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BLEM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 단절’ 심각
가족 간의 ‘원활한’ 대화는 엄청난 힘을 지닌다. 한 조사에 따르면 평소 가족과 식사하며 대화하는 횟수가 주 4회 이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2배 이상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고, 가족 간의 대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사회 적응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화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 부부는 15년 이내 이혼할 확률이 94%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가족 간의 대화는 행복한 삶을 위해 꼭 실천해야 하는 기반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취업 포털 사이트 ‘커리어’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5.2%가 가족과 하루 평균 10분 이상~30분 미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서는 부부 3쌍 중 1쌍꼴로 서로 하루 10분도 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가족 간 대화의 오류, 점검대화·환상대화·생각대화
우리는 왜 가족과 대화하지 않을까? 가족 성장 콘텐츠 그룹 ‘자람패밀리’의 이성아 대표는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스스로 알아주길 바라고 항상 내 편일 것만 같은 가족이기에 심사숙고하는 사고의 과정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다. 감정에 따른 가족 간 ‘불통’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점검대화’와 ‘환상대화’, ‘생각대화’가 그것이다. 먼저 ‘점검대화’는 마치 체크리스트를 들고 있는 검시관처럼 “밥은? 옷은? 돈은?” 등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다. 물어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챙긴다고 하는 말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애정이라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왜 귀찮게 하고 난리야” 하면서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상대화’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알아서’ 깨닫기를 바라는 대화법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무엇을 먹을까 물을 때 “아무거나”라고 말한다면 이 말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당신이 알아서 시켜’ 등의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다. 아무거나 시키라고 해서 진짜로 메뉴판 맨 앞에 있는 음식을 시키면 “그거 말고” “그건 싫어” 등의 거부가 이어지니 상대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아무거나’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가족도 알 것이라는 환상을 품는 것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가족 간의 불통이 발생하는 전형적인 대화법인 ‘생각대화’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의 생신에 대한 계획을 묻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주말에 어머님 생신인데 가야지” “그래, 오후에 가서 저녁 먹고 오면 되겠다” “왜 그렇게 늦게 가? 오전에 일찍 가서 집안일 좀 돕고 오자” “하루 종일 거기서 뭐 해. 난 오후에 일이 있어” “저녁을 좀 일찍 먹고 올라오면 되잖아” 등 서로 자신의 생각만 강요하는 대화가 이어지면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소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성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류에 빠지기 쉬운 대화 유형이기도 하다. 결국 갖가지 오류로 가족 구성원이 서로 대화를 하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는 순간 오히려 응어리가 지기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는다. 너무 친밀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때다.
- SELF TEST
당신은 가족과의 대화에 문제가 있나요?
□ 가족에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날 때 가족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편이다.
□ 가족보다는 친구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잘하는 편이다.
□ 가족이 말할 때 말을 중단시키거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 가족의 얘기를 듣는 것이 짜증날 때가 있다.
□ 가족의 말을 듣다가 충고나 해결책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 가족과 대화를 나누다가 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 가족과 싸움이 날까봐 일부러 져준다.
□ 의견이 대립되면 가족을 설득하려 하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RESULT 2개 이상이라면 ‘가족 대화법’을 연습해야 한다.
SOLUTION
‘소통’하는 가족 대화법
현상을 무미건조하게 ‘확인하는’ 점검대화, 내 마음을 가족도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환상대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생각대화는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킨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려면 당신의 대화법부터 체크해봐야 한다.
1 구체적인 감정 표현하기, 느낌대화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얽히고설킨 대화의 실타래를 푸는 첫걸음이다. 먼저 대화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을 점검해본다. 현재 느낌이 배고프거나 불편하거나 짜증나는 감정의 ‘불쾌(不快)’인지 행복하거나 편안한 감정의 ‘쾌(快)’인지를 파악한 뒤 그 감정을 전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너무 짜증나. 쉬고 싶어” 혹은 “나는 지금 너무 기분이 좋아. 오늘은 외식하자”라고 현재의 감정과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면 좋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나의 말을 더 명확하게 듣게 되고 나의 생각, 감정, 원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오해하지 않게 된다. 만일 “몰라. 나 잘 거야!” “오늘 뭐하지?” 등 앞서 말한 환상대화처럼 ‘내 감정을 알아서 파악하라’는 환상이 있으면 서로 오해만 쌓일 수 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이라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남편에게 화가 났다면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약속하고서 연락 없이 늦게 온 걸 보니 나와의 약속은 소홀히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사실과 생각, 감정을 표현해야 오해 없이 대화할 수 있다. 사람은 인정 욕구가 강한 동물이라 상대가 내 감정을 궁금해하고 인정하면 시키지 않아도 혼자 신이 나서 말을 길게 늘어놓는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느낌을 주고받는 대화를 나누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느낌대화’를 할수록 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
2 네가 아닌 ‘나’로 말하기
가족 간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느낌대화’처럼 자신의 감정과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즉, ‘나’를 주어로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 느낌에는” 등의 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너는 늘 그렇잖아” “너는 그렇겠지만” 등 ‘너’를 주어로 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비난당하고 공격받는다고 생각하여 반발하기 쉽다. 상대방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너’로 말을 꺼내면 괜한 오해로 번져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본인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이 원활한 소통의 방법이다.
3 숨은 마음을 읽는, 개방형 질문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듣는 것도 원활한 대화를 위해 필요한 자세다.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을 잘 이해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대화법은 모두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약간의 노력만 더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입장에 귀를 기울인다. 얘기를 들으면서 의문이 생기거나 모호한 부분은 명확하게 질문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명절날 시어머님께 언제 내려가면 되냐고 물었을 때 “천천히 와라”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진짜 늦게 가면 야단맞을 수 있으니 “저녁때쯤 가도 될까요?” “4시쯤 도착할 것 같아요”라고 정확하게 상대방의 의도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네요” 등의 말로 맞장구치는 것도 대화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 TIP 더 궁금해요! 가족 대화하기
Q1 카카오톡이나 밴드 등 SNS로는 대화를 잘하는데 집에서 얼굴을 맞대면 어색해서 말이 안 나와요. 어떻게 해야 하죠?
가족 구성원 각자가 성장하면서 개인 생활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하지만 가족 대화의 오류 중 하나가 가족이니까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질문과 간섭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 오해가 쌓여 관계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반면 카카오톡이나 밴드 등 SNS는 독립과 연합의 욕구를 둘 다 충족하기 때문에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다. SNS 속 대화는 글로 표현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의를 더 지키게 되고, 감정을 배제하는 효과도 있어 가족 간 대화의 대안이기도 하다. SNS 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니 온라인 대화의 소스를 오프라인으로 자연스럽게 꺼내는 시도를 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Q2 가족이 모이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제를 정하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아 더 힘들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가족 간의 대화 소재에는 1차원적인 것(간단한 일상 얘기, 농담)과 2차원적인 것(가족 이외 사람과의 일, 사건에 관한 얘기), 3차원적인 것(자신과 가족 구성원의 행동과 생각에 관한 얘기), 4차원적인 것(자신의 감정, 소망,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불만, 관계에 관한 얘기)이 있다. 대화를 자주 하다 보면 소재는 무궁무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