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안젤리나 졸리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헐리우드 스타 안젤리나졸리는 지난 5월 14일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발표했다. 유방암에 걸릴 것을 우려해 양측 유방 모두를 절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문 발표 후 유전성 유방암과 예방적 유방절제술이 새삼 화제가 됐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된 것이다.
우리가 가진 유전자 중에는 BRCA1과 BRCA2라는 유전자가 있다.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발견된 이 두 유전자는 암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가족 중에 여러 명이 유방암 또는 난소암 환자가 발생했다면 이 유전자에 문제가 있음을 의심해볼 수 있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 역시 유전자 검사 결과 이 두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실제로 안젤리나 졸리는 엄마와 이모를 모두 유방암으로 잃었다. 유방암에 걸릴 유전적 요인을 충분히 지닌 그녀에게 유방암은 곧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게 내 현실이란 걸 알았고, 나는 사전 대책을 세우고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로 결심했다.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유방절제수술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예방적 유방절제술’이라 부른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은 유방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로 유방암을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방 조직이 가슴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에 유방암이 100% 예방되지는 않는다.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 2월부터 3차례에 걸쳐 유방조직절제와 유두 보존 및 보형물 삽입 수술을 받았다. 유방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있는 유방 조직은 전부 제거하고 그 안을 보형물로 채움으로써 외관상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유전성 유방암 궁금증 Q&A
안젤리나 졸리가 자신의 수술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이 예방적 유방절제술이 관심을 받게 됐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혹시 자신도 그녀처럼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것은 아닐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그녀처럼 높은 것은 아닐지 궁금해한다. 한국유방암학회 산하기관인 한국인유전성유방암연구회(www.kohbra.kr)에서는 유전성 유방암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해 Q&A를 마련했다.
Q. 유방암의 발병 원인 중에서 유전적인 요인은 어느 정도인가?
유방암은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 두 가지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전체 유방암 환자의 5~7%는 유전적인 원인이다. 그 외 유방암 위험 인자로는 이른 초경, 늦은 폐경, 폐경 후 여성의 비만, 호르몬 대체요법 등이 있다. 첫 분만 시 연령이 높거나,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것, 경구피임제를 사용하는 것도 유방암의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 고지방식, 과체중, 비만, 음주, 흡연, 적은 신체활동 등도 관련이 있다.
Q. BRCA 돌연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될 가능성은 몇 %인가?
부모 중 한 사람이 BRCA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을 때,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은 성별과 관계없이 50%다. 이는 자녀가 4명일 경우 반드시 2명에게만 유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개개인별로 유전될 확률이 50%임을 의미한다.
Q. 이미 유방암에 걸렸는데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
유전성 유방암 환자의 경우 유방보존술로 수술하면 일반 유방암 환자에 비해 유방 내 재발 확률이 높다. 또한, 반대편 유방의 유방암 발생률도 60%로 일반인에 비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이미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일지라도 유전성 유방암이 의심된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를 확인해 반대편 유방암과 난소암, 기타 관련 암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유전자 검사 결과는 가족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Q. 어디에서 BRCA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나?
한국유방암학회 산하 한국인유전성유방암연구회 홈페이지(www.kohbra.kr)에 소개된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에 참여하는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40여 개 병원에서 검사가 가능하다. 내원 전 검사에 대해 사전 문의 후 방문할 것.
Q. BRCA 유전자 검사의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먼저 검사 전 유전 상담을 받게 된다. 이때 질환에 대한 정보, 검사 방법, 비용, 결과의 해석, 검사 결과가 개인과 가족에게 미치는 의학적·사회적 영향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상담 후 검사를 결정하면 약 20cc의 혈액을 채취한다. 검사 결과는 약 2~3개월 후에 나오며, 검사 후 상담에서 결과를 설명해준다.
PART 2
유방암 명의 2인에게 물었다! 예방적 유방절제술 꼭 필요한가?
한국에 부분 절제술 처음 도입한 건국대학교병원 양정현 의료원장
“조기 발견만 하면 완치율 높아 예방적 절제술은 과잉”
건국대학교병원 양정현 의료원장은 유방암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유방암에 걸리면 유방 전체를 절제해야 하던 시절, 국내에 처음으로 부분 유방절제술을 도입한 의사이기도 하다. 그는 완치율이 거의 99%에 가까운 유방암의 경우,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환자의 심리 상태라고 말한다.
“유방암으로 인해 유방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엔 환자의 대다수가 암을 제거한다는 사실보다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많은 두려움과 고통을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아직 걸리지도 않은 암이 두려워 양쪽 유방을 절제한다는 것은 과도한 대처법이죠.”
양 원장은 유방은 여성의 일부로, 대부분의 여성은 유방이 여성다움을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유방절제수술 후 유방암의 재발 가능성을 염려해 복원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대세였다. 자가 검진이 어려울뿐더러 멍울이 잘 잡히지 않는 경우도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삶의 질을 생각해 의사들도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유방 복원술을 권장한다.
양 원장은 최근 안젤리나 졸리가 받았다는 ‘예방적 절제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가 이런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확률적으로 따졌을 때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전성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전체 유방암 환자 중 유전성 유방암에 걸린 환자는 5~10%에 불과하다. 그는 유방암 환자들이 절제술을 받은 후 심리적인 박탈감이나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성급한 선택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위암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위를 다 잘라버린다는 사람 본 적 있으세요? 유방암에 있어 돌연변이 유전자의 위험성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 원장은 안젤리나 졸리의 선택이 용감하고 과감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유방암처럼 조기 발견률과 완치율이 높은 질병을 유방 전체 절제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 점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절제한다고 해서 100% 예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유방 조직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지방층이나 유두 근처에 남아 있는 유방 조직에 암세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방적 유방절제술보다 더 나은 유방암 예방법은 없나
현재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의 발병률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 하지만 서구화된 식습관과 좋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인해 점점 유방암 환자 발병률이 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문 때문에 예방적 절제술이 많이 이슈화되긴 했지만, 우리보다 유방암 환자 발병률이 높은 미국에서도 예방적 절제술을 많이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녔다고 진단받은 환자에게 이런 수술도 있다는 것을 옵션 차원으로 알려주는 것뿐이지요.”
양정현 원장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졌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연령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10대 여성과 40대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에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너무 젊었을 때부터 유방암을 걱정하며 가슴 졸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70세를 평균 수명으로 잡았을 때 95%의 발생률이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연령에 적용되는 유방암 발병률은 아닙니다. 점차 나이가 들수록 누적적으로 발생률이 증가하는 것이지요. 다만 40대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양 원장은 예방적 유방절제술보다는 다른 예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유방 검사.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거나 자가 검진을 통해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유방암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그가 말하는 차선책은 유방암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해 유방암 발병률을 낮춘다고 보고된 약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권하는 것이 난소·유방 절제술. 출산이 끝난 여성이라면 난소를 절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유방절제술보다 유방암 발병률을 많이 낮출 순 없지만, 50% 정도까지 발병 가능성을 낮춰준다.
“유방암 예방을 위해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동물성 지방은 가급적 피하고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콩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술을 끊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양정현 원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방절제수술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정기검진과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될 수 있으면 몸에 칼을 대지 않는 방법으로 암을 예방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advice
양정현 의료원장이 전하는 유방암 예방법
식이요법_유방암 예방을 위해서는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칼로리 중 지방은 30% 이하로 섭취하고, 동물성 지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섬유질이 많은 식품, 발효 우유, 과일 또는 야채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은 1일 권장량만큼 먹고, 특히 콩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술은 끊거나 줄이자.
생활법_과도한 방사선 노출이나 전자기장 노출을 피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3회 정도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좋다. 아이를 일찍 낳고 젖을 먹이는 것도 유방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유방암 검진. 특히 유방암 발병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은 더 철저하게 검진을 받아야 한다.
한국 유전성 유방암 책임연구자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김성원 교수
“유전자 검사, 적극적 예방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한국 여성이 평생 동안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20명 중 1명꼴. 7명 중 1명꼴로 유방암에 걸리는 미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유방암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왔고, 유전성 유방암에 관한 연구 논문도 많다. 하지만 한국인과 미국인은 생활 습관이나 식습관에 차이가 있어 미국의 유방암 연구 결과를 단순 대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는 유전성 유방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김성원 교수는 6년째 한국의 유전성 유방암을 연구하는 책임연구자다. 그는 2003년 미국의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연구소(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연수를 받으며 유전성 유방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유전 상담 클리닉을 통해 유전성 유방암 환자들을 상담하고 검사하는 일을 활발히 하고 있다.
“유전성 유방암은 환자 한 케이스를 보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립니다. 유전 상담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와 가족의 동의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환자에게 유전자 검사를 권하는 것은 의사들이 참 꺼려하는 일입니다. 2007년에 제가 처음 한국에서 유전성 유방암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전자 검사를 꺼려하는 환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단 유전자 검사 자체가 환자에게는 공포니까요.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면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향후 보험을 들 수 없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김 교수는 유전자 검사가 유방암의 적극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 절제 같은 극약 처방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유방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좀 더 유방 검사에 신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번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문이 언론에 의해 발표된 후 김 교수에게 유전성 유방암과 관련해 유전자 검사를 문의해오는 환자가 많이 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예방적 절제 케이스는 2008년에 저희 병원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한 환자가 한쪽 유방을 부분 절제하고 보존수술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유전성 유방암이 의심돼 유전자 검사를 했고, 결과는 양성으로 나왔어요. 그러자 그 환자는 남아 있는 유방과 반대쪽 유방을 모두 절제하겠다고 결정한 거죠.”
2010년 삼성의료원에서는 예방적 차원으로 양쪽 유방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한 적도 있다. 아직 암 진단을 받지 않았던 환자가 유전자 검사 결과만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막상 수술을 해보니 한쪽 유방에서는 이미 유방암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예방적 절제술은 2008년 시행
유전자 검사는 예전보다 쉬워졌고, 비용도 저렴해졌다. 그럼에도 김성원 교수는 유전자 검사는 그 누구에게도 권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한다.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많은 경우엔 필요하다고 보지만, 유전자 검사가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유방절제술이 이슈가 되면서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분별하게 따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그녀의 용기는 박수 받을 일이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의 가족입니다. 유전 정보는 개인의 정보가 아닌 가족의 정보예요. 그녀의 형제나 자식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전 정보가 노출되는 것이죠. 물론 법적으로는 유전 정보로 인해 차별받지는 않아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보험에 들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하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젤리나 졸리의 딸이 결혼할 때쯤 되면 또 그런 얘기를 할 거예요. 이 아이의 유전자는 어떨까 하고요.”
김 교수는 유전자 검사의 사회적 위험성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이혼이나 자살, 파혼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가령 결혼을 앞둔 여성이 유전자 검사 결과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실이 확인돼 신랑 측이 결혼을 거부해 파혼 당하는 일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전자 검사 결과 돌연변이 유전자가 없다 하더라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0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검사 결과만 맹신하며 정기검진을 간과해 유방암에 걸린다면 이 역시 유전자 검사의 잘못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뉴욕 주 같은 경우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의사 차트에도 기록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죠. 우리나라도 유전성 유방암 연구가 활발해진다면 이런 여러 부작용을 차단할 수 있을 만한 장치가 필요하게 될 겁니다.”
김 교수는 가족 중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린 사람이 많은 경우 환자에게 유전자 검사를 권한다. 가족력이 있다 하더라도 100% 유전성 유방암인 것은 아니다. 돌연변이 유전자는 없지만 가족끼리 생활 습관을 공유하면서 그 집단에 유방암 환자가 많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가족력을 가진 환자의 절반 정도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유방암과 난소암에 동시에 걸렸거나, 남자가 유방암에 걸린 경우에는 유전성 유방암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advice
김성원 교수가 말하는 ‘이럴 때 유전성 유방암 의심하라!’
1.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여럿일 경우_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여럿 있다고 해도 100% 유전성 유방암인 것은 아니다. 잘못된 생활 습관을 공유해서 암이 발병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전성 유방암일 확률은 높다.
2. 가족 중 유방암과 난소암에 동시에 걸린 사람이 있는 경우_돌연변이 유전자는 유방암 발병 확률뿐 아니라 난소암 발병 확률도 높인다. 남성의 경우에는 전립선암에 해당한다. 가족 중 이 두 가지 암이 동시에 발병한 사람이 있다면 돌연변이 유전자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3. 가족 중 남성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_남성 유방암 환자의 경우 극히 드문 케이스다. 우리나라에는 남성 유방암 환자가 연간 1백 명 정도로 집계된다. ‘BRCA2’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킨 경우에 해당하는데 유전성 유방암일 확률이 높다.
4. 한쪽 유방이 아닌 양쪽 유방에 모두 암이 생긴 경우_양측성 유방암으로 진단받은 여성의 경우, 유전성 유방암일 확률이 높다. 학계에서는 양측성 유방암 환자의 15~20% 정도가 유전성 유방암 환자라고 보고되고 있다.
5. 가족력이 없는 상황에서 35세 이전에 유방암에 걸린 환자_일반적으로 나이가 젊으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유방암에 걸렸다면 유전자 변이를 의심해볼 수 있다.
PART 3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홍여진의 유방암 투병기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단골 배우 홍여진. 그녀는 8년 전 왼쪽 가슴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부분 절제술을 받았다. 유방암을 이겨내고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녀를 만나 처음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극복하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들어봤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찾아온 유방암
사실 그녀는 술도 한 잔 마실 줄 몰랐고, 가족 중 유방암 환자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유방암 진단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실 암을 진단받기 두 달 전에도 유방 검사를 받았어요. 아무 이상이 없었죠.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유방암 자가진단에 관한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어요. 저도 한번 따라 해봤는데 왼쪽 가슴에 커다란 멍울이 잡히더라고요. 뭔가 느낌이 이상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반응이 나오더군요.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던 저로서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당시 47세였던 그녀는 여성호르몬제를 지속적으로 먹고 있었다. 폐경이 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고 싶어서였다. 일반적으로 여성호르몬 과다가 원인이 되어 유방암이 발생하기도 해 병원에서도 그녀에게 3개월에 한 번씩 유방 검사를 받으라고 권했다. 그렇게 호르몬제를 복용한 지 4년째가 됐을 때, 그녀는 덜컥 암에 걸렸다.
“나이가 들면서 여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신의 섭리인데 제가 그걸 거스르려고 했어요. 날씬한 몸매와 여성성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었죠. 그래서 그 약에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복용한 거예요.”
그녀는 나중에 암 판정을 받고선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늙어간다는 것을 정신적으로 견뎠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해서 얻은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성호르몬제를 마약과도 같은 약이었다고 표현한다.
“저는 그때 약을 매일 먹었어요. 외출했다가도 약을 안 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돌아와 약을 챙겨 먹었죠. 당시에는 할머니가 된다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것 같아요.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요.”
그녀는 왼쪽 유방에 부분 절제술을 받고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혹시라도 유방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약이었다. 여성호르몬제를 지속적으로 먹어왔던 그녀가 이제는 거꾸로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을 먹자 부작용이 왔다.
“유방을 절제했다는 정신적인 고통보다도 신체적인 고통이 더 참기 힘들었어요.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자 손발이 마구 저리고 몸이 축축 처지는 거예요. 유방암 치료가 절제술만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녀는 절제술을 받은 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다. 그 후에도 몇 번이고 절제한 부위에 물이 차올라 그때마다 커다란 주삿바늘을 꽂고 물을 빼내야 했다. 그렇게 절제수술 후 회복 기간을 거치면서 그녀는 ‘유방암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배우 홍여진이 말하는 유방암 극복 노하우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싱글로 사는 홍여진은 암 수술을 받은 후 참 많이 힘들었다. 수술을 받았다고 병간호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암 투병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알고 지내던 PD에게 전화를 걸어 단역 자리라도 부탁을 했지요. 제 이야기를 조용히 듣더니 역할 하나를 만들어주시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그 PD의 가족 중에도 유방암 환자가 있어 제 사정을 더 잘 이해해주셨던 거예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KBS <사랑과 전쟁>.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 홍여진은 다시 본격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니 암 환자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틈틈이 운동을 하고 등산도 하면서 활기찬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6월에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여자>라는 연극으로 처음 관객 앞에 섰다.
“집에만 있다 보면 건강한 사람도 축축 늘어지잖아요. 저는 그래서 일부러 더 바쁘게 움직이려고 해요. 일도 더 찾아서 하는 편이고요. 혼자였기 때문에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었어요.”
그녀는 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집에서 직접 키운 알로에를 몸에 바르기도 했다. 가끔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으로 치료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 알로에를 바르면 금방 가라앉는다고 한다.
“보통 혼자 사는 여자들이 유방암에 걸렸다고 하면, 한동안은 가족이 와서 병간호를 해줘요. 하지만 유방암 환자는 몸을 추스르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저 같은 싱글이 더 늘어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전 저같이 혼자 살면서 유방암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혼자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유방암에 좋은 요리 같은 것도 알려주고 싶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흑두부를 이용해 만든 주스를 추천했다. 콩이 유방암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준비한 레서피다. 그녀는 건강 관련 책을 보며 몸에 좋은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이 참 즐겁다고 말한다.
“유방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아픔을 나누고 위로 할 것
“유전성 유방암? 그거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유방암’이라고 하면 유전되는 병이라고 잘못 생각해요. 그런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은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쉬쉬하곤 하죠. 엄마가 유방암이면 딸에게도 유전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시댁에서 싫어하기도 하고요.”
그녀는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죄인처럼 자신의 병을 숨기고 지내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어쩌면 자신이 유방암이란 사실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었던 것도 딸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유방암 환자의 딸이 세상에서 지게 될 짐이 너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유방암 환자가 참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유방암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왜인 줄 아세요? 유방암을 앓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그래서 더 자신의 역할이 큰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인터뷰를 한 것도 속앓이하고 있을 다른 유방암 환자들을 위해서란다.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가 유방암에 걸려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제가 유방암이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밝혔을 때 사람들이 많이 놀랐어요. 미스코리아 출신이면서 공개적으로 유방암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미스코리아나 여배우는 몸이 재산인 직업이잖아요. 단순한 맹장수술도 아니고 유방암수술을 받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더라고요. 저는 이게 제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유방암에 관해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는 것. 또, 다른 환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요.”
그녀는 유방암 환자라고해서 주눅 들지 말고 더 당당하게 지내라고 조언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어디에나 있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도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