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스포츠 토토의 경우 실명 거래가 기본인데, 사설 토토나 맞대기 도박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도 연예인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지난 11월 14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가 불법 도박을 근 절하겠다며 칼을 뽑았다. 검찰 수사망에 걸린 사람은 총 31명. 도박 개장자 2명과 도박 개장 가담자 8명, 그리고 도박 참가자 21명이다. 이 중에는 유명 연예인인 이수근, 탁재훈, 토니안, 앤디, 붐, 양세형도 포함됐다. 지목된 연 예인 6명이 받은 혐의는 ‘휴대폰 맞대기 도박’과 ‘사설 스포츠 토토 사이트’에 서 불법 도박을 했다는 것.
정부에서 허가를 받은 스포츠 토토는 베팅 금액 이 최소 1백원부터 최대 10만원까지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연예인 들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사설 토토는 베팅 횟수와 금액에 제한이 없다.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스포츠 경기까지도 모두 실시간으로 도박에 활용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무제한 베팅이 가능한 셈이다. 이 맞대기 도 박 한 번에 적게는 수십만원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이 오갔다.
검찰 수사 결과, 토니안은 4억, 이수근은 3억7천, 탁재훈은 2억9천만원을 걸 고 도박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앤디, 붐, 양세형도 수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도박에 쏟아부었다. 이들은 수사를 피하기 위해 가족과 매니저 등의 차 명계좌를 이용해 도박 자금을 거래했다. 대표적인 예로 붐은 타인 명의로 된 예금 계좌 두 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불 법 도박을 시작한 것은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EPL) 프로축구 경기를 대상으로 했다. 수법은 간단했다. 도박 개장자가 경 기 일정을 휴대폰으로 전송하면, 회원들은 베팅 금액을 결정했다. 휴대폰 문자로만 이 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증거도 거의 남지 않았다.
연예인들 빠져들게 한 ‘맞대기 도박’
검찰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맞대기 도박 및 사설 토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 다. 원래 ‘맞대기’는 경마 용어로, 경마장 안에서 마권을 사지 않고, 두 명 이 상이 우승 마필을 놓고 내기를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은어다. 그러나 지금은 일종의 후불 베팅 방식의 도박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도박장 운영자가 회원들의 휴대폰에 경기 일정을 발송하고 회원들이 ‘승리, 무승부, 패배’ 중 하나를 찍어 돈을 건다. 경기 결과에 따라 결과를 정확히 맞힌 사람은 수수 료를 제외한 금액을 운영자로부터 지급받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운영자의 계좌로 자신이 베팅한 금액을 송금한다.
이 도박은 유흥업소에서 시작돼 이후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해외 스포 츠의 경우, 시차로 인해 한국 시간으로는 밤에 경기가 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심심풀이용으로 하나둘씩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방송 대기 시간이 긴 데다, 한밤중에 촬 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맞대기 도박에 빠져들기 쉬웠다. 단순 히 휴대폰만으로 실시간 베팅이 가능하다는 점도 좋았다. 또 후불 결제가 가 능하다는 점도 사람들이 부담 없이 도박에 손을 댄 이유였다. 그뿐만 아니 라, 정부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스포츠 토토의 경우 실명 거래가 기본인데, 사설 토토나 맞대기 도박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도 연예인에게는 큰 매력 으로 다가왔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불법 도박은 연예인 사조직을 통해 암암리에 퍼져나 갔다. 이수근, 탁재훈을 비롯해 지난 4월 같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개그 맨 김용만은 같은 축구 동우회 ‘FC 미라클’ 소속이다. 이 모임에 도박 개장자 두 명이 함께하면서 이들의 권유로 연예인들이 자연스럽게 불법 도박의 늪 에 빠져들게 됐다. 토니안, 붐, 앤디, 양세형은 연예병사 시절 불법 도박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연예병사로 근무하면서 휴가 중 알게 된 도박 개장자를 통해 맨 처음 발을 들였다. 그러면서 영외 행사 때 마다 일시적으로 지급받은 휴대폰으로 짬짬이 맞대기 도박을 즐긴 것이다.
해당 연예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수사를 받은 연예인 6명 중 도박에 건 돈이 억 단위가 넘은 이수근, 탁재훈, 토니안은 불구속 기소됐고, 나머지 앤디, 붐, 양세형은 약식 기소됐다. 이 들이 연예계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이수근은 KBS2 <해피 선데이-1박 2 일> <우리 동네 예체능>, tvN <백만장자 게임 마이턴>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감을 과시하는 인기 개그맨이었다. 그는 혐의를 인정하고, 자신이 현재 출연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다.
토니안도 자신이 몸담았던 요식업체 대표직을 사임했으며 본인 소유 지분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24일과 25일, <레전드 백>이라는 타이틀로 준비했던 ‘핫젝갓알지 콘서트’도 취소했다. 이미 예매까지 시행했지만 토니안의 불법 도박 혐의로 주최 측을 통해 티켓 환불 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나머지 연예인들도 입장을 정리한 후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하차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관계자들은 이미 촬영한 녹화분에 대해서 불법 도박 혐의를 받은 이들의 화면을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들이 언제쯤 브라운관에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두문불출 이수근,상암동 집 직접 가보니…
도박 혐의를 받은 연예인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해온 사람은 개그맨 이수근이었다. 그가 고정으로 맡은 프로그램만 세 개. 지난해 KBS 국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아간 연예인 2위에 이수근이 오르기도 했다. 그해 KBS에서 그가 벌어들인 수입만 5억9천5백만원. 당시 이수근은 <해피선데이-1박 2일>을 비롯해 <김승우의 승승장구> <청춘불패2>에서 고정 MC로 활약하고 있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이수근은 2008년 1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맞대기 도박에 참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와 맞대기 도박에 빠진 시기가 겹치는 셈이다.
결국 이수근은 3억7천만원 상당의 맞대기 도박에 참가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그간 개그맨 이수근이 보여준 유쾌하고 성실한 ‘국민 일꾼’ 이미지가 한 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수근 측의 반응도 빨랐다. 곧장 혐의를 인정하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
사실 이수근은 작년 2월 한 토크쇼에서 가슴 아픈 가족사를 밝히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임신중독증에 걸려 신장이식수술을 받고 평생 약을 먹을 상황에 이른 것이다. 미숙아로 태어난 둘째 아이도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쓸 수 없었다. 그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수근의 안타까운 소식에 함께 눈물지으며 그를 응원했다. 작년 8월에는 그의 대표 예능 <해피선데이-1박 2일>에서 그의 아들 첫째 태준군과 둘째 태서군을 공개하기도 했다. 뇌성마비를 앓던 태서군도 재활치료로 상태가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고 사흘 뒤인 일요일. 기자는 수소문 끝에 상암동에 위치한 이수근의 집을 찾았다. 그의 집은 상암동 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수 근은 아픈 아내와 함께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곳에 단독 주택을 새로 지어 지난 9월 이사했다. 면적 165㎡(약 50평)의 토지에 3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일요일 오후, 이수근의 집은 조용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자장면 그릇 몇 개만으로 사람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현관문 옆에는 액운을 쫓는다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아마도 신내림을 받은 이수근의 친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써준 듯 보였다. 유리로 된 현관문 밑으로 아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운동화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날이 저물기 전, 집안 일을 돕는 가사도우미가 나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오후 8시 30분 경, 현관문이 열리고 이수근의 아내 박지연씨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녀는 바로 옆에 마련된 주차장으로 순식간에 들어갔다. 이내 주차장 문이 열리고 외제차 한 대가 골목을 빠져나가 유유히 사라졌다. 아이들은 집 안에 있었지만 박지연씨는 기자를 의식한 듯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다시 이수근의 집을 찾았을 때 큰아이 태준이는 유치원에 간 후였다. 오후 3시쯤 되자 가사도우미가 둘째 태서의 손을 잡고 마트로 향했다.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자 가사도우미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아꼈다. 이수근씨와 아내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둘째 태서는 아빠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해맑은 모습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이수근의 집을 가보았지만 이수근 부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일로 자신들의 착잡한 심경이 보도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아내와 아들의 병치레 속에서도 대중 앞에서 웃음을 줬던 개그맨 이수근. 이번 일을 계기로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자신을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전화 위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주차장 문이 열리고 이수근 아내 박지현씨가 탄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유유히 사라졌다. 아이들은 집 안에 있었지만 박지연씨는 기자를 의식한 듯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불법 도박에 빠진 연예인들
신정환
신정환은 2003년과 2005년 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방송에는 다시 복귀했지만, 도박 중독을 떨쳐내지 못하고 2010년 해외 원정 도박으로 6개월간 복역했다.
김용만
이번 연예인 불법 도박의 시초는 개그맨 김용만. 맞대기 및 사설 스포츠 토토 등에 13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가 지난 6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백20시간을 선고받았다.
이성진
그룹 NRG의 멤버 이성진은 2009년 필리핀 카지노에서 지인의 돈을 빌려 2억3천3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탕진했다. 2011년 항소심 최종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벌금 500만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준호
개그맨 김준호는 2009년 8월 마카오 원정 도박 혐의로 방송에서 퇴출됐다가 10개월여 만에 복귀해 현재는 도박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