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의 황태자를 꿈꾸다
“느낌 있는 제목에 끌려서 드라마 출연을 결정했어요.”
조금은 엉뚱한 대답이지만 바로 이런 솔직함이 배우 김수현의 매력이다. 이제 데뷔한다 해도 늦지 않을 20대 중반의 나이에 엄청난 커리어를 쌓은 ‘엄친아’ 김수현. 그가 지난 12월 18일부터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로 돌아왔다.
<별그대>는 약 4백 년 전 조선 땅에 떨어진 외계인 ‘도민준’이 대한민국 톱스타 ‘천송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달콤하고 발랄한 로맨스다. 김수현은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지만 ‘천송이’를 만나면서 따뜻하게 변해가는 로맨틱 외계인 ‘도민준’역을 맡았다. <별그대>의 첫 출발은 강렬하고 임팩트 있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2월 19일 방송된 2회 시청률은 18.3%(이하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이는 동시간대 MBC <미스코리아> 7.3%, KBS2 <예쁜남자> 3.5%와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전지현’과 ‘김수현’이라는 스타 파워와 외계에서 온 완벽남이란 독특한 소재가 맞물려 인기몰이 중이다.
“본격 로맨틱 코미디는 처음이다 보니 저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동시에 ‘도민준’이 살아온 4백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표현하는 것도 큰 과제겠죠. 이번 작품에서 다시 만난 전지현 선배와 호흡을 잘 맞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의 대답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을 맡았으니 말랑말랑한 얘기를 할 법도 한데 ‘도전’과 ‘세월의 무게’를 언급하며 비슷한 또래의 청춘스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김수현이다.
밝고 풋풋한 미소를 지녔지만 내적으로는 성숙한 ‘애늙은이’ 같은 그는 학창 시절에 지나치게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말수가 없고 소극적인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그의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극이나 웅변 학원에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연설하는 것은 너무 창피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연기학원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됐다.
꿈 없이 가방만 들고 학교를 왔다 갔다 했던 그는 고1 때부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극단 생활을 했다. 연극이 끝나는 순간 들려오는 관객의 박수 소리에 묘한 떨림과 행복감을 느꼈던 그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21살 늦은 나이에 대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수시전형을 통해 12개 학교에 지원했는데 최종적으로 불러준 곳이 지금의 모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였다.
“수험생활 동안 매일 불안하고 잠도 잘 못 잤어요. 그러다 2009년 4수 만에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프로 의식을 갖고 연기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2007년 데뷔작 MBC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서 철딱서니 없는 역할 ‘김수현’으로 캐스팅되어 존재감을 알렸고, 2010년 SBS 드라마 <자이언트>에서는 당시 20대였으나 주인공의 아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전작에 힘입어 2011년 KBS 드라마 <드림하이>에 캐스팅되었으나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 총출동했던 작품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걸쭉한 사투리, 신인답지 않은 내공 있는 연기로 드라마 속 캐릭터 ‘송삼동’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 어떤 인물보다 빛을 발했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그가 남자 주인공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던 작품이었다.
은밀하고 위대하게 쌓은 필모그래피
그는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한순간 남자의 매력을 발산하는 왕 ‘이훤’의 캐릭터를 통해 여심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이 42.2%였으니 당시 대한민국을 ‘이훤앓이’에 빠지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수현의 파급력을 보여줬던 작품이었다.
스크린으로 옮겨서도 그는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2012년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자 관객 수 1천2백98만 명의 영화 <도둑들>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 전지현의 상대역 ‘잠파노’를 맡아, 다른 배역들에 주눅 들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맡았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는 남파 간첩이지만 동네 바보 형 ‘원류환’으로 열연, 최종 관객 수 6백95만 명을 기록했다.
‘김수현’이라는 이름 외에 흥행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이었으나 그는 이름 석 자 하나로 극을 홀로 이끌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수현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주연급 배우로 초고속 성장했다. 보통 젊은 배우들은 연기적인 깊이가 부족하고, 연기의 깊이가 생길 때쯤 되면 ‘청춘 배우’의 명함을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김수현은 젊음과 아름다움이 돋보이면서도 내적인 카리스마와 깊이가 있다. 그가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이유다.”(<별에서 온 그대> 장태유 감독)
여타 하이틴 스타들과 달리 정극부터 시작해 작품마다 명품 연기를 보여주는 김수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25살의 청년 김수현이 앞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작품을 쌓아갈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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