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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기록 비구니 스님을 만나다

“수행하는 곳에 와 있습니다. 흰 눈밭 속, 봄이면 매화 향이 흐를 이곳 산속에 꽃 같은 여자 스님들 일곱 분이 오롯이 모여 수행하고 계시네요. 그분들을 이끄는 분은 미얀마에서 수행하신 진경스님입니다. 눈빛을 보면 형형한 깨달음의 혜안이 불꽃같이 비쳐 나오지만 겉모습은 곱디고운 여자의 모습. 이분들은 무엇을 위해 밤낮을 잊고 이 외진 시골에서 칼바람 소리 들으면서 수행하는지, 왜 왜 왜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올라옵니다.” 문자 메시지의 발신인은 조은수 교수(서울대 철학과)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거창을 찾았다.

On February 21, 2014


경남 거창의 시골 마을. 그 마을을 오르고 오르면 길 끝에 나타나는 단출한 절이 있다. ‘붓다선원’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7명의 비구니 스님이 수행 중이다.
얼마 전 새끼를 낳았다는 삽살개가 낯선 이의 방문을 알렸다. 마당 한가운데 졸졸졸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온천수가 청량감을 더했다.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이 고요했지만 전망만큼은 수려했다. 진경스님은 “히말라야 같지 않나요?”라고 표현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진경스님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출신의 유쾌한 혜월스님, 솔직담백한 혜도스님, 무용가 출신의 혜정스님, 스물여덟 살 앳된 얼굴의 혜열스님 등 곱디고운 여성들은 매서운 날씨였지만, 가볍게 또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조 교수 말대로 의문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이 엘리트 여성들은 왜 이 칼바람 부는 곳에서 수행할까? 왜 출가를 결심한 것일까?

겨울인데 지낼 만하나요?

진경스님 외국에서 수행 후 한국에 들어왔는데 적합한 수행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곳은 마치 운명처럼 나타난 보물 같은 곳입니다. 크고 화려한 절도 가보았지만 수행과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이곳의 소박하면서 고요한 느낌이 좋아요. 해발 720m 고지대인데요, 히말라야에 승려가 많은 이유가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인간이 영적으로 바뀐다고 하네요. 높은 지역으로 갈수록 욕망이나 자연적인 생리 현상을 절제하기 쉽다고 해요.

스님들이 만난 것도 운명이겠지요.

진경스님 꿈같은 찰나의 현상 아니겠습니까?(웃음) 전생에 제가 이 사람들의 제자였을 수도 있고 자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저의 한계를 깨주고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에요.

‘붓다선원’처럼 젊은 엘리트 비구니 스님들이 오지에 모여 가열하게 수행하는 경우가 드문데요.

혜열스님 일과 수행은 항상 하나라고 말씀하시니, 그렇게 보면 가열하게 수행 중이긴 합니다.(웃음)

스물여덟 살의 혜열스님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이었다. 미소 자체가 ‘힐링’이었다.

진경스님 이곳이 오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전망을 가지기가 어렵지요. 마음에서 만족하면 여기가 극락이고, 어떤 큰 곳에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면 거기가 좁은 곳이에요. 그런 의미로 이곳이 결코 좁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방이 모자라 거실에서 자야 할 때도 있지만요.

각자의 출가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요?

혜열스님 대학에서 접한 <반야심경>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가치관이 바뀌었지요. 하지만 출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어요.
졸업 후 직장생활을 1년 반 동안 하다 허전함을 지울 수 없어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혜정스님 저는 공연을 하고 춤을 추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출가를 제안받았는데, 저도 모르게 기다렸다는 듯 출가를 결정했어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명쾌하게 말이죠.

30대의 혜정스님은 독특한 눈빛을 지녔다. 고독을 넘어 철학적인 사고를 지녔고, 그 생각의 깊이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혜도스님 줄곧 출가하고 싶었는데 계기가 없었어요. 직업을 두 번쯤 바꾸고 40대가 되었을 때 진경스님께서 출가를 권하셨지요. 저는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어떤 일을 계기로 직업에 깊은 회의가 들었고,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죠.

혜도스님의 어떤 면을 보시고 출가를 권유하셨나요?

진경스님 아무리 밖에서 잘 살아본들 삶은 고통입니다. 고통 속 행복은 조건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출가하고 수행을 한다면 확실히 행복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출가하면 행복해집니까? 저도 행복해질까요?(웃음)

진경스님 이 깊은 곳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체적 노동까지 하는데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노력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혜월스님 출가 이전에도 매일 두 시간씩 참선(자신이 본래 갖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보기 위해 앉아 있는 수행)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날 비구 스님께 수행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대답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혼자 절에 다녔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승려가 제 앞에 나타났어요.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에는 여성이 출가한 절이 거의 없거든요. 그 길로 바로 삭발을 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수행했는데, 미얀마에서 진경스님을 만났습니다.


30대 후반의 혜월스님은 말레이시아 여성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유쾌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혜월스님 한국에 온 지는 5년 됐습니다. 사실은 제가 ‘붓다선원’에서 오락부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웃음) 출가하기 전에는 미국 MIT에서 석사로 공부하고, 싱가포르 은행에서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소박한 생활이 아주 좋습니다.

진경스님 거제도에서 태어나 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취하며 살 형편이 못 되어 가까운 상고를 졸업한 뒤 삼성조선소 전산실에서 일하며 방송통신대를 다녔습니다. 스물한 살이던 어느 날 불교청년회 법회에 갔다가 “스님이 되면 뭐가 좋습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원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10년 후 나의 두 모습을 머릿속으로 비교해본 뒤 출가를 결심했어요. 가톨릭 집안이라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차리라 수녀가 되라고 말씀하셨지요.

여성들은 출가를 앞두고 삭발할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진경스님 열 명 중 한 사람 정도 울까요? 사실 우는 사람은 드물어요. 우는 사람은 결국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머리를 자르고 나면 시원하다고 합니다. 출가할 때 삭발은 무명을 버리는 용기랄까요, 중요한 의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어제 삭발을 했습니다.(웃음)

혜월스님 삭발을 하는 순간 제가 뚜렷이 보이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강해진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것보다 좋은 점은 옷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다이어트할 필요도 없습니다.(웃음) 출가 후 10kg이 불었지만 헐렁한 옷이 이 모든 것을 커버해줍니다. 출가 전엔 체중계에 매일 올라가는 전형적인 신세대 여성이었죠.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땐 새 모이만큼만 먹고 집에 와서 칼국수를 후루룩 먹는 여자였어요. 옷 사이즈도 제 몸매보다 한 치수 작은 것을 입고 다녔어요. 미니스커트도 즐겨 입었지요. 큰 키 덕분인지 길 가다가 모델 제의도 두 번 받았어요. 당시 저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 열심히 예뻐지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명상을 시작하면서, 과거에 제가 죽도록 필요했던 것들이 필요 없게 됐어요.

그럼에도 간혹 미니스커트 입고 멋 내고 싶은 유혹은 없나요?

혜월스님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여성을 보면 물 마실 때나 밥 먹을 때 불편할 것 같아 괜히 제가 걱정이 됩니다. 화려하게 꾸민 여성보다 그 자체로 눈이 빛나는 여성이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아무리 수행이라고 하지만 20대인 혜열스님에게는 힘든 부분이 많을 것 같은데요.

혜열스님 처음엔 힘들었어요. 3년 정도 아무도 돌보지 않던 절이라 쓸고 닦느라 몸이 고됐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더 그랬겠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수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은 힘들지 않습니다. 저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형님들이 저를 제빵사라고 부를 정도로 빵을 굽는 데 재주가 생겼습니다. 다만 번뇌를 빨리 버리지 못할 때, 문제를 밖에서 찾는 제 한계를 느낄 때 괴롭습니다.

혜도스님 보다시피 건강 체질임에도 여기서 하는 집안일 그리고 공동체 생활이 힘들었어요. 속세에서는 고요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는데, 여기서 제 안의 불을 처음 보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번뇌가 힘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규칙적으로 수행 일정을 지키는 일입니다. 한 예로 일반 사람들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야식을 즐겨 먹었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건강해졌어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나요?

진경스님 저는 사용 중인데요, 제가 사용하지 않으면 옆에 있는 스님들이 불편하게 됩니다. 제 업무를 타인에게 미루는 게 되니까요.

혜월스님 주로 날씨 검색을 많이 합니다. 저는 외국인이라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입니다. 아, 한국에선 이런 말을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죠? 문재인씨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는,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좋은 지도자가 없어 발전하지 못했어요.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살진 않았겠지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의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고, 자연히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나머지 스님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혜열스님은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스마트폰에 대한 유혹이 없나요?

혜열스님 아직은요.(웃음) 공부하고 외울 게 많아요. 수행에 집중하다 보면 휴대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혜월스님 막내 스님이 보통이 아니에요. 절제도 잘하지만 빵도 잘 굽고 타이핑도 무척 빨라요. 지적이고 센스가 있지요. 혜정스님 역시 최고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때로는 이 시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예술가였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혜도스님은 만물박사예요. 뚝딱뚝딱 고장 난 기계에 새 생명을 넣고 뭐든 다 알려주세요. 척척박사 지식백과예요. 저요? 저는 그냥 웃기는 사람입니다.(웃음) 무엇보다 은사스님(진경스님)은 저희의 중요한 지원자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무엇이든 해결해주시죠. 은사스님이 안 계실 때는 흥분하고 당황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렇듯 각자 기술이 있어 조화롭게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진경스님 혜월스님은 제가 자문을 구할 수도 있는, 사람 관계를 이해시키고 화해시키는 기술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곳을 조화롭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수행자예요.

좋은 인연들이네요. 전생에 무슨 인연이기에 이렇게 다시 만났답니까.

진경스님 여기서 느끼는 행복은 밖에서 느끼는 것과 분명 다릅니다. 혹시 기자님은 몇 년간 기자로 일을 하셨어요? 10여 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뭐가 남았나요? 집 한 채 남았나요?

집도 없고요, 돈도 그다지….(웃음)

진경스님 보통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며 자신과 가족의 물리적인 부분들을 살찌웁니다. 물론 정신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직장도 있겠지요. 여기서는 오롯이 자신을 아는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다니는데요, 다른 사람 도우러 갔다가 자기만족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행은 스스로를 위한 자원봉사입니다. 누구나 ‘붓다선원’에 오셔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보고 싶지는 않으세요?

혜도스님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 역시 어머니와 특별한 사이였어요. 같이 오토바이 타고 여행을 다니자고 할 정도로 친구 같은 사이였죠. 그래서 출가를 고백했을 때 어머니께서 많이 슬퍼하셨어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저나 보살님(어머니를 이렇게 불렀다) 모두 집착의 끈이 윤회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알았지만요.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여전히 가슴에서는 그 집착을 완벽히 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보고 싶을 때는 보살님이 차를 타고 오시기도 합니다. 서로 존댓말 써야 하는 상황이 어렵기도 합니다.

TV는 보시나요?

진경스님 TV가 없습니다. 예전에 TV가 있는 절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왜 드라마에 중독되는지 이해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 절에 와서 처음한 일이 TV를 치우는 것이었습니다.(웃음)

아직 20대인 혜열스님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이 있지 않았나요?(웃음)

혜열스님 이 자리에서 말하려니 쑥스럽네요.(웃음) 다 사라졌어요. 오락 프로그램을 즐겨 보곤 했는데 지금은 번민이라는 생각에 안 보게 됩니다.

혜도스님 고백하자면 저는 <우먼센스> 애독자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하 기자님의 성함도 잡지에서 자주 봐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절에서 독자를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저 이런 사람입니다.(웃음) 지난해<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는데, 들어보셨는지요?

진경스님 글쎄요, 안 봐서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저희들이 이상한 사람들은 절대 아닙니다.(웃음)


조금 광범위한 질문입니다. 수행 후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요?

혜월스님 밖에서 공부할 때는 날씬한 몸매, 예쁜 화장에 가치를 두고 살았어요. 수행한 후부터는 몸치장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는 소유욕도 강했습니다. 못 얻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었지요. 지금은 있는 그대로 만족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혜도스님 심플 라이프가 됐어요. 출가하려고 정리를 할 때 짐이 한 컨테이너도 넘었는데 지금은 박스 6개 정도 됩니다. 여전히 다른 스님들 보다 많은 편입니다. 아직 버리는 게 익숙하지 않네요.

혜정스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달라졌겠죠. 다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상태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외부적인 요소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다른 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진경스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삶은 선택의 나날입니다. 본질적으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리고 타인에게도 이익이 되는가를 생각하세요. 미리 경험한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해봐야 하겠죠. 80대가 되었을 때 나의 젊은 시절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면 지금의 선택을 밀고 나가고, 그렇지 않다면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번뇌를 버리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입니다. 욕심을 채우는 것이 용기는 아니지요. 본질적으로 미래에 도움 될 일을 추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혜도스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한 가지만 택하고 나머지는 버리세요. 마음을 잡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면 좀 더 빨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나를 많이 아프게 하고 나서야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아쉬움이 많습니다.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해주세요.

진경스님 왜 사는지 묻지 말고 내가 누구이고, 내 몸과 내 마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문제가 풀립니다. 의문의 핵심, 바로 묻는 자를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알면 타인을 알게 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나를 알기 위해 삽니다.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엄마가 되고, 육아를 하며 나를 서서히 알게 되죠.

마지막으로 여성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진경스님 여성은 신체 구조상 자식과 남편에게 조건 없는 자비를 베풀기가 쉽습니다. 여성의 자비심은 아주 훌륭한 도구인데, 거기에 지혜를 더한다면 존중받는 여성이 될 것이고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혜도스님 여성들은 생명을 잉태하는 용기를 한 번도 아닌 몇 번씩 내지 않습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죠. 미혼 여성들도 결혼에 대한 유혹이 많았을 텐데, 먹고살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한 것 자체도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별종을 좋아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그 용기가 대단합니다. 모든 여성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스님은 기자에게 명상을 제안했다. 20분간 명상에 임했다. 몸이 가벼워졌다. 모든 것은 결국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진경스님의 자기관리 수행법
우리는 숨을 들이쉬면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내쉽니다. 다시 들이쉬고 내쉼을 반복하면서 삶은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들이쉰 숨을 내쉬면서 더 이상 숨을 들이 쉬지못할 때 우리는 죽습니다. 이러한 숨 속에 살면서도 끝없는 바깥의 대상에 휩쓸리느라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지금의 숨(마음) 상태는 어떤지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깨달음의 열쇠인 숨(몸)과 마음의 관계를 알게 되면 본래 마음의 고요함, 평화로움에 머물게 됩니다.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 위해 ‘숨보기’ 한번 해볼까요?

올바른 몸 자세는?
자신에게 편안한 어떤 자세를 택해도 됩니다. 가능하다면 양쪽 다리를 가지런히 바닥에 놓아 한 다리가 다른 쪽 다리를 압박하지 않는 평좌 자세가 좋습니다. 손은 단전 앞에 가지런히 포개든지, 무릎 위에 올려놓아도 됩니다. 눈은 자연스럽게 감습니다. 그런 다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이완합니다. 몸의 어떤 부분에서도 긴장이 없음을 확인하세요. 만약 몸에 긴장이 있다면 그것을 풀려고 노력하세요.

올바른 마음 자세는?
걱정과 계획,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조건 지어진 것은 우리의 희망에 따르지 않고 제 나름의 진행 과정을 따를 뿐입니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무익합니다.

어떻게 들숨 날숨에 친숙해지나?
들숨과 날숨이 피부에 닿는 지점인 윗입술이나 인중, 콧구멍 주변에 마음을 둡니다. 들이쉬는 숨이 길면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내쉬는 숨이 길면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립니다. 들이쉬는 숨이 짧으면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내쉬는 숨이 짧으면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립니다. 숨의 전 과정을 알면서 들이쉬고, 숨의 전 과정을 알면서 내쉽니다.

성냄이나 증오, 분노 등이 일어나 호흡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을 때는 ‘자비관’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비관은 먼저 자신을 향해서 “내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내가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내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이라는 네 구절의 의미를 느끼며 자신을 향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마음이 부드러워지면 그다음엔 모든 존재들을 향하여 다음의 네 구절을 통해 자비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모든 존재들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일상생활 중에도 숨으로 마음을 기울이면 화나는 마음이 순간 누그러들거나 사라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한순간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번뇌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마음의 주인이며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진경스님
65년에 태어나 85년에 출가해 운문승가대학과 동국대를 졸업했다.
한국의 큰스님들을 찾아 수행한 후 미얀마와 인도, 영국에서 10년간 수행하고 남양주 봉인사 선원장으로 선정과 지혜수행을 지도했다. 지금은 거창 개화길 붓다선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행 중이다.


혜월스님
77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말레이시아 국립대 생물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에 석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불교학생회에서 청정도론을 공부하다가 2003년 출가했다. 미얀마 파욱센터에서 수행하던 진경스님을 만나 한국으로 다시 출가해 운문승가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붓다선원에서 함께 수행 중이다.


혜도스님
외국어대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청소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10년간 하다 재작년 출가했다.


혜정스님
서울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무아에 대한 법문을 들은 뒤 무아를 깨닫고 싶어 작년에 출가했다.


혜열스님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따라 몸과 마음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는 아비담마 공부를 하다가 공감과 재미를 느껴 작년에 출가했다.

CREDIT INFO
취재
하은정
사진
이진하
2014년 02월호
2014년 02월호
취재
하은정
사진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