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경계란 과연 존재할까. 지난 몇 시즌 동안 런웨이에서 선보인 제품들을 자세히 훑다 보면 재치와 난해, 그리고 패션과 예술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기상천외한 디자인이 난무하는데, 간혹 묘한 기시감이 든다.
2022 F/W부터 2023 S/S 시즌 컬렉션에는 특히 엉뚱하고 독특한 핸드백들이 런웨이를 장악했다. JW 앤더슨 컬렉션에선 모델들이 비둘기를 양손에 쥔 채 등장했다. 끈 달린 가방의 형태도 아닌 것이, 3D 프린팅으로 만든 클러치백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자칫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비둘기의 새빨간 눈부터 부리, 몸 전체의 오묘한 색감, 날개와 꼬리의 음영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비둘기 날개를 뚜껑으로 만들어 그 안에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발렌시아가는 2022 F/W 시즌 컬렉션에서 트래시 파우치 백을 선보였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검정 비닐봉지이자 쓰레기봉투를 모티브로 그대로 재현했고, 이번 시즌을 대표하는 액세서리답게 공개와 동시에 많은 주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발렌시아가가 이토록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으로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 S/S 시즌엔 이케아의 프락타 백을 모티브로 한 가방을, 2022 S/S 시즌엔 슈퍼마켓 비닐봉지를 떠올리게 하는 가죽 가방을 내세웠다.
발렌시아가뿐만 아니라 모스키노의 2022 F/W 컬렉션인 아이스 샴페인 버킷 백, 톰브라운의 테디베어, 스프링 박스 토이, 로브스터 등을 형상화한 가방 등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루이 비통은 페인트 통에서 영감을 얻은 가방부터 2023 S/S 시즌 컬렉션에선 종이배, 자동차, 집 등 장난감 같은 형상의 가방들을 선보였다.
이런 가방들이 과연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할지 모르겠지만, 실용성과 미니멀리즘을 중시하던 예전과 달리, 진정한 개성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트렌드임은 분명하다.
또 극도로 발달한 인터넷에 특화된 ‘밈’ 문화처럼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판매 욕구를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세상에 정치적, 사회적 견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패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소 혐오스러운 이미지로 각인돼 국내에선 시큰둥한 반응인 JW 앤더슨의 비둘기 클러치백은 브랜드의 자체 틱톡 계정에 실물과 홍보 영상을 업로드했고, 틱톡 내 외국 유명 인플루언서가 착용한 영상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했다.
발렌시아가 또한 밈을 가장 잘 이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추하고 평범한 물건이 가장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뎀나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봉투 트래시 파우치 백도 어쩌면 풍자적 의미를 내포한 밈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개인의 개성만을 강조하는 요즘 스타일이 어렵다고 생각될지라도, 틀에 갇히지 않은 독특한 스타일의 체험이 우리에게 더 자극적인 경험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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