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까만 어둠뿐, 땅속을 다니는 전철은 ‘수송’의 목적에 충실하다. 편리하게, 빠르게. 그러다 지상 구간을 지날 때 창은 풍경을 담아내는 액자가 되고 이동 중이던 사람들은 잠시 여행자로 변신한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한강철교를, 2호선이 당산철교와 잠실철교를, 3호선이 동호대교를, 4호선이 동작대교를, 7호선이 청담대교를 건너는 순간이 그렇다. 한강이 있어 그래도 서울이 숨을 쉬는구나. 고궁과 왕릉, 공원이나 산과 하천. 이들 덕분에 도시를, 나아가 삶을 견디고 긍정한다. 인간은 집과 학교, 회사와 그 사이를 잇는 길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비효율적’ 존재다. 사랑, 낭만, 꿈같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우리를 살게 한다.
드라마가 사랑을 주제, 소재 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극 속 인물은 사건을 겪고 변화, 성장해 나가면서 사랑도 열심히 한다. 전철 지상 구간처럼, 유적지나 공원처럼 사랑은 삶의 녹색 지대이자 산소호흡기가 되어 준다. 사랑으로 아파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간접 체험하며 함께 절절해져도 좋다. 이 또한 드라마 보는 즐거움이고, 그들에게는 웃는 결말이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과거 많은 드라마가 재벌 3세‧의사‧변호사 등 부유하고 소위 높은 지위의 인물, 특히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변주해 왔다면 요즘엔 판타지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악마‧멸망‧죽음‧도깨비를 만나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거짓말을 간파하거나 남의 마음이 들리는 초능력을 보유하기도 한다.
1956년, 배우가 생방송으로 연기해 방영한 한국 최초 드라마 <천국의 문> 이후 약 70년. 온갖 시도와 상상을 거듭해 온 드라마가 판타지로 발을 넓혀 색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OTT 채널의 등장, 웹툰‧웹소설의 기발한 설정도 영향을 주었겠고, 무엇보다 로맨스가 힘든 현실이 판타지를 부른다. 모두가 너무 바쁘고, 사회에서 자리 잡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며, 폭넓은 관계를 마음 터놓고 맺기가 쉽지 않다. 드라마에서라도 인간을 벗어난 존재와 사랑에 빠지거나, 전생에 맺은 연을 현생에 이어 가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환상적인 로맨스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자가 자주 찾는 공간은 역시 한강, 유적지, 공원이다. 대도시 사람을 숨 쉬게 하는 곳이 화면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가 묘한 현실감과 재미를 더하는 촬영지를 소개한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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