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로, 설화 속 요괴에 해당한다. 여우는 100살이 될 때마다 꼬리가 하나씩 늘고, 1000살이 되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 꼬리가 아홉 개라는 말은 승천하기 전 힘이 가장 강력할 시기인 동시에 목적 달성을 위해 아주 조심해야 할 때라는 의미다. 이 범상치 않은 존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이는 으스스한 산속에서 점점 형체가 뚜렷해지는 빛나는 눈동자, 뾰족하게 튀어나온 이빨, 입 주위에 피를 가득 묻힌 채 동물의 간을 파먹다 고개를 휙 돌리는 모습을 상기한다. 또 누군가는 “기분 좋아서 꼬리가 튀어나오려고 해” 같은 오싹한 말을 무심히 내뱉고 사랑스럽게 미소 짓는 구미호를 상상한다. 콘텐츠에서 구미호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구미호에게는 ‘공포’보다 ‘사랑’이라는 수식어가 더 가까워졌다. 드라마 <전설의 고향> <구미호: 여우누이뎐>을 거쳐 이후 등장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간 떨어지는 동거> 모두 인간과 구미호, 즉 다른 종족 간의 사랑을 다뤘다. 두 드라마를 생각하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면, 구미호의 존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달콤하고도 애절한 장면과 대사가 마음을 흔든 까닭일 것. 둘 사이를 갈라놓는 방해물에 마음 졸일 때,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이 귓가를 맴돈다.
이제 구미호는 전설 속 존재로만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종다양한 요괴와 결투를 벌이기도 한다. 드라마 <구미호뎐 1938>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경성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파헤쳐 해결하는 구미호 이연의 모습을 일종의 영웅처럼 그린다. 더 이상 구미호가 악한 역할만 맡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인간 세계에 적응하려는 구미호를 인간이 돕거나, 오랜 세월을 살아오느라 삶이 무료해진 구미호에게 인간이 특별한 의미가 되는 등 다채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과거엔 구미호를 피해 인간이 생존해야 했다면, 이제는 인간 세계에서 구미호의 생존기를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실존하지 않는 캐릭터에 대한 신비로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구미호의 환상성을 강조하려 택한 장소를 소개한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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