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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포갠 풍경, 대전

대전 테미오래에서 과거의 조각을 발견하고, 물방울과 얼음이 쌓은 상소동 산림욕장을 거닐었다.

UpdatedOn January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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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서대전역에도 기차가 다닌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서대전역에도 기차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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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테미오래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가 정원을 울린다. 따사로운 햇볕이 아담한 집을 감싸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나무 사이를 포르르 날며 지저귄다. 담장 너머로 비슷한 집이 몇 채 보인다. 이 부근의 옛 지명 ‘테미’와 한동네의 몇 집이 이웃이 되어 사는 구역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오래’를 조합해 지은 이름 ‘테미오래’가 딱 들어맞는 정경이다. 시간이 쌓아 올린 풍경을 만나러 대전에 도착한 지금, 이곳에서 평화로운 겨울의 낮을 만끽한다.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 테미오래

테미오래는 옛 충청남도 도지사 공관과 관사 건물이 모인 곳으로, 철도 관사촌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관사촌이다. 1932년에 지어 2012년까지 고위 공무원이 실제 머물렀지만 충남도청이 홍성 내포 지역으로 이전하며 쓸모를 잃게 된다. 그리고 2019년 4월, 관사촌은 문화 예술 공간으로 단장해 시민 품으로 돌아온다. 관사촌이라는 이름 자체로도 숱한 역사가 잠들었을 거란 상상을 한다. 하지만 역사에만 집중해서는 테미오래의 매력을 모두 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다미방, 일본식 욕실, 스테인드글라스 등 당시 건축양식이 고스란해 건물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일이 보물찾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지사공관을 포함한 집 열 채를 하나하나 둘러본다. 먼저 충청남도 도지사가 머물렀던 도지사공관에 발을 들인다. 독특한 모양의 소나무와 작은 연못이 아기자기한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연다. 특유의 긴 복도 너머 넓은 응접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업무를 마치지 못했거나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이곳에서 논의와 결재가 이루어졌다. 딱딱한 일을 진행한 방임에도 왠지 편안하다. 벽난로와 한쪽에 크게 난 창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포근한 느낌은 응접실뿐 아니라 복도, 방 곳곳에서 이어진다. 나무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어서 오라고, 반갑다는 듯 방문자를 안아 준다.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내실로 걸음을 옮긴다. 현재 도지사공관에는 한국전쟁 때 대통령이 이곳에 머물렀던 5일 동안 일어난 사건, 그리고 관사를 13년 넘게 사용했던 전 충남도지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이어진다. 전쟁으로 위험한 상황임에도 “안심하라”라는 말을 반복했던 6・27 특별 방송 녹음본, 충남도지사가 사용한 물건들을 전시해 놓았다. 옛 흔적을 보고, 듣고, 쓰다듬는다. 관사 안에서는 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간 듯 역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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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오래가 품은 예술

과거가 아프더라도 극복하면 성장의 발판이 되기 마련이다. 테미오래도 그렇다. 사무실로 사용 중인 3호, 소실된 4호 관사를 제외하고 1호부터 10호 관사는 다양한 용도로 그 구실을 하고 있다. 1호 관사는 관사촌을 거쳐 간 이에 대한 기획 전시가 열리는 중이고, 2호 관사는 한국 놀이의 역사와 시대별 변천사를 살피고 전통 놀이부터 근대의 오락기, 현대의 메타버스 게임까지 즐기도록 만든 ‘테미놀이박물관’으로 변모했다. 특히 2호 관사는 어린이와 함께 온 방문객에게 인기 만점이다. 아이도 보호자도 놀이로 웃음꽃이 활짝 핀다. 5호와 6호는 휴식 공간과 시민 갤러리로 쓰인다. 가장 늦게 지어 다른 관사보다 현대적 분위기가 물씬한 7~10호 관사에는 각각 테미학당, 테미사랑방, 예술가 레지던시라는 이름을 붙여서 ‘문화창작촌’이라 부른다. 세미나,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열려 지역민의 문화 둥지 역할을 한다.

과거의 어느 날엔 무장한 경찰이 둘러싸 근처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관사촌이 시민의 활기로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오늘도 테미오래는 문을 활짝 열고 방문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테미오래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한다. 미리 요청하면 관사촌의 역사와 테미오래에서 열리는 전시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문의 042-335-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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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상소동 산림욕장

시간과 사건이 겹쳐져 훗날 역사가 되듯, 자연에도 시간과 무엇이 더해져 탄생한 것이 많다. 자연이 만든 것들은 결코 단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산속의 몇 줄기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고, 수십 년간 자란 나무가 빽빽하게 땅을 채우면 숲이 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꼼꼼히 다듬은 작품을 대전 도심 가까이에서 마주한다.

이국적인 얼음 왕국, 상소동 산림욕장

테미오래에서 출발해 차를 타고 25분 정도 달리자 금세 한적한 산속에 놓인다. 폐 안으로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차 정신이 맑아진다. 상소동 오토캠핑장과 산림욕장을 잇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얼음 세계가 펼쳐진다. 대전천과 계곡에서 끌어온 물을 스프링클러로 조금씩 뿌려 얼린다. 한 방울, 두 방울. 겹겹이 쌓인 물의 흔적이 얼음에 선연하다. 방울이 모여 얼음 기둥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꾸준함이 가진 힘을 새삼스레 실감한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얼음 기둥도 보인다. 바닥마저 얼 정도로 추운 날은 기둥 사이에서 썰매도 탄다. 그 덕분에 겨울의 상소동 산림욕장은 ‘얼음 왕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 멀리 돌탑 무리에 시선이 꽂힌다. 이국적인 자태를 뽐내는 돌탑 앞은 인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돌탑을 한 개인이 쌓았다는 게 놀라워요.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랍니다.” 이기봉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전에 거주하는 이덕상 어르신의 작품인데, 2003년에 시작해 2007년까지 무려 4년간 혼자서 17개의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무거운 돌을 하나씩 옮기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1960년대에도 고향 뒷산에 수많은 돌탑을 쌓아 홍수로 인한 산사태를 막았다니, 실력과 마음씀씀이가 대단하다.

관사촌이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것도, 돌탑 17개를 완성한 것도 모두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앞선 마음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과거의 행동 하나하나가, 지나온 시간이 얽혀 멋진 무언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화려하진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가 마음속에 지어지기를 바라며 돌탑 앞에서 소원을 빈다.


산림욕장에는 돌탑과 얼음 조형물 외에도 어린이 숲 체험원 등 즐길 거리가 많다. 얼음 구간은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문의 042-273-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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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남혜림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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