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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받으며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이들이 공식 소감과 강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봤다.

UpdatedOn October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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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1948

물리학상
패트릭 M. S. 블래킷
ⓒ Nobel Foundation archive

“오늘날 세계는 많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업적으로 가능해진 재앙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는 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 이러한 힘을 인간의 파괴가 아닌 이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과학자로서, 시민으로서 우리의 임무입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의 고뇌가 노벨상을 낳은 뒤에도 세계대전은 피해 가지 못했다. 과학자의 연구가 전쟁 무기 개발하는 데 쓰이는 일은 흔히 벌어졌다. 호기심 넘치고 똑똑한 동시에 여전히 어리석은 인류를 향해, 특히 과학자와 권력자를 향해 여러 과학자가 같은 당부를 했다. “지식의 증가는 분명히 책임감의 증가를 의미합니다.”(1981년 물리학상, 니콜라스 블룸베르헌)


1986

1986

화학상
존 C. 폴라니
ⓒ Nobel Foundation archive

“학생이 있는 실험실에 가서 그의 실험을 망치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핵무기 위협에 대응하는 과학자 모임인 퍼그워시 회의에 참가하기도 한 그는 노벨상 기념 인터뷰에서도 막대한 예산이 드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비효용성을 언급한다. 매우 간단한 비유로.


1958·1980

1958·1980

화학상
프레더릭 생어
ⓒ Nobel Foundation archive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끝날 때 그동안 제가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물으면 대답은 종종 ‘아무것도 없네’나 ‘아주 적구나’거든요.”

단백질, 특히 인슐린 구조를 연구한 결과로 1958년에 수상한 학자가 자신의 하루를, 한 달을 돌아보며 저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육안으로는 볼 수조차 없는 작은 세계의 방대함에 매달린 그는 아주 적다고 한탄한 성과를 긴 시간 성실히 쌓아 22년 뒤인 1980년 다시금 화학상을 받는다.


2023

2023

물리학상
안 륄리에
ⓒ Nobel Prize Outreach. Photo: Clément Morin

“120년 전 마리 퀴리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다섯 번째입니다. 100년 넘는 동안 물리학상을 받은 여성은 두 명뿐이었습니다. 지난 5년 사이에는 이미 세 명의 여성이 수상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길 바랍니다!”

1901년부터 2024년까지 976명 개인과 28개 단체가 노벨상을 받았다. 물리학상 226명, 화학상 195명, 생리의학상 229명 등 과학 분야 650명 가운데 여성은 26번 불렸다. 문학상은 18명, 평화상은 19명이 여성이었으며 1969년 제정한 경제학상에서는 3명이 나왔다. 2023년 경제학상은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의 원인을 연구한 클로디아 골딘에게 주어졌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말은 성별에서도 적용해야 할 진리다.


2005

2005

생리의학상
배리 J. 마셜
ⓒ C. Northcott

“열심히 일하고,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만약을 대비해 스웨덴 사람에게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세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연구로 상을 받은 그의 말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웨덴은 노벨상위원회가 있는 나라다. 학자의 연구 과정은 복잡하겠지만 건강한 삶의 비결은 간단하다. 열정과 균형, 친절함, 여기에 웃음을 보태면 충분하다.


1955

1955

물리학상
폴리카프 쿠시
ⓒ Nobel Foundation archive

“과학 실험은 복잡한 과정입니다. 기술자, 기계공, 유리직공 같은 분의 도움 없이는 세심한 실험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합니다. (…) 저도 그런 숨은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수상자 소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거인의 어깨’다. 1676년 아이작 뉴턴이 인용한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문장에서 따온 것으로, 이전 연구자들의 성과에 기대었기에 자신의 도약이 가능했다는 겸손의 표현이다. 스승과 선후배·동료뿐 아니라 실험 장비를 제작하는 이까지 잊지 않는 학자의 인간미가 따스하다.


1954

1954

문학상
어니스트 헤밍웨이
ⓒ Nobel Foundation archive

“글 쓰는 일이란 기껏해야 외로운 삶입니다. (…)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입으로 내뱉는 게 아니라 글로 써야 합니다.”

작가는 말을 하는 대신 글을 써야 한다는 유명한 말이 헤밍웨이의 수상 소감에서 나왔다. 외로움, 존재의 근원을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가 응시하는 작품 덕분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한다. 먼저 외로웠고, 우리의 외로움을 이해하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설명해 주는 작품들. 1996년 수상자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문을 닫고, 망토와 장신구, 시적 도구를 벗어 던진 채 고요한 침묵 속에 아직 비워져 있는 종이를 앞에 놓고 조용히 인내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했듯 우리도 책을, 내면을 펼칠 때다.


1978

1978

문학상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 Nobel Foundation archive

“사람들은 저에게 ‘왜 죽어 가는 언어로 글을 쓰느냐’라고 자주 묻습니다. (…) 저는 유령 이야기 쓰기를 좋아하는데 죽어 가는 언어보다 유령과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없습니다. (…) 저는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시체 수백만이 언젠가 무덤에서 일어나리라 확신하거든요. 시체들의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겠죠. ‘이디시어로 된 새 책이 있나요?’ 그들을 위해 이디시어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언어가 소멸 위기 상태인 지금, 작가는 최후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이 재치 넘치고 사랑스러운 소감에서 그는 자신이 ‘어린이 책을 쓰는 500가지 이유’ 가운데 10가지만 골라 소개한다며 덧붙인다. “1. 어린이는 평론이 아닌 책을 읽습니다. 비평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아요. (…) 9. 책이 지루할 땐 부끄러움이나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공개적으로 하품을 합니다. 10. 그들이 사랑하는 작가가 인류를 구원하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그런 일이 작가의 권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어른만이 그토록 유치한 환상을 가집니다.” 빙그레 웃다가, 그럼에도 나를 구원한 작가의 작품 목록이 떠오른다.


1999

1999

문학상
귄터 그라스
ⓒ H. Grunert

“위험성이 없다면 작가라는 직업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 모든 작가는 자신이 너무 일찍 혹은 늦게 태어났다고 항의하더라도 그 시대의 사람입니다.”

지금은 폴란드 땅인 단치히에서 태어나 열일곱에 징집,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무장친위대로 복무하던 그는 부상을 입고 미군 포로로 잡힌다. 1946년 석방되었을 때 겨우 열아홉. 난민 가정 출신 작가는 잃어버리고 파괴된 고향을, 조선소의 소리와 발트해의 냄새를, 국가의 범죄와 약자의 고통을 글로 새긴다. 그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고 공격받았으나, 편들고 위험을 무릅쓰는 작가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1994년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2015년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 여러 작가가 같은 길을 걸었다. 위대한 글은 양심에서 시작한다.


2024

2024

문학상
한강
ⓒ Nobel Prize Outreach. Ill: Niklas Elmehed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올해 노벨상 시상식 전이기에 소설 <소년이 온다> 일부를 옮긴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슴을 아프게 내리긋는다. 이런 상처를 마음에 품은 이가 늘수록 세상이 나아진다고 믿는다. 약자와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입이 되어 줄 작품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일단은 이 책부터.


1976

1976

평화상
베티 윌리엄스
ⓒ Nobel Foundation archive

“우리는 전쟁과 전쟁 준비로 1분에 50만 달러를 지출합니다. 그 1분 동안 8명 이상이 방치 속에 사망하지요. (…) 어떻게든 단 1분만 군비 사용을 중단하고 그날 사망할 1만 2000명에게 나눠 준다면 비참하게 죽는 대신 40달러 이상을 받고 호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47년이 지난 2023년에 인류는 3370조 원을 군비로 지출했다. 1분에 약 64억 원, 471만 달러에 이른다. 전쟁과 군비는 노벨 평화상의 주요 관심사다. 이미 1929년 수상자 프랭크 B. 켈로그가 전쟁과 전쟁 준비는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라고 했고, 1998년 수상자 존 흄이 “차이는 출생의 우연”이기에 서로 싸울 필요가 없음을 알려 주었건만 인류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반목한다. 당연히 빈곤 문제 해결도 요원하다. 평화의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를 합친 글자. 입에 쌀이 들어가는 일이 곧 평화다. 2020년에 수상한 유엔세계식량계획은 연설했다. “음식이 평화로 가는 길입니다.” 그해 기준, 매일 배고픈 채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6억 9000만 명이었다.


2006

2006

평화상
무함마드 유누스
ⓒ N.A. Mamun

“3년 전, 우리는 걸인 대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 대출은 무이자이며 그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씩 갚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구걸하러 집집마다 갈 때 간식, 장난감, 가정용품 같은 작은 상품을 운반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 이 프로그램에는 8만 5000명 걸인이 있고, 그중 약 5000명이 구걸을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출 금액은 12달러(약 1만 6000원)입니다.”

대학교수로 안정된 삶을 살던 유누스는 우연한 기회에 빈민의 실제 삶을 목격한다. 직조기를 장만하는 데 90원가량을 빌렸기에 이자를 갚느라 열심히 일하고도 생계가 어려운 이들이었다. 그는 사비 약 27달러를 마을 주민 43명에게 빌려주었다. 형편이 될 때 갚으라 했고, 이 적은 돈이 기적을 낳았다. 이자에 시달리지 않은 주민은 자립했고, 빚도 자발적으로 갚았다. 마이크로크레디트. 빈민을 대상으로 소액을 신용 대출해 주는 은행의 탄생이었다. 어차피 완벽한 동화는 세상에 없다. 허점과 실수가 있더라도 인간의 본질엔 따스함이 흐른다. 인류 절반의 하루 생활비가 2달러인 세상에서 그의 말을 새긴다. “신용은 인권이다.” 거대한 문제 앞에 무엇부터 할지 엄두가 안 나는 이에게 유누스의 시도가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겠다.


2004

2004

평화상
왕가리 마타이
ⓒ Nobel Foundation archive

“저는 개울물을 바로 마시곤 했습니다. 식물 이파리 사이에서 놀면서 개구리알을 구슬이라 생각하고 주우려 애쓰다 실패했지요. (…) 이것이 제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세상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개울은 말랐고, 여성들은 물을 얻으려 먼 거리를 걸어가는데 항상 깨끗하진 않으며, 아이들은 무엇을 잃었는지 결코 알지 못합니다. 과제는 올챙이 집을 복원하고 아이들에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세상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정치 불안으로 혼란스러운 케냐에서 왕가리 마타이는 나무를 심었다. 놀랍게도 나무 심는 활동은 민주주의, 인권, 평등, 평화 같은 추상적 단어를 현실에 뿌리내리게 했다. 1977년 심기 시작해 수상 당시에는 3000만 그루에 이르렀고, 이는 “연료, 식량, 거처, 소득을 제공”했다. 고용을 창출하고, 자연환경을 개선했다. 인권과 평화가 사라지면 환경도 덩달아 오염되며, 이 오염을 회복하는 데서 인권과 평화가 다시 싹틀 수 있다는 발견을 그가 해냈다. 모두와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산 사람들의 엄청난 궤적을 본다. 2018년 수상자 드니 무퀘게가 말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사용하게 되면서 누구도 ‘나는 몰랐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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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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