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촬영 중간중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표정을 바꿔가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촬영 전날에는 따로 연습도 하세요?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했죠. 사진이든 영상이든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거든요. 지금은 움직임에 따라 옷의 모양이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는지 틈틈이 확인하려고 합니다.
배우분들은 자기 얼굴과 몸의 장점을 스스로 잘 아는 것도 중요하겠어요.
저도 제 장점을 아직 연구하는 중이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짙거든요. 그 특징을 잘 썼을 때 감정을 좀 더 직관적이고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틀 전에 드라마 <눈물의 여왕> 방영이 시작됐죠. 직접 출연한 입장에서 보니 어떠셨어요?
사실 김수현, 김지원 두 주연 배우의 분량이 워낙 많다 보니, 제가 함께 촬영하지 못한 장면도 꽤 됐어요.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궁금해하면서 봤죠. 이제 막 1, 2화가 공개됐지만 ‘우리 드라마 진짜 재미있다’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대그룹 전무이사 ‘홍수철’ 역을 맡았어요. 재벌 연기를 하면 촬영장에서 더 편한 점이 있나요?
말씀하신 대로 수철은 재벌이니까 늘 운전기사가 있어요. 그 덕분에 추울 때든 더울 때든 차 뒷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연기했죠.(웃음) 아이러니하게 이런 것도 있었어요. 정말 부자들은 한여름에 덥게 입고, 한겨울에 얇게 입을 것 같아요. 대중교통을 탈 일이 없을 테니까요. 늘 누군가 몰아주는 차를 타니까 그만큼 복장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무게감 있는 수트를 주로 입었는데, 사람들이 많은 촬영장에서는 무척 더워서 애먹기도 했어요.
체중 변화도 있었나요?
역할에 상관없이 작품 할 때마다 고민하는 점인데요. 제가 워낙 살이 잘 빠지는 체질이에요. 촬영 전에 열심히 먹고 운동해서 몸을 불려놔도, 촬영하면 다 빠져 있어요. 이번 드라마도 끝부분에 갈수록 수철이 살이 빠질 거예요. 이건 작은 스포일러일 수 있는데, 살이 빠지는 게 스토리 전개상 잘 맞아서 다행이었어요. 제가 살을 빼려고 뺀 건 아니지만요.
직접 연기한 입장에서 바라본 ‘홍수철’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수철은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 꽤 심해요. 하지만 그런 감정을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되는 인물이에요.
얄미울 수는 있지만 악역이 될 수는 없는 캐릭터겠네요.
그렇죠. 질투나 복수심은 있지만, 동시에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정말 큰 사람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수철은 재벌가가 아닌 평법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굉장히 행복하게 살았겠다’ 싶어요.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의 방식대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목표가 또렷하거든요.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동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인물이에요.
본인이랑 홍수철을 굳이 비교하자면 얼마나 닮은 것 같은가요?
50% 정도예요. 수철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장난스러운 모습이나, 사람들을 대할 때의 적극적인 태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수철은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우직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건 제게 부족하고, 한편으로는 닮고 싶은 점이에요.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주연, 조연, 특별 출연을 가리지 않는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출연작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첫인상이죠. 사람을 만날 때랑 똑같아요. 극본 속 인물이 저한테 매력적인지 생각합니다. 동시에 연기적으로 제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는 최근의 변화와 성장이 있는데 그걸 반영할 수 있는 캐릭터인지, 이런 점들을 대본을 읽으면서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 점에서 지금 내 모습과 캐릭터의 모습이 얼마나 닮았는지도 보겠네요.
그렇죠. 반대로 연기하면서 ‘아, 지금의 나한테는 사실 이게 중요했구나’ 깨닫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작품이었나요?
사실 이번 작품이 딱 그런 경우예요. <눈물의 여왕>에는 가족 얘기가 굉장히 많이 담겨 있어요. 작품에는 크게 ‘퀸즈그룹 가족’과 ‘용두리 가족’이 나와요. 전혀 다른 형태의 가족이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는지, 두 가족이 섞이면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면서 저 역시 가족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죠. 저는 10대 때부터 일하느라 가족이랑 떨어져서 지냈거든요. 평소에는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실은 내가 가족 간의 유대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느꼈어요.
‘촬영 일지’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도 꾸준히 쓰세요?
요새는 안 쓰고 있어요. 촬영 일지를 쓴 건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서였어요. 시간이 지나면 영영 이때를 기억 못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유독 기록에 집착했죠. 지금은 4~5년 전과 비교하면 제작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촬영장에도 근로시간제가 도입됐으니까요. <눈물의 여왕>도 100% 사전 제작으로 촬영했고, 덕분에 현장에서 시간 여유가 많았어요. 요즘은 일지 작성보다 현장에서 모니터링하고 스태프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데 시간을 더 씁니다.
만일 오늘 집에 가서 간략히 <눈물의 여왕> 촬영 일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요?
아마 유쾌한 방명록 같은 글이 될 거예요. 이번 작품에는 원래 알고 지냈던 스태프분들이 유독 많았어요. 매일 현장에 나가서 내가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고, 이야기하니 즐거울 수밖에 없었죠.
가수 연습생 시절에 처음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작품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죠. 지금까지 여러 오디션을 보셨을 텐데, 나름대로 오디션 잘 보는 비법이 있을까요?
운동선수가 시합 준비하는 거랑 비슷해요.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연습해요. 그리고 조금은 호전적인 태도로 오디션을 보러 갑니다. ‘저 한번 잘 봐주세요’보다 ‘제가 한번 보여드릴게요. 잘 지켜 보세요’ 하는 식으로요. 건방진 것 같지만 저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니까요. 이런 생각이 긴장하지 않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정말 긴장하고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합격한 작품도 있나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에 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딱 그래요. 그때 오디션 보고 감독님한테 엄청 혼났어요.
오디션 현장에서 혼나기도 하나요?
그럼요. 제가 어린 나이에 데뷔를 했잖아요. 감독님 앞에서는 연기적으로 부족한 기본기나 소양이 들통날 수밖에 없죠. 사실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오디션 전에, 다른 오디션을 봤어요. 알고 보니 이전 오디션을 본 감독님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 부성철 감독님의 사수셨던 거예요. 그 작품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지만, 사수 감독님이 부성철 감독님께 저를 눈여겨보라고 얘기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작업하진 못했지만 그만큼 애정이 있으셨던 거네요.
맞아요. 그래서 부성철 감독님께서 욕심을 내서 지도해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작품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고요.
모든 작품이 그랬겠지만, ‘촬영하면서 연기 진짜 많이 늘었다’ 했던 작품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춘기 메들리>. 4부작 드라마인데요. 덜컥 캐스팅돼서 김성윤 감독님과 작업했는데 저를 진심으로 믿어주셨고 그만큼 부담도 많이 주셨어요. 감독님께서 늘 “네가 아무리 어리고 경력이 적어도 현장에서 주연 배우로서 다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100명 넘는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네가 잘 챙겨야 된다” 말씀하셨어요. 한참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현장에서 주연 배우가 어떤 태도로 일하느냐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걸요.
출연작을 찾아보니 영화보다는 드라마 출연 비중이 훨씬 높더라고요.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전혀 없어요. 사실 지금도 영화에 대한 갈증이 커요. 20대 초반까지는 제가 영화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었거든요. 오디션 기회조차 거의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드라마 출연 기회를 얻어서 꾸준히 하다 보니 지금의 커리어가 된 거죠. 특별히 영화보다 드라마를 고집했던 건 전혀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나이를 먹는 게 기다려질 수도 있겠네요.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저는 3년 전만 해도 빨리 나이를 먹어서 30대 후반이 되고 싶었어요. 그때만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있을 테니까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죠. 지금은 같은 이유로 20대 후반에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음미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합니다.
아역, 사극, 빌런,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와 역할로 출연하셨어요. 지금 가장 맡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지금 심정으로는 감성보다 이성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것도 작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요. 작년에 <눈물의 여왕>을 촬영하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쓸 감정을 전부 끌어다 썼거든요. 정반대되는 캐릭터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평소 본인 성격은 어떤 편이에요?
저는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편인 것 같아요. MBTI로 말하자면 F보다 T에 가깝죠.
늘 궁금했던 게 T 유형의 배우들은 우는 연기를 할 때 조금 더 어려운 편인가요?
그건 또 다르더라고요. 정말 슬퍼야만 우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말 그대로 연기니까. 하지만 누구나 감성적인 시기나 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는 확실히 감정을 표현하는 게 수월하기도 해요.
원래 연기자보다 가수를 먼저 준비하셨죠. 요즘도 간혹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어렵지 않을까요? 저 지금은 노래 잘 못 불러요.(웃음) 저는 밴드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무대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제가 무대에 설 수는 없겠죠. 다만 그런 배역을 맡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은 해요. 이를테면 <스타 이즈 본>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음악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14년 고등학생 때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셨죠. 딱 10년 전인데, 당시 꿈꾸던 것들을 이루셨습니까?
벌써 10년이네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어딜 가도 연기로 칭찬받고 박수받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처럼 20대 후반이 되면 훨씬 어른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당시 현장에서 만난 어른들처럼요. 딱 절반 정도 성공한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저는 아직도 어른은 아니거든요. 대단한 배우가 된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너무 감사하죠.
그럼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요?
그때는 마흔이 코앞이겠네요. 무엇보다 배우로서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게 첫 번째죠. ‘곽동연’ 하면 생각나는 멋진 작품 3개만 남겼으면 좋겠어요. 배우 이름이 아닌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 연기가 있잖아요. 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본인이 그런 식으로 동경하는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겠네요.
너무 많죠.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병헌, 이희준 선배님의 연기. 후배들 입장에서 그냥 교과서거든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 선배님이 분했던 ‘장경철’처럼 레전드로 남아버린 연기도 있고요. 저도 늘 그런 연기를 꿈꾸죠.
독특하게 ‘상대 남배우 복 많다’는 평이 있더라고요. 같은 연기자로서 ‘좋은 상대 배우’의 조건이 있을까요?
말 먼저 걸어주는 배우?(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현장 분위기가 유쾌할수록 모든 스태프의 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런 점에서 현장에 있는 배우, 스태프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너무 좋죠.
배우는 운동선수처럼 비시즌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어떻게 시간 보내는 편이세요?
특별하게 뭘 하는 건 없는데요.(웃음) 저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의 생활 습관을 만들어놓고 지키려고 해요. 일이 없을 때는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적어도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운동이든, 연기 스터디든, 영어 공부든 정해놓고 그걸 하려고 해요. 어느 정도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꼭 해야 하는 것들을 만들어놓는 거죠. 동시에 그 시간에는 스스로 보상해주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 오늘은 진짜 수고 했다’ 하는 날에는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위스키 좋아하거든요. 집에서 혼자 위스키 한두 잔 마셔요. 그리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집을 어지럽힐 수 있는 권한을 자신에게 주죠. 그렇다고 제가 평소에 칼같이 청소하는 건 아니지만,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궁금해지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최근에 <파묘>가 개봉했잖아요. <파묘> 예고편을 보면 제일 먼저 ‘최민식 배우가 오컬트를?’ 하게 되잖아요. 그게 궁금해서라도 보게 되죠. 최민식 선배님이 그간 연기로 쌓아오신 신뢰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도 궁금함과 신뢰를 동시에 주는 배우가 되면 좋겠습니다.
곽동연의 인생 영화 5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인생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도 이미 좋아하던 배우들이 우르르 나왔던 게 기억나요. 이렇게 오락적이면서도 메시지가 깊을 수 있구나 생각했던 영화입니다.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2014
배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예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배우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엄청난 롱테이크를 통해서 연기하지 않는 순간에도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2016
뮤지컬 영화를 이렇게 즐겁게 본 건 처음이었어요. 뛰어난 음악과 영상이 만났을 때 이토록 폭발적일 수가 있구나. 모든 면에서 ‘아름답다’고 느낀 영화적 경험이었습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2015
배우가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연기할 때 그 혼신이 스크린에서도 느껴지는구나 깨달은 영화예요. 사실주의에 집착했던 연출도 감명 깊었습니다.
<프라이멀 피어>, 그레고리 호블릿, 1996
한창 연기 공부를 할 때 추천받고 본 작품. 이중인격을 다룬 영화들 중에서는 기념비적으로 회자되는 작품인데요. 그야말로 미친 연기를 보여주죠.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이라는 게 매번 놀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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