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STYLE MORE+

영화관을 부탁해

영사기가 스크린에 빛을 비출 때면 영혼까지 환해지곤 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영화관을 지켜 내고 싶은 이유다.

UpdatedOn November 21, 2022

/upload/ktx/article/202211/thumb/52448-503549-sample.png

먼지가 풀풀 날리는 낡은 극장 안.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필름을 비추어 보는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지완, 직업은 영화감독이다.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어 놓지 못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필름 복원 작업을 맡게 된다. 한국 영화사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이 제작한 <여판사>의 일부 분실된 필름을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서 지완은 점차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맞닥뜨린다. 빛바랜 흑백사진, 근사하고 싱그러웠던 옛 영화판 청년들, 셀룰로이드 필름 뭉치, 영사기로 영화를 상영하는 아날로그 영화관….

영화 <오마주> 줄거리다. 지완은 수소문 끝에 지역의 오래된 극장을 뒤져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 마술적인 순간의 무대로 등장하는 극장은 세트가 아닌 현존하는 건물이다.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 위치한 원주 아카데미극장. 1963년 개관한 이래 성업했으나,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면서 2006년 영업을 중단했다. 비슷한 시기 개관한 원주의 단관 극장 몇 곳이 그즈음 모두 헐렸음에도 이곳만은 살아남았다. 영사실은 물론 극장 소유주 가족이 살던 살림집과 정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원형을 간직한 단관 극장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원주시는 지난 1월 이 건물을 매입했다. 원주도시재생연구회와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2016년부터 시민들과 함께 극장 보존 활동을 펼친 결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문화 거점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성과가 유독 반갑게 느껴지는 까닭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영화관이 폐관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건축물 보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행정 절차를 밟아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이 그만큼 험난하다는 뜻이다. 최근 팬데믹과 OTT 콘텐츠 성장으로 대형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고 있다지만,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닌 영화관은 보다 빠르게 소멸 중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이 영업을 종료했다는 소식은 또 한 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단관 극장으로 시작해 오늘날까지 생존한 지역 영화관은 이제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광주 동구 광주극장, 경기도 동두천 동광극장, 인천 동구 미림극장은 개관 이래 지금껏 단일 상영관으로 영업 중이고, 한국 최초 근대 공연장으로 알려진 인천 중구 애관극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멀티플렉스로 변모했다. 살아남기는 했으나 앞으로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또한 그렇다.

“지난해 초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가 조직돼 모금 운동 ‘100인 100석’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3주 만에 1억 원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건물 매입까지 이르렀지만, 원주시가 재생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 한누리 사무국장은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 ‘게릴라 가드닝’ ‘기억 교환소’ ‘방 탈출’ 등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아카데미 공유 프로젝트’가 큰 호응을 얻어 극장 보존 운동의 의의를 환기했습니다. 현재는 필름 영사기 수업을 진행 중이고, 12월에는 교육 수료생이 직접 보조 영사 기사로 참여하는 필름 상영회를 열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극장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증명해 나갈 겁니다.” 부디 그러하기를,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 본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

아카데미극장을 활용한 원도심 활성화 포럼, 아카데미극장 보존 필요성에 대한 설문 조사, 단관 극장 주제 기획 전시회 및 영화 제작, 고전 영화 상영회, 재생 방안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시민에게 알려 왔다. 그 결과 2021년 문화유산국민신탁과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공동 주최한 ‘이곳만은 꼭 지키자’ 캠페인에서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했다. 현재 아카데미극장을 재생하기 위한 시민 의견을 모으고 있으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 <안녕 아카데미>를 팔로하고 ‘시민 한마디’에 메시지를 남기면 보존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

<KTX매거진>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강은주
자료 제공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사회적협동조합 모두

RELATED STORIES

  • LIFE STYLE

    공원 산책도 식후경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산책하기 좋은 서울 북서울꿈의숲 근처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울 맛집을 찾았다.

  • LIFE STYLE

    사랑한다면, 너뿐이라면

    차갑게도 뜨겁게도 즐길 수 있는 하이브리드 비빔면부터 K매운맛의 진가를 전 세계에 떨친 볶음면까지, 면 요리의 신세계를 맛봤다.

  • LIFE STYLE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10월 25일은 독도의 날. 경북 울릉군 울릉도와 독도를 마음속에 깊이 새길 소중한 굿즈를 소개한다.

  • LIFE STYLE

    떠나요! 캐릭터 세계로

    문구는 기본, 편의점·신용카드사·야구 구단도 캐릭터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다. 요즘 사랑받는 캐릭터의 모든 것을 파헤쳤다.

  • LIFE STYLE

    서순라길 미식 산책

    서울 종로구 종묘,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서순라길에서 미와 맛을 추구하는 맛집을 찾았다.

MORE FROM KTX

  • LIFE STYLE

    같이 뛰자, 러닝 클럽

    요즘은 정말 나 빼고 다 뛰는 것 같다. 사람들은 왜 달릴까. 그것도 모여서.

  • TRAVEL

    ‘아리랑’ 가락 타고 기차 여행

    정선아리랑열차를 타고 강원도 정선으로 향했다. 이 고장의 멋과 맛이 한 해를 헤쳐 나갈 힘을 주었다.

  • LIFE STYLE

    피서의 지혜

    물놀이는 기본, 연꽃을 감상했으며 투호 놀이도 했다. 선조들의 피서법엔 더위를 애써 멀리하지 않는 지혜가 숨었다.

  • TRAVEL

    고아한 멋과 창창한 기상, 고창읍성

    전북 고창의 옛 이름은 모양부리다. 모양부리를 수호하던 성곽인 모양성의 오늘날 이름은 고창읍성이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맞아 제50회 모양성제의 성대한 막이 오른다.

  • TRAVEL

    영월 여행자를 위한 축제 안내서

    4월, 강원도 영월이 들썩인다. 영월문화관광재단 관광축제부 최용석 부장에게 단종문화제 즐기는 방법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