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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치악산 둘레길

가파른 치악산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오르지 않고 둘러 가는 것이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 둘레길을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쉬엄쉬엄 걸었다.

UpdatedOn July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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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햇빛 줄기가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숲 깊숙이까지 내리쬔다. 흐릴 것이란 예보와 달리 원주의 얼굴은 해사하다. 습기를 한껏 머금어 짙은 풀 냄새가 코를 간질이는 여름날, 치악산을 찾았다. 나뭇잎 한 장, 꽃 한 송이, 새와 벌레 울음소리까지 싱그럽게 물들었다. 치악산이 그려 낸 푸른 그림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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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1개 코스 전 구간을 개통한 치악산 둘레길은 도보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년간 73만여 명이 방문했으며, 11코스는 지난해 13만여 명이 찾았다. 문의 033-762-2080

2021년 6월 11개 코스 전 구간을 개통한 치악산 둘레길은 도보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년간 73만여 명이 방문했으며, 11코스는 지난해 13만여 명이 찾았다. 문의 033-762-2080

잣나무 숲, 깨끗한 공기, 맑은 마음

젖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면 초록빛 풍정 속에 머무는 상상을 한다. 치악산으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원주 동쪽에 위치한 치악산은 차령산맥의 줄기다. 남북으로 힘차게 뻗은 능선의 이맘때 모습은 온통 풀과 나무다. 푸르고, 또 푸르다. 풍성한 여름 숲은 동식물엔 보고이며, 여행자에게는 자연을 누릴 기회다. 치악산이 국립공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갈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험준한 산세에 대한 우려는 잠시 접어두어도 된다. 둘레길에서 여유롭게 치악산의 정취를 즐길 수 있으니까.

139.2킬로미터 길이의 치악산 둘레길은 ‘악(岳)’산이 오르기 힘들다는 사실이 아니라 ‘큰 산’임을 알려 주는 길이다. 치악산 곳곳의 절경과 관광지, 오래된 사찰을 산책하듯 거닐며 살피도록 구성했다. 총 11개 코스 가운데 인기 구간은 11코스 한가터길과 1코스 꽃밭머리길이다. 관공서, 주거 시설 등이 밀집한 원주혁신도시와 인접한 데다, 평탄하고 아름다운 능선과 계곡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다. 이번 도보 여행의 들머리는 열한 번째 코스인 한가터길로 삼았다. 당둔지주차장에서 국형사에 이르는 8킬로미터의 구간이지만, 역으로 국형사 부근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 도보 여행의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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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히 드리운 그늘에도 여름 식물은 존재감을 뽐낸다.
연둣빛 형광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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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은 예부터 기운이 영험한 산으로 알려졌다. 동악단(東岳壇)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태조 때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다섯 산에 제단을 만들었는데, 그중 치악산은 백악산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다. 동악단은 동쪽의 제단이라는 의미다. 정종의 둘째 딸 희희 공주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간절한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이어진다. 동악단에서는 오늘날에도 매년 산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구불구불 개성 있게 자라난 소나무 사이에 자리한 이 조용한 향소가 제사 무렵이면 인파로 북적거릴 것이다.

숲길에 들어선다. 물줄기가 반들반들한 바위를 타고 흐른다. 본격적으로 걷기에 앞서 다양한 식생을 냄새로 깨닫는다. 꽃과 나무가 동시에 뿜어내는 향기가 상쾌하다. 나무가 촘촘히 드리운 그늘에도 여름 식물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햇빛 한 점 새지 않는데도 연둣빛 형광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눈부시다. 발걸음을 옮기다 만난 주황빛 꽃이 반갑다. 김서원 숲길등산지도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나리꽃은 어느 곳을 향하느냐에 따라 중나리나 하늘나리라고 해요. 이 친구는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나리겠네요.” 시선을 옮기자 세 갈래로 갈라진 잎사귀가 앙증맞다. 빛을 은은히 머금은 모습이 연등 같다. “생강나무예요. 이른 봄에는 노란 꽃이 피지요. 꽃에서 생강 맛이 난다고 해요.”

폭신한 흙길을 걷다가 잣나무 군락을 만난다. 11코스를 들머리 삼은 가장 큰 이유다. 날씬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구쳤다. 목을 꺾고 고개를 들어야 나무 높이를 헤아릴 수 있다. 키 큰 잣나무 사이로 굽이굽이 난 길을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저만치서 오가는 이들이 작은 점 같다. 자연 속 인간은 한낱 미미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길을 맨발로 다니는 도보 여행자를 만났다. “이 근처에 삽니다. 맨발로 걸은 지 꽤 됐어요. 여름에 신발 벗고 흙길을 밟으면 정말 시원하거든요. 적당히 오르막도 있고, 잣나무 숲이 울창해 햇빛이 안 들어 좋아요. 디스크 환자였는데, 매일 걸어 몸이 호전됐습니다. 여기 맨발로 걷는 사람 많아요.” 그의 말대로 흙길을 맨발로 즐기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서두르는 이 없이 다들 여유롭다.

숲속에서 맑아진 마음을 안고 반곡역으로 간다. 2021년 폐역이 된 반곡역은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서려 있다. 임산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1941년 운영을 시작했으며, 목재를 원활하게 운반하고자 근처 신림역과 반곡역을 잇는 치악산 자락에 굴을 뚫었다. 그리고 두 역의 고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프 형태로 터널을 만들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뱀이 몸을 똬리 튼 것 같다 하여 똬리굴이라 불렀다. 공사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을 애도하는 반곡역의 조형물들 곁에서 잠시 묵념한다.

2023 원주 트레킹 페스티벌

9월 2일 ‘2023 원주 트레킹 페스티벌’이 열린다. 행구수변공원에서 출발해 11코스인 한가터길을 따라 잣나무 숲길을 거닐고, 1코스인 꽃밭머리길을 따라 원점으로 돌아오는 8킬로미터 거리의 트레킹 코스다. 여럿이 걸으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문의 033-737-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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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처에는 곧게 자란 소나무가 아름다운 황장목 숲길이 있다. 황장목은 누런빛을 띠는 질 좋은 소나무를 일컫는다. 문의 033-732-4800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처에는 곧게 자란 소나무가 아름다운 황장목 숲길이 있다. 황장목은 누런빛을 띠는 질 좋은 소나무를 일컫는다. 문의 033-732-4800

심신을 내려놓다, 구룡사

한참을 걸었으니 쉬어 갈 때다. 2코스인 구룡길로 향한다. 구룡길은 상초구길에서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까지 7킬로미터에 이른다. 코스의 절경으로 꼽히는 구룡사에서 찬찬히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입구에서 거대한 바위를 맞닥뜨린다. 이끼 낀 바위는 영락없이 거북 등딱지를 닮았다. 이 사찰은 거북과 연관 깊다. 신라 문무왕 8년인 66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구룡사는 본래 아홉 용을 뜻했으나, 거북바위 때문에 절 기운이 약해지자 이름을 거북 구(龜) 자를 써서 구룡사로 바꿨다고 전한다. 걸음을 옮기니 위용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지키는 보호수다. 가을이면 흩날리는 은행잎이 구룡사를 더욱 장관으로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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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날이 밝지 않은 산속은 흑백 필름 같더니,
어스름한 빛이 나무 사이로 어른거리며 해가 고개를 들자 색채가 드러난다.
자연의 빛깔이 황홀하다.

<KTX매거진>×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KTX매거진>×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원주에 다녀온 <KTX매거진>이 MBC 표준FM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통해 독자, 청취자 여러분과 만납니다. 기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취재 뒷이야기, 지면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행 정보를 함께 들려 드립니다.
* 8월 5일 오전 6시 5분(수도권 95.9MHz) * QR코드를 스캔하면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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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에 이르렀다. 근엄한 표정의 사천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와 돌계단을 마주한다. 이 계단은 절 안과 밖을 구분하는 누각인 보광루 밑을 지나도록 설계됐다. 건물을 지지하는 배흘림기둥을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면 절 마당과 대웅전이 펼쳐지는 형태다. 보광루에 들어서 단청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모두 아름답고 화려한 가운데, 천장이 정교하다.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우물천장인데, 격자로 짠 틀마다 색이 다른 연꽃무늬를 새겼다. 이제 자박자박 마당을 걷는다. 석탑 앞에 걸어 둔 노랑, 분홍, 보라색 발원문이 바람에 나부낀다. 소원의 색도 알록달록할 것만 같다.

구룡사에서 여장을 풀기로 한다. 법복으로 갈아입고 마루에 걸터앉는다.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가 시원시원하다. 비 오는 산은 금세 구름이 들어찬다. 수증기 입자가 눈에 보일 정도다. 담장과 처마 사이에 담긴 치악산은 산수화 한 점을 떠오르게 한다. 등성이마다 걸린 안개가 하얀 연기처럼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피어오른다. 마루에 드러눕는다. 눈앞에 있는 것은 운무가 흩날리는 치악산, 들리는 것은 오직 빗소리뿐이다. 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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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구룡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자유형으로 운영하기에 타종, 예불, 108배 하며 염주 만들기 등의 체험은 자율 선택이다. 문의 033-731-0503

한참을 마루에서 머물다 저녁 타종을 하러 간다. 템플스테이를 주도하는 법사인 수월스님이 돕는다. “구룡사 종각을 불음각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물론, 물에 살거나 땅에 사는 축생, 해와 달, 나아가 우주의 모든 존재를 깨워 부처님의 말씀을 알리겠다는 의미지요.” 힘껏 종을 쳐 본다. 강한 울림이 발끝으로 들어와 몸과 머리를 통과해 귀로 나간다. 골이 찡하다. 소리와 진동이 점차 잦아든다. 그러면 다시 타종하고, 또 소리가 작아지길 반복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진다.

절을 온전히 누리기 좋은 시간은 조용한 새벽이다. 산책 길에 나선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여태 이어져 사위가 어둡다. 미처 날이 밝지 않은 산속은 흑백필름 같다. 어스름한 빛이 나무 사이로 어른거릴 뿐 형체가 있는 모든 것은 흑백이다. 다만 검은색의 짙고 옅음만이 다를 따름이다. 자연이 깨어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계곡물이 청량하게 흐르는 가운데 개구리가 참방 물속에 뛰어든다. 걷다 보니 날이 개고, 해가 고개를 든다. 다시 색채를 입은 풍경을 감상한다. 절에 돌아와 아침 예불에 참여한다. 이른 시간, 고요한 분위기 속에 목탁 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명징하게 울려 퍼진다. 소망과 행복을 바라다가 결국은 명상에 빠져든다. 가끔은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잡념을 비우며 구룡사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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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에도 지금도 치악산은 같은 자리에 있다.
늘 똑같이 길을, 사람을, 우리의 삶을 넉넉하게 품을 것이다.

길과 사람, 싸리치옛길

치악산 둘레길은 웅장한 자연 속을 거닌다는 점만으로도 벅차지만, 옛 모습을 포개어 보면 색다른 산책을 할 수 있다. 석기동에서 용소막성당에 이르는 9.8킬로미터의 7코스 싸리치옛길에는 여러 사연이 숨어 있다. 흙길 위로 서벅서벅 밟히는 자갈이 소박한 정서를 자아내는 이 길을 <섬강은 어드메뇨 치악이 여기로다>를 집필한 김영식 작가와 함께 걸었다.

싸리치는 빗자루 재료인 싸리나무에서 온 말이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싸리나무가 지천이었기에 싸리재라고도 불렀다. 구태여 코스 이름에 옛길을 붙인 까닭은 지난 1988년 88국도가 생기면서 점차 사람들이 오가지 않아서다. 김 작가가 설명한다. “지금은 오솔길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중요한 길이었습니다. 영월로 가는 외통길이었고,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한여름 창문을 열어젖힌 완행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상상을 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원주역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서원주역과 만종역에도 정차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원주역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서원주역과 만종역에도 정차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원주역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서원주역과 만종역에도 정차한다.

원주에서 강원도 영월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점을 잠시 주목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조선 단종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싸리재는 단종이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가기 위해 넘은 고개 중 하나다.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에 따르면 1457년 6월 22일, “영월로 떠나는 노산군을 화양정에서 전송하게 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노산군은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뒤 받은 칭호다. “음력 6월이었으니 얼마나 더웠겠어요. 한여름에 유배 길에 오른 것입니다. 군사 50명이 영월까지 호송했다고 해요.” 오늘의 싸리재는 평온할 뿐이다. 과거에도 이 길은 구불구불했다는데, 단종은 어떤 마음으로 이 고개를 넘었을까. 만 열여섯 살 옛 왕이 애처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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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에 있는 용소막성당은 풍수원성당, 원주성당에 이어 강원도에 세 번째로 들어선 성당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다. 문의 033-763-2343

통탄할 역사만 서린 것은 아니다. 궁예 이야기도 전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궁예는 열 살이 되던 해 영월 세달사에 승려로 들어간다. 기회를 엿보던 궁예는 원주의 도적 양길의 수하에서 세를 넓힌다. 양길의 신임을 얻은 궁예는 영월, 평창 등을 장악하도록 명 받는다. 이때 궁예가 출정에 나선 곳이 원주 석남사다. “석남사지는 원주시 신림면에 있습니다. 궁예는 삼국통일의 꿈을 안고 이 싸리재를 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군사 100명을 끌고 나가 3년 지나서는 영동을 다 장악했다고 해요. 궁예에게 원주 석남사와 싸리재는 첫사랑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요.” 드라마 한 편을 본 듯 생생하다. 싸리재는 생선, 소금, 땔감 등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통로 역할도 했다. 맞은편에서 보부상이 지나치는 모습을 그려 본다. 그가 짊어진 봇짐은 삶의 무게만큼 무거웠으리라.

7코스를 걷다가 용소막성당에 닿았다. 첨탑 위의 십자가가 빛난다. 벽돌로 지은 아담한 성당 건물 주위로는 울창한 느티나무가 열을 지어 엄숙한 가운데 아름답다. 1866년은 가혹한 해였다.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신자들이 마을과 공소를 만들었고, 이후에 강원도의 세 번째 성당인 용소막성당을 설립한다. 성당 부지 한편에는 성 라우렌시오 유물관이 자리한다. 1950년대, 한국 천주교 최초로 구약성서를 한국어로 번역·간행한 성 라우렌시오 선종완 신부를 기리는 공간이다. 선 신부는 직접 제작한 부채꼴 모양의 책상을 썼다. 아코디언을 펼쳤을 때처럼 마디마다 책이 꽂힌 모양새다. 한자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도록 2단으로 만들었다. 연구는 고독하고 치열했을 테다.

고즈넉한 성당 벤치에 앉아 치악산이 품은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치악산의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어떤 이에겐 원대한 꿈과 소망을 바라는 장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계와 애환의 기억이리라. 그저 일상이기도 했고, 휴식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 옛날에도 지금도 치악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늘 똑같이 길을, 사람을, 우리의 삶을 넉넉하게 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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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eisurely Walk Along Chiaksan Dullegil

One way to enjoy the steep Chiaksan Mountain is to go around it without climbing. I slowly strolled along Chiaksan Dullegil in Wonju, Gangwon-do Province. 

The clear rays of sunlight penetrate through the gaps in the branches and reach deep into the forest. Contrary to the forecast of clouds, Wonju’s face is filled with sunshine. On a summer day, filled with humidity and the strong scent of grass tickling my nose, I found myself at Chiaksan Mountain.

Pine Forest, Pure Air, Clear Mind

On days when my body and mind feel heavy like damp cotton, I imagine myself immersed in the green of nature. That’s also the reason I head to Chiaksan Mountain. At this time of year, Chiaksan Mountain is covered in green grass and trees. The lush summer forest is a repository for animals and plants, and an opportunity for travelers to enjoy nature.

My starting point was the 11th course, Hangateogil, out of the 139.2-kilometer-long Chiaksan Dullegil. Even in the shade created by the dense trees, the summer plants still make their presence felt. It is shining brilliantly everywhere, as if sprinkled with fluorescent paint. Walking on the soft dirt path, I come upon a cluster of pine trees. The slender trees rise confidently towards the sky. From a distance, the people passing by look like tiny dots. In the presence of nature, humans are insignificant beings.

Guryongsa Temple, Healing the Body and Mind

I head towards the 2nd course, Guryonggil. I decide to spend some time at Guryongsa Temple, which is considered a scenic spot on the course. As I step out of the Four Guardians Gate, stone stairs appear before me. These stairs are designed to pass through Bogwangru Pavilion, which separates the inside and outside of the temple. I climb the stairs while admiring the architectural entasis, and the temple courtyard and Daeungjeon Hall unfold before me. I take in every detail of Bogwangru Pavilion. The lattice frames are engraved with lotus patterns, each in a different color. The yellow, pink, and purple prayer flags hanging in front of the stone pagoda flutter in the wind.

At Guryongsa Temple, I change into temple clothes and sit on the wooden floor. The rain, which has just started to fall, feels refreshing. The picturesque Chiaksan Mountain is covered in mist at each peak. The mist, like white smoke, rises and dissipates with the wind. Before me is the enchanting sight of Guryongsa Temple, and all I hear is the sound of raindrops. It feels like a dream.

Ssarichi Yetgil, From Paths to People

If you weave in a bit of history, you can enjoy a different kind of walk along Chiaksan Dullegil. The 7th course, Ssarichi Yetgil, is one of the passes that King Danjong of the Joseon Dynasty crossed on his way to Cheongnyeongpo Cape in Yeongwol, where he was exiled. Today, Ssarijae is peaceful. I reach Yongsomak Catholic Church, the third cathedral in Gangwon-do Province. It was established by Catholics who sought refuge in the mountains to escape the persecution. The cross on the top of the spire shines brightly. The modest brick church building is surrounded by lush zelkova trees, creating a solemn and beautiful atmosphere.
Sitting on a bench, I recall the stories delivered by Chiaksan Mountain.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Chiaksan Mountain still stands in the same place. It will always be there, embracing paths, people, and our lives.

원주에서 여기도 가 보세요

  •  즐길 거리  원주 댄싱카니발

    올가을 원주에서 열정적인 춤사위가 펼쳐진다. 지난 2012년부터 매년 개최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한 원주 댄싱카니발이 올해는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원주 댄싱공연장과 문화의 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이 행사의 꽃은 단연 댄싱카니발이다. 댄싱공연장에 마련한 100미터 길이의 무대가 참가자들의 경연장이다. 런웨이를 종횡무진 누비는 참가자들의 개성 있고 창의적인 춤에 흠뻑 빠진다. 프린지페스티벌·프리댄싱페스타 등 각종 문화 예술 공연을 즐기고, 마켓플레이스에 들러 지역 특산물도 맛본다.
    문의 033-760-9882

  •  즐길 거리  소금산 그랜드밸리

    원주의 자연을 짜릿하게 즐겨 보길 권한다. 소금산 그랜드밸리는 소금산·섬강을 한데 아우르는 복합 문화 관광지다. 이곳 소금산 출렁다리는 한 발 디딜 때마다 아찔하지만, 거칠게 솟은 기암괴석을 살피기 좋다. 심화 과정은 울렁다리에서 체험한다. 404미터 길이로, 출렁다리의 2배에 달한다. 올해 10월부터는 소금산 그랜드밸리를 더욱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 울렁다리 부근에 길이 285미터의 에스컬레이터가 놓이기 때문이다. 2024년에는 산악 케이블카도 들어설 예정이다.
    문의 033-749-4860

  •  먹거리  슬로우파크

    치악산 둘레길 1코스 중 국형사 부근, 붉은색 벽돌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2년부터 운영한 카페 슬로우파크다. 널찍한 통창에 치악산을 가득 담은 카페는 ‘천천히 쉬어 가라’라는 의미대로 여유로운 분위기다. 차를 마시며 치악산을 한가롭게 감상한다. 느림의 철학은 메뉴와도 맞닿아 있다. 시그너처 메뉴 첼바슈페너는 2주 이상 숙성한 바닐라 빈으로 만든 시럽을 사용한다. 다른 음료도 수제 청을 활용한다. 호두 크럼블 파운드케이크에는 이곳에서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가 들어간다. 빵을 만드는 밀가루와 설탕도 유기농이다.
    문의 033-734-4888

  •  먹거리  원주 전통시장 만두

    원주 전통시장에서 자신 있게 ‘칼만’을 주문해 본다. 칼만은 칼국수와 만두를 합친 음식이다. 칼국수 국물에 손만두가 퐁당 들어간다. 빨간 양념장은 취향껏 넣자. 별도로 주문할 수 있는 찐만두, 튀김만두도 별미다. 이 지역 만두의 역사는 50여 년에 이른다. 1970년대 시장 골목에서 시작한 만둣집이 대를 이어 장사하는 곳도 있다. 원주시는 전통시장인 도래미·자유·중앙시장에서 모두 사랑받는 만두의 대표성을 살려 올해 10월 28일과 29일 원주 만두축제를 연다. 만두 만들기 체험, 레시피 경연에 참여하고 문화 예술 공연도 감상한다.
    문의 033-737-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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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옥송이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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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옛길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장 살아 있는 구간. 경북 문경의 새재를 걸었다. 오래된 지혜와 이야기가 길처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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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 STYLE

    열차 안 위급 상황, 우리가 해결합니다

    달리는 열차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예병렬 열차팀장과 최완규, 양선경 승무원을 만나 열차 안 크고 작은 사고에 대처하는 법을 들어 보았다.

  • CULTURE

    모두가 즐겁게, 더 많이 여행하도록

    2022년 10월 한국관광공사 김장실 사장이 새로 취임했다. 움츠러든 여행업계가 다시금 발돋움에 나서는 요즘, 그의 포부를 들어 봤다.

  • CULTURE

    혁신에서 전통으로, 글렌모렌지

    글렌모렌지는 1843년 영국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마을 테인에서 스카치위스키를 선보였다. 위스키 역사를 뒤흔들게 되는 작고도 거대한 시작이었다.

  • LIFE STYLE

    내 장바구니 속 그림

    그림은 더 이상 ‘그림의 떡’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래와 투자 대상으로 우리 옆에 바짝 다가왔다.

  • TRAVEL

    세상의 끝 꿈꾸는 자연 토피노

    캐나다 서쪽 밴쿠버섬에는 바다와 숲의 몽환적인 풍경을 품은 토피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