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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평화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총성이 들린다. 함께 사는 우리는 왜 상대를 아프게 할까. 전쟁과 학살의 아픔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를 모았다. 인류가 서로에게 총알이 아닌 꽃을 건네길 바라면서.

UpdatedOn May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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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온 파이어>


2015년 | 감독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 넷플릭스


사람 없는 나라는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나라를 세웠다. 그러니 사람을 보호하면서 더 나은 내일로 이끌어야 하건만, 어떤 나라는 위임받은 권력으로 사람을 짓누른다. 러시아계 이스라엘인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는 2013년 겨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벌어진 유로마이단 혁명을 93일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부패한 데다 정적을 탄압하고,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헌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그러곤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고자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했다.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처음엔 평화로웠다. 폭력보다 포용을 통해 나라를 바꾸자 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정권은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독재는 저와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으니. 시위대를 폭도라며 왜곡하고 특공대를 투입해 발포했지만 저항을 멈추지 않자 저격수를 배치한다. 유혈이 낭자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감독은 권력의 잔인한 행태와 그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투쟁을 그대로 드러낸다.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 자막이 나온다. “125명 사망, 65명 실종, 1890명 부상. 이후 러시아 군대 파견.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2015년 봄까지 6000명 이상 사망.” 그럼에도 포기할 순 없다. 우리의 역사가 정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유로마이단 혁명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독립한 우크라이는 민족 갈등이 심화됐다. 여기에 더해 친러시아 정권이 독재 행보를 보이자 2013년 겨울, 시민들은 수도 키이우를 중심으로 폭압에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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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는>


2018년 | 감독 앨리나 고로바 | VoDA(보다)


전쟁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더 비극이다. 군대와 군대가 대적하고, 전선이 움직이고, 승전국과 패전국이 나뉘는 참상의 전제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상대가 사라져야 내가 산다.’ 결국 상대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것. 생명을 앗는 일에 승자와 패자를 가를 수 있겠는가. 망자 또는 살아남은 자가 될 뿐이다. 옥사나 야쿠보바는 살아남은 자 가운데 하나다. 올해 러시아가 침공하기 이전에도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전쟁’으로 불리는 비극을 경험했다. 우크라이나 여성 군인 옥사나는 전쟁터에서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도 견뎌 냈다. 병사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리는 역할도 맡았다. 전쟁 기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갑자기 무너지고 말았다.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에요. 녹아내리듯이요.” “죽음이 겁나지 않았어요. 이젠 아니에요.” “검게 보여요. 눈앞에서 문이 닫힌 느낌이에요.” 재활원에서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한다. 침대에 누워만 있거나 말없이 허공만 바라보거나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쏟는다. 지하철 안에서 공황장애가 일어나자 귀를 막고 몸서리친다. 옥사나는 오늘이 지옥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군인들의 눈빛에서 자신을 목격한다. 그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명백한 징후가 없기에, 드러나지 않기에. 전쟁은 ‘어디에서’ 멈추는 걸까?

돈바스 전쟁 2014년에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친러시아 세력이 반정부 단체를 만들어 독립을 선언했다. 그 결과 대규모 내전이 발발했으며, 결국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 비극을 잉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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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룽가>


2014년 ┃ 감독 올란도 폰아인지델 ┃ 넷플릭스 


아프리카 콩고 비룽가 국립공원에 센퀘퀘 센터가 있다. 부모 잃은 고릴라를 데려와 키우는 곳이다. 대자연이 품은 센터에서 인간과 고릴라는 서로 껴안고 어루만진다. 헌신과 우애의 따듯한 기운이 맴도는 공간. 그런데 총알이 날아다니고 대포가 불을 뿜는다. 앞서 천연자원을 탐낸 외국 정부가 콩고를 붙들고 흔들자 내전이 터졌다. 폐허가 되어 가는 콩고에서 몇몇이 자연을 지키고자 비룽가로 모였다. 그들은 고릴라와 교감하면서 생명들이 연결되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반군이 밀려들고, 죽음을 불사한 사람들은 그에 맞서려 한다. 고릴라 한 마리가 포탄 소리에 놀라 숨을 거두고 만다. 전쟁은 모든 삶을 파괴한다.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명의 삶을.

콩고 내전 외세 개입에 이은 르완다 대학살의 여파로 난민이 대거 넘어오자 1996년 후투족 출신 정권과 반군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다. 이를 기화로 2차 내전, 이투리 분쟁 등이 이어져 콩고를 전쟁의 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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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거 댄 블렛>


2017년 ┃ 감독 마리암 에브라히미 ┃ D-BOX 


이란 출신 사에이드 사데지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 피 흘리며 쓰러진 병사의 사진을 찍었다. 이란 정부는 사명감을 가지고 찍은 그의 사진을 선전 도구로 썼다. 사진 속 눈물은 성스러운 애국, 죽음은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다. 정부가 순교라는 이름으로 징집한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이란 지도자는 말했다. “다른 믿음을 가진 자가 전부 없어질 때까지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전쟁이 숭고하다 하는 신이 정말 신인가? 사데지는 참회한다. 그리고 영웅이라 칭송받은 사진 속 인물들의 현재를 찾아 나선다. 그는 독백한다. “모든 전쟁은 똑같고 영웅은 없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이란과 이라크에 번지자 1980년 양국은 전쟁을 시작했다. 영토 분쟁과 석유 지배권 등이 얽힌 전쟁은 소모전을 거듭하다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채 1988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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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기억들>


2019년 ┃ 감독 장후영 ┃ D-BOX 


내가 옳다는 믿음이 실은 광신임을 알게 되었다면. 캄보디아 농부 키우 퍼우는 온화한 성품으로 인망이 높다. 인자한 아버지, 친절한 이웃, 좋은 사람. 카메라 앞에서 망설이던 그가 입을 연다. “프놈펜에 있을 때 뚜얼슬랭에서 일했어요.” 크메르루주 정권이 대량 학살을 자행한 1970년대에 그는 소년병이었다. 정권은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 약속했고, 키우 퍼우는 그게 진실이라고 믿었다. 1만 7000명을 강제로 잡아 온 수용소 뚜얼슬랭에서 근무했다. 고문과 학살이 일상이던 그곳에서 12명만 살아 나갔다. 키우 퍼우는 울먹이며 인터뷰를 중단한다. “저를 구원해 달라고 매일 신에게 기도해요.” 그의 눈물이 인류사에서 마지막 눈물이길 기원한다.

킬링 필드 1970년대 중반, 폴 포트가 이끄는 급진적인 캄보디아 정권 크메르루주가 양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국민을 개조하겠다며 벌인 만행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200만 명은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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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 증후군의 기록>


2019년 ┃ 감독 존 햅터스, 크리스틴 새뮤얼슨 ┃ 넷플릭스 


잠자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근심 따위 존재하지 않는 꿈속에서 푹 쉬는 예쁜 얼굴. 이상하다. 아이가 깨어나지 않는다. 하루, 한 달, 1년을 잠만 잔다. 도대체 왜 아이는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가. 일곱 살 다리아 가족은 자국에서 도망쳐 스웨덴으로 왔다. 부모가 국가기관에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받은 뒤였다. 어렵사리 스웨덴으로 건너왔으나 망명은 쉽지 않다. 다리아는 울부짖었다. “추방당해 죽게 될 거야!” 그때부터다. 아이는 잠만 잤다. 차디찬 얼음을 배에 올려도 혈압조차 변하지 않는다. 다리아는 근심 따위 존재하지 않는 꿈속으로 자신을 유폐했다. 왜 잠만 자느냐고 아이에게 묻지 말자. 왜 아이를 잠들게 했는지, 어른들이 대답해야 한다.

체념 증후군 전쟁 등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 중 일부는 깊은 잠에 빠진다. 지독한 공포를 느끼는 아이는 자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2003년 첫 사례가 보고되었고, 현재 수백 명이 길게는 2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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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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