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ELLO CUCINELLI
느긋한 시간 속 브루넬로 쿠치넬리
카사 쿠치넬리에서 진행된 브루넬로 쿠치넬리 프레젠테이션은 런웨이와는 다른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브랜드만의 유려한 새 옷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층 경쾌해진 색감과 수트의 다채로운 해석이 이번 컬렉션을 요약하는 핵심 요소. 풍요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의 따사로운 색조와 페리윙클, 옥스퍼드, 울트라머린 등 심도 깊은 블루 톤이 특유의 베이지색과 조화를 이루며 컬렉션 전반에 젊고 입체적인 인상을 불어넣었다. 이탈리아의 낭만을 물씬 풍기는 캐주얼한 수트가 이에 한몫한다. 단정하고 격식 있는 이브닝 수트도 눈길을 끌지만 일상과 비즈니스, 여름 휴양지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현대적인 수트들을 폭넓게 전개했다. 브랜드의 대체할 수 없는 테일러링 기술이 온전히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데님을 셋업으로 갖춰 입고, 블레이저와 바지를 따로 입는 옷에 대한 담백하고 멋스러운 태도 역시 이번 시즌을 아우르는 관전 포인트.
FENDI
펜디의 노스탤지어
이번 시즌 펜디 컬렉션은 여름의 낙관과 관대함으로 가득했다. 런웨이를 보는 내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행 욕구가 샘솟는 기분이랄까. 여유로운 실루엣에 간결한 레이어링만으로 완성한 나른하고 편안한 스타일이 주를 이뤘다. 땅과 바다, 하늘의 풍경을 담은 이채로운 컬러 팔레트, 소재와 장식, 추상적인 패턴이 곳곳에 혼재된 아이템들은 이국의 사이키델릭함,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을 물씬 풍긴다. 가벼운 옷차림에 비해 디테일의 변주는 과감해졌는데, 컷아웃 버킷 해트부터 데님 소재 바게트 백, 스웨이드 로퍼에서 볼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프린지와 태슬, 나풀대는 테리 레이스 장식이 강세였다. 무심하게 손에 든 오버사이즈 버킷 백, 물병 홀더를 갖춘 ‘진 재킷’ 피카부, 마트 쇼퍼 백을 연상시키는 재생 플라스틱 소재의 피카부 아이씨유 포티8(Peekaboo ISeeU Forty8)까지 여름을 더 여름답게 보낼 수 있는 실용적이고 위트 넘치는 백들의 향연도 눈길을 끌었다.
PRADA
프라다의 정석
프라다 캠페인의 모델로 선 배우 제프 골드블럼과 라미 말렉을 비롯해 제이크 질렌할, 배우 송강, NCT 재현 등 화려한 셀럽진이 프라다 종이의 집에 초대받았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는 2023 봄·여름 컬렉션의 테마를 프라다 초이스, 선별된 프로세스의 표현으로 정의했다. 블랙 수트와 오버코트, 가죽, 데님과 같은 모든 옷의 기본이 되는 직관적인 요소들을 재구성해 하나의 문맥을 만들어냈다. 단순함에 도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디테일을 줄이고 몸에 가까운 비율로 다듬었다. 여지없이 짧은 가죽 쇼츠, 발목 길이의 스키니 핏 청바지, 칼라가 없는 셔츠와 코트, 완벽한 블랙 수트가 이 결론을 뒷받침한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아이템들을 본능적으로 조합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과연 프라다답다. 여기에 발랄한 색감의 체크무늬와 깅엄 체크, 가죽 반바지를 적절하게 섞어 젊음을 환기하고 세련된 악센트라는 방점을 찍었다.
ZEGNA
제냐의 오아시 제냐
제냐의 이번 컬렉션은 밀라노가 아닌 오아시 제냐(Oasi Zegna)에서 펼쳐졌다. 이탈리아 북부 비엘라 지역의 트리베로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제냐의 초기 울 공장이 있던 산 부근. 제냐의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오아시 제냐라고 명명한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공장 주변의 불모지를 재건하고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를 벗어나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제냐의 고향 트리베로에 도착했다. 탁 트인 풍광 속 고즈넉하게 자리한 카사 제냐의 빌라 정원에서 간단한 칵테일파티를 즐긴 뒤에 모두가 공장의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이동했다. 공장 기계음이 멀어지면서 역사적인 라니피치오 제냐 양모 공장의 루프톱에 펼쳐진 런웨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는 이곳에서 사토리얼을 바탕으로 워크웨어와 액티브 웨어에서 영감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아시 제냐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극도로 가벼운 소재들로 표현했다. 편안하게 흐르는 유려한 실루엣을 따라 트리플 스티치 스니커즈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았다. 이번 트리플 스티치 스니커즈는 런던의 슈즈 디자이너이자 미스터 베일리로 잘 알려진 대니얼 베일리와의 협업으로 완성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런웨이로 돌아오는 모델들의 긴 피날레 행렬은 오아시 제냐에서 시작된 제냐의 여정을 함축하는 듯했다.
LOUIS VUITTON
루이 비통 퍼레이드
우리는 장난감 트랙 같은 거대한 런웨이에 앉아 있었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햇살은 더 없이 눈부셨다. 플로리다 A&M 대학 마칭 밴드의 끼와 흥이 흘러넘치는 공연으로 쇼가 시작되었다. 눈부신 하늘에 그들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다이아몬드 8천 개로 장식한 면류관을 쓴 켄드릭 라마의 라이브가 이어졌다. 그는 “버질, 몇 마일이나 떨어져 있나요”라는 주문을 보냈고, 쇼가 진행되는 동안 4곡의 라이브를 이어갔다. 루이 비통 쇼에서 켄드릭 라마의 라이브를 듣게 될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 버질 아블로의 존재감은 변함없이 뚜렷했다. 그가 진행한 쇼 세트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인비테이션부터 오버사이즈 실루엣, 바서티 재킷과 보머 재킷이나 스트리트 무드를 가미해 변형한 작업복을 선보인 컬렉션까지. 수트엔 큼직한 종이비행기 장식이 툭툭 달려 있고, 종이접기 배 모양의 가죽 모자, 폼폼 귀걸이나 목걸이 등 어린이의 장난감 같은 액세서리들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버질 아블로의 크리에이티브 팀원들이 모두 함께 런웨이에 올라 마칭 밴드를 따라가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장면은 이번 시즌 최고의 클라이맥스. 버질을 추억하는 대형 뮤지컬같이 감동과 서사가 충만했던 시간.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