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ARU
정강이까지 차오른 눈 바다를 푹푹 밟으며 걷고, 철딱서니 없이 데굴데굴 굴러보기도 하고. 그냥 몸 가는 대로. 그러려면 보온성 좋은 이너웨어를 2~3겹 껴입고, 방한 완벽한 부츠, 아우터, 장갑까지 짱짱하게 갖춰 입어야겠다. 눈도 제대로 못 뜰 만큼 온통 새하얀 눈 세상일 테니까 ‘쌔끈’한 선글라스도 꼭 챙겨야 하고. 출출해지면 뜨끈한 수프 카레에 얼음 맥주 한잔 원 샷 날리고. 다시 코끝 시린 시골 동네를 이리저리 기웃 거리다가 밤엔 양고기에 도수 높은 사케로 몸을 녹여야지. 다음 날 숲속 한가운데 있는 낡고 오래된 고급 료칸을 찾아가야겠다. 꼭 눈 덮인 숲이 둘러싸인 곳으로! 곧 산신령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허연 수증기가 자욱한 온천탕에 몸을 푹 담그고 세월아 네월아 타령이나 하다가. 다다미방에 녹아내린 듯이 드러누워 실없는 이야기나 주구장창 늘어놓는 하루키 글에 키득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아, 또 료칸은 가이세키 요리가 중요하다! 하나 안 남기고 찢어지게 다 먹을 거다. 정갈한 조식도 꼭 챙겨 먹고! 곧 갈 수 있겠지?
EDITOR 최태경
TEL AVIV
제대로 된 여행 다녀온 지 까마득한 지금 기분이라면 사실 기후가 따뜻한 나라 어디라도 좋다. 동남아나 하와이가 아닌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고른 건 완전한 이방인이 되고 싶어서. 지중해 바다를 낀 이스라엘 텔아비브는 1년 중 맑은 날이 3백 일 정도 되는 화창한 기후를 자랑한다. 거추장스럽거나 캐리어에 구겨 담기 어려운 것들은 빼놓고 금세 마르는 쇼츠와 비치타월, 소금물에 엉킨 머리를 풀어줄 헤어 미스트, 스포티한 패니 팩 같은 핵심적이고 단출한 짐을 쌀 거다. 아무런 계획 없이 눈 뜨면 바다에 가 앉아 있을 테니까. 플립플롭만 꿰어 신고 다니려다가 포멀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단정한 로퍼나 운동화 한 켤레쯤은 챙긴다. 시차를 핑계로 낮부터 술을 마시고, 밤이면 바뀌는 해변의 분위기를 있는 그래도 만끽한 채 흥청망청하게 다니고 싶다.
EDITOR 이상
TANGER
이브 생 로랑과 믹 재거가 사랑한 마라케시, 짐 자무시의 도시 탕헤르, 그리고 카사블랑카의 정수와 카바르까지. 여행자에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모로코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 ‘머스트 비짓’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 모로코 최북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 탕헤르는 대서양의 부서지는 파도와 지중해가 만나는 교착점이자 아프리카와 유럽의 관문인 곳.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데 이를테면 무어 양식 건축물, 재즈 바, 메디나와 무역상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들이다. 여기서 입을 옷을 생각해봤다. 모로코 하면 에스닉 패턴이 빠질 수 없지 않나? 사실 에스닉한 패턴 셔츠는 평소 입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으니 모로코의 태양 아래 단추 서너 개쯤 풀고, 짤막한 쇼츠에 입으련다. 그렇게 오늘도 지브롤터 해협에 ‘첨벙’ 하는 상상을 해본다.
EDITOR 김성지
PARIS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두근대는 내 심장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킬 것만 같다. 내가 사랑하는, 아니 애증의 도시 파리. 닿는 걸음걸음마다 눈에 담고 싶은 것들이 가득한 곳, 감성으로 넘쳐나는 거리들은 뇌리에 깊숙이 박혀 마치 그곳이 고향인 듯 향수병을 불러일으킨다. 노천카페에 앉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벼운 와인을 마시거나, 혹은 고흐가 사랑한 압생트에 설탕을 녹여 마시고 취해도 좋을 도시. 지저분해도 그마저 파리스러운 길을 걷다 쉬기도 하고, 무작정 또 정처 없이 걷다 들어간 어느 갤러리에서 본 낯선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 옷차림은 아무래도 무심한 듯 시크해야겠지. 가벼운 니트에 블랙 레더 팬츠, 그리고 그 위에 낙낙한 실루엣의 트렌치코트 하나 걸치고 나서면 충분하다. 아, 포터블 스피커도 챙겨 해 질 녘에는 마르셰에 들러 와인 한 병 산 후 센 강변으로 향해야겠다.
EDITOR 노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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