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한민국 푸드 트렌드에 영향을 끼친 유명 셰프 12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올해 당신이 주목한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고, 또한 어떤 결과를 성취했는가? 미식 키워드로 정리한 셰프 인터뷰.
요나구니 스스무 셰프는 20년간 뉴욕에서 셰프로 일했고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주방장이 되어 <뉴욕타임스>의 주목을 받았다. 1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오키친을 오픈, 현재는 창작 레스토랑 오키친의 총괄 디렉터로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재미와 자유
‘OKitchen’ 요나구니 스스무 셰프
오키친은 ‘세상의 요리를 다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셰프는 요리하는 기술이 있는 사람으로서, 요리의 기본기를 갖추고 기술을 익혔다면 모든 장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리의 세계는 넓고 재미있습니다. 요리의 정체성을 이탤리언, 프렌치 등으로 구분 짓지 않고 모든 요리에 도전하고 섭렵하는 과정을 거치며 몸으로 익혀야 비로소 본인이 추구하는 요리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레서피 없이도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고 재미있는 창작도 나오는 거죠.
저 또한 재미를 위해 많은 도전을 하고 있는데, 최근의 과제는 ‘스테이크’, ‘살루미’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스테이크를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스테이크 맛을 통해 그 레스토랑을 평가하려 해요. 저는 생각이 좀 다르지만, 많은 사람이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스테이크이니 만큼 최상의 것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직접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에 도전했고 저와 오키친 셰프들이 합심해서 새로운 성과를 얻었어요.
저희는 농장에서 채소를 키우고 재래수산시장에서 새로운 해산물을 발견해 요리에 응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스테이크하우스에서나 시도하던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에 도전함으로써 또 다른 식재료를 하나 더 획득하게 된 거죠. 살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셰프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노력, 재미를 추구하며 얻은 자유로운 요리는, 분명 먹는 이들도 즐거울 거라 믿습니다.
이경호 셰프는 올해 7월 오픈한 광화문 오키친 3의 총괄 셰프이다.
Salumi
‘OKitchen 3’ 이경호 셰프
2013년은 저에게 있어 ‘살루미의 해’라고 할 수 있어요. ‘살루미’는 저에게 슬로푸드의 새로운 활용, 도전, 연구 등을 모두 함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살루미란 ‘염장한 고기’란 뜻으로 햄, 소시지, 프로시우토 등 육류 가공식품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관련 책을 보고 자료를 찾으면서 살루미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오키친 3라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부터 살루미 만들기를 조금씩 시도해왔는데, 올해 6월 돼지 2마리를 잡아 염장하고 숙성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살루미 만들기에 돌입했어요. 물론 실패도 했죠. 염장하고 발효하는 과정이 습도와 온도 등 환경 면에서 살루미의 고장인 이탈리아와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죠. 계속 시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탈리아 살루미 맛을 앞서는 ‘한국식 살루미 만들기’란 과제를 열심히 실행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살루미를 ‘살루미 플레이트’ 메뉴로 선보이고 있고, 또 다른 메뉴로 계속해서 개발해나갈 예정이에요.
안성환 셰프는 이태원에 위치한 오키친 2의 헤드 셰프로 활동 중이다.
남향일도
‘OKitchen 2’ 안성환 셰프
남원공설시장에는 남성식도공업사라는 가게가 있어요. 그곳에서 남원시가 인정하는 칼 장인이 만드는 부엌칼 ‘남향일도’를 판매하는데, 그것을 구하기 위해 장장 왕복 6시간을 달려 남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스테인리스가 아닌 무쇠로 만들었고 손잡이에 ‘명품’이라는 글자와 함께 ‘이강 곽용섭’이라는 장인의 이름을 새긴 칼. 그걸 보는 순간 투박한 모양새의 묘한 매력에 흥분해 칼을 5자루 구입했답니다. 그중 철도 레일을 눌러 만든 구형 모델 칼을 발견했는데,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급하게 구입하고 말았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너무 즉흥적으로 구입했나 살짝 후회하기도 했는데 웬걸요, 그곳에서 산 칼이 모두 품질이 탁월했고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갈지 않았는데 아직도 날이 날카롭게 서 있어요. 그동안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외국의 고가 명품 브랜드들의 칼을 사용했고, 보물 다루듯 하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요리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외국 서적을 통해 요리를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얻어온 저에게 남향일도란 칼 한 자루는 한국적인 것에 집중하고 관심 갖게 해준 도구이죠. 시간 날 때마다 전국에 있는 오일장을 돌아다니는데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그 지역에서만 나고 소비되는 식재료를 발견할 때면 제가 얼마나 지식이 부족했는지 새삼 느끼게 되죠. 외국의 유명 셰프들의 요리를 봐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향토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많아요. 로컬 재료를 활용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친 음식이야말로 최상의 맛을 선사하는 데 가장 적격이 아닐까 생각해요.
신용일 셰프는 병과점 ‘지화자’에서 일하다 프랑스로 건너가 에콜 르노트르(Ecole le Notre)에서 제과ㆍ제빵을 공부했다. 일본의 한식당 ‘고시레’, 모던 한식당 ‘품’의 헤드 셰프 등으로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떡집 ‘합’과 세컨드 브랜드 ‘고물’에서 떡과 병과, 음청류를 현대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Brand Identity
‘합’ 신용일 셰프
남산에 있던 ‘합’의 매장을 청담동으로 이전하고, 세컨드 브랜드 ‘고물’ 론칭을 준비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메뉴와 네이밍, 그릇, 포장, 인테리어 등은 그곳에서 선보이게 될 음식의 콘셉트를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낮 동안에는 새로운 메뉴 창작과 식재료 구입, 요리 등에 에너지를 소진하다 보니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잠자기 전 샤워를 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씻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곤 하죠. 샤워 중에 ‘떡고물’에서 영감을 받아 ‘고물’이라는 이름을 떠올린 순간, 그에 맞는 인절미를 만들어 선보여야겠다는 생각까지 단번에 정리가 됐어요.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고리로 연결되어 있던 수많은 생각이 좌르륵 풀리는 거죠. ‘합’의 이름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자 ‘合’의 모양에 떡 상자를 보자기로 포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무명 보자기를 떠올리며 답례 떡을 만들게 됐죠. 무명 보자기에는 손으로 만드는 것, 우리 것을 지키는 것,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저의 디자인 콘셉트와 방향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지금 제작 중인 보자기 포장 조형물까지 모두 샤워하며 얻은 것들이죠. 물론 한순간의 아이디어는 우연한 결과물이 아닐 겁니다. 무수한 고민과 연구가 어느 순간 반짝하고 발현되는 것일 텐데요, 저는 하루 중 가장 릴랙스할 수 있는 샤워 시간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창조하는 데 가장 적절한 타이밍인 것 같아요.
최현석 셰프는 ‘크레이지 셰프’란 별명을 지닌 ‘엘본 더 테이블’의 총괄 셰프. 본인의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는 창작 요리를 담은 두 번째 요리책 <푸드 아트>를 펴내기도 했으며, 현재 캐주얼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있다.
도전
‘엘본 더 테이블’ 최현석 셰프
올해는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였어요. 나태했다고 할까? 갑자기 살이 찌고 머릿속에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가 책상 서랍에서 예전에 취미로 킥복싱 할 때 쓰던 핸드랩을 발견하곤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머릿속에 뭔가 액티브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생각들이 도전적인 아이디어로 바뀌었죠.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라 하면 고급스럽게 치장하고 격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편견을 깨보기로 했어요. 고객이 제안하는 레서피를 재창조해 요리를 완성해주는 레스토랑. 또, 파인 다이닝의 가격이 부담스러운 젊은 층에게 문턱을 낮춘 레스토랑을 생각했죠. 그러나 단가를 낮추기 위해선 식재료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자연히 음식 맛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걸 커버하기 위해 조미료와 자극적인 맛으로 대중의 입맛을 잡으려는 레스토랑이 생겨나는 거죠. 그런 악순환을 타파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킥복싱으로 심신을 단련하면서 점차 해결 방안을 얻게 되었어요. 단가가 높은 베이컨을 구입하는 대신 직접 만든 베이컨으로 단가는 낮추고 맛은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고, “될까?” 하는 의구심이 “한번 해보자!”라는 도전적 자세로 변화하게 되었죠. 도전 정신이 살아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의 탄생을 위해 오늘도 노력 중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어윤권 셰프는 밀라노 포시즌호텔 부주방장을 역임한 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와 이탈리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감각을 담은 예술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클래식
‘리스토란테 에오’ 어윤권 셰프
‘리스토란테 에오’는 오픈 때부터 그날의 좋은 재료를 써서 매일 메뉴가 달라지는데요, 맛, 조리 테크닉,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는 플레이팅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죠. 치열하다 못해 집착이라고 할 만큼 저만의 신념을 중시하며 한 방향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메뉴를 구상할 때 일부러 음악을 찾아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무의식중에 들었던 음악이나 그때의 기분, 상황이 꽤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 뒤론 음악 감상을 즐겨 일을 마친 뒤나 쉬는 날에는 소파에 걸터앉아 장르에 상관없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해요. 대중가요를 듣다보니 경쾌하고 쾌활한 분위기는 좋지만 다소 즉흥적인 부분도 느껴졌어요. 최근에는 차분하면서도 기승전결이 분명한 피아노합주곡, 현악기연주곡 등 다시 클래식 음악에 주목하고 있어요. 도입부터 마지막까지 짜임새가 분명한 클래식을 듣다 보면 제가 추구하는 파인 다이닝과 닮았다는 걸 느끼고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클래식에 심취하면서, 고객이 음식을 먹으며 처음에는 부드럽게, 그러다 음식에 대한 인상이 점점 강렬해지고 마지막에는 잔잔한 여운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그 방법을 고민하며 메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전에는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요리 세계를 얻은 것 같아요.
김은희 셰프는 뉴욕 요리학교 CIA를 졸업하고, 미국의 프렌치 레스토랑 불레이(Bouley), 크뤼(Cru) 등에서 경력을 쌓은 뒤 귀국해 요리 수업과 컨설팅을 하다가 2009년 서래마을에 ‘더 그린테이블’을 오픈해 한국의 식재료를 사용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Spain
‘더 그린테이블’ 김은희 셰프
지난 6월, ‘더 그린테이블’을 오픈한 지 3년 만에 처음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바르셀로나(Barcelona)’와 스페인 북동부 휴양지 ‘코스타 브라바(Costa Brava)’에 일주일가량 머물렀죠. 스페인은 지금 세계의 미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드리드 퓨전(Madrid fusion)’이라는 세계적 음식 박람회가 열릴 뿐 아니라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도 많습니다. 밤 12시까지 꾸벅꾸벅 졸면서도 포크를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았는데 타파스 바 ‘타겟(Target)’과 ‘마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sategui)’, ‘미라마르(Miramar)’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특히 미라마르는 캐주얼하면서도 우아한 요리와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이상향에 가까웠죠. 한국에서는 파인 다이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아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휴양지에서 우직하게 품격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보며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양한 요소를 모아 궁극적으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요리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한번 정립하게 됐고요. 이번 여행을 통해 미각의 중심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2000년대 초반 들어 스페인 요리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분자요리의 발전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재료의 성질과 조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질감과 맛으로 창조하는 것이죠. 분자요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미각 혁명가라 불리는 ‘엘불리(El Bulli)’의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 셰프이고요.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 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분자요리는 화려하지만 맛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 여행 중 맛본, 엘불리(El Bulli) 출신 셰프들의 요리는 멋진 모양새는 물론, 적재적소에 위트를 담고 있으면서 맛까지 좋았죠. 분자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국에 돌아와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신메뉴로 허브오일에 콩피한 조개, 오징어콩소메를 내놓았는데, 앞으로도 새로운 메뉴를 추가할 생각이에요.
오세득 셰프는 지난 8년간 성공적으로 프렌치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줄라이’를 운영하며 국내 프렌치의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현재 올리브TV의 ‘한식대첩’에서 거침없는 입담을 뽐내며 그만의 요리 세계를 어필하고 있다.
발효
‘줄라이’ 오세득 셰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라며 ‘세상은 서서히 제3의 맛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고 예견했습니다. 음식이 발효되어 나는 깊은 맛, 거기에는 자꾸 먹고 싶게 하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바로 ‘감칠맛’입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에 여러 가지 향이 더해지고, 또 거기에 감칠맛이 더해지면 비로소 ‘맛있는 음식’이 탄생합니다. 저는 우리의 장이 갖고 있는 발효의 맛, 맛의 에센스에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의 프렌치 레스토랑 ‘줄라이’에서는 간장이나 된장을 넣은 메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프렌치에 간장과 된장이 어울리느냐”고 물어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음식에서 국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음식 자체의 완성도에 달려 있을 뿐이지요. 분자요리가 스페인 음식도 프랑스 음식도 아니지만, 일식에도 한식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말이죠.
서양에서는 주로 고기와 지방을 많이 먹기 때문에 느끼함은 덜고 고소한 맛을 살리기 위해 산미와 감칠맛을 내는 발효 식품이 발달했습니다. 발사믹식초가 그 예이지요. 반대로 동양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하기에 부식으로는 짠맛과 감칠맛을 내는 발효 식품이 발달했지요. 날카로운 짠맛이 아닌 은은하고 깊은 짠맛과 감칠맛을 내는 소스로 된장, 간장만 한 것이 없습니다. 맛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네 발효 장에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칠맛이, 맛의 에센스가 담겨 있습니다. 감히, 우리의 장이 지닌 맛은 미래의 맛이라 단언합니다.
권우중 셰프는 ‘계절 밥상’과 ‘비비고’의 총괄 셰프로 활약 중이며 차별화된 한식 메뉴를 선보이기 위해 한국의 토종 식재료를 발굴하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종갓집
‘계절 밥상’ 권우중 총괄 셰프
2006년에 발간 된 <로컬푸드>는 국내의 농업 문화에 경종을 울렸을 뿐 아니라 음식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008년 우리 땅에서 자란 제철 식재료만을 엄선한 채집 레스토랑이 국내 외식업계 트렌드를 이끌었고, 그 이후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 특산물을 내세운 고급 음식을 레스토랑에서 선보였습니다. 그런 음식은 하이엔드 레스토랑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제철 식품, 로컬푸드’라는 음식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올해는 대중화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7월에 오픈한 ‘계절 밥상’은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기본으로 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인데,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 몸소 느꼈어요.
올해 기억에 남는 식재료를 꼽으라면 ‘동아(동과)’입니다. 동아는 조선 시대 <음식디미방> 같은 한식 고서적에 많이 소개되는 식재료이지만, 현재는 전라남도 지방에서 서너 곳의 농가에서만 수확합니다.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이 제철로 겨울 수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분이 많고, 수박 껍질의 흰 부분처럼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지니고 있어요. 광주에 위치한 종갓집에서 ‘동아정과’, ‘동아만두’, ‘동아누르미’, ‘동아섞박지’를 맛보고 영감을 받아 동아가 수확되는 한 달간 한정 메뉴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어요. 하지만 대형 레스토랑이다 보니 오랜 시간 정성스레 만든 고품격의 종갓집 내림 손맛을 전할 수 없어 아쉬웠어요.
현재 TV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전국에 있는 종갓집 음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종갓집 음식은 지역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여 건강하고 단아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맛이 담겨 있습니다. 한식의 재발견이라 할 정도로 종갓집 내림 음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요즘, 한식의 맛을 앞으로 어떻게 알리고, 맛보일지 고심 중입니다.
고은수 쇼콜라티에는 파리 에콜 르노트르(Ecole le Notre)에서 초콜릿 봉봉 및 초콜릿 디저트 과정을, 발로나 에콜 뒤 그랑 쇼콜라(Valrhona Ecole du Grand Chocolat) 초콜릿 봉봉 과정을 이수했다. 프랑스 초콜릿 전문점 삐아프(Piaf)를 오픈해 디저트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초콜릿과 커피의 컬레보레이션
‘삐아프’ 고은수 쇼콜라티에
서로 다른 브랜드가 각자의 장점만 살려 새로운 상품을 창조해내는 컬레보레이션이 패션, 뷰티 등에 이어 음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요. 올해 윈도 베이커리 컬렉션에 참가하며 초콜릿과 커피의 조화를 처음으로 꾀해봤어요. 저희 삐아프 초콜릿 봉봉(초콜릿 셸에 가나슈나 충전물을 채운 것)에 특정 블렌드 커피를 접목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커피는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는 막연한 통념과 달리 특정 커피와 봉봉은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반면, 예상치도 못한 최악의 맛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탄생한 ‘커피 봉봉’의 경우 로스팅의 경과일, 갈린 원두 입자의 크기, 커피를 우릴 때 젓는 횟수 등에 따라 완성된 제품의 풍미가 달라집니다. ‘공정의 작은 차이가 결과의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당연한 원리를 새삼 깨닫고 더욱 많은 변수를 섬세하게 짚어내려 노력하게 됐어요. 기존 커피 봉봉을 리뉴얼할 때 어떤 브랜드의 원두를 써야 할지 고민하다 ‘커피 리브레(Coffee Libre)’를 알게 됐고, 커피 맛은 물론 커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을 꿋꿋이 지켜가는 서필훈 대표의 자세가 제가 초콜릿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성을 닮아 있어 본격적으로 커피 리브레와의 컬레보레이션을 선보이게 됐어요. 다양한 제품을 연구한 끝에 최종적으로 도미니카산 카카오로 만든 다크초콜릿과 밀크초콜릿을 블렌딩하고 커피 리브레의 블렌드 원두를 접목한 ‘커피 가나슈 봉봉’이 탄생됐어요. 입안에서 알싸하게 퍼지는 커피 향과 진한 초콜릿의 맛이 참 매력적이랍니다. 지금도 과일 씨앗이나 견과류를 응용해 색다른 맛을 내고 있는데요, 2014년에는 다양하고 재밌는 ‘식감’이라는 즐길 거리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이형준 셰프는 실험적이고 감각적인 요리로 주목받는 셰프로 현재 콘셉추얼 프렌치 퀴진 ‘라 카테고리’와 캐주얼 프렌치 퀴진 ‘메종 드 라카테고리’의 주방을 총괄하고 있다. 파리의 르코르동 블뢰에서 수학하고 유럽의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공감각을 채우는 레스토랑
‘메종 드 라카테고리’ 이형준 셰프
다른 레스토랑에 방문 할 일이 있으면 단순히 음식의 맛뿐 아니라 레스토랑 전체의 표정을 봅니다. 공간의 높이와 넓이, 테이블 배치와 전체적인 색상과 디자인, 서버들의 동선 까지… 공감각은 동시 감각의 속성으로 어떤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이 현상을 말합니다. 어떠한 시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맛의 감각 또한 달라지겠지요. 칸트는 감각을 ‘감성적 인식의 질료’로 규정하였습니다. 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이 합쳐져 ‘그날 레스토랑의 식사는 좋았다’고 말하게 됩니다. 메종 드 라카테고리의 오픈을 준비하면서 뉴욕으로 시장조사 차 떠났을 작은 비스트로 한 곳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그릇은 공간의 높낮이에 대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지요. 메종 드 라카테고리의 경우 천장이 매우 높고 공간이 넓어 일반적인 파인 다이닝에서 사용되는 크고 넓적한 그릇을 사용한다면 정신이 분산되어 산만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릇의 너비는 줄이되 높낮이에 변화를 줘 리듬감을 주었습니다. 메뉴 또한 높낮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으로 구성하였지요. 디저트의 경우, 테이블에 서빙 될 때의 손동작을 먼저 생각해 만들었습니다. 공감각적인 영감으로 메뉴를 만들고, 또 손님들은 레스토랑 전체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으로 식사를 하게 되는 셈이지요. 레스토랑은 미각을 넘어선 다양한 감각이 살아 넘치는 유기체와도 같습니다.
샘킴 셰프는 드라마 <파스타>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졌으며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나세라’의 총괄 셰프로, 올리브TV의 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활동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는 스타 셰프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소외 계층 아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등 아동·청소년을 위한 활동에 열심이다.
미식 교육
‘보나세라’ 샘킴 셰프
요즘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20개월 된 아들 다니엘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내느라 아들을 볼 시간이 한정되어 있지만 가능한 시간에는 아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려고 최선을 다하지요. 아직 말도 다 떼지 못한 아이와 다 큰 성인 남자가 어떻게 소통하느냐고 하지만 저에게는 ‘음식’이라는 강력하고도 사랑스러운 무기가 있어요. 제가 만든 음식을 아이는 ‘아빠의 음식’이라며 맛있게 먹습니다. 저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 앞에 앉아 음식에 대해, 재료에 대해 아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 아빠와 음식을 먹으며 나누던 따뜻한 추억을 지니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미식’의 즐거움을 체화하고 더 나아가 좋은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을 키우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장기 아이의 몸은 백지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이건 나쁜 음식이건 그 효과가 확실하게 눈에 보입니다.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인지 아이를 통해 배우게 되지요. 아이의 혀도 백지와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미각 체험이 평생을 가기에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오감이 발달하는 단계에 미각의 발달도 도와주어야 합니다. 미각 교육의 첫 번째는 재료 본래의 맛을 아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다니엘에게 음식을 해줄 때도 그렇지만, 간혹 레스토랑을 방문한 아기 손님에게는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은 토마토파스타를 즐겨 냅니다. 토마토소스 본래의 감칠맛과 파스타 면의 식감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토마토파스타가 익숙해졌다면 거기에 생바질 잎을 약간 더하거나 치즈를 약간 뿌려 섬세한 향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먹는 행위를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의 즐거움과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삼십여 년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식 교육을 실행하고 있지요. 특히나 일생 동안 경험할 미각을 좌우하는 단계인 유아기부터 11세까지의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맛을 종류별로 체험케 함으로써 다양한 미각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다양한 생채소와 과일을 간식처럼 즐겨 먹는 아들에게 그것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에도 이름과 고향이 있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느낍니다. 미각 교육은 단순히 미각을 발달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기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연스럽게 건강한 식재료는 물론, 식재료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 환경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슬로푸드 운동이 창시된 이탈리아의 미각 교육 역시 단순히 천천히 조리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음식과 그 문화를 체험케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 미식을 아는 것은 인생의 큰 보물이자 고마움입니다. 저는 우리 아들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보물을 발견하게 해주고 싶어요. 먹거리를 통해 길러진 감성이 평생 동안 아이들 생활에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을 거라 확신합니다. 영국 학교 급식을 뒤바꾼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처럼, 셰프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2013년, 대한민국 푸드 트렌드에 영향을 끼친 유명 셰프 12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올해 당신이 주목한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고, 또한 어떤 결과를 성취했는가? 미식 키워드로 정리한 셰프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