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 가까이에서 보는 바다, 높은 지대에서 조망하는 바다, 제각각 생김이 다른 섬이 곳곳에 솟은 바다, 물이 들고 나며 형성한 너른 갯벌을 내놓는 바다. 남해는 진정 우리가 꿈꾸는 모든 바다를 가진 섬이다. 남해도와 창선도, 큰 섬 둘에 조도, 호도, 노도 세 유인도와 무인도 일흔여섯을 거느렸다. 고장 하나가 섬만으로, 아니 섬과 바다로 이루어졌다. 낭만적인 말이다.
섬은 그토록 아름답지만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만만치 않아, 주민에겐 먹고사는 무거운 숙제가 주어졌다. 남해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다랑논이 첫 번째 증거다. 산이 많은 섬은 임야가 68퍼센트에 이르고, 자연히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어떻게든 달래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 결과 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농지가 남해를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다. 바다를 향한 다랑논은 한눈에도, 오래 응시해도 절경이지만 여기서 일했을 이들을 떠올릴 때 감히 감탄사 한번 뱉고 돌아서기 미안해진다. 생계, 나와 가족 입을 건사하겠다는 의지, 태어났으니 오늘의 임무를 다한다는 덤덤한 절실함이 한 땀 한 땀 맺혔다.
전통 방식인 죽방렴 어업, 억센 바닷바람과 파도로부터 삶터를 지키기 위해 조성한 방조어부림도 마찬가지다. 남해를 이어 걷는 256킬로미터 바래길의 이름 ‘바래’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고단하고 숭고한 단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해발 681미터 금산 절벽, 비경을 자랑하는 보리암은 지은 이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남해의 아름다움에는 자연과, 그 자연 속에 살아간 사람의 지분이 함께한다.
사람 이야기가 푹 밴 땅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기에 남해에서 촬영한 작품은 유독 진한 소회를 남긴다. 보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다음, 장면과 사연으로 점점 깊이 끌어들인다. 일하고, 사랑과 갈등을 하고, 잠시 내려놓은 채 휴식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으라. 남해를 담은 영상이 제안하는 대로 따라 가다 어느새 온몸에 섬과 바다가 차오른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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