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트리밍 블랙 무스탕 재킷·화이트 터틀넥 니트·화이트 레깅스 팬츠 모두 미센스,
암 워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밀리터리 스타일의 누빔 코트·이너로 입은 프린트 티셔츠·레드 스키니 팬츠 모두 미센스,
블랙 핸드 워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핑크 컬러 트위드 재킷·이너로 입은 화이트 톱·블랙 스키니 진 모두 미센스,
핑크 에나멜 힐·네크리스·네온 핑크 브레이슬릿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장주하라는 여자는 제가 감정적으로 치우쳐 있던 시기에 만난 캐릭터예요. 그래서 주하를 연기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죠.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저를 차갑고 냉철하고 당차고 용감하고 담대해지게 하거든요. 주하를 연기하는 제가 진짜라고 믿으니, 제가 주하가 된 것 같아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있는 셈이죠”
보이프렌드 핏의 오렌지 롱 재킷 미센스, 컬러 블록 플랫폼 힐·오렌지 원석 펜던트 이어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패딩 베스트·이너로 입은 그레이 톱·딥 그린 컬러의 스키니 팬츠 모두 미센스,
레이스업 디테일의 퍼 트리밍 힐 슈즈원·가죽 글러브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고, 지나온 모든 시간엔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과거 힘들었던 흔적은 저에게 무언가 하나씩은 깨닫게 해준 것 같아요. 좋은 일도 지나가고 나쁜 일도 지나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저, 이제야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화이트 코트·레드 니트 원피스 모두 미센스,
퍼 트리밍 롱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당신이 짐작하는 김규리와 실제 김규리의 차이는 MBC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의 밝고 긍정적인 ‘현정’과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의 냉철한 커리어 우먼 ‘주하’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크다. 15년 동안 연기를 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연기를 즐기는 법을 알게 됐다는 그녀는 무척이나 겸손하고 솔직했다.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달리 수더분하고 촌스러운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면 자책하고 전전긍긍하던 김규리에서 <스캔들> 종영과 영화 <사랑해! 진영아> 개봉을 앞두고는 ‘기분 좋은 중압감’을 즐긴다고 말하는 김규리가 되기까지, 도대체 그동안 이 배우의 시간은 어떻게 흘렀던 것일까?
서른 이후 내가 깨달은 것들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며 정신없이 바빴던 20대 청춘의 터널을 지나 이제야 삶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김규리(35세). 그녀의 인생은 서른 살을 기준으로 나뉜다. 1999년 <학교>로 데뷔한 그녀는 이후 영화 <여고괴담2> <하류인생> <러브홀릭> <가면>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했다. 남보다 주연도 빨리 꿰차고, 또래의 그 어떤 배우보다 외모나 실력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지만, 진가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끼와 매력, 행운이 없는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했다.
주관이 뚜렷하고 솔직한 성격 탓에 오해도 많이 샀다. 덕분에 견디기 힘든 순간도 있었고 세상의 그늘도 경험했다. 그때 한 팬이 “당신과 한 시대를 함께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팬레터를 보내왔다. 그 말 한마디로 버텼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되는’ 영화와 ‘되는’ 작품에 욕심내던 지난날과 남에게만 잘 보이려고 애썼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데뷔 10년 차, 서른 살이 되던 때였다.
그렇게 막연한 불안감과 혼란으로 힘겨워할 즈음 영화 <미인도>를 만났다. 모든 걸 던져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인도>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며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한 그녀는 그동안 감춰뒀던 끼와 재능을 모두 꺼내 보였다. 반응은 과연 폭발적이었다. ‘김규리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열정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그녀는 ‘김민선’에서 ‘김규리’로 개명해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하면서 모험과 도전을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나로 살아왔으니 지금부터는 나에게서 벗어나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의 도전정신은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빛을 발했다. 춤추는 것 자체를 좋아했지만, 댄스 스포츠를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발가락이 퉁퉁 붓고 다리가 멍투성이가 될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흘린 땀은 역시 배신하지 않았다. 그녀는 놀라운 춤 실력으로 당당히 1등을 차지했고, 그때부터 <댄싱 위드 더 스타> 시리즈의 사회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는 춤을 통해 ‘희열’을 얻는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쳐 춤을 추다 보면 내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즐겁죠.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저는 대담해졌어요. 예전에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썼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해졌죠. 스스로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앞으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사는 배우
그녀는 늘 배워야 하는 것이 ‘배우의 삶’이라고 말한다. 글과 감정과 삶을 버무려 세상에 내보내는 일, 감정을 끌어내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결국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어루만져주는 일. 그것이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작품 속 캐릭터를 감독과 작가, 시청자와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드라마 <스캔들>에서 남자처럼 키워진 냉철한 커리어 우먼 ‘장주하’ 역을 맡은 그녀는 연기하다가 막힐 땐 감독과 작가에게 ‘어떤 게 더 주하스러운 그림이 나올지’ 솔직하게 물어본다. 캐릭터 앞에서 솔직해지는 게 그녀가 연기하는 방식이고 배워가는 과정이다.
“장주하라는 여자는 제가 감정적으로 치우쳐 있던 시기에 만난 캐릭터예요. 그래서 주하를 연기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죠.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저를 차갑고 냉철하고 당차고 용감하고 담대해지게 하거든요. 주하를 연기하는 제가 진짜라고 믿으니, 제가 주하가 된 것 같아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캐릭터로 ‘빙의’해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아가 혼란에 빠지고 나답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춤, 자전거, 등산, MTB, 사진, 그림,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의 취미는 그렇게 탄생한 것들이다. 일이 없는 일상은 늘 심심하고, 새로운 도전 앞에선 늘 흥분된다는 그녀는 일상에선 나붓한 현악기 같고, 일 앞에선 열정적인 타악기 같은 여자다. 이 사이를 불협화음 없이 조율하며 밸런스를 유지하는 그녀지만, 의외로 아날로그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기도 하다.
“샤프보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느낌을, 메일보다 손편지를, 디지털카메라보다 필름 카메라의 거친 느낌을, 마트보다 재래시장을, 고급 레스토랑보다 가정식 밥집을, 피트니스보다 흙을 밟으며 등산하는 것을 좋아해요. 마음이 지칠 때는 느리게, 천천히 사는 삶을 좇게 되더라고요. 또한 법정 스님 책을 좋아해서 다 구비해놓고 있어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책장을 넘기면 그 자체만으로 힐링되거든요.”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그녀는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늘 챙긴다.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이 순화되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사체를 찍기 위해 렌즈를 앞뒤로 돌려보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가장 예쁜 앵글을 찾다 보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하고 찰나에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모아 그녀는 <내 앞에 봄이 와 있다>(예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녀는 눈을 감으면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숨을 쉬면 공기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손을 뻗으면 바람이 손끝에 잡힌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녀가 느끼고 싶은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몰랐다. 자신이 이토록 낭만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는지. 그녀는 예전에는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완벽을 추구했지만, 이제는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또 많은 것을 갖고 있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투덜거리기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배웠다고 했다.
물론 지금의 김규리가 때가 되면 또 변할지 모른다. 20대에 30대를 가늠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미래의 불안함보단 오늘을 알알이 즐기며 살고 싶다. 아픔도 즐기고, 고통도 즐기고, 즐거움은 더 즐기면서 그렇게.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고, 지나온 모든 시간엔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과거 힘들었던 흔적은 저에게 무언가 하나씩은 깨닫게 해준 것 같아요. 좋은 일도 지나가고 나쁜 일도 지나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저, 이제야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장미로 비유하자면 아직 활짝 피진 않았지만 붉은 향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그런 단계랄까? 배우 김규리의 30대는 그렇게 서서히 피어나고, 또 진해지고 있다. 그렇게 꽉 채워질 그녀의 30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