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예고한 대로 이번 호에는 결혼식 사회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볼까 한다. 요즘 같은 결혼 시즌이 되면 개그맨들은 정말 바쁘다. 바로 밀려드는 ‘결혼식 사회’ 청탁 때문이다. 가족, 친척, 지인, 지인의 지인까지 하다 보면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스케줄까지 꽉 찬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빈도를 자랑하는 건 역시나 ‘페이’를 받고 사회를 봐주는 일명 ‘결혼식 행사’다. 자랑 같지만, 내 경우 개그맨 중에서도 유독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입소문 때문인지 결혼식 행사 빈도가 월등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결혼식에 얽힌 사연도 꽤 많다.
몇 년 전 일이다(시간과 장소를 명시하면 당사자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그날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하고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멘트를 시작했는데, 유독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김기열’이라는 개그맨이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였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 의아할 정도였다. 하객들은 손바닥이 부서져라 박수를 치고, 식장이 크게 울릴 만큼 큰 함성에 평소보다 더 흥이 났다. 그리고 친구들을 잘 둔 신랑 신부가 부러웠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열심히 박수 치고 소리 지르던 하객들이 길게 줄지어 식권과 함께 ‘흰 봉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진했던 나는 아무나 붙잡고 ‘흰 봉투’의 정체가 뭔지 물어봤다. 몇몇은 대답도 하지 않고 피했다. 물론 그들은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 ‘동원 하객’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동원 하객’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부러웠던 신랑 신부가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것 말고도 낮술 마시고 결혼식 중에 싸우는 하객, 송아지만 한 개를 데리고 와서 사람들을 기절하게 만든 하객, 양가 어머니 입장할 때 ‘돈 갚으라’고 난동 부린 하객 등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어깨형님’들이 그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하객이었다.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 그날은 신랑도 ‘어깨형님’이라 시작 전에 이미 내게 “이상한 것 시키면 화를 낼 수도 있다”며 한 차례 경고를 날린 상황이었다. 중간에서 참 난감했다. 가볍게 하려니 신랑 쪽 ‘형님’들이 나만 지켜보고 있고, 과격하게 하자니 신랑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여러 사람보다 한 사람 상대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신랑을 아주 고통스럽고 난감하게 해주었다. 식장은 그야말로 ‘빵빵’ 터졌다. 개그맨 기질이 발동해 더욱 흥분해서 신랑을 곤혹스럽게 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신랑의 ‘경고’가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자 신랑은 내게 “잠깐 보자”며 험악한 분위기를 풍겼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간 행사라 난감해하고 있는데, 때마침 신부 친구들이 내게 몰려와 “너무 재미있었다”며 나를 띄워주기 시작했다. 신랑도 그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내게 강렬한 한마디만 남긴 채 사라졌다. “김기열씨, 나중에 서울에서 봅시다.”(물론 아직까지 그 형님과 마주친 적은 없다.)
그리고 결혼식 사회가 넘어야 할 큰 산은 아마 관객이 아니라 주례일 것이다. 사회를 보다 보면 주례 선생님 때문에 은근히 껄끄러울 때가 있다. 지각하시는 분, 30분 넘게 주례사를 하시는 분, A4 용지 한 장 빼곡하게 적힌 약력을 빠짐없이 다 읽어달라고 하는 분은 차라리 애교로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사회자의 멘트까지 욕심내는 주례 선생님만큼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또 몇 년 전 일이다. 주례 선생님이 “식이 시작되자마자 등장시켜달라”고 해서 의아했지만, 큰 문제도 없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사달이 난 것이다. 약력 소개는 물론 “신랑, 신부 입장!”에 성혼선언문 낭독, 주례사까지 쉬지 않고 본인이 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질세라 중간에 치고 들어가려고 하면 “어이, 사회! 내가 얘기하잖아” “어이, 사회! 왜 이렇게 나서!” 이러면서 거의 엄포를 놓는 것이다. 그날 난 ‘인기 없는 남자’가 아니라 ‘멘트 없는 남자’가 돼버렸다. 결국 마지막 “신랑, 신부 퇴장!”까지 외친 뒤에야 흡족했는지 그제야 그분은 단상을 떠났다. 결혼식은 아무런 이벤트도, 재미도, 감동도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항의했다. 난 그날 아주 편하게 돈을 번 셈이지만, 개그맨으로서의 자존심은 돈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주례를 아는 사람은 양가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어찌 됐든 이렇게 또 ‘결혼식의 계절’이 가고 있다. 결혼식 사회를 보면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한 쌍을 꼭 내가 맺어준 기분이 든다. 결혼식장의 천태만상을 보면 꼭 우리 인생을 압축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제는 남의 짝이 아닌 내 짝을 찾아야 할 때인데, 언제쯤 그날이 오려나.
개그맨 김기열은…
2005년 KBS <개그사냥>이라는 개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TV에 첫 출연한 뒤 <개그콘서트>까지 진출, 데뷔에 성공했다. ‘두분토론’ ‘까다로운 변선생’ ‘소심지존 기열킹’ ‘뿌레땅뿌르국’ ‘네 가지’ 등 30개가 넘는 코너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이리스 2>로 연기자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두 번째 싱글 앨범 <너를 봄>을 내 가수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본인이 말하고 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