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한 선수들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재활에 임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차츰 기량을 회복해가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죠. 전 감동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 뒤에서 그들을 돕는 조력자일 뿐이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금언이 진부한 시대일지 모르지만 김 교수의 삶엔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치과의사인 부친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에 뜻을 두어 정형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 이후 수술이나 진료를 통해 부상을 입은 몸을 직접 만지고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더구나 스포츠 재활이라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그라운드 위를 뛰는 선수들에게 두번째 선수생활을 제공한 가장 큰 조력자가 됐다.
“의사의 길을 택한 건 순전히 아버지의 기도 덕분이었습니다. 먼 이북 땅이 고향이신 아버지는 마을에서 덕망 높기로 소문난 치과의사였어요. 한국전쟁 중 남으로 피난을 온 아버지는 부상자가 속출하는 전쟁 통에서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매우 괴로워하셨죠. 정전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종종 제게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사가 되라며 기도해주셨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저의 막연한 목표가 되었고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의사로서 한 발자국을 내디딘 김 교수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정형외과를 선택했다. 환자도 많고 힘들기로 소문난 과였지만 땀을 흘리고 고생하는 만큼 보상이 바로 이뤄지는 과이기도 했다.
“성심성의껏 치료한 만큼 환자가 눈에 띄게 호전되면 거기에서 오는 뿌듯함과 쾌감이 큽니다. 정형외과는 기능적으로 치명상을 입은 환자라도 의사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 회복 속도가 확연히 차이 나요. 들것에 실려 들어온 환자가 걸어 나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만약 의사로서 보람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과를 찾는다면 정형외과를 추천하고 싶어요.”
정형외과를 선택한 김 교수가 스포츠의학으로 눈을 돌린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당시 김 교수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무릎관절의 의료 동향에 대해 살피던 중이었다. 그때 구독하던 의학 잡지에서 호주 애들레이드의 펠로우(fellow) 모집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애들레이드로 가야 하는 이유와 의사로서의 포부를 적어 포트폴리오와 함께 보냈다. 6개월 뒤 김 교수는 왕복 비행기 표와 함께 생활비를 지원받게 됐다.
“굉장히 큰 영광이었어요. 당시 호주는 우리보다 뛰어난 의학 시스템을 자랑하던 곳이었죠. 처음 학교를 찾아가 비서를 만났는데 광고를 보고 지원한 학생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대부분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교류가 많은 나라에서 교수의 추천을 받아 오는데 한국이란 낯선 나라에서, 그것도 학생이 패기 넘치게 직접 지원한 거예요. 결국 제게 기회가 돌아왔습니다. 호주 입장에서도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늘 교류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 같은 새로운 국가의 의사를 육성하는 데 가치를 느꼈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호주 유학 생활은 제게 단 한 번뿐인 멋진 기회가 됐습니다.”
실제로 호주에서의 생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수술을 한 뒤 통증만 관리했다. 선수의 재활은 퇴원 후 집에서만 이뤄졌다. 따라서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오롯이 환자의 몫이었고 병원 시스템을 통해 재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수술 후 축구선수는 잔디 구장, 농구선수는 농구 코트 등의 장소에서 환자에 맞춘 전문적인 재활 프로그램이 일대일로 진행됐다. 담당 의사들은 현장에서 환자의 회복 속도와 적응력을 봐가며 복귀 시점을 정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스포츠의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의학 수준은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이들은 재활에 임하는 자세가 놀랄 만큼 적극적인 데다 국가적으로 시스템화되어 있었습니다. 환자의 재활을 도와 사회에 빠르게 복귀하도록 하고 그만큼 재정적·사회적인 이득을 보고 있었어요. 한발 더 앞을 내다본 셈이죠.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부상이 생기면 그때그때 수습할 뿐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죠. 유학 생활동안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많이 깨닫고 왔습니다.”
1999년, 귀국 후에도 김 교수는 스포츠의학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3년 후엔 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피츠버그대학 스포츠센터에 연수를 갔다. 그때가 바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대한민국이 후끈 달아오른 2002년 월드컵을 치른 후였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스포츠의학에 대해 더 큰 꿈을 꾸게 됐어요.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보니 더 간절해진 거죠. 이후 저는 우리나라 스포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 하권익 교수님 등, 선구자 역할을 해오던 분들의 가르침을 받고 스포츠의학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전공이었던 정형외과에 스포츠의학을 접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재활의 명의 반열에 오르면서 김 교수를 찾는 유명 선수들이 줄을 이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인연을 이야기해달라는 말에 김 교수는 단연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를 꼽았다.
“처음 안 선수를 보고 한숨이 먼저 나왔어요. 무릎엔 고름이 흐르고 뼈는 부러지고, 고정 나사가 헐거워져 다시 고름이 생기려고 했죠. 국가대표 선발전을 4개월 앞둔 시기였는데 안 선수는 선발전을 치르고 싶다며 막무가내로 떼를 썼죠. 저도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어요. 출전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치료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했죠. 프로 선수들에게 포기란 참 힘든 겁니다. 눈물을 두 번 쏟아내고서야 치료 과정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안 선수는 세 번 수술을 받았고 1년간의 혹독한 재활 훈련을 거쳤다. 안 선수는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기량을 회복해갔다.
“처음 안 선수가 부상으로 우리 병원을 찾았을 땐 저조차 그가 예전의 기량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했어요. 0.1초를 다투는 쇼트트랙에서 부상은 아주 치명적이니까요. 안 선수는 매번 저를 볼 때마다 다시 뛸 수 있는지 물었지만 전 대답하지 않았죠. 대신 ‘내 목표는 너의 복귀다. 네가 다시 뛰는 걸 상상하며 수술하지 널 포기할 생각으로 수술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그렇게 믿음이 쌓이면서 그는 눈에 띄게 기량이 회복되었고 결국 완전히 회복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때를 상상하는 김 교수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스포츠의학이 재밌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스포츠 부상을 입은 환자들은 영영 재활이 불가능한 몇몇 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위해 의사와 환자 모두 노력해요. 일방적으로 치료받는 일반 환자와는 좀 다르죠. 환자의 명망이나 사회적 지위 등은 이 과정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요. 다시 운동할 수 있다는 의지와 나을 수 있는 작은 확률만 있다면 우린 모두 최선을 다합니다.”
최근 김 교수는 유·청소년 재활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이들은 부상을 입어도 성인보다 훨씬 쉽게 치유된다. 그런데 왜 성인의 재활보다 중요하다는 걸까?
“유·청소년의 재활이 정말 중요해요. 그 예로 여자 축구를 들 수 있어요. 현재 17세 이하 청소년 팀은 세계 3위 안에 들 정도로 강팀이지만 성인 여자 축구는 아시아 내에서조차 3~4위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선수 생활을 이어오던 중 부상을 입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나 재활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경기장에서 뛰니 영영 예전 기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그게 두 번 이상 끊어지면 선수 생활을 끝내야 하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부상 관리를 잘못해 성인 여자 축구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겁니다.”
김 교수는 특히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스포츠 강국임에도 스포츠 부상과 재활 분야에서는 많이 뒤처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이처럼 뒤틀린 구조를 다시 펴기 위해서는 ‘예방’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청소년 선수 재활은 부끄러운 수준이에요. 유·청소년 때 얼마나 부상을 방지하고 재활에 힘쓰느냐에 따라 건강이란 가치를 얻을 수 있고, 그게 이어지면서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십자인대 부상처럼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흠집을 낼 수 있는 손상은 20여 분의 간단한 예방 프로그램을 통해 반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FIFA도 ‘FIFA 11+’라는 부상 예방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다루지 않죠. 시간을 투자하면 그만큼 연습 시간이 줄면서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스포츠 부상에 대한 대처는 개발도상국 수준입니다.”
김 교수는 스포츠의학을 다루는 사람은 단순히 의학에 머물지 않고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까지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다친 사람을 고치는 게 의사의 임무이지만 스포츠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현장에서 직접 뛰며 선수들이 부상 예방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아직은 논문 작업으로 독려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증명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예방 프로그램이 잘 실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직접 발로 뛰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스포츠 재활 전문 명의답게 스포츠를 아끼고 사랑한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한다.
“제게는 남는 시간이란 건 없어요. 연구 논문을 쓰고, 환자를 보고, 구상도 하고, 학회에도 참석하고, 회의도 해야 하죠. 심지어 차로 이동하는 중에도 노트북을 끼고 일을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이 모든 걸 놓게 했어요. ‘논문 안 써도 좋다. 나 스스로 욕심이 나서 하는 일보다 우선되는 것은 건강이다’라는 생각이었죠. 그때부터는 시간을 쪼개 제 자신의 건강에 투자할 시간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피트니스였다. 그가 지닌 이론들이 운동을 통해 발현되었고 몸의 변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료 환경에 그대로 옮겨져 환자에게 적용됐다.
“운동을 직접 하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첫째, 재미없는 운동은 자신에게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해야 해요. 사람들은 운동을 할 때 성과에 집착하며 무리한 목표를 세우곤 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인데 무리한 목표로 인해 오히려 몸이 더 망가질 때가 많죠. 저는 골프가 그랬어요. 제게 맞지 않는 운동이었고 흥미를 느끼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과감히 내려놓았어요. 그렇게 해서 얻은 시간의 일부는 탁구나 농구같이 제가 좋아하는 운동으로 채웠고, 일부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썼습니다. 지금은 틈날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운동을 해요.”
명의로 손꼽히는 데다가 가족들에게도 멋진 남편, 멋진 아빠라니. 대체 부족한 게 있는 걸까? 이 물음에 김 교수는 멋쩍은 듯 말을 이었다.
“최근에 아들에게 아빠가 몇 점 정도 되는지 물었어요. 바쁜 아빠니 50점 정도되겠지 했는데 90점을 주더라고요. 바빠서 잘 봐주지도 못했는데 90점이냐고 했더니 자신을 믿어주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맡겨주어 고마워서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10점을 깎았냐고 물었더니 극복할 수 없는 결함인 작은 키 때문이라고 볼멘소리를 했어요.(웃음)”
작은 키를 미안해하는 아빠의 모습이었지만 김 교수는 커 보였다. 아마도 그라운드를 뛰는 모든 선수를 품어야 하는 큰 가슴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김진구 교수가 치료한 선수들
김요한(배구)_최근 왼쪽 손등 뼈에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기량은 여전하다.
조은주(농구)_조은주 선수도 김진구 교수의 손길이 거쳐간 선수다. 코, 어깨, 발목 등에 부상을 입었다.
안현수(쇼트트랙)_안현수는 무릎 부상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말끔히 회복되어 예전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김남일(축구)_허벅지 뒤쪽 햄스트링 파열로 인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홍성흔(야구)_야구도 부상이 잦은 스포츠 중 하나. 허벅지 근육통과 타박상, 골절 등을 입은 바 있다.
안정환(축구)_2002년 선수 생활 당시 미국과의 시합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선물했지만 발목 부상을 비밀로 한 채 주사를 맞고 뛰었다.
설기현(축구)_2002년 월드컵의 살아 있는 신화인 그는 지난해 허리 부상으로 고전했으나 ‘4골 4도움’을 기록해 이름값을 했다.
이상화(쇼트트랙)_이상화는 하지정맥류로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지만 소치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수술을 미뤘고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명의가 들려주는 응급처치 요령
1_호흡이 곤란할 때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한다. 출혈이 심하면 지혈을 먼저 한다.
2_화재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제외하곤 다쳤을 때 어린아이는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3_어린아이의 환경은 조용하고 따뜻하게 유지한다.
4_ 부러졌다고 생각하는 부위는 움직이지 않는다.
5_굽은 곳을 바로 펴려고 하지 않는다.
6_어떤 관절이든 움직이지 않는다.
- ‘PRICE’ 응급처치
Protection(보호) 부상 부위를 부목 등으로 고정해 움직이지 않도록 보호한다.
Rest(휴식) 환자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Ice(얼음) 얼음찜질을 해 상처의 염증 반응을 줄인다.
Compression(압박) 압박을 통해 부종 발생 공간을 최소화한다.
Elevation(거상) 손상 부위를 높이 올려 정체된 혈액을 제거한다.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14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