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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의 도전 “이젠 연애 말고 연기로 인정받을래요”

비와의 스캔들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연기로 주목받고 싶다

On October 11, 2013

우등생이었다. 모범생이기도 했다. 심하게 예쁘기까지 하다. 관리하지 않은 얼굴로도 ‘완벽한 관상’이라는 말을 듣고, 성형외과 의사 10명 중 7명이 뽑은 최고의 미녀이며, 한 PD가 “예쁜데 인간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우리나라 대표 미인”이라고 했을 정도다. 이 정도로 뛰어난 외모로 주목받는 김태희(33세)가 파격 변신을 하겠다고 나섰다. ‘악녀의 대명사’이자 ‘희대의 요부’로 친숙한 조선시대 장희빈 역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김태희는 SBS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에서 주인공 장옥정(장희빈의 이름) 역을 맡아 열연할 예정이다. 2006년 영화 <중천>으로 판타지 사극을 경험했지만, 정통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희빈 역으로 첫 사극 도전

“사실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끝까지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사극은 저에게 낯선 장르예요. 예전에도 제의는 받았지만 대본을 봐도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운 단어도 많아 ‘아직 사극을 찍을 준비가 덜 됐나 보다’ 하고 포기한 적이 많아요. 그런데 이번 대본은 술술 끝까지 읽히더라고요. 이 사극은 ‘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녀는 작품을 결정한 순간부터 다양한 사극을 보면서 몸가짐과 말투를 익히고 있다. <여인천하> <동이> <대장금>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등을 매일 두 편씩 챙겨 보며 사극 분위기를 익히고 있는 것이다. 극 중 이름을 드라마 제목으로 내세우고 이른바 ‘원톱 주연’을 맡은 만큼 부담이 배가 된 듯하다. 특히 장희빈이 실존 인물인 데다 쟁쟁한 배우들의 뒤를 이어 ‘9대 장희빈’이 됐다는 점도 김태희의 고민을 깊게 했다. 역대 장희빈은 1961년 김지미를 시작으로 남정임,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이소연을 거치며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어왔다. 그만큼 김태희에겐 비교 대상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배님들께서 너무나 완벽한 장옥정의 모습을 연기해주셔서 부담이 많이 돼요. 그분들이 연기하셨던 장옥정과 같았다면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을 거예요. 기존 장옥정과 다르게 타고난 신분 때문에 세상과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좌절하지만, 악독해지기보다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야성미 있는 여자’라고 해석했어요. 이런 쪽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줄 수 있고, 역대 장희빈과의 비교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처럼 드라마 <장옥정>은 ‘희대의 악녀’로 역사에 기록된 장옥정을 꿈 많은 여인이자 ‘17세기를 살았던 21세기 알파걸’로 해석한다. 또 그녀가 침방나인(왕실의 옷가지 등을 만드는 무수리)이었다는 점에 주목해 옷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인물로 묘사한다. 실제로 김태희가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것과 맞물리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그녀는 “학교 다니다가 데뷔해서 공부에 전념하지는 못했지만 졸업 전에 패션쇼와 졸업 작품전을 했던 게 은근히 도움이 된다”면서 “바느질하고 옷 만들어보고 디자인 스케치하는 게 다 해본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익숙하다”며 안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옥정은 마음속 깊이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로 내면이 강하고 단단하지만 사랑에 대한 여유가 없어요. 노비라는 신분을 잊어버리기 위해 옷을 만들면서 기쁨과 희열을 느끼죠. 사랑도 사치고 스스로에게 허락된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살다가 이순(숙종)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게 돼요.”

남친 비 응원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 있을 것”

상대역(이순)은 배우 유아인(27세)이 맡았다. 실제로는 여섯 살 연상 연하 커플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왕과 그의 여인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유아인씨와는 이번 사극에서 처음 만났어요. 영화 <완득이>를 보고 인상이 깊게 남아 관심 있게 봐오던 배우였는데, 상대역으로 만나 너무 기뻤죠. 나이 차가 많이 나 부담도 되지만 한참 누나인 제가 먼저 다가가서 좋은 호흡을 맞추도록 노력할 생각이에요.(웃음)”
러브라인을 연기하는 데 실제 (가수 비와의) 연애가 도움이 되진 않을까? 이에 대해 김태희는 잠시 주춤하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실 드라마 촬영 전 비와 열애 사실이 공개돼 당혹스러웠어요. 드라마 팀에 미안했고, 혹시나 폐가 될까 봐 걱정됐죠. 그런 부분에서 비가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응원을 많이 해줘서 힘이 됐어요. 하지만 저와 비 사이가 아직 깊은 관계는 아니에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조심스럽죠. 사랑 연기를 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어 김태희는 자신의 사랑 방식에 대해 장옥정과 비교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장옥정은 타고난 신분 때문에 그 시절 사랑을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원하는 사랑을 찾아 용기 낼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저도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진짜 사랑한다면 용기를 내는 편이죠.”
비와 연인으로 발전한 이유일 게다. 한편, 비와 김태희는 올해 초 교제 사실을 공식 인정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비의 끊임없는 애정 공세에 김태희는 흔들렸고, 두 사람은 주로 자동차 데이트를 조심스럽게 즐기며 만남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작품으로 ‘대표작’ 욕심

그간 김태희 앞에는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와 함께 ‘CF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대중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광고계 최고 모델이 됐지만, 연기자로서 그만한 필모그래피를 내세우지는 못했다. 연기자로 살아온 지 어느덧 11년. 2002년 시트콤 <레츠고>로 데뷔한 그녀는 2003년 방송됐던 SBS <천국의 계단>에서 악녀 연기로 인지도를 급상승시켰고, ‘서울대 출신 미녀 연기자’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이듬해 주연을 맡은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는 하버드 대학생인 그녀의 캐릭터가 실제 학력을 연상시키며 김태희라는 연기자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평범한 우등생으로만 살다 몇 년 사이 갑자기 연예계의 스타가 된 그녀는 연기자로서 준비가 부족했다. <천국의 계단> 촬영 당시에는 악녀를 연기하며 ‘나라면 이렇게 하진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자꾸 했고,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는 “테크닉적인 면에서 여유가 없어” 스스로 창피했다고 한다. 외모는 타고났지만 성격은 일반 연예인의 이미지와 다르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주연작만 쏟아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게다.

“연기를 시작할 당시에는 제 모든 게 일을 하는 데 불리할 것 같다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학창 시절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공부했거든요. 연기자가 된 후에야 감수성이 떨어지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저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감정을 너무 억제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이후 김태희는 영화 <중천> <싸움> 등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싸움>에서 자신의 나이 또래 여성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었고, 어렸을 때 감정을 너무 억제했다던 평소 모습과 달리 마음껏 화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다져간 김태희는 KBS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연기에 대해 호평을 받으며 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데뷔 시절부터 옥죄어온 ‘무언가 다르고 신비한’ 캐릭터의 굴레를 비로소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스스로도 <아이리스>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다.
“사실 제가 여배우로서 활동이 적었던 것도 아닌데, 작품이 흥행을 못 하니 광고로만 기억하더라고요. CF 퀸이라는 영예는 기쁘지만 연기력으로 평가받지 못한 여배우로 묶이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연기력 논란이 일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문해요. ‘왜 연기를 하지? 잘하고 있는 건가? 연기하면서 난 행복한가?’ 같은. 그 답을 이제는 찾고 싶어요.”

그녀는 내심 이번 드라마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와 연기 경력 11년의 여배우로서 가질 법한 당연한 욕심이다. 스스로의 자문에 대한 답이 어쩌면 이번 작품에 대한 전력 질주가 아닐까?
“사실 제가 적은 나이도 아닌데, 이 정도면 (연기가) 무르익어야 하고 절정을 넘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 연기 인생의 절정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 대한 부담도 크고, 그만큼 욕심도 커요. 더 발전하고 싶고, 더 무르익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데뷔 당시엔 겉멋에 사로잡힌 게 있었다. 여배우 하면 우수, 고독 뭐 그런 이미지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현실을 깨달았고 지금은 장르 가르지 않고 뭐든 도전하고 싶다. 김태희는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른 중반의 여배우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전 20대 중반부터 눈가에 주름이 하나둘 늘어난걸요. 나이가 많지 않을 때여서 그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똑같은 주름도 나이 때문에 신경 쓰이긴 해요. 하지만 나이를 크게 의식하진 않아요. 저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감정이 성숙하고 내공이 쌓인, 그래서 주름도 예뻐 보이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달릴 거예요.”
조금씩 성장 중인 김태희. 연기에 목마르다는 그녀의 포부가 남다르다. 이번 연기 변신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연기를 시작할 당시에는 제 모든 게 일을 하는 데 불리할 것 같다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학창 시절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공부했거든요. 연기자가 된 후에야 감수성이 떨어지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저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감정을 너무 억제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CREDIT INFO
취재
정은혜
사진
이상윤
2013년 04월호
2013년 04월호
취재
정은혜
사진
이상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