독 하기엔 아까울 만큼 훌륭해서 더 인기가 많을까?

김구라와 인연이 있던데. 2003년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제작할 때쯤 만났다. 구라는 구·봉·숙 트리오로 활동할 때니 완전 마이너였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술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주변에서 “둘이 프로그램 해 봐라”고 말하던데 우리도 재밌을 것 같음 벌써 뭉쳤을 거다. 지금도 TV 프로그램 3개를 하는데 이제 체력이 달린다. 그냥 촬영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역시 제일 쉽다.

봉만대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 딱 10년 뒤에 할리우드의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다.(웃음)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쌈박한 영화 한 편 제작할 계획이다. 언제까지 “외국영화가 더 재밌다”며 사대주의에 빠져 있을 이유도 없고 이왕 사는 인생 즐겁게 도전하며 살고 싶다. 인생은 주먹 꽉 쥐고 살다가 손이 펴지는 순간 떠나면 그만이니까.

이제 유명해졌으니 A급 영화도 찍어보라고 하는데 B는 B로서 존재할 때 가치 있는 것이지 B가 A로 가기 위한 발판은 아니다.


중독을 고백하는 바

커피 중독 주원
주원의 커피 사랑은 이미 중독 수준이다. 그는 매일 가장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를 열 잔씩 마실 정도로 커피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한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더블 샷 아메리카노를 두 잔이나 들이켰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그는 커피를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커피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영혼까지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커피는 내게 있어 진정한 솔 푸드(soul food)”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알코올 보다 콜라 조영남
가수 조영남의 콜라 사랑은 이미 유명하다. 담배는 애당초 피우지 않았고 술은 죽기 직전까지 마셨으니 그만하면 됐단다. 그가 절주한 지는 올해로 4년. 어느 순간 술맛이 뚝 떨어졌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이 바로 콜라다. 그는 식사할 때도 항상 콜라를 마신다. 집 냉장고엔 콜라 전용 보관함이 따로 있을 정도. 작년에는 그의 사랑 ‘콜라’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 전시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걸 꼽으라면 콜라지” 하며 껄껄 웃는다. 이만하면 콜라 회사에서 조영남에게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운동화 마니아 데프콘
데프콘은 연예계 대표 운동화 수집가다. 방송에서 공개된 운동화만 수십여 켤레에 이른다.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운동화는 데프콘의 보물 1호다. 그런 그에게 여름은 참 얄미운 계절이다. 습기가 차 운동화가 상할 수도 있기 때문. 일일이 칫솔로 손세척을 하는 와중에도 “운동화를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말하는 그다. 그의 운동화 사랑을 아는 빅뱅의 지드래곤은 데프콘에게 자신이 첫 번째 콘서트 때 처음으로 신었던 운동화를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데프콘의 표정은 ‘행복감’ 그 자체였다.

홈쇼핑 마니아 김광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싱글살이를 가장 탁월하게 그려낸 김광규, 그리고 그의 싱글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던 홈쇼핑. 그의 하루는 아침 일찍 택배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도 때도 없이 배달되는 택배 상자의 수와 그의 홈쇼핑 사랑은 비례한다. 스케줄이 없을 땐 홀로 리모컨을 들고 홈쇼핑 채널을 기웃거린다. 그는 “홈쇼핑은 나의 구세주이며, 혼자 사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머니 신발과 김치, 보험 상품은 물론이고 싱글인 그에게 전혀 필요 없을 것 같은 ‘아기 기저귀’까지 샀다. 결혼한 주변 지인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고민하다가 ‘기저귀를 사면 아기용 오토바이를 준다’는 말에 혹해 구입했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김광규의 집에 가면 홈쇼핑에서 구매해 한 번도 안 쓴 물건들이 쌓여 있다”고 귀띔했다.

오디오&레코드 수집광 김갑수
‘뇌가 섹시한 남자’로 불리는 김갑수는 중학교 때부터 레코드판과 오디오를 수집해 왔다. 둘 중 무엇이 더 좋은지를 묻는 것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렵다. 레코드판은 3만 장이 넘은 후부터 개수를 세지 않아 현재 몇 장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요즘에도 지름신이 강림하는 날이면 온라인 쇼핑을 이용해 수십만원어치씩 구입하곤 하는 그다.


시크릿 아지트

서울 시가클럽
고급스러운 향과 멋을 품은 쿠바산 하바노스 시가를 공식 판매하다 보니 시가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양한 그림과 핸드 크래프트들이 전시돼 갤러리 느낌이 연출되는데 정·재계 인사들의 비즈니스 미팅과 회의 장소로도 활용된다. 남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고급 위스키와 함께 시가를 태우는 낭만을 한 번쯤 만끽해볼 것.

  • 위치_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60-199 남송빌딩 402호
    문의_02-790-4522


밀가루
일명 ‘밀가루 중독자’들이 모이는 곳. 동경제과 출신의 셰프가 만든 건강 빵집.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곳으로 계량제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유기농 밀가루와 물, 소금, 순수 천연 효모로 만든다. 일본식 베이커리에 중독된 사람은 이곳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후 5시가 되면 빵이 다 팔리니 서두르자.

  • 위치_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300-301 삼익상가 107-2호
    문의_02-797-2237


2.7gram
‘탁구공 지름’이란 뜻의 스포츠 펍. 술을 마실 때에도 오른손이 근질근질한 ‘탁구홀릭’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야 할 파라다이스다. 생크림을 듬뿍 올린 바나나팬케이크와 100% 호주산 쇠고기로 만든 루터버거가 이곳의 대표 메뉴. 친구들과 함께 흥겨운 마음으로 치는 탁구가 즐거울 것.

  • 위치_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28-10
    문의_070-7138-2728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
‘키덜트’ 열풍이 거세지며 건담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은 많아졌지만, 이곳처럼 부상당한(?) 건담을 정성을 다해 수리해주는 곳은 많지 않다. 건담 중독인들이 많지만 건담이 궁금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1:1 도색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찾아가볼 것. 매주 화요일 휴무.

  • 위치_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13-20
    문의_010-5417-9814

이 여자, 수집광

오연경 일러스트레이터
‘수집광’이기에 가능했던 나의 두 번째 인생.

정말 이것저것 많다. 어떤 중독인가. 물건 수집 중독이다. 저장강박증에 시달려 마카펜, 브로치, 깡통, 핸드메이드 도자기·접시, 키친타월 등을 15년간 모아왔다.

그렇다면 원래 직업은? 고물상은 아니다.(웃음) 7년 동안 잡지 에디터로 지냈다. 그때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가끔 성에 차지 않아서 직접 그려 넣곤 했는데 그 작업이 너무 재밌어 홀딱 반한 거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살아야지’란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지금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원래부터 그림에 조예가 깊었나? 무슨~. 대학 전공도 국어교육학이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턱대고 도쿄 오차노미즈 미술 전문학교로 진학했다. 역시 학교에 갔더니 내 그림 실력은 형편없었다. 선생님도 나에게 “수첩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며 무조건 많이 보고 그려라”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공원이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그리곤 했는데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두려워 금방 포기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 편히 그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물건을 사서 집에 모셔와(?) 그리기 시작한 거다.

그때부터 물건을 모으기 시작한 건가? 신경 쓰고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집 앞 슈퍼나 길거리 벼룩시장이 내 무대였다. 아무거나 사는 것은 아니고 그림 그리기 좋은 물건, 작고 예쁜 크래프트부터 깡통이나 소스병, 마카펜 등을 사서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그렸다. 당시 내 목표는 오로지 소묘 잘 그리기였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수집에 중독됐다? 쉽게 말해 주객이 전도된 거지.(웃음) 그림의 대상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림과는 별개로 물욕, 수집욕이 생긴 거다. 평소 좋아하던 핸드메이드 그릇을 사려고 도쿄에서 오키나와를 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파리에 놀러 가서는 관광은 안 하고 하루 종일 디자이너 야즈부키의 브로치 앞에서 서성거린 적도 있다. 한 개에 1백 유로였는데 ‘물건을 모으되 사치는 하지 말자’는 나름의 양심이 있어 겨우 참았다. 그리고 몇 년 지나서 보니 홍대 앞 벼룩시장에 나오더라. 파리에서 샀으면 아까울 뻔했지.

물건을 모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규슈 히타 지방의 도자기 축제를 갔을 때 일인데 아기자기한 도자기들이 반값이길래 모두 업어왔다. 도자기만 가방에 넣으려고 다른 물건은 하나도 안 샀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모두 정확히 반씩 쪼개져 있었다. 그때는 스스로 참 한심하더라.(웃음) 또 한 번은 인도 자이푸르에서 핸드메이드 이불보가 마음에 들어 잔뜩 사왔더니 아는 선배가 “야! 이거 동대문시장에 가면 다 있어. 메이드 인 인디아. 가격도 더 쌀걸”이라고 말해 같이 한참 웃었다.

나에게 ‘물건 중독’이란? 일상의 즐거움이요, 활력소요, 인생의 은인이기도 하다. 만약 물건 수집 중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일러스트레이터의 명함을 달고 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목표물이 궁금하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 책을 1백 권을 모았는데 앞으로도 계속 모을 생각이다. 오래된 화첩에서 당시의 레이아웃이나 타이포그래피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은 무엇인가 일본에 오하시 아유미란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혼자 취재, 사진 촬영, 일러스트 및 레이아웃 작업을 통해 <아르네>란 잡지를 만든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오직 그녀의 책을 통해서만 자신의 집을 공개할 정도로 전설 같은 분이다. 그녀처럼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때에도 온전히 한 권의 잡지를 만들며 왕성히 활동하는 ‘1인 출판사’가 되고 싶다.


이 남자, 넥타이홀릭

김세영·임용준· 김준성 <시저타이> 공동 대표
넥타이 좋아하는 세 남자가 넥타이를 논했다.

함께 사업하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라서 자주 모이는 편이었는데 술자리의 주제는 항상 “우리 사업해야 하는데”였다. 하루는 회사를 마치고 다 같이 모였더니 모두 슈트 차림이었고 자연스럽게 넥타이가 대화의 주제가 됐다. 그래서 “야, 우리 사업 시작하자!”라고 얘기했고 다들 “까짓!”이라고 동의해서 시작하게 됐다.

넥타이에 빠지게 된 이유를 소개해달라. 20대 초반에 슈트가 노멀해도 넥타이 하나만 바꾸면 사람 인상이 몰라보게 바뀌는 마력에 빠져 넥타이를 컬렉팅했다. 특히 1980년대 이탈리아산 빈티지 넥타이는 색감이 뛰어나고 세련된 느낌을 줘서 신제품을 디자인할 때 많은 영감을 준다. 회사를 다닐 때 매일 비슷한 패턴의 넥타이를 매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기성 제품을 사기보다는 수제 넥타이를 사러 을지로 지하상가와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사 모으다 보니 넥타이가 곧 나의 자신감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는데 마음에 드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넥타이 중독에 빠져버린 거다.

넥타이 패턴이 톡톡 튄다. 품질이 좋아도 고객들이 착용해야 명품이다. 다행히 지난 10여 년간 넥타이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넥타이를 매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포춘 라인을 만든 것이 첫 번째다. 증권가에서 상승이나 강세를 뜻하는 ‘황소’를 모티브로 하거나 중화권에서 행운의 숫자인 ‘8’을 활용해 디자인을 완성했다. 초록우산 패턴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기업 이미지가 예뻐서 협약을 통해 넥타이에 새겨넣고 판매 수익금의 10%를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중적인 트렌드 ‘추억과 향수’를 넥타이에 구현할 생각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여자 선생님인데 명절 때마다 선물 줄 남성들의 인상착의만 말씀하시고 “알아서 보내달라”고 전화하신다. 그럼 우리가 그에 맞게 보내드리고 있다. 뉴욕이나 LA에서도 어떻게 다들 아시는지 전화로 주문을 하신다. 이게 넥타이 한류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여성 고객이 많은가. 남자들의 선물로 구입하려는 여성 고객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넥타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핸드메이드이면서도 가격이 다른 제품의 70% 수준인 것도 꽤 큰 메리트일 것이다.

올여름 유행 넥타이를 제안한다면? 면 소재로 패턴보다는 컬러에 포인트를 맞춰 시원해 보이는 블루 계열과 하얀색 리넨 셔츠 또는 옥스퍼드 셔츠를 함께 매치하면 좋을 것 같다.

넥타이의 매력에 대해 어필해달라. 세월이 흘러도 기분 좋은 날이면 다시 찾게 되는 넥타이가 있다. 유행이 지났다고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해뒀다가 착용해보면 색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처음엔 사랑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만들고 싶다. 쉽고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우리 브랜드만의 DNA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 위치_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19-71 보광빌딩 1층
    문의_070-4045-7959
CREDIT INFO
취재
전유리, 정희순, 이충섭, 김선영(프리랜서)
사진
이상윤·박원민·최항석·오혜숙, 월페이퍼, 아이라이크달러닷컴
일러스트
이누리
2014년 07월호
2014년 07월호
취재
전유리, 정희순, 이충섭, 김선영(프리랜서)
사진
이상윤·박원민·최항석·오혜숙, 월페이퍼, 아이라이크달러닷컴
일러스트
이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