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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온기, 울주

간절곶에서 해가 떠오르자 어둡던 모든 땅이 밝아졌다. 울산 울주가 날마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UpdatedOn November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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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느라 바빠 내려놓는 방법을 잊은 마음 하나가 간절곶에 닿았다. 지구자전축이 기울어져 철마다 달라지는데, 새해 즈음엔 간절곶이 육지에서 제일 먼저 일출을 보인다. 수평선에서 솟은 햇살이 여기에 점을 찍으면 뒤따라 대지가 눈밭처럼 환한 빛살에 뒤덮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서쪽 가장자리에서 본대도 일출은 10분 남짓 늦을 뿐이다. 그 시간이 애석해 울산 울주에 들어와 이른 새벽 간절곶으로 향한 건 아니겠다. 이곳에 닿고자 했던 이유를 묻는다. 마음은 또 갖은 생각을 쌓아 올리지만, 어두운 수평선에 보랏빛이 감돌기 시작하자 사위는 침묵에 잠긴다. 일출은 순식간에 끝났다.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짧은 찰나를 스치고서 새로운 하루가 다시 우리에게 왔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울산(통도사)역까지 2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어느덧 일출이 끝나고 간절곶은 아침을 맞이했다. 해돋이를 보기 전 낮 풍경은 다만 환하기만 했으나 떠오르는 태양을 본 지금, 간절곶은 아름답고 더욱 반짝인다. 하루가 다시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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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도공들이 외고산에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다. 이후 박물관 등 시설이 들어서면서 외고산옹기마을은 체험하는 여행지로도 인기를 끈다. 문의 052-237-7894

1950년대부터 도공들이 외고산에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다. 이후 박물관 등 시설이 들어서면서 외고산옹기마을은 체험하는 여행지로도 인기를 끈다. 문의 052-237-7894

해가 뜨고 보이는 것들

빛살에 뒤덮인 울주 속으로 간다. 조금 전까지 어스레했으나 이제 모두 환하며, 간절곶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떠오르는 해가 새겨 준 여운을 외고산옹기마을로 가는 길 들녘 풍경에 얹는다. 수확을 마쳤기에 지금은 허허로워도 파종의 계절에 생명은 어김없이 피어올라 벌판을 메울 예정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순환과 다르지 않은, 단지 더 느린 세월이 필요한 자연의 변화를 천천히 보았다. 회야강과 남창천이 가로지르는 들녘이 해돋이를 앞둔 보랏빛 수평선을 닮아 따사롭다.

남창역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산자락이 나타날 무렵 외고산옹기마을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보다 자그마하고 짐작 이상으로 아늑한 골목에 옹기가 가득 들어찼다. 장과 반찬을 넣어서 뚜껑을 닫고는 윤이 나게 닦고, 가끔 열어 살피며 성실하게 보살핀 옹기. 발전하는 기술이 온갖 대체재를 창조하는 시대에 옹기로만 공동체를 일군 이곳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마을 한편, 울산옹기박물관을 방문했다. 1950년대 허덕만 장인은 물과 흙이 좋은 외고산 자락에 터를 잡고 처음 옹기를 빚었다. 수요가 날로 커지는 상황과 맞물려 사람이 모여들고 마을은 번성했다. 옹기장이 수백 명이 흙을 이어 붙이고 구워 제작한 옹기를 전국에서 가져간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수입해 사용했다. 통기성·방부성이 빼어나 오래 보관하기 맞춤인 덕분이었다. 울산옹기박물관은 마을의 첫 순간과 걸어온 궤적, 지역마다 상이한 옹기 형태를 여러 자료를 통해 보여 준다.

역사 또한 보여 준다. 무엇이나 한창때는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거늘, 어찌할 바 없는 세간사가 들이닥치면 빛은 희미해진다. 아파트, 플라스틱 용기가 보편화되자 옹기 수요가 급감했다. 수백 명에 이르던 외고산 옹기장이가 수십 명으로 줄어 마을은 침체되었다. 어제가 된 옹기는 더 이상 오늘을 의미하지 못할 듯했다. 이후에도 수요가 드라마틱하게 늘어나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옹기에 뜻을 세운 이가 갑작스레 많아지는 일도 없었다. 다만 외고산엔 여전히 옹기와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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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희만 선생을 비롯한 장인 일곱이 외고산옹기마을을지킨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장인의 공방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제작한 옹기를 감상할 수 있다.

장인은 한창 타렴질 중이다. 발로 밟아 돌림판을 움직이면서 흙가래를 포개는 사이에 옹기가 제 모습을 갖춰 간다. 반백 년 넘게 외길을 걸은 그 마음, 오늘도 옹기 하나를 완성했다.

사람과 사람이 지켜 나가는 길

박물관에서 나와 조희만 장인의 공방을 찾았다. 열일곱 살부터 옹기를 만들었으니 자그마치 60년 세월이다. “울주가 고향이라. 중학교 졸업하고 먹고살 게 막막해가 옹기를 잡았는데 이리 오래 할 줄 누가 알았을꼬.” 발로 밟아 돌림판을 움직이면서 흙가래를 포개는 타렴질에 한창인 장인이 혼잣말인 양 이야기한다. 흙가래 하나 올린 뒤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가며 모양을 잡고, 연거푸 흙가래를 집어 그 위에 올려 다진다. 장인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흙의 미묘한 진동에 시선을 고정하고 어떤 때는 돌림판을 멈추고는 좌우와 위아래를 들여다본다. 간간이 혼잣말 같은 이야기를 해서 우리는 조용하게 듣기만 했다. “조상님들 하던 방식대로 했지요. 재료도 달라지는 일 없었고. 우야든 잘하고 싶어가 참 열심히 했어요. 머릿속에 그것만 가득했다 아입니까.” 장인이 문득 고개 들어 눈을 맞추고 말했다. 웃음소리가 호탕하고 얼굴은 하도 맑아 옹기 만드는 장면이 금방 희미해졌다. 장인은 몇몇 지난날을 돌이켜 설명했다. 길진 않았으나 내내 웃는 얼굴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 “후회할 틈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냥 마 좋았습니다. 옹기로 그리 생활했으니까 이게 내 벗이라, 영원한 벗. 여생 동안 할 거고, 어디 가도 만들어 주고 그래 살라고요.”

외고산옹기마을엔 울산옹기박물관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옹기아카데미관, 발효아카데미관이 있다. 그리고 조희만 선생을 비롯한 일곱 장인이 자리를 지킨다. 외고산 자락에서 도공들의 이야기는 타렴질하듯 쌓여 간다. 한때는 더 이상 오늘을 의미하지 못하리라 했지만, 옹기는 분명하게 이 땅의 오늘을 밝힌다. 옹기를 윤이 나게 닦은 마음처럼 질박한, 그만큼 길게 이어질 사람과 사람의 걸음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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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마음을 내려놓고

밀양과 양산이 지척인 울주의 끝, 상북면에 다다라 위를 살폈다. 급하게 경사를 높인 산들이 첩첩 맞대어 기슭을 내민다. 비탈이 요동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 너머 산줄기는 몸이 굵고 흐름은 장대할 것이다. 작괘천을 길잡이 삼아 기슭 사이에 들었다. 좁고 우묵한 산간을 지나, 뾰족한 봉우리 두어 개가 틈을 벌려 낸 골짜기 갈림길에 닿아서 거듭 위를 살폈다. 간월산에서 우르르 쏟아질 듯 계절에 물든 나뭇잎이 무성하다. 왼편으로 꺾어 그윽해지는 풍경 속을 걷는다.

어느덧 산은 숨김없이 줄기를 뻗는다. 숲에 파묻혀 눈으로는 알아채지 못하되 길의 장단이 발밑에서 또렷하다. 시원스레 불거졌다가도 고루고루 파이는 해발 1069미터 간월산의 운율. 정상에 도착하기 전, 나무들이 물러나 시야가 트인 구석에서 뒤돌아봤다. 기암괴석이 휘감은 준봉들, 양쪽 능선부터 세차게 강하하는 비탈이 경관의 절반을 이룬다. 나머지는 섬인 양 들녘에 뜬 울주 상북·언양·삼남의 언덕과 멀리 동해, 더 멀리 하늘이다. 처음 만난 이에게 선뜻 속내를 털어놓은 간월산은 이렇게 마지막까지 진솔해서 우리 역시 뭐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갈지자를 그리는 정상 가까운 고갯길, 준봉과 언덕의 아스라한 풍경 앞에서 깊숙이 마음을 내려놓는다.  

간월재 억새 군락이 눈밭인지 물결인지 아련하게 흔들린다. 재넘이에 따라 하얗다가도 이내 누렇게 반짝이는 억새들은 갖은 빛깔로 춤사위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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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상인과 주민이 넘나들던 해발 900미터 고개 간월재는 매년 이 무렵 33만 제곱미터(약 10만 평) 면적에 억새가 가득한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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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군락 속으로

간월산과 신불산 꼭대기를 잇는 등성이에는 불어오는 재넘이에 흔들리는 금빛 은빛 억새가 우거졌다. 재넘이가 잠잠해지자 억새밭은 하얀 눈벌판이며, 이내 바람결이 밀려들고는 햇살에 반짝이는 너울이 된다. 눈 덮인 평원과 출렁이는 바다로 번갈아 변하는 간월재를 아껴 눈에 담는다. 태양, 산, 바람, 억새의 한 시기가 덩어리져 빚은 이 순간을 쉽게 지울 순 없으니. 간월재는 언양장터 가는 이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 울주 배내골과 밀양에서 사람들은 먹거리를 구하고자 해발 900미터 간월재를 거쳐 언양으로 갔다. 오르막을 타고 고개를 넘는 일이 먹고사는 일의 무게와 똑같은 시절이었다. 사람이 찾는 사연은 달라졌지만, 여기는 지금도 눈벌판이었다가 금빛 은빛 억새가 너울거린다. 언제나 아름답고 고운 간월재.

33만 제곱미터(약 10만 평) 면적을 모조리 채운 억새 군락 가운데에 덱 길이 놓였다. 길에 들어 눈인지 물결인지 아련한 무리에 손끝을 댄다. 줄기에 매달려 춤을 추는 억새 이삭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이따금 내려오는 산바람이 줄기를 두드려 고개를 넘어간다. 다 굽히진 않고 살며시 숙이기만 해 억새는 곧바로 일어난다. 꺾였다고 서러워 엎어져 버렸다면 이곳에 빛은, 어쩜 이름도 없었을지 모른다. 너그럽기에 꿋꿋할 수 있는 억새 하나, 또 하나, 결국 모두 모여 간월재는 빛난다.

왔던 길을 거슬러 준봉과 언덕의 아스라한 풍경으로 돌아간다. 이제 억새 군락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섬인 양 들녘에 뜬 울주의 언덕과 멀리 바다에서 사람이 와 간월산을 오른다. 이들은 곧 바람에 눕고 서는 억새 군락을 본다. 사각사각 이삭 소리를 듣는다. 깊숙이 마음 내려놓고, 다 내려놓고 도달한 햇살이 비추는 땅 간월재를 우리와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다. 

<KTX매거진>×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KTX매거진>×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울산 울주에 다녀온 <KTX매거진>이 MBC 표준FM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통해 독자, 청취자 여러분과 만납니다. 기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취재 뒷이야기, 지면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행 정보를 함께 들려 드립니다.
본방송 2022년 12월 3일 오전 6시 5분(수도권 95.9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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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았던 일출은 순간순간 이랬다. 간절곶에 도착했을 때 바다는 어두워 가물대기만 했다. 홀연하게 하늘이 보랏빛에 물들었고 조금 지나자 무언가가 밀어 올린 듯 수평선이 솟았다. 보랏빛 아래에서는 붉은 기운이 번졌다. 바다는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을 자신에게 옮겨 해안까지 펼치고는 색의 군무를 벌였다. 그리고 정말 한순간이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이니 수평선 위에 해가 있었다. 처음에는 반달 모양이었다가 만곡이 다 드러났으며, 보랏빛이 하늘에서 흩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완전히 동그래졌다. 어둑한 주홍빛 줄기가 간절곶에 닿았는데 오래 드리우진 않았다. 새벽이 곧 사라져 천연색 낮이 대지를 뒤덮었다. 생각은 어디에도 미치지 못했다. 떠오르는 해를 거기서 보기만 했다. 쌓느라 바빠 내려놓는 방법을 잊은 마음 하나가 울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보았다. 모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해는 끝내 온 땅에서 떠오르기에 세상도 바로 그곳에서, 날마다.

울주의 즐길 거리&먹거리

  • 2023 간절곶 해맞이 행사

    간절곶 표지석엔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라고 적혀 있다. 새해에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과 일대는 12월 31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축제의 장이 된다. 소망 복주머니, 새해 소망 캘리그래피 같은 체험이 다채롭게 진행되고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대상 수상작을 상영한다. 일출을 감상한 뒤에는 무료로 나누는 따듯한 떡국 한 그릇 먹으며 새해 다짐을 새겨 보아도 좋겠다. 울주문화재단과 울산MBC 유튜브 채널에서 간절곶 앞바다를 실시간 송출한다. 문의 052-204-0315

  • 언양읍성

    고려 시대에 축조한 토성을 1500년 석성으로 다시 쌓아 확장했다. 객사와 동헌을 세우고 옹성과 해자를 두어 지역 행정을 총괄하는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다. 나라의 업무가 삼엄한 공간이었겠으나 현재 언양읍성은 고즈넉한 산책길을 걸으며 과거를 살피는 울주의 여행지가 되었다. 북문 주변을 비롯한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돼 돌을 치밀하게 쌓아 올린 당시 기술을 생생하게 엿본다. 울주 여행 스폿 중 다섯 곳을 방문해 인증하면 특산품을 선물하는 ‘마모투어’ 대상지 중 하나다.
    문의 052-204-0322

  • 시래담

    2017년 6월에 문을 열어 5년여 동안 한우불고기 전골, 돼지불고기 볶음, 코다리 조림을 상에 올려 왔다. 얼핏 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짧은 시간이라 여겨지지만, ‘시래담’은 단기간에 울주 대표 식당으로 발돋움했다. 미리 준비하는 일 없이 주문을 받아야 압력밥솥에 시래기밥을 짓고, 하나하나 손수 만든 반찬과 함께 손님에게 낸다. 시래기 향이 알맞게 스민 밥알과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여러 가지 메뉴가 잃은 입맛까지 살린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착한가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문의 052-263-5559

  • 뜨락칼국수

    한 모금 들이켜니 맛이 독특하다. 굉장히 진하고, 또 무척이나 깔끔한 국물 덕분이다. 군더더기 하나 찾기 어려운, 오직 깊디깊은 맛을 선사하는 음식에 감탄이 나온다. 멸치를 종류마다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배합 비율을 완성해 우린 국물은 아무래도 맛없기가 힘들다. 매일 밤 직접 반죽해 다음 날 사용하는 ‘한정판’ 면발도 마찬가지. 이 집 해물·들깨칼국수는 그렇게 울주의 기억을 더욱 빛낸다. 구울 때 숱하게 두드려서 공기를 빼기에 기름과 파 향이 짙게 배어든 아삭한 파전도 별미 중 별미다. 문의 052-238-8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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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규보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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