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요리 연구가이자 일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슬로 패스트 쿠킹을 강의하는 기타무라 미츠요. 자연이 만들어낸 식재료를 간결한 조리법으로 만들어 본연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린 요리를 선보이는 그녀가 전하는 상큼한 레몬 이야기.
슬로 패스트 쿠킹을 말하다
기타무라 미츠요는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에서 29년간 스페인어를 가르쳤고 오랫동안 허브와 다양한 식문화를 연구했다. 현재는 일본에서 유명한 허브 연구가로 활동 중이며, 일본의 집과 이탈리아 파르마를 오가며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요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슬로 패스트 쿠킹’이다. ‘슬로푸드’는 많이 들었지만 ‘슬로 패스트 쿠킹’이란 무얼까? 말 그대로다. 시간이 걸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슬로푸드를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빠르게 조리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식재료는 그 자체가 지니는 맛과 향만으로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맛을 내기 위해 다른 재료나 양념을 더하는 과정 없이 쉽고 간결하게 완성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슬로 패스트 쿠킹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슬로푸드를 선택하는 노력과 지혜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대로 재배되고 만들어진 식재료가 아닌 기술의 힘을 빌려 재빨리 기른 채소나 자연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든 된장이나 김치 등은 슬로푸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몬, 허브, 올리브유로 조리하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전철로 1시간. 가나가와 현 미우라 반도의 서쪽에 있는 가마쿠라 시는 여름철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이런 기후 조건을 갖춘 가마쿠라 시 근처에 위치한 기타무라 미츠요 선생 자택의 작은 정원은 레몬 나무 두 그루와 함께 무성하게 자란 허브들로 가득하다. 기타무라 선생은 주방에서 요리하다 정원으로 나가 바로바로 필요한 허브를 가져다 쓴다. 그녀의 요리에서 레몬, 허브, 올리브유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것들은 다른 잡내를 잡아주고 본연의 맛과 향을 더 살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레몬은 소금이나 다른 양념 대신 간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면서 그 자체만의 산미로 요리의 맛과 영양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요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기타무라 선생의 요리 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요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먹는 요리에 장난치지 말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쉽게 지키기 힘든 말이다. 우리가 요리할 때는 어떤가? 요리가 맛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 예쁘게 스타일링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식재료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맛있는 허브를 헛되이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타무라 선생은 요리에 허브를 사용할 때 장식용이 아니라 그 요리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할 뿐이다. 예를 들어 허브를 넣은 오븐 구이를 할 때 허브를 위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허브의 맛과 향이 제대로 식재료에 배어들게 하기 위해 밑에 깐다. 완성된 요리를 보면 허브는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지만 사용된 허브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맛을 선사한다. 레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요리에 보여주기 위해 쓸데없이 레몬 슬라이스를 많이 곁들이거나 하지 않는다. 레몬을 넣은 요리라며 레몬을 곁들여 표현하는 대신 레몬이 들어가 풍성해진 그 맛으로 레몬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1 레몬마리네이드 닭날개구이 / 2 스파이시치킨수프
1. 레몬즙, 허브, 올리브유로 구워낸 향긋한 맛
기타무라 선생의 닭 날개 오븐 구이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마리네이드 소스에 소금을 넣지 않고 굽기 직전에 뿌린다는 것, 허브를 오븐 팬에 깔고 그 위에 닭 날개를 올려 구워내는 것이다. 마리네이드의 주목적은 잡내를 없애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네이드 소스를 만들 때 미리 소금을 넣으면 닭고기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육질이 질겨진다. 흔히 허브를 넣어 구이를 할 때 허브를 위에 뿌리는데 그러면 허브의 향이 위로 날아가버린다. 오븐 팬에 깔고 위에 닭 날개를 올리면 허브의 향이 닭 날개에 듬뿍 스며들고 닭 날개가 팬 바닥에 붙어 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구워낸 닭날개구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을 머금어 부드러운 닭의 육질을 즐길 수 있다. 상큼한 레몬의 맛이 더해져 풍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2. 비타민과 콜라겐이 듬뿍 들어간 보양 수프
2개의 뼈가 있는 닭 날개는 콜라겐이 듬뿍 들어 있는 부위로 수프로 끓이면 피부 미용에 탁월하다. 여기에 레몬즙을 넣으면 닭의 잡내를 없애주고 비타민 C가 들어간 산뜻한 맛의 건강 수프가 된다. 수프를 끓일 때 천연 소재의 무쇠 냄비를 사용하면 닭고기의 살이 부스러지지 않고 요리가 맛있게 만들어지는데 보통 냄비를 사용해도 된다. 난푸라는 태국의 조미료로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생선 간장이다. 난푸라는 제조사에 따라 짠맛에 차이가 있으므로 적당히 조절한다.
3 이탈리아풍 커틀릿 / 4 파에야
3. 레몬즙을 듬뿍 적셔 먹는 심플 커틀릿
먹기 직전에 생레몬을 즉석에서 짠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산미가 더해진다. 입맛에 따라 소금이나 후춧가루로 간할 수 있지만 파르메산치즈가루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특히 레몬 덕분에 소금을 넣지 않고, 또 다른 소스를 뿌리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게 커틀릿을 즐길 수 있다.
4. 해산물의 풍미를 더해주는 레몬즙
스페인의 대표적인 쌀 요리인 파에야. 파에야에도 레몬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해산물이 들어간 파에야에 레몬즙을 듬뿍 뿌려 먹으면 해산물의 비린 맛을 잡고 짠맛을 부드럽게 중화해준다. 또, 기름기를 빼고 산미를 더해줘 한층 풍미가 좋아진다.
5 납작보리샐러드 / 6 레몬에스프레소
5. 여름철 시원하게 즐기는 곡물샐러드
무더운 중동의 레바논에서 쿠스쿠스, 다진 양파, 레몬즙, 올리브유와 함께 더운 날씨에 잘 상하지 않도록 보존력을 지닌 허브인 민트 등을 넣어 만드는 샐러드인 타불레. 일본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인 쿠스쿠스 대신 보리를 활용해 만들었다. 차가운 성질을 지닌 보리는 여름철에 좋은 식재료로 시원하게 샐러드로 만들면 산뜻한 민트 향과 탱글탱글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6. 비타민 C를 더한 에스프레소
이탈리아의 유명한 레몬 산지인 아말피에서는 해변 옆에 레몬 농장이 넓게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다. 레몬에스프레소는 아말피에서 아주 흔한 메뉴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에스프레소에 레몬 껍질을 넣은 레몬에스프레소를 내놓기도 한다. 뜨거운 에스프레소지만 무더운 여름날에 마셔도 입안에 감도는 레몬의 상큼함 때문에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또, 레몬 껍질이 함유하고 있는 비타민 C를 섭취함으로써 더위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리몬첼로 / 레몬셔벗 / 레몬잼
레몬을 통째로 활용한 3가지 레서피
자연이 준 식재료에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특히 레몬은 버릴 것이 없는 식재료다. 레몬 껍질은 리몬첼로, 과즙은 셔벗, 남은 흰색 속껍질은 잼으로 만든다. 겉껍질의 에센셜 오일, 흰 속껍질의 펙틴, 과육의 비타민 C, 레몬 모든 부위에 있는 영양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리몬첼로 레몬의 껍질에는 에센셜 오일이 있는데, 신선하고 달콤한 향이 나고 다양한 약효를 지녔다. 이 레몬 껍질로 만든 이탈리아의 레몬 리큐어인 리몬첼로는 식후 소화제로 먹는다. 마시기 5시간 전에 냉동고에 넣어 완전히 얼지 않고 살얼음이 살짝 꼈을 때 마시면 좋다.
레몬셔벗 생레몬즙을 듬뿍 넣어 만든 셔벗은 산뜻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여름 디저트. 더운 여름에 체력이 고갈됐을 때 비타민 C를 듬뿍 보충하고 더위로 잃은 입맛을 살려준다.
레몬잼 레몬은 노란 껍질 부분과 과육을 뺀 흰색 부분은 흔히 버리기 마련인데, 이 부분에 펙틴이 많아 버리기에 아깝다. 쓴맛이 나기 때문에 하룻밤 물에 담가 쓴맛을 뺀 뒤 잼으로 만들면 펙틴이 많아 응고가 잘된다. 잼을 완성했을 때 흰색 잼은 맛이 없어 보일 뿐 아니라 신맛이 적다. 여기에 하와이의 무궁화라 불리는 붉은 컬러 허브인 하이비스커스를 말려 더하면 산미와 붉은 컬러가 더해진 잼이 완성된다. 하이비스커스를 구하기 힘들면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로컬푸드의 허브를 넣는 것을 시도해도 좋다.
일본의 유명 요리 연구가이자 일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슬로 패스트 쿠킹을 강의하는 기타무라 미츠요. 자연이 만들어낸 식재료를 간결한 조리법으로 만들어 본연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린 요리를 선보이는 그녀가 전하는 상큼한 레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